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루 (촉한)
1. 개요
조루는 촉한의 장수로, 관우 휘하에서 도독을 지냈다. 219년, 관우가 오나라 군대에 쫓겨 맥성으로 후퇴했을 때 관우, 관평과 함께 탈출을 시도했으나, 반장과 주연의 매복에 걸려 마충에게 사로잡혔다. 관우와 관평은 처형되었지만, 조루에 대한 기록은 더 남아있지 않다. 삼국지연의에서는 관우를 보좌하는 인물로 등장하며, 형주 방어와 맥성 탈출 과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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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역사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역사에 관한 -
2013년
2013년은 박근혜 대통령 취임, 교황 사임, 북한 핵실험, 용산 개발 사업 부도, 윤창중 사건, 스노든 폭로, 김연아 우승, 방탄소년단 데뷔, 넬슨 만델라 사망 등 국내외적으로 다양한 정치, 경제, 사회, 문화적 사건들이 발생한 해이다. -
촉한의 정치인 -
황권
황권은 삼국 시대 촉한과 위나라에서 활약한 인물로, 유비의 촉 정벌 이후 촉한의 신료가 되었으나 오나라 공격을 반대하다 받아들여지지 않자 위나라에 귀순하여 진남장군 등을 역임했으며, 아들 황숭은 촉에 남아 등애의 침공에 맞서 싸우다 전사했다. -
촉한의 정치인 -
양의
양의는 촉한의 정치가로, 제갈량 사후 군 철수 임무 수행과 위연 제거에 공을 세웠으나, 좁은 소견과 과도한 야심으로 장완에게 밀려 불만을 품고 자결하여 능력과 인격의 조화 및 리더십의 중요성에 대한 교훈을 남겼다.
2. 생애
유비(劉備)의 수하 장수로 활동했으며, 형주(荊州)를 수비하던 관우(關羽) 밑에서 도독(都督)을 지냈다.
건안(建安) 24년(219년), 번성 전투 말기에 관우는 손권(孫權) 휘하의 여몽(呂蒙)과 육손(陸遜)에게 형주의 주요 거점들을 빼앗기고 맥성(麥城)으로 후퇴하게 되었다. 같은 해 12월, 조루는 관우, 관평(關平) 등과 함께 맥성을 탈출하여 달아나려 했으나, 남군(南郡) 임저현(臨沮縣) 장향(障鄕)에서 오군의 반장(潘璋)과 주연(朱然)이 설치한 매복에 걸렸다. 결국 반장의 부장 마충(馬忠)에게 관우, 관평과 함께 사로잡혔다.
관우와 관평 부자는 항복을 거부하고 처형되었으나, 조루의 이후 행적에 대해서는 기록이 남아있지 않아 알 수 없다.
3. 삼국지연의에서의 묘사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조루는 군전도독(軍前都督)이자 양말관(糧秣官) 또는 양료관(糧料官)으로서 관우를 보좌하는 충성스럽고 청렴한 인물로 등장한다. 왕보는 조루의 충의와 청렴함을 높이 사 그에게 형주 수비를 맡길 것을 건의했으나, 관우는 조루가 맡은 군량 보급 임무가 더 중요하다고 판단하여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후 조루는 관우의 번성 공격에 동행했다. 형주가 여몽에게 함락된 후 맥성에 고립되었을 때, 조루는 여몽에게 편지를 보내 설득하거나 상용의 유봉과 맹달에게 구원을 요청할 것을 진언하는 등 위기를 타개하기 위해 노력했다. 그러나 이러한 노력은 모두 실패로 돌아갔다. 결국 관우, 관평 부자와 함께 맥성 탈출을 시도하던 중 오군의 매복에 걸려 난전 속에서 전사하는 것으로 묘사된다.
3.1. 형주 방어에 대한 우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 조루는 군전도독(軍前都督)이자 양말관(糧秣官) 또는 양료관(糧料官)으로서 관우를 보좌하는 인물로 등장한다. 관우가 번성을 공격하러 떠나려 할 때, 부하 왕보는 형주 방어에 대한 깊은 우려를 나타냈다.
왕보는 평소 조루의 충성심과 청렴함을 높이 평가하여, 형주를 지킬 인물로 반준 대신 조루를 추천했다. 왕보는 반준에 대해 "평소 질투심이 강하고 이익을 탐하므로 중책을 맡겨서는 안 된다"고 비판하며, "성실하고 청렴한 조루에게 맡기면 만에 하나 실수가 없을 것"이라고 관우에게 간언했다. 또한 왕보는 만일의 사태에 대비하여 봉화대를 설치할 것도 건의했다.
그러나 관우는 왕보의 건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관우는 조루가 맡고 있는 군량 담당관의 역할 역시 매우 중요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다. 결국 관우는 반준에게 형주를 맡기고, 봉화대를 설치하자는 제안만 수락한 채 번성으로 출진했다.
3.2. 맥성에서의 최후
건안(建安) 24년(219년), 관우(關羽)는 여몽(呂蒙)과 육손(陸遜)에게 패배하여 맥성(麥城)으로 후퇴했다. 오군의 포위 속에서 관우는 관평(關平), 조루 등과 함께 성을 탈출하여 익주(益州) 방면으로 향하려 했으나, 남군(南郡) 임저현(臨沮縣) 장향(障鄕)에서 반장(潘璋)과 주연(朱然)의 매복에 걸렸다. 결국 반장의 부장 마충(馬忠)에게 관우, 관평 부자와 함께 사로잡혔다. 관우와 관평은 항복을 거부하고 처형되었으나, 조루의 이후 행적에 대한 정사 기록은 없다.
나관중의 소설 《삼국지연의》에서는 조루의 최후가 다르게 묘사된다. 맥성에 고립된 관우에게 조루는 먼저 여몽에게 편지를 보내 옛 정에 호소할 것을 건의했지만 실패했다. 이후 상용(上庸)의 유봉(劉封)과 맹달(孟達)에게 구원을 요청할 것을 진언했으나 이마저도 거절당했다. 결국 관우가 북쪽 포위망을 뚫고 탈출을 시도하자, 조루는 관평과 함께 관우를 수행했다. 그러나 오군의 여러 매복에 걸려 난전을 벌이던 중, 조루는 관우보다 먼저 전사하는 것으로 그려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