정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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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정태는 후한 말기의 인물로, 젊은 시절부터 재략이 뛰어나 혼란스러운 시국을 예견하고 호걸들과 교류했다. 하진, 동탁 등 권력자들에게 간언하며 시국을 바로잡으려 했으나 뜻을 이루지 못했다. 동탁이 횡포를 부리자 반동탁 연합군 결성을 돕고, 동탁 암살을 모의하다 실패하여 원술에게 의탁했으나 양주 자사 부임을 앞두고 병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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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기는 영웅기에 기록된 원술 휘하 장수로, 원술이 황제를 칭하려 할 때 반대하다 죽임을 당했으며, 구강태수로 임명되어 손책과의 동맹 관계에 갈등을 빚었고, 여포 공격에 참여했다 패배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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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정태는 젊어서부터 재능과 모략이 뛰어나 영제 말기에 천하가 혼란스러워질 것을 예측하고 호걸들과 교류하며 명성을 얻었다. 집안은 재산이 풍부하여 밭이 400ha이나 되었으나,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어 항상 먹을 것이 부족할 정도로 명성이 산동에 널리 알려졌다.[1]
효렴으로 천거되었으나 삼공부의 부름에 모두 응하지 않고 은거하였다. 영제 사후, 하진이 정권을 잡으면서 순유, 화흠과 함께 등용되어 상서시랑이 되고 봉거도위를 겸임했다. 하진이 십상시와 권력 다툼을 벌이며 동탁을 불러들이려 하자, 정태는 이에 강력하게 반대하고 다른 시급한 일들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순유에게 "하진은 보필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하며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1]
하진이 살해되고 동탁이 그 자리를 차지하자, 정태는 하옹, 오경(伍瓊)과 함께 원소와 연결하여 반동탁 연합군의 궐기를 유도하였다. 동탁이 이에 대응하여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려 하자, 정태는 '덕으로 다스려야지 병력 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라며 반대했다. 동탁이 불쾌해하며 병사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냐고 묻자, 정태는 순간 두려웠지만 열 가지 이유를 들어 반동탁 연합군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1]
동탁은 정태의 주장에 감격하여 장군으로 삼아 반동탁 연맹군에 대항하게 했다. 그러나 "정태의 지혜는 보통 사람 이상이라 산동과 음모를 꾀하고 있다"는 참언을 듣고, 다시 의랑(議郞)에 임명하여 조정에 잡아두었다.[1]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면서 폭정을 일삼고 기근까지 겹치자, 정태는 사재를 털어 백성들을 구휼했다.[1] 하옹, 순유, 오경, 충집 등과 함께 동탁 암살을 모의했으나, 발각되어 하옹 등은 체포되고 정태는 무한으로 도주했다.[1] 이후 원술에게 의탁했고, 원술은 그를 양주자사로 임명하려 했으나, 부임하기 전에 병으로 사망했다.[1]
2. 1. 초기 생애와 관직 진출
젊어서부터 재능과 모략이 뛰어나 영제 말기에 천하가 혼란스러워질 것을 예측하고 호걸들과 교류하며 명성을 얻었다. 집안은 재산이 풍부하여 밭이 400ha이나 되었으나, 많은 식객을 거느리고 있어 항상 먹을 것이 부족할 정도로 명성이 산동에 널리 알려졌다.[1]효렴으로 천거되었으나 삼공부의 부름에 모두 응하지 않고 은거하였다. 영제 사후, 하진이 정권을 잡으면서 순유, 화흠과 함께 등용되어 상서시랑이 되고 봉거도위를 겸임했다. 하진이 십상시와 권력 다툼을 벌이며 동탁을 불러들이려 하자, 정태는 이에 반대하고 다른 시급한 일들을 건의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이에 순유에게 "하진은 보필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말하며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1]
