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확
1. 개요
조확은 당나라 시기의 인물로, 낙양 출신이다. 837년 진사과에 급제한 후 여러 벼슬을 거쳐 재상인 동중서문하평장사에 올랐다. 중서시랑, 감수국사를 겸임하며 유교에 정통하고 신중한 성품으로 알려졌다. 870년 진해군 절도사로 좌천되었고, 이후 하중절도사를 역임하다 사망했다. 동생 조분 또한 관료로 활동했으며, 두 아들이 있었다.
| 이름 | 조확 |
|---|---|
| 출생 | 기원전 200년경 |
| 사망 | 기원전 124년 |
| 시대 | 전한 |
| 주요 활동 | 관료, 정치인, 사상가 |
| 역임 | 중대부 제남태수 어사대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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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학문 | 황로학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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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버지 | 조참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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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관 | 한 문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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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나라의 이부상서 -
장손무기
장손무기는 수나라 장군 장손승의 아들이자 당 태종의 처남으로, 당나라 건국과 현무문의 변에 공을 세워 당 태종의 측근으로 중용되었으나, 고종 때 측천무후 옹립을 반대하다 모함으로 자결한 당나라 초기의 정치가이자 외척이다. -
당나라의 하중절도사 -
곽자의
곽자의는 당나라 중기의 장군으로, 안사의 난을 평정하고 토번과 위구르의 침략을 막아 당 왕조 부흥에 크게 기여했으며, 분양왕에 봉해지고 그의 삶은 부귀영화의 상징으로 여겨진다. -
당나라의 하중절도사 -
혼감
혼감은 당나라 군인으로, 11세에 삭방군에 들어가 군공을 세우고 안사의 난과 주차의 난에서 활약하여 좌효위장군, 개부의동삼사, 태상경 등을 거쳐 염주성 수축 공로로 검교사도 겸 중서령이 되었으며, 799년에 사망했다. -
당나라의 공부상서 -
무사확
무사확은 수나라 말에서 당나라 초의 인물로 당 고조 이연의 거병을 도와 당나라 건국에 공을 세웠으며 측천무후의 아버지로, 사후 황제로 추존되었다가 당 현종 때 왕으로 격하되었다. -
당나라의 공부상서 -
염입본
염립본은 수나라 귀족 가문 출신으로 당나라 초기 그림에 뛰어난 재능을 보인 화가이자 정치가로서, 《역대제왕도》 등의 작품으로 명성을 얻었으며 형부상서, 건축가, 재상을 역임하며 정치적 영향력을 행사했고 당나라 회화에 큰 영향을 미쳤다.
2. 생애
조확은 당나라 낙양 출신으로,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가계는 할아버지 조주(曹周)와 아버지 조경백(曹景伯)까지만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 아버지 조경백은 당 덕종 803년 진사과와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과거인 제과(制科)에 급제하였다. 조확에게는 남동생 조분(曹汾)이 있었으며, 조분은 훗날 당나라 조정에서 관직을 맡았다.
조확은 당 문종 때인 837년 진사과에 급제한 후, 여러 지방 관찰사의 막료를 지냈다. 이후 장안으로 소환되어 어사(御史)인 시어사(侍御史)로 재직했고, 공부(工部)원외랑(工部員外郎)을 역임하며 조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공부낭중(工部郎中)으로 승진했으며,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겸했다. 이후 중서성(中書省)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하남(河南) (낙양 지역) 지사(知事)를 대리했으며, 병부(兵部)시랑(侍郞)을 역임했다.
863년, 병부시랑 겸 판탁지(判度支)였던 조확은 당 의종에게서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직함을 받아 재상이 되었다. 이후, 중서시랑(中書侍郞) 겸 감수국사(監修國史) 직책을 추가로 제수받았다. 조확은 유학에 정통하고 일 처리에 신중했으며, 법도를 준수하였다고 전해진다. 867년 3월, 당 의종은 총애하는 악공(樂工) 이가급(李可及)을 좌위위장군(左威衛將軍)으로 임명하였는데, 조확은 이 직책이 악공에게는 부적합하다고 지적하였으나, 의종은 그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870년까지 재상을 지낸 조확은 재임 동안 상서좌복야(尙書左僕射)까지 승진했다. 870년 3월 진해군 절도사(鎭海軍節度使, 본거지는 현 장쑤성 전장시)로 부임하였으며, 동중서문하평장사 직함은 명예직으로 계속 유지하였다. 이후 하중절도사(河中節度使, 본거지는 현 산시성 윈청시)로 전임되었고, 재임 중 하중에서 사망하였다. 그러나 사망 시점은 알려져 있지 않다.
2.1. 출신 배경
조확은 당나라의 동도(東都)였던 낙양 출신으로, 출생 연도는 알려져 있지 않다. 그의 가계는 할아버지 조주(曹周)와 아버지 조경백(曹景伯)까지만 확인할 수 있는데, 이들은 모두 관직에 오르지 못했다. 아버지 조경백은 당 덕종 803년 진사과와 황제가 직접 주관하는 과거인 제과(制科)에 급제하였다. 조확에게는 최소한 한 명의 남동생 조분(曹汾)이 있었으며, 조분은 훗날 당나라 조정에서 관직을 맡았다.
2.2. 초기 경력
조확은 당 문종 때인 837년에 진사과에 급제한 후, 여러 지방 관찰사의 막료를 지냈다. 이후 장안으로 소환되어 어사(御史)인 시어사(侍御史)로 재직했고, 이후 공부(工部)의 말단 관료인 공부원외랑(工部員外郎)을 역임하며 조서를 작성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는 공부낭중(工部郎中)으로 승진했으며, 한림학사(翰林學士)를 겸했다. 이후 중서성(中書省)의 중서사인(中書舍人)을 거쳐, 하남(河南), 즉 낙양 지역의 지사(知事)를 대리했으며, 병부(兵部)시랑(侍郞)을 역임했다.
2.3. 재상을 지내다
863년, 당시 병부시랑 겸 판탁지(判度支)로 있던 조확은 재위 중이던 황제 당 의종(문종의 조카)에게서 동중서문하평장사(同中書門下平章事) 직함을 추가로 제수받아, 실질적인 재상이 되었다. 이후, 중서시랑(中書侍郞) 겸 감수국사(監修國史) 직책을 추가로 제수받았다. 조확은 유학에 정통하고 일 처리에 신중했으며, 법도를 준수하였다고 전해진다. 867년 3월, 당 의종은 자신이 총애하는 악공(樂工) 이가급(李可及)을 좌위위장군(左威衛將軍)으로 임명하였는데, 이때 조확은 이 직책이 악공에게는 부적합하다고 지적하였으나, 의종은 그의 간언을 받아들이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