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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 중국 대사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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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주조 중국 대사관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에 위치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외교 공관이다. 한국 전쟁 중 대사관 이전, 북한 지도자들의 방문, 그리고 대북 지원 등 양국 관계의 중요한 사건들을 거쳐왔다. 현재는 정치, 경제, 문화 등 다양한 부서를 통해 영사 서비스를 제공하며, 북한 내 중국인들을 지원하고 있다. 2020년에는 해킹 공격으로 인해 보안 위협을 겪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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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조 중국 대사관 - [대사관]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중화인민공화국 국장
중화인민공화국 국장
위치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시 모란봉구역 긴마을동
개관일알 수 없음 (제공된 문서에 정보 없음)
웹사이트중국 대사관
외교 관계
대사왕야쥔
주소
주소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평양시 모란봉구역 장촌동
기타 정보
관할 지역평양시
남포시
개성시
황해남도
황해북도
강원도
평안남도
평안북도
자강도
상급 기관중화인민공화국 외교부
산하 기관주청진 중국 총영사관
좌표39°3′17″N 125°45′11″E

2. 역사

주조 중국 대사관은 1950년대 초 한국 전쟁 발발 이후 설립되어 현재까지 다양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한국 전쟁 당시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미국의 폭격으로 인해 안전을 위해 임시 이전해야 했다.[4] 전쟁 이후, 중국 대사관은 북한 내 다른 공산권 국가 대사관들을 조율하는 역할을 맡았다.[1]

1958년, 중국과 북한은 고위급 인사의 교류를 허용하는 협정을 체결하여 양국 간 소통을 재개했다.[5] 저우언라이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하여 양국 지도자 간 상호 방문 협정을 체결, 주요 정책 및 현안을 정기적으로 논의하기로 합의했다.[7]

2000년대 이후, 김정일 국방위원장은 2000년과 2007년 두 차례 대사관을 방문하여 중국과의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다.[1][8] 2007년 북한 홍수 발생 시, 중국 대사관은 중국 적십자사를 통해 구호 물품을 지원했다.[9]

2010년, 단둥 홍수로 북한이 중국 투자자들에게 빚을 지게 되자 중국 대사관이 이를 발표했다.[10] 류훙차이 중국 대사는 북한 진출 중국 기업에 북한 법규 준수와 양국 관계 발전을 당부했다.[1][13] 같은 해, 한국 전쟁 60주년을 맞아 양국 공동 영화 제작을 발표했다.[1]

2011년 김정일 사망 당시, 중국 대사관은 조의를 표하고 북한 지도부에 조전을 전달했다.[15] 이후 김정은과의 회담을 통해 양국 관계가 안정적으로 발전하고 있다는 평가를 내렸다.[1]

2017년, 북한 관리들이 대사관 주최 음력 설 행사에 참석하고, 리진쥔 대사가 한국 전쟁 전사 중국 군인 추모 행사에 참석했다.[17][1] 2018년, 김정은은 중국인 관광객 버스 사고에 애도를 표하기 위해 대사관을 방문했다.[18]

2. 1. 설립 배경

1950년대 초, 미국이 한국 전쟁에 참전하면서 평양에 대한 폭격이 잦아졌다. 1950년 7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폭탄이 대사관을 타격할 것을 우려하여 대사관을 떠나야 했다.[4] 다행히 중국 외교관은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1] 폭격이 절정에 달했을 때, 중국 공사(차지 대사)는 저우언라이 총리에게 대사관에 대공 무기를 설치해야 하는지 문의했고, 대사관은 "가혹한 폭격 속에서 업무를 계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논평했다.[1] 1953년 7월 전쟁이 끝난 후, 중국 대사관은 "북한의 다른 프롤레타리아 대사관의 사실상 조정자"라는 칭호를 받았다.[1]

1958년, 중국과 북한은 양국 간 고위급 인사의 이동을 허용하는 협정을 맺어 통신 채널을 구축했다.[5] 김일성이 연안파를 숙청한 후, 중-조 관계는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6] 저우언라이가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한 후, "중국과 북한 간 지도자 상호 방문에 관한 협정"이 작성되었다. 이 협정은 양국 지도자들이 주요 정책, 전쟁 노력 등에 대해 정기적으로 협의하도록 규정했다.[7] 이 협정은 2021년 5월 현재까지 유효하며, 이후 평양 대사관에서 활동하는 북한에 대한 고위 중국 관리들의 방문이 많이 기록되었다.[1]

