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민희 (조선귀족)
1. 개요
조민희는 일제강점기에 자작 작위를 받은 조선귀족으로, 1859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그는 1880년대 문과에 급제한 후 승문원 부정자, 용인현령, 성균관 대사성 등을 역임했다. 1900년대에는 특명전권공사, 일본주재 특명전권공사를 지냈으며, 1907년 헤이그 밀사 사건 처리, 한일 병합 조약 당시 승녕부 시종장을 맡았다. 한일 병합 후 자작 작위를 받았으나,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여 파산했으며, 1931년 사망했다. 그는 친일파로 분류되어 친일인명사전에 등재되었으며, 그의 아들 조중수와 손자 조용호 또한 조선귀족이었다.
| 이름 | 조민희 |
|---|---|
| 그림 | Cho Min-hui Portrait.jpg |
| 출생일 | 1859년 음력 10월 14일 |
| 출생지 | 서울 |
| 직업 | 중추원 고문 |
| 작위 | 자작 |
| 후임자 | 조중수 |
-
친일파 -
김기진
김기진은 팔봉이라는 호를 사용한 한국의 문학평론가, 소설가, 시인으로, KAPF에서 활동하며 경향파 문학 이론을 이끌었으나 친일 행적을 보였고 광복 후에는 반공주의 문인으로 활동했다. -
친일파 -
박태원 (1909년)
박태원은 일제 강점기와 북한에서 활동한 소설가로, 모더니즘 소설을 주로 썼으며, 해방 후 월북하여 북한에서 활동하다 사망했다. -
일제강점기의 관료 -
최남선
최남선은 1890년에 태어나 1957년에 사망한 대한민국의 문인이자 독립운동가, 언론인, 역사학자이며, 《소년》을 창간하고 신체시 〈해에게서 소년에게〉를 발표하여 현대 한국 문학의 선구자로 평가받으며, 3·1 운동 독립선언서 기초, 친일 행적, 단군 연구, 《단군론》, 《불함문화론》 저술 등의 활동을 했다. -
일제강점기의 관료 -
김창영 (1890년)
김창영은 일제강점기 경찰 및 관료, 만주국 관리로서 항일 무장 세력 탄압과 귀순 공작에 참여하고 금산군수와 전라남도 참여관을 지냈으며, 광복 후 경성부부윤을 역임했으나 반민특위에 체포되어 친일반민족행위자로 처벌받고 친일파 명단에 포함되었다. -
1931년 사망 -
넬리 멜바
넬리 멜바는 뛰어난 가창력과 무대 매너로 빅토리아 시대 후기와 20세기 초에 국제적인 명성을 얻은 오스트레일리아 출신의 오페라 소프라노 가수이다. -
1931년 사망 -
안나 파블로바
안나 파블로바는 20세기 초 뛰어난 러시아 발레리나로, 《죽어가는 백조》 창조와 파블로바 컴퍼니 설립을 통해 발레 대중화에 기여하고 여러 나라 전통춤을 공연에 접목했다.
2. 생애
1859년 서울에서 태어나 1931년 사망했다. 1800년대 경과증광별시(慶科增廣別試) 문과에 급제하여 관직에 진출한 후, 1900년대에는 여러 요직을 거치며 헤이그 밀사 사건 처리 등에 관여했다. 한일 병합 조약 체결에 기여한 공로로 일본으로부터 자작 작위를 받았으나, 도박으로 재산을 탕진하고 파산하여 작위를 박탈당했다.
2.1. 관료 생활
1859년 10월 14일 서울에서 태어났다. 1800년대 경과증광별시(慶科增廣別試) 문과에 10위로 급제한 뒤, 가주서를 시작으로 관료 생활을 시작했다. 1886년 1월 승문원 부정자, 1887년 9월 양성현감, 1887년 12월부터 1889년 10월까지 용인현령, 1890년 1월 성균관 대사성, 1891년 5월 본산군수, 1894년 6월 승정원 동부승지를 역임했다. 1896년 1월부터 1899년 2월까지 전주, 평안남도, 평안북도에서 관찰사와 판사를 겸직했다.
1900년대에 들어 10월 궁내부 특진관, 11월 법부협판을 거쳐, 1901년 1월 특명전권공사가 되었다. 같은 해 3월 프랑스 주재 특명전권공사, 미국 주재 특명전권공사에 임명되었고, 1903년에는 일본 주재 특명전권공사로 임명되었다. 1906년 1월 경상남도재판소 판사와 경상남도 세무감을 겸직했고, 1907년 6월 비서감경에 이어 7월 평리원 재판장에 임명되어 헤이그 밀사 사건의 처리를 담당했다. 같은 해 8월 한일 병합 조약 당시 승녕부 시종장, 11월 승녕부 총관을 역임했다. 1907년 10월 신사회의 부장에 선출되었고, 11월 동아개진교육회의 부회장, 1908년 2월 대동학회 평의원, 8월 기호흥학회 찬무원 및 회장을 1910년까지 역임했다. 1908년 9월 상공권무사 사장, 동양협회에 기부, 10월 북부 관진방회에 기부 및 회장을 지냈다. 1909년 10월 이토 히로부미를 조문하기 위해 고종의 칙사로 중국 다롄에 파견되었다.
