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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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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조칸지는 1655년에 창건된 절로, 특히 요시와라 유곽과 관련된 역사를 가지고 있다. 1855년 안세이 대지진 이후 약 500명의 유녀를 급하게 매장하면서 '나게코미데라'(버려진 절)로 불리게 되었다는 설이 있으나, 실제로는 죽기 전 범죄를 저지르거나 유곽의 규칙을 어긴 유녀들의 시신을 처리했던 곳이다.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의 센류 작가인 하나마타 카스이의 구절 "태어나서는 고통의 세상, 죽어서는 조칸지"로도 알려져 있으며, 신요시와라 총령탑, 나가이 가후 문학비 등이 위치해 있다. 매년 4월 30일에는 하후기가 열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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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칸지 - [지명]에 관한 문서
지도 정보
기본 정보
명칭조칸지 (浄閑寺)
로마자 표기Jōkan-ji
별칭던져버리는 절 (投込寺)
상세 정보
소재지일본 도쿄도 아라카와구 미나미센주 2-1-12
산호에이호산 (栄法山)
원호세이코인 (清光院)
종파정토종
본존아미타여래
창건 연도1655년 (메이레키 원년)
개산세이요 (晴誉)
정식 명칭에이호산 세이코인 조칸지 (栄法山清光院浄閑寺)
공식 웹사이트栄法山清光院浄閑寺 공식 웹사이트

2. 역사

조칸지는 1655년에 개장되었다.[1] 요시와라 유곽의 기생들의 시신은 짚 매트 속에 넣어 절의 뒷문으로 옮겨져 그곳에 남겨졌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1] 조칸지가 '나게코미데라'(投げ込み寺, 버려진 절)로 불리게 된 것은 1855년 안세이 대지진 이후 약 500명의 기생들을 질병 예방을 위해 급하게 매장했기 때문이다.[2] 짚 매트 사용과 시신 유기는 죽기 전에 범죄를 저질렀거나 유곽의 규칙을 어긴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었다.[2]

조칸지는 요시와라 유곽이 탄생(1657년)하기 2년 전인 1655년에 창건되었다. 절의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안세이 대지진(1855년)으로 대량의 유녀가 사망했을 때 이 절에 던져서 장례를 치른 것에서 유래한다.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의 센류 작가인 하나마타 카스이의 구절 "'''태어나서는 고통의 세상, 죽어서는 조칸지'''"로도 알려져 있다.

"병 등으로 죽은 유녀는 요시와라 유곽의 경우 조칸지에 '~매녀'라는 계명으로 말 그대로 던져졌다"는 설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고문서에는 전혀 없다. "매녀"의 계명은 "심중", "침대 난동", "기청문 난발", "도망", "곽 내에서의 밀통", "아편 흡입" 등 요시와라의 규칙을 어긴 자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이 경우, 알몸으로 벗겨진 채 아라고모에 싸여 절에 던져졌다. "인간으로 장례를 치르면 후에 재앙이 따르기 때문에, 개나 고양이처럼 취급하여 축생도에 떨어뜨린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2. 1. 창건과 나게코미데라

조칸지는 1655년에 개장되었다.[1] 요시와라 유곽의 기생들의 시신은 짚 매트 속에 넣어 절의 뒷문으로 옮겨져 그곳에 남겨졌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는 사실이 아니다.[1] 조칸지가 '나게코미데라'(投げ込み寺, 버려진 절)로 불리게 된 것은 1855년 안세이 대지진 이후 약 500명의 기생들을 질병 예방을 위해 급하게 매장했기 때문이다.[2] 짚 매트 사용과 시신 유기는 죽기 전에 범죄를 저질렀거나 유곽의 규칙을 어긴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었다.[2]

조칸지는 요시와라 유곽이 탄생(1657년)하기 2년 전에 창건되었다. 절의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안세이 대지진(1855년)으로 대량의 유녀가 사망했을 때 이 절에 던져서 장례를 치른 것에서 유래한다.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의 센류 작가인 하나마타 카스이의 구절 "'''태어나서는 고통의 세상, 죽어서는 조칸지'''"로도 알려져 있다.

"병 등으로 죽은 유녀는 요시와라 유곽의 경우 조칸지에 '~매녀'라는 계명으로 말 그대로 던져졌다"는 설도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고문서에는 전혀 없다. "매녀"의 계명은 "심중", "침대 난동", "기청문 난발", "도망", "곽 내에서의 밀통", "아편 흡입" 등 요시와라의 규칙을 어긴 자에 한정되어 있다는 것이 최근의 연구에서 밝혀지고 있다. 이 경우, 알몸으로 벗겨진 채 아라고모에 싸여 절에 던져졌다. "인간으로 장례를 치르면 후에 재앙이 따르기 때문에, 개나 고양이처럼 취급하여 축생도에 떨어뜨린다"는 생각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2. 2. 유녀들의 장례와 매녀

