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백규
1. 개요
조백규는 남송 효종 재위 기간에 명주 지주, 연해제치사 등을 역임하고 광종 즉위 후 태보까지 오른 인물이다. 소희 2년 판대종정사에 임명되어 태사가 되었으며, 숭신군 절도사를 겸했다. 1202년 사망 후 숭왕으로 추봉되었다. 명주 지주와 연해제치사로 재직하며 일본과의 외교 관계를 맺었고, 해적을 토벌하고 무역을 진흥하는 등 선정을 베풀었다. 그의 후손 중에는 원나라 때의 문인화가 조맹부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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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나라의 태보 -
북송 진종
북송의 제3대 황제인 진종은 문치주의 정책 추진, 과거 제도 정비, 황제 독재 권력 강화, 요나라와의 전연의 맹 체결, 참파 벼 도입, 도교 장려 등 다양한 정책을 펼쳤다. -
송나라의 태보 -
북송 인종
북송 인종은 북송의 제4대 황제로, 문치주의를 표방하여 문화적 번영을 이루었으나 군사력 약화, 서하의 침입, 잦은 재해, 경력신정의 실패, 사회 불안 야기 등의 어려움을 겪어 '인'이라는 묘호를 받았고 그의 치세는 경력의 치라 불린다. -
송나라의 황족 -
조여우
조여우는 송나라 효종, 광종, 영종 시대의 재상으로, 효종의 신임을 받아 광종 폐위 후 영종을 옹립하는 데 중요한 역할을 했으나, 한탁주와의 대립으로 유배 중 사망 후 복권되었으며 주희를 옹호하여 송명리학 발전에 기여했다. -
송나라의 황족 -
조윤양
조윤양은 북송 태종의 손자이자 진종의 양자로, 인종의 뒤를 이어 황위를 계승한 영종의 아버지로서 복왕으로 추존되었으나 묘호는 받지 못한 종실이자 관료이다. -
1191년 사망 -
교황 클레멘스 3세
교황 클레멘스 3세는 로마 출신으로 1187년부터 1191년까지 교황으로 재임하며 교황청 복귀, 제3차 십자군 원정 촉구, 스코틀랜드 교회 독립, 신성 로마 제국과의 갈등, 추기경단 확대 등의 활동을 펼쳤다. -
1191년 사망 -
지브란트
지브란트는 《어쌔신 크리드》 시리즈에 등장하는 가상 인물로, 작품에 따라 템플 기사단, 비잔틴 제국, 아랍 지역에서 활동하는 모습으로 묘사된다.
2. 생애
효종 재위 기간 중 명주 지주, 연해제치사, 현모각직학사, 용도각직학사를 역임했으며, 광종 즉위 후 소사에 승진했고, 이후 태보가 되었다. 1191년(소희 2년) 판대종정사에 임명되어 태사가 되었으며, 숭신군 절도사를 겸했다.
1202년(가태 2년) 사망 후 숭왕으로 추봉되었다.
아들로 조사기, 조사규, 조사수, 조사설, 조사우, 조사고, 조사암, 조사미, 조사공의 9명이 있다. 또한, 동생인 효종의 제안으로 명주 시대부터 관계가 있던 같은 지역 출신 재상 사호의 막내아들인 사미견(사미원의 동생)에게 딸 신안군주를 시집보냈다。
남송 말부터 원 초에 걸쳐 활동한 정치가이자 문인인 조맹부는 조사수의 증손에 해당한다.
2.1. 관직 생활
효종 재위 기간 중 명주 지주, 연해제치사, 현모각직학사, 용도각직학사를 역임했으며, 광종이 즉위하자 소사에 승진했고, 이후 태보가 되었다. 소희 2년 (1191년) 판대종정사에 임명되어 태사가 되었으며, 숭신군 절도사를 겸했다.
2.2. 일본과의 관계
건도 8년(일본의 조안 2년/1172년) 9월, 조백규는 명주지주(明州知州)·연해제치사(沿海制置使)의 임무를 맡고 있을 때 "일본 국왕"(고시라카와 법황) 및 "일본국 태정대신"(평청성) 앞으로 방물을 보냈다. 건도 9년(조안 3년/1173년) 3월, 고시라카와 법황에게 답서를 명받았고, 키요모리로부터 "일본국 사문 정해 첩(日本国沙門静海諜) 대송국 명주 연해제치사 왕(大宋国明州沿海制置使王)"으로 시작하는 서신이 보내졌다.
2.3. 일화
융흥·건도(乾道) 연간에 명주지주(明州知州)·연해제치사(沿海制置使)로서 해적을 토벌하고 무역 진흥에 힘썼던 조백규는 어느 날 남방에 있는 진리부국(真里富国)의 상인이 명주에서 갑자기 사망하여 많은 재산을 남긴 사건을 겪었다. 명주의 관리는 법에 따라 상인이 남긴 재물을 몰수해야 한다고 건의했지만, 조백규는 "먼 곳에서 온 손님의 불행을 틈타 이익을 얻을 수는 없다"라며 상인의 유해를 관에 넣어 재물과 함께 고국으로 돌려보냈다.
3. 가계
조백규는 원나라 때의 문인화가 조맹부의 조상으로, 그의 넷째 아들 조사수의 4대손이다. 효종 재위 기간 중 명주 지주, 연해제치사, 현모각직학사, 용도각직학사를 역임했으며, 광종이 즉위하자 소사에 승진했고, 이후 태보가 되었다. 소희 2년(1191년) 판대종정사에 임명되어 태사가 되었으며, 숭신군 절도사를 겸했다. 가태 2년(1202년) 사망하자, 숭왕으로 추봉되었다.
태조 - 진왕 조덕방 - 영국공 조유헌 - 신흥후 조종욱 - 화음후 조세장 - 경국공 조령화 - 수안희왕 조자칭 - 숭왕 조백규
3.1. 가계도
조백규는 원나라 때의 문인화가 조맹부의 넷째 아들 조사수의 4대손이었다.
| 이름 | 비고 |
|---|---|
| 태조 | |
| 진왕 조덕방 | |
| 영국공 조유헌 | |
| 신흥후 조종욱 | |
| 화음후 조세장 | |
| 경국공 조령화 | |
| 수안희왕 조자칭 | |
| 숭왕 조백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