2000년 3월 5일, 김정일은 "새해를 기념하고 북한 주재 중국 대사 완용샹의 요청에 따라"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했다.[1]

2007년 3월 4일, 김정일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중국 영사 및 외교관들과 함께 연례 등불 축제를 보냈다. 이는 "전례 없는 제스처"이자 중국과의 관계 회복 의지를 보여주는 "이례적인 움직임"으로 칭송받았다.[8]

2007년 8월 22일, 폭우로 북한에 홍수가 발생한 지 1주일 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중국 적십자 재단이 50000USD 상당의 구호 물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9]

2007년 3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왕자루이 중국 중앙 대외 연락부 부장과의 회담 후, 김정일은 중-북 관계 강화 입장을 재확인했다. 2008년 3월에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하여 선의와 중-북 관계 개선에 대한 지속적인 헌신을 상징하는 제스처를 보였다.[1]

2010년 4월, 단둥 홍수 이후, 중국 대사관은 건설 프로젝트가 홍수로 쓸려 내려가면서 북한이 중국 투자자들에게 약 2.3억달러를 빚지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10]

2010년 5월, 중국 정부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이 정보 수집 임무를 수행할 수 없었다고 주장했다.[11] 이는 양국 간의 신뢰 부족 때문이라고 알려졌다.[12]

2010년 5월 20일, 류훙차이 중국 대사는 중국 기업들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으로 불러 모아 지원을 약속했다. 이는 북한으로 이민하는 중국 노동자들의 수를 합법화하고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한 것이었다.[1] 같은 해 4월, 대사관은 중국 기업들에게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을 소개하는 정기적인 행사를 시작했으며,[1] 류훙차이 대사는 이 자리에서 중국 기업들에게 "북한의 국가적 상황을 존중하고, 법을 준수하며, 양국 간의 우호와 이해를 증진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할 것"을 촉구했다.[1][13]

한국 전쟁 기념일 이후, 2010년 6월 15일,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중국과 북한이 역사적인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함께 영화를 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

2011년 3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북한의 무역 및 건설 작업 증가로 인해 중국 시민과 관련된 사고가 증가했다고 언급하며, 불법 기관을 사용하여 중국 노동자를 수입하는 것에 대해 경고했다.[14]

김정일 사망 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2011년 12월 중국을 대표하여 조의를 표하고, 조의 전문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부에 전달했다.[15]

김정일 사망 후, 중국 분석가들은 2011년 2월 중순에 북한의 현재 정치 상황에 만족한다고 보고했다.[16] 김정은과의 회담을 포함하여,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북한 고위 관리들과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중-북 관계가 점점 더 안정되고 있다고 기록되었다.[1]

2017년 1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관리들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열린 음력 설 리셉션에 참석하여 선의를 상징하는 제스처를 보였다.[17]

2017년 4월 4일, 리진쥔 대사가 이끄는 중국 대사관 대표단은 한국 전쟁 중 사망한 중국 인민지원군 병사들을 기리는 평양의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1]

2018년 4월, 김정은은 버스 사고로 중국인 관광객 3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은 것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명하기 위해 중국 대사관을 방문했다.[18]

2. 2. 한국전쟁 시기

1950년대 초, 미국이 한국 전쟁에 참전한 직후, 미국의 폭격은 평양을 더욱 자주 타격하기 시작했다. 1950년 7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 대표들은 폭탄이 대사관 자체를 타격할 것이라는 우려 때문에 대사관을 떠나야 했다.[4] 중국 외교관은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고 보고되었다.[1] 미국 폭격이 절정에 달했을 때, 중국 공사(차지 대사)는 저우언라이에게 대사관에 대공 무기를 설치해야 하는지 물었다.[1] 대사관은 또한 "가혹한 폭격 속에서 업무를 계속하기 위해 고군분투하고 있다"고 논평했다.[1] 1953년 7월 전쟁 종결 후, 중국 대사관은 "북한의 다른 프롤레타리아 대사관의 사실상 조정자"라는 칭호를 받았다.[1]