2. 2. 동탁에 대한 반대와 반동탁 연합군 결성
하진이 십상시와 권력을 다투면서 동탁을 불러들이려 하자, 정태는 이에 강력하게 반대했다. 또한 시급한 일들을 건의했으나 하진이 받아들이지 않자, 정태는 "하진은 보필하기가 쉽지 않다"라고 순유에게 말하며 관직을 버리고 떠났다.[1]하진이 살해되고 동탁이 그 자리를 차지하자, 정태는 하옹, 오경(伍瓊)과 함께 원소와 연결하여 반동탁 연합군의 궐기를 유도하였다. 동탁이 이에 대응하여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려 하자, 정태는 "정치는 덕으로 하는 것이지 숫자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라며 반대했다. 동탁이 불쾌해하며 '병사들은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냐'고 묻자, 정태는 순간 두려웠지만 다음과 같이 속여 말했다.[1]
동탁은 정태의 말에 감격하여 그를 장군으로 삼아 반동탁 연맹군에 대항하게 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정태의 지혜는 보통 사람 이상이라 결탁해 산동과 음모를 꾀하고 있습니다. 지금 그에게 병마를 맡기면 그 무리에게 가세하려 할 것입니다. 결국에는 명공의 우환거리가 될 것입니다."라고 조언하자, 동탁은 다시 거두어 들이고 의랑(議郞)에 임명하여 조정에 잡아두었다.[1]
2. 3. 동탁과의 논쟁 및 조정에서의 활동
동탁이 대규모 군대를 동원하여 반동탁 연합군에 대응하려 하자, 정태는 '덕으로 다스려야지 병력 수에 의존해서는 안 된다'라며 반대했다. 동탁이 불쾌해하며 병사들이 아무런 의미가 없는 것이냐고 묻자, 정태는 순간 두려웠지만 다음과 같이 열 가지 이유를 들어 반동탁 연합군을 군사적으로 제압하기 어렵다고 주장했다.[1]# '''산동 군벌 연합의 약점''': 광무제 이후 큰 전쟁이 없어 백성들이 전쟁에 익숙하지 않다.
# '''동탁군의 강점''': 동탁은 양주 출신으로, 오랜 군사 경험과 명성으로 사람들을 복종시킨다.
# '''반동탁 연합군 주요 인물들의 약점''': 원소는 공경의 자제, 장막은 동평의 명사, 공주는 청담과 고론에 능하나 군사적 재능은 부족하다.
# '''산동 선비들의 약점''': 날쌔거나 용감하지 않고, 방어 능력이 부족하며, 장량과 진평과 같은 책략가가 없다.
# '''반동탁 연합군의 분열''': 윗사람과 아랫사람의 질서가 없고, 각자 자신의 병력만 의지하여 통일된 행동이 불가능하다.
# '''동탁군의 군사적 우위''': 관서의 군대는 훈련되어 있고, 오랑캐와 싸워 부녀자들까지 전투에 능숙하다.
# '''동탁군의 지휘 체계''': 병주, 양주, 흉노, 도각, 황중의종, 서강 등 용맹한 자들을 부하로 삼고 있으며, 장수들은 심복하여 은혜와 신뢰가 두텁다.
# '''동탁군의 단결력''': 단합된 군대로서 이제 막 뭉친 반동탁 연합군을 쉽게 흩어버릴 수 있다.
# '''동탁의 명분''': 국정을 장악하고 환관을 제거했으며, 충의를 바로 세워 명분이 있다.
# '''정현과 병원의 역할''': 이들은 산동의 반란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다.
동탁은 정태의 주장에 감격하여 장군으로 삼아 반동탁 연맹군에 대항하게 했다. 그러나 "정태의 지혜는 보통 사람 이상이라 산동과 음모를 꾀하고 있다"는 참언을 듣고, 다시 의랑(議郞)에 임명하여 조정에 잡아두었다.[1]
2. 4. 동탁 암살 모의와 도주, 그리고 죽음
동탁이 장안으로 천도하면서 폭정을 일삼고 기근까지 겹치자, 정태는 사재를 털어 백성들을 구휼했다.[1] 정태는 하옹, 순유, 오경, 충집 등과 함께 동탁 암살을 모의했으나, 발각되어 하옹 등은 체포되고 정태는 무한으로 도주했다.[1] 이후 정태는 원술에게 의탁했고, 원술은 그를 양주자사로 임명하려 했으나, 정태는 부임하기 전에 병으로 사망했다.[1]3. 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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