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불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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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직불의는 전한 문제와 경제 때 활약한 인물이다. 낭으로 문제에게 등용된 후 태중대부까지 올랐으며, 오초칠국의 난을 진압하는 데 기여했다. 경제 후원년에 어사대부가 되었고, 난을 평정한 공로로 새후에 봉해졌다. 무제 건원 원년에 죄를 지어 면직되었으며, 2년 후 사망하여 시호를 신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직상여가 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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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직불의는 문제를 섬겨 낭(郞)이 되었다. 같은 숙소의 낭이 금을 훔쳐가는 사건이 발생했는데, 직불의는 누명을 썼음에도 변명하지 않고 오히려 사과하며 금을 변상해 주었다. 훗날 진범이 밝혀졌고, 문제는 그의 인품을 높이 사 태중대부에 임명하였다. 또한, 직불의는 형수와 사통한다는 참소를 받았으나, 형이 없었음에도 해명하지 않았다.

오초칠국의 난 때는 이천석 신분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오왕초왕의 반란군을 진압하는 공을 세웠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 어사대부가 되었고, 오초칠국의 난 때 세운 공으로 새후(塞侯)에 봉해졌다.

무제 즉위 후 죄를 지어 승상 위관과 함께 면직되었고, 2년 후 사망하였다. 시호는 신(信)이며, 작위는 아들 직상여가 이었다.

2.1. 초기 생애와 일화

문제를 섬겨 낭(郞)이 되었다. 어느 날 같은 숙소를 쓰던 낭이 집에 돌아갔는데, 실수로 같은 방을 쓰던 다른 낭의 금을 가져갔다. 금의 주인은 직불의를 의심하였는데, 직불의는 사과하며 금을 사다 주었다. 그 뒤 금을 가져갔던 사람이 돌아와서 돌려주니, 직불의를 의심한 낭은 몹시 부끄러워하였다.

곧 문제는 직불의를 발탁하였고, 직불의는 관직이 태중대부에 이르렀다. 어느 날 조정에서 어떤 이가 직불의를 문제에게 참소하였다. "직불의는 용모가 뛰어나긴 하지만, 형수와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본래 직불의에게는 형이 없었으나, 직불의는 따로 해명하지 않았다.

2.2. 형수와의 스캔들

직불의가 낭(郞)이 되어 문제를 섬길 때의 일이다. 어느 날 같은 숙소를 쓰던 낭이 집에 갔는데, 실수로 같은 방을 쓰던 다른 낭의 금을 가져갔다. 금 주인은 직불의를 의심했고, 직불의는 사과하며 금을 사다 주었다. 그 뒤 금을 가져갔던 사람이 돌아와 금을 돌려주자, 직불의를 의심한 낭은 몹시 부끄러워했다.

이후 문제는 직불의를 발탁했고, 직불의는 관직이 태중대부에 이르렀다. 어느 날 조정에서 어떤 이가 직불의를 문제에게 다음과 같이 참소했다.

"직불의는 용모가 뛰어나긴 하지만, 형수와 사사로이 정을 통하고 있습니다. 어찌하면 좋겠습니까!"

본래 직불의에게는 형이 없었으나, 직불의는 따로 해명하지 않았다.

2.3. 오초칠국의 난 진압

오왕과 초왕이 반란을 일으켰을 때(오초칠국의 난), 직불의는 이천석의 신분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이를 물리쳤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 어사대부가 되었고 오초칠국의 난 때 세운 공을 인정받아 새(塞侯)에 봉해져 식읍 1,046호를 받았다.

2.4. 어사대부 임명과 사망

오초칠국의 난 당시, 직불의는 이천석 신분으로 병사들을 이끌고 오왕초왕의 반란군을 물리쳤다.

경제 후원년(기원전 143년), 어사대부에 임명되었고, 오초칠국의 난에서 세운 공을 인정받아 새후(塞侯)에 봉해져 식읍 1,046호를 받았다.

건원 원년(기원전 140년), 무제 즉위 후 죄를 지어 승상 위관과 함께 면직되었고, 2년 후 사망하였다. 시호는 신(信)이라 하였고, 작위는 아들 직상여가 이었다.

3. 출전

* 사마천, 《사기》 권19 혜경간후자연표·권103 만석장숙열전
* 반고, 《한서》 권19하 백관공경표 下·권46 만석위직주장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