1958년, 중국과 북한은 이전에 해체된 통신 채널을 구축하기 위해 양국 간 고위급 인사의 이동을 허용하는 협정을 맺었다.[5] 북한 정부에서 연안파가 숙청된 후, 김일성이 자신의 파벌인 만주파에 대한 우려를 표명하고, 북한 정부 내에서 그 위치에 도전받고 있다고 느꼈다는 보도 이후, 중-조 관계는 최저 수준에 머물렀다.[6] 저우언라이가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한 후, "중국과 북한 간 지도자 상호 방문에 관한 협정"이라는 협정이 작성되었다. 이 협정은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주요 정책 지침, 전쟁 노력 및 기타 주요 관심사에 대해 정기적으로 서로 방문하여 협의할 것을 규정했다.[7] 이 협정은 2021년 5월 현재까지 유효하며, 이 협정 시행 이후, 평양 대사관에서 주로 활동하는 북한에 대한 고위 중국 관리들의 많은 방문이 있었다고 보고되었다.[1]

2010년 6월 15일, 한국 전쟁 기념일 이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중국과 북한이 역사적인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함께 영화를 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

2017년 4월 4일, 리진쥔 대사가 이끄는 중국 대사관 대표단은 한국 전쟁 중 사망한 중국 인민지원군 병사들을 기리는 평양의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1]

2. 3. 전후 관계 발전

1950년 7월, 한국 전쟁에 미국이 참전하면서 미국의 폭격이 평양을 더욱 자주 타격하기 시작했고,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 대표들은 폭탄이 대사관을 타격할 것을 우려하여 대사관을 떠나야 했다.[4] 다행히 중국 외교관은 아무도 피해를 입지 않았다.[1] 1953년 7월 전쟁이 끝난 후, 중국 대사관은 "북한의 다른 프롤레타리아 대사관의 사실상 조정자"라는 칭호를 받았다.[1]

1958년, 중국과 북한은 양국 간 고위급 인사의 이동을 허용하는 협정을 맺어 통신 채널을 구축했다.[5] 저우언라이 중국 외교관이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한 후, "중국과 북한 간 지도자 상호 방문에 관한 협정"이 작성되었다. 이 협정은 양국의 정치 지도자들이 주요 정책 지침, 전쟁 노력 및 기타 주요 관심사에 대해 정기적으로 서로 방문하여 협의할 것을 규정했으며, 2021년 5월 현재까지 유효하다.[7]

2000년 3월 5일, 김정일 북한 최고 지도자는 "새해를 기념하고 북한 주재 중국 대사 완용샹의 요청에 따라"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했다.[1] 2007년 3월 4일에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중국 영사 및 외교관들과 함께 연례 등불 축제를 보냈는데, 이는 "전례 없는 제스처"이자 중국과의 관계 회복 의지를 보여주는 "이례적인 움직임"으로 평가받았다.[8]

2007년 8월, 북한에 폭우로 인한 홍수가 발생하자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중국 적십자 재단을 통해 50000USD 상당의 구호 물품을 지원했다.[9]

2010년 5월, 류훙차이 중국 대사는 주요 중국 기업들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으로 불러 모아 북한에 대한 투자를 장려하고, 중국 노동자들의 불법 입국을 막기 위한 노력을 강화했다.[1] 또한 중국 기업들에게 "북한의 국가적 상황을 존중하고, 법을 준수하며, 양국 간의 우호와 이해를 증진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수행할 것"을 촉구했다.[1][13]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중국을 대표하여 조의를 표하고, 조의 전문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부에 전달했다.[15] 이후 김정은과의 회담을 포함하여 북한 고위 관리들과의 고위급 회담을 통해 중-북 관계가 안정되고 있다는 기록이 있다.[1]

2018년 4월, 김정은은 버스 사고로 중국인 관광객 3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은 것에 대해 "깊은 애도"를 표명하기 위해 중국 대사관을 방문했다.[18]

2. 4. 김정일 시기

2000년 3월 5일, 김정일 북한 최고 지도자는 새해를 기념하고 완용샹 당시 북한 주재 중국 대사의 요청에 따라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했다.[1]

2007년 3월 4일, 김정일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중국 영사 및 외교관들과 함께 연례 등불 축제를 보냈다. 이 방문은 "전례 없는 제스처"이자 중국과의 관계를 회복하고 외교 관계를 전 세계에 보여주려는 "이례적인 움직임"으로 평가받았다.[8]

2007년 3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왕자루이 중국 중앙 대외 연락부 부장과의 회담 후, 김정일은 중-북 관계를 강화하겠다는 입장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2008년 3월에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하는 외교적 제스처를 더했는데, 이는 1년 전의 첫 만남을 연장하고 지속적인 선의와 중-북 관계 개선에 대한 헌신을 상징하는 것이었다.[1]