조칸지는 1655년에 개장했다. 대부분 요시와라 유곽의 기생들의 시신은 짚 매트 속에 넣어 절의 뒷문으로 옮겨져 그곳에 남겨졌다는 이야기가 있지만 이것은 사실이 아니다.[1] 조칸지가 'Nage-komi-dera'(버려진 절)로 알려지게 된 이유는 1855년 안세이 대지진 이후 약 500명의 기생들을 질병을 예방하기 위해 급하게 매장했기 때문이다.[2] 짚 매트 사용과 시신 유기는 죽기 전에 범죄를 저질렀거나 유곽의 규칙을 어긴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었다.[2]

조칸지는 요시와라 유곽이 탄생(1657년)하기 2년 전인 1655년에 창건되었다. 절의 공식 웹사이트에 따르면, 안세이 대지진(1855년)으로 대량의 유녀가 사망했을 때 이 절에 던져서 장례를 치른 것에서 유래한다.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의 센류 작가인 하나마타 카스이의 구절 "'''태어나서는 고통의 세상, 죽어서는 조칸지'''"로도 알려져 있다.

병 등으로 죽은 유녀는 요시와라 유곽의 경우 조칸지에 '~매녀'라는 계명으로 말 그대로 던져졌다는 설이 있지만, 이를 뒷받침하는 자료는 고문서에는 전혀 없다. "매녀"의 계명은 "심중", "침대 난동", "기청문 난발", "도망", "곽 내에서의 밀통", "아편 흡입" 등 요시와라의 규칙을 어긴 자에 한정되었다. 이 경우, 알몸으로 벗겨진 채 아라고모에 싸여 절에 던져졌다.

2. 3. 메이지 시대 이후

조칸지는 1655년에 개장했는데, 이는 요시와라 유곽이 탄생(1657년)하기 2년 전의 일이다.[1] 1855년 안세이 대지진 이후 약 500명의 기생들을 질병 예방을 위해 급하게 매장하면서 'Nage-komi-dera'(버려진 절)라는 이름이 붙었다.[2] 그러나 짚 매트 사용과 시신 유기는 죽기 전에 범죄를 저지르거나 유곽의 규칙을 어긴 사람들에게만 국한되었다.[2]

메이지 시대부터 쇼와 시대의 센류 작가인 하나마타 카스이의 구절 "'''태어나서는 고통의 세상, 죽어서는 조칸지'''"로도 알려져 있다.

최근 연구에 따르면, "매녀"라는 계명은 "심중", "침대 난동", "기청문 난발", "도망", "곽 내에서의 밀통", "아편 흡입" 등 요시와라의 규칙을 어긴 자에 한정되었다. 이 경우, 알몸으로 벗겨진 채 아라고모에 싸여 절에 던져졌다고 한다.

3. 사적


  • 신요시와라 총령탑 - 관동 대지진과 도쿄 대공습으로 사망한 유녀들도 이곳에 함께 모셔져 있다.
  • 나가이 가후 문학비·필총
  • 산유테이 카쇼 묘
  • 협객 누레가미 쵸고로 묘
  • 혼조 형제 목욕 우물 및 목총 - 에도 시대부터 전해지는 우물이다. 에도 시대 요시와라의 유녀들은 이 우물에서 목욕물을 길어 썼다고 전해진다.
  • 신 비익총 - 관동 대지진과 도쿄 대공습으로 사망한 유녀들도 함께 모셔져 있다.
  • 와카무라사키 묘 - 메이지 시대에 요시와라 제일이라 불린 유녀 "와카무라사키", 즉 가쓰다 노부코의 묘가 있다.

3. 1. 신요시와라 총령탑

관동 대지진과 도쿄 대공습으로 사망한 유녀들도 이곳에 함께 모셔져 있다.

3. 2. 나가이 가후 문학비·필총

나가이 가후의 문학비와 필총이 조칸지 경내에 있다.

3. 3. 산유테이 카쇼 묘

조칸지에는 산유테이 카쇼의 묘가 있다.

3. 4. 협객 누레가미 쵸고로 묘

조칸지 경내에는 협객 누레가미 쵸고로의 묘가 있다.

3. 5. 혼조 형제 목욕 우물 및 목총

혼조 형제의 목욕 우물은 에도 시대부터 전해지는 우물이다. 에도 시대 요시와라의 유녀들은 이 우물에서 목욕물을 길어 썼다고 전해진다.

3. 6. 신 비익총

관동 대지진과 도쿄 대공습으로 사망한 유녀들도 신 비익총에 함께 모셔져 있다. 메이지 시대에 요시와라 제일이라 불린 유녀 "와카무라사키"(카츠다 노부코)의 묘가 있다.

3. 7. 와카무라사키 묘

메이지 시대에 요시와라 제일이라 불린 유녀 "와카무라사키", 즉 가쓰다 노부코의 묘가 있다.

4. 행사

4월 30일은 조칸지의 하후기(荷風忌)이다.

4. 1. 하후기(荷風忌)

4월 30일은 조칸지의 하후기(荷風忌)이다.

5. 교통

히비야 선 미노와 역에서 도보 약 2분 거리에 있다. 도쿄 사쿠라 트램 미노와바시 정류장에서는 도보 약 4분 거리에 있다. 미나미센주 역에서는 도보 약 10분 거리에 위치한다.

참조

[1] 웹사이트 The 'Throw-Away Temple' https://web.archive.[...] 2008-10-28
[2] 웹사이트 浄閑寺の史跡 http://www.jyokan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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