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지 포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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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지 포먼은 미국의 권투 선수로, 1968년 하계 올림픽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프로로 전향하여 1973년 조 프레이저를 꺾고 챔피언이 되었으며, 1974년 무하마드 알리에게 패배하기 전까지 타이틀을 방어했다. 1977년 은퇴 후 개신교 신자가 되어 목사로 활동하다가 1987년 복귀하여 1994년 45세의 나이로 WBA와 IBF 챔피언 타이틀을 획득하며 최고령 챔피언 기록을 세웠다. 그는 1997년 은퇴 후 요리기구 사업에 성공하여 대중적인 인기를 얻었으며, 12명의 자녀를 두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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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지 포먼 - [인물]에 관한 문서 | |
---|---|
기본 정보 | |
이름 | 조지 에드워드 포먼 |
원어명 | George Edward Foreman |
별칭 | 빅 조지 |
체급 | 헤비급 |
신장 | 193cm |
리치 | 201cm |
국적 | 미국 |
출생일 | 1949년 1월 10일 |
출생지 | 텍사스주 마셜 |
스타일 | 오소독스 |
총 전적 | 81 |
승리 | 76 |
KO 승리 | 68 |
패배 | 5 |
활동 기간 | 1969년~1977년, 1987년~1997년 |
종교 | 개신교 |
메달 기록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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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포츠 | 남자 복싱 |
대회 | 올림픽 |
금메달 | 1968년 멕시코시티 복싱 헤비급 |
아마추어 업적 | 1968년 하계 올림픽 헤비급 금메달 1967년 미국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대회 우승 1967년 샌프란시스코 아마추어 복싱 선수권대회 우승 |
프로 복싱 | |
프로 데뷔 | 1969년 |
챔피언 타이틀 | WBC 헤비급 챔피언 (1973년-1974년) WBA 헤비급 챔피언 (1973년-1974년) IBF 헤비급 챔피언 (1994년-1995년) WBA 헤비급 챔피언 (1994년-1995년) |
주요 경기 | 무하마드 알리 와의 경기 (1974년) 마이클 무어러 와의 경기 (1994년) |
기타 | |
링 매거진 선정 | 역대 최고 펀처 100인 중 한 명 지난 80년 최고의 선수 80인 중 한 명 |
은퇴 후 | 목사 활동 기업가 활동 조지 포먼 그릴 사업 |
방송 활동 | HBO 스포츠 해설 (12년) |
학력 | 고등학교 중퇴 |
신앙 | 거듭난 기독교인 |
사업 성공 | 고등학교 중퇴에도 불구하고 백만장자 달성 조지 포먼 그릴 사업으로 큰 성공 |
회고 | 경기 중 예수 그리스도가 자신 안에서 살아나는 것을 느낌 이마에 가시관이 박히고 손목에 십자가 못이 박히는 경험을 함 샤워 중에 거듭남을 느낌 |
2. 생애
1968년 하계 올림픽에서 헤비급 금메달을 획득한 포먼은 1969년 프로로 전향했다.[14] 1973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조 프레이저를 꺾고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으며,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켄 노턴과의 경기에서도 승리하며 타이틀을 지켰다.[15]
1974년 콩고 민주 공화국 킨샤사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정글의 럼블" 경기를 가졌으나, 알리의 로프 어 도프 전략에 말려 KO패를 당하며 챔피언 타이틀을 상실했다. 이는 포먼의 프로 첫 패배였다.
1976년 론 라일과 조 프레이저를 상대로 승리했지만, 1977년 지미 영에게 패한 후 은퇴했다. 지미 영과의 경기 후 탈의실에서 심장마비로 쓰러졌다가 기적적으로 살아난 사건은 포먼의 인생을 바꾸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포먼은 개신교 신자로 개종하여 목회자의 길을 걸으며, '저승사자에게 붙들려 지옥으로 끌려가던 중 하나님께 자신을 살려줄 것을 간구했더니 하나님이 나타나서 구해줬다'는 간증을 하기도 했다.
1987년, 38세에 자선 기금 마련을 위해 복귀, 1990년 제리 쿠니를 KO로 이겼다. 1991년 이밴더 홀리필드와의 타이틀전에서는 패했지만 12라운드까지 가는 저력을 보였다.
1994년 11월 5일, 마이클 무어러를 10라운드 KO로 꺾고 45세 10개월의 나이로 WBA와 IBF 챔피언에 올라 최고령 헤비급 챔피언 기록을 세웠다. 이는 이전의 연장자 챔피언이었던 조 월컷보다 7년 연상이었다.
1997년 정식 은퇴까지 76승(68 KO승) 5패의 기록을 남겼다.