2011년 12월 김정일 사망 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중국을 대표하여 조의를 표하고, 조의 전문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지도부에 전달했다.[15]

2. 5. 최근 동향

2000년 3월 5일,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일이 새해를 기념하고 완용샹 당시 주조 중국 대사의 요청에 따라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했다.[1]

2007년 3월 4일, 김정일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중국 영사 및 외교관들과 함께 연례 등불 축제를 보냈다. 이 방문은 "전례 없는 제스처"이자 "이례적인 움직임"으로 칭송받으며, 중국과의 관계 회복 및 외교 관계 증진 의지를 보여주었다.[8] 같은 해 3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왕자루이 중국 중앙 대외 연락부 부장과의 회담 후, 김정일은 중-북 관계 강화 입장을 재확인했다. 2008년 3월에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방문하여 지속적인 선의와 관계 개선 의지를 표명했다.[1]

2007년 8월 22일, 북한에 폭우로 인한 홍수가 발생하자,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중국 적십자 재단이 50000USD 상당의 구호 물품을 지원할 것이라고 발표했다. 이는 중국의 더 광범위한 원조의 일환이었다.[9]

2010년 4월, 단둥 홍수 이후, 중국 대사관은 건설 프로젝트 무산으로 북한이 중국 투자자들에게 약 2.3억달러를 빚지고 있다는 성명을 발표했다.[10] 같은 해 5월, 중국 정부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이 정보 수집 임무를 제대로 수행할 수 없다고 주장했는데, 이는 양국 간 신뢰 부족 때문으로 알려졌다.[11][12]

2010년 5월 20일, 류훙차이 중국 대사는 주요 중국 기업들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으로 불러 모아 북한으로의 이민 노동자 합법화 및 불법 입국 방지를 위한 지원을 약속했다.[1] 4월, 대사관은 중국 기업들에게 북한 관리들을 소개하는 정기 행사를 시작했으며, 류훙차이 대사는 기업들에게 북한 법 준수 및 양국 우호 증진을 촉구했다.[1][13]

2010년 6월 15일, 한국 전쟁 기념일 이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양국이 역사적 기념일을 기념하기 위해 함께 영화를 제작할 것이라고 발표했다.[1]

2011년 3월,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북한의 무역 및 건설 작업 증가로 중국 시민 관련 사고가 증가했다는 성명을 발표하며, 불법 기관을 통한 노동자 수입에 대해 경고했다.[14] 같은 해 12월, 김정일 사망 후,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중국을 대표하여 조의를 표하고 조의 전문을 북한 지도부에 전달했다.[15] 이후 중국 분석가들은 북한의 정치 상황에 만족하며, 김정은과의 회담을 통해 중-북 관계가 안정되고 있다고 평가했다.[16][1]

2017년 1월, 북한 관리들은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에서 열린 음력 설 리셉션에 참석했다.[17] 4월 4일, 리진쥔 중국 대사가 이끄는 대표단은 한국 전쟁 중 사망한 중국 인민지원군 병사들을 기리는 평양 기념 행사에 참석했다.[1]

2018년 4월, 북한 최고 지도자 김정은은 버스 사고로 중국인 관광객 32명이 사망하고 2명이 중상을 입은 것에 대해 애도를 표하기 위해 중국 대사관을 방문했다.[18]

3. 주요 부서

주조 중국 대사관에는 정치처, 신문·공공외교처, 영사부, 사무실, 무관처, 경제상공처, 문화처, 교육팀, 과학기술팀 등 각 부서들이 설치되어 있다.[24]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은 북한에 거주하는 많은 중국인들을 위해 다양한 서비스를 제공하며, 교육부, 과학기술부, 경제상무부, 국방무관부, 행정부 및 정치부를 두고 있다.[1]

각 부서에는 정치처(Political Section|폴리티컬 섹션영어), 신문·공공 외교처(Information Section|인포메이션 섹션영어), 영사부(Consular Section|컨설러 섹션영어), 변공실(Administration Section|어드미니스트레이션 섹션영어), 무관처(Military Attaché Office|밀리터리 아타셰 오피스영어), 경제상무처(Economic and Trade Section|이코노믹 앤드 트레이드 섹션영어), 문화처(Cultural Section|컬처럴 섹션영어), 교육조(Education Section|에듀케이션 섹션영어), 과학기술조(Science & Technology Section|사이언스 앤드 테크놀로지 섹션영어)가 있다.[21][22]