1910년 한일합방에 세운 공을 인정받아 일본으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았다. 1916년 중추원 고문, 1918년 4월부터 1919년 11월까지 이태왕부 이왕직 찬시(고등관 2등)에 임명되어 재임했다. 재직 중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 국장 빈전 주감을 맡았다. 이후 1919년 11월 15일부터 1921년 4월 26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1921년 4월 28일부터 1924년 4월 26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참의를 역임하였다. 또한 1925년 4월 18일까지 사단법인 조선귀족회 이사로 활동하였다. 1926년 5월 15일 종3위에 올랐다. 1927년 12월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아 1928년 2월 29일 자작의 예우가 정지되었다.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한 그의 사정은 조선총독부 비밀문서인 『조선귀족약력』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2.2. 친일 행적
1910년 한일 병합 조약에 세운 공을 인정받아 일본으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았다. 1916년부터 중추원 고문, 1918년 4월부터 1919년 11월까지 이왕직 찬시(贊侍)를 지냈다. 1919년 1월 21일 고종 황제 국장 빈전(殯殿) 주감(主監)을 맡았다. 1919년 11월 15일부터 1924년 4월 26일까지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및 참의를 역임하였다. 1925년 4월 18일까지 조선귀족회 이사로 활동하였다.
한일 병합 조약 이후 일본으로부터 거액의 은사금을 받았으나,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여 1927년 12월 경성지방법원에서 파산 선고를 받고 1928년 2월 29일 자작 작위가 정지되었다.
2.3. 몰락과 사망
1910년 한일 병합 조약 이후 일본으로부터 훈1등 자작 작위를 받았고, 조선총독부 중추원 고문, 이왕직 찬시 등을 역임했다. 1925년 4월 18일까지 사단법인 조선귀족회 이사로 활동하였고, 1926년 5월 15일 종3위에 서임되었다.
그러나 한일 병합 조약 이후 일본으로부터 받은 거액의 은사금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고 도박으로 가산을 탕진하여 빚에 쫓기다 1927년 12월 경성지방법원으로부터 파산 선고를 받았다. 1928년 2월 29일에는 자작의 예우가 정지되었다. 이러한 사정은 조선총독부 비밀문서인 『조선귀족약력』에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1931년 1월 2일 사망했으며, 장남 조중수(1894~1940)가 1931년 2월 16일 자작 작위를 세습하였다.
3. 사후 평가
2002년 발표된 친일파 708인 명단과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에 그의 작위를 습작 받은 장남 조중수와 함께 선정되었다. 2007년 대한민국 친일반민족행위진상규명위원회가 발표한 친일반민족행위 195인 명단에도 들어 있다.
4.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7대조 | 조태채(趙泰采, 1660~1722) | 1686년 문과 급제, 노론 4대신, 좌의정 |
| 6대조 | 조관빈(趙觀彬, 1691~1757) | 1714년 문과 급제, 대제학 |
| 5대조 | 조영석(趙榮晳) | 김포군수(金浦郡守) |
| 고조부 | 조명철(趙命喆) | 공조참의(工曹參議) |
| 증조부 | 조진홍(趙鎭弘) | 통덕랑(通德郞) |
| 조부 | 조재순(趙在淳, 1807~1892) | 1877년 문과 급제, 이조판서(吏曹判書) |
| 아버지 | 조병익(趙秉翼) | 이조참의(吏曹參議) |
| 정실 | 파평 윤씨(尹氏) | 윤직의(尹稷儀)의 딸. 1850년 진사 합격, 거창 부사(居昌府使). |
| 계실 | 전주 최씨(崔氏) | 최중집(崔中集)의 딸 |
| 아들 | 조중수(趙重壽, 1894~1940) | 일제강점기 조선귀족(자작) |
| 손자 | 조용호(趙龍鎬, 1918~1950) | 일제강점기 조선귀족(자작) |
| 매부 | 이완용(李完用, 1858~1926) | 친일파(을사오적·정미칠적·경술국적), 일제 강점기 조선귀족(후작) |
| 동서 | 민태호(驪恩府院君 閔台鎬, 1834~1884) | 순명효황후의 아버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