2. 1. 어린 시절과 아마추어 경력
조지 포먼은 1949년 1월 10일 텍사스주 마셜에서 태어나 휴스턴에서 자랐다.[14] 그는 여섯 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다섯 번째 구역 지역에서 성장했다.[14] 포먼은 어린 시절 문제아였으며, 15세에 학교를 중퇴하고 강도짓을 하기도 했다. 16세에 잡 코프스에 등록하여[15] GED를 취득하고 목수와 벽돌공이 되도록 훈련받았다.[15] 캘리포니아주 플레전턴으로 이사한 후, 감독의 도움으로 복싱 훈련을 시작했다.[16] 포먼은 미식축구에 관심이 많았고 짐 브라운을 우상으로 삼았지만, 복싱을 위해 미식축구를 포기했다.[16]
포먼은 1968년 멕시코시티 올림픽 헤비급에서 금메달을 획득했다. 결승전에서 소련의 요나스 체풀리스를 2라운드에서 심판 중단으로 꺾었다.[17] 리투아니아 출신의 체풀리스는 29세의 베테랑으로 12년간의 아마추어 경력과 220회가 넘는 경기를 치른 경험이 풍부한 선수였으며, 포먼보다 10살 많았다.[19] 금메달 시합에서 승리한 후, 포먼은 작은 미국 국기를 들고 링을 돌며 관중들에게 절을 했다.[17][18] 포먼은 올림픽 금메달 획득이 자신의 복싱 경력에서 가장 자랑스러운 업적이라고 말했다.[15]
포먼의 아마추어 경기 기록은 다음과 같다.
날짜 | 대회 | 부문 | 결과 | 상대 | 비고 |
---|---|---|---|---|---|
1967년 1월 26일 | 파크스 다이아몬드 벨트 토너먼트 | 1라운드 KO승 | |||
1967년 2월 |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골든 글러브 토너먼트 | 주니어 | 우승 | ||
1967년 2월 | 라스베이거스 골든 글러브 | 시니어 | 우승 | 토마스 쿡 | KO승 |
1968년 2월 | 샌프란시스코 이그재미너 | 시니어 | 우승 | L.C. 브라운 | KO승 |
1968년 3월 | 전국 복싱 선수권 대회 | 헤비급 | 우승 | 헨리 크럼프 | 결승전 승리 |
1968년 9월 21일 | 승리 | 오티스 에반스 | 판정승, 멕시코시티 올림픽 미국 복싱 국가대표팀 합류[20] |
1968년 하계 올림픽 복싱 경기 결과는 다음과 같다.
라운드 | 상대 | 결과 | 비고 |
---|---|---|---|
16강 | 루치안 트렐라 (폴란드) | 4대 1 판정승 | |
8강 | 이온 앨렉세 (루마니아) | 3라운드 심판 중단 승리 | |
준결승 | 조르지오 밤비니 (이탈리아) | 2라운드 KO 승리 | |
결승 | 요나스 체풀리스 (소련) | 2라운드 심판 중단 승리 | 금메달 획득 |
포먼은 올림픽에 출전하기 전까지 16승 4패, 프로로 전향했을 때 22승 4패의 아마추어 복싱 전적을 기록했다.[3][20]
2. 2. 프로 복서 경력
1969년 프로로 전향한 포먼은 1973년 자메이카 킹스턴에서 조 프레이저를 꺾고 WBA와 WBC 세계 헤비급 통합 챔피언에 올랐다. 베네수엘라 카라카스에서 열린 켄 노턴과의 경기에서도 2회 KO승을 거두며 타이틀을 방어했다.1974년 콩고 민주 공화국 킨샤사에서 무하마드 알리와 "정글의 럼블" 경기를 가졌으나, 알리의 로프 어 도프 전략에 말려 KO패를 당하며 챔피언 타이틀을 잃었다. 이는 포먼의 프로 첫 패배였다.
1976년 론 라일, 조 프레이저를 상대로 KO승을 거두었으나, 1977년 지미 영에게 판정패한 후 은퇴, 개신교 목회자의 길을 걸었다.
1987년, 38세에 자선 기금 마련을 위해 복귀, 1990년 제리 쿠니를 KO로 이겼다. 1991년 이밴더 홀리필드와의 타이틀전에서는 패했지만 12라운드까지 가는 저력을 보였다.
1994년 11월 5일, 마이클 무어를 10라운드 KO로 꺾고 45세 10개월의 나이로 WBA와 IBF 챔피언에 올라 최고령 헤비급 챔피언 기록을 세웠다.
1995년 악셀 슐츠에게 논란의 판정승 후 IBF 타이틀을 박탈당했다. 1997년 섀넌 브리그스에게 판정패하며 48세로 은퇴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