4. 역대 대사

대수이름임기
1예지량1950년 8월 ~ 1952년 3월
2반자력1955년 1월 ~ 1956년 2월
3교효광1956년 4월 ~ 1961년 7월
4학덕청1961년 8월 ~ 1965년 11월
5초약우1965년 12월 ~ 1970년 3월
6리운천1970년 3월 ~ 1976년 6월
7려지선1976년 9월 ~ 1982년 2월
8종극문1982년 8월 ~ 1987년 8월
9온업담1987년 10월 ~ 1990년 5월
10정 의1990년 6월 ~ 1993년 9월
11교종회1993년 9월 ~ 1997년 3월
12만영상1997년 4월 ~ 2000년 3월
13왕국장2000년 4월 ~ 2001년 12월
14무동화2001년 12월 ~ 2006년 8월
15류효명2006년 9월 ~ 2010년 2월
16류훙차이2010년 3월 ~ 2015년 2월
17리진쥔2015년 3월 ~ 2021년 12월
18왕야쥔2022년 1월 ~ 현재[25]


5. 관할 구역

지역상세 구분
평양시평양시
남포시남포시
개성시개성시
황해남도황해남도
황해북도황해북도
강원도강원도
평안남도평안남도
평안북도평안북도
자강도자강도


6. 위치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주재 중화인민공화국 대사관은 북한에 있는 25개의 활동 중인 외교 공관 중 하나이며, 평양시 모란봉구역 김마을동에 위치해 있다.[1] 중국 대사관은 문수동 외교 단지 밖에 위치한 3개의 대사관 중 하나이며, 다른 두 곳은 평양 주재 러시아 대사관과 평양 주재 파키스탄 대사관이다.[1] 이들 대사관의 독특한 위치는 외교 단지 내에 위치한 대사관에 비해 규모가 크기 때문이라고 한다.[1]

7. 보안 위협

2020년 4월 6일, "다크호텔"이라는 해킹 그룹이 중화인민공화국 정부를 대상으로 대규모 사이버 공격을 감행하여 평양 주재 중국 대사관을 포함, 전 세계 12곳 이상의 지역에서 데이터를 탈취했다.[19] 대사관 측의 "매우 오래된" 보안 관행과 인프라가 공격 성공의 원인이었다. 해커들은 이후 공급 및 의료 데이터와 관련된 "대량의 기밀 데이터"를 유출한 것으로 알려졌다.[1]

참조

[1] 웹사이트 Embassy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the Korea http://au.china-emba[...]
[2] 웹사이트 Embassy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in the Korea http://www.embassy-w[...]
[3] 웹사이트 Foreign Embassies in North Korea - Does Your Country Have a Foreign Embassy in Pyongyang? - Koryo Tours http://koryogroup.co[...] 2024-03-01
[4] 논문 The Bonds of Brotherhood: New Evidence on Sino-North Korean Exchanges https://direct.mit.e[...] 2011-07-01
[5] 논문 Uncertain allies or uncomfortable neighbors? Making sense of China–North Korea Relations, 1949–2010
[6] 논문 China's Korea Policy Under the New Leadership: Stealth Changes in the Making?
[7] 웹사이트 Collection of documents regarding China's policy toward the DPRK and ROK http://scholar.googl[...]
[8] 논문 Korea's New Administration and Challenges for China's Relations with the Korean Peninsula
[9] 논문 The Curious Case of China's Aid to North Korea
[10] 웹사이트 The Golden Age Is Over: Stacking Up Borderlands Sources in Dandong https://sinonk.com/2[...] 2013-04-29
[11] 웹사이트 Ministry of Foreign Affairs of the People's Republic of China https://www.fmprc.go[...]
[12] 웹사이트 China's DPRK ambassador talks with resident Chinese enterprises https://www.fmprc.go[...]
[13] 웹사이트 China-Korea Relations: Two Koreas Defy Chinese Sanctions http://cc.pacforum.o[...]
[14] 논문 China's Economic Engagement in North Korea
[15] 웹사이트 Chinese Language Perspectives on Kim Jong-Un's Transition to Power https://www.research[...]
[16] 논문 Prospects for Sino-American Policy Coordination toward North Korea https://lib.uniedu.g[...]
[17] 웹사이트 Somber Kim Jong Un Visits Chinese Embassy after Bus Crash in North Korea Kills 32 Chinese http://www.business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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