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도 (촉한)
1. 개요
진도(陳到)는 촉한의 무장으로, 유비가 예주 자사로 있을 때부터 섬겼다. 조운과 명성이 비견될 정도로 충절과 용맹을 갖춘 인물로 평가받았으며, 백예병(白毦兵)이라는 정예 부대를 지휘했다. 유비 사후 영안도독, 정서장군에 임명되었으며, 제갈량의 북벌 시기에는 영안을 수비했다. 《삼국지》에는 그의 행적에 대한 기록이 많지 않으나,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 충성스러운 신하로 칭송받았다. 소설 《삼국지연의》에는 등장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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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물에 관한 -
광서제
광서제는 도광제의 손자이자 순친왕 혁현의 아들로, 1875년 청나라의 황제가 되었으며, 서태후의 섭정 아래 무술변법을 시도했으나 실패하고 유폐된 채 사망했다. -
인물에 관한 -
찰리 채플린
찰리 채플린은 런던 빈민가 출신으로 뛰어난 코미디 연기와 영화 연출로 세계적인 명성을 얻었으며, "작은 방랑자" 캐릭터, 슬랩스틱 코미디, 판토마임 연기, 사회 비판적 메시지, 매카시즘 시대의 탄압, 아카데미 명예상 수상 등으로 대표되는 파란만장한 삶을 살았던 영국의 배우이자 영화 감독이다. -
문화에 관한 -
르네상스 미술
르네상스 미술은 14세기부터 16세기 유럽에서 일어난 미술 양식의 변화로, 고대 그리스·로마 문화 부흥을 바탕으로 인간 중심적 세계관과 사실적 표현 기법이 발달했으며, 회화, 조각, 건축 분야에서 다양한 발전을 이루었고, 레오나르도 다 빈치,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의 거장들이 활약하며 유럽 각 지역에서 특색을 반영하여 발전했다. -
문화에 관한 -
삼국지연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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촉한의 장군 -
맹획
맹획은 《한진춘추》와 《화양국지》에 기록된 촉한 시대의 인물로, 제갈량의 남만 정벌에 맞서 반란을 일으켰으나 칠종칠금 끝에 촉한에 항복하여 어사중승을 지냈다. -
촉한의 장군 -
제갈첨
제갈첨은 제갈량의 아들이자 촉한의 장군 겸 정치가로, 무향후 작위를 계승하고 조정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263년 위나라의 침공에 맞서 싸우다 아들과 함께 전사하여 충신으로 칭송받고 백성들에게 인기가 높았다.
2. 생애
194년, 유비가 예주 자사로 있을 때 그의 수하로 들어가, 조운에 버금가는 명성과 벼슬을 가진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무장이었다. 유비가 예주 자사를 역임했을 때부터 백예병으로 불리는 정예 부대의 대장을 맡았으며, 충절과 용맹함을 갖춘 무장으로 칭송받았다. 223년 유비가 죽은 후 영안도독(永安都督), 정서장군(征西将軍)의 관위에 오르고 정후(亭侯)에 봉해졌다. 226년 이엄이 영안에서 강주로 진을 옮겼지만, 진도는 계속 영안에 주둔하면서 이를 수비했다. 진도는 234년까지 은퇴했거나 사망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정사 삼국지에서 진도에 관한 기록은 이것뿐이고, 241년에 편찬된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는 진도를 충성스러운 신하로 평가했다. 진도는 허난성 남부에 해당하는 여남군 출신이다.
2.1. 유비를 섬기다
194년, 유비가 예주 자사로 있을 때 그의 수하로 들어갔다. 조운에 버금가는 명성과 벼슬을 가졌으며,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무장이었으나 실제 전적은 이민족 토벌이나 반란 진압 같은 소소한 전투에 그쳤다. 유비가 예주 자사를 역임했을 때부터 백예병으로 불리는 정예 부대의 대장을 맡았으며, 충절과 용맹함을 갖춘 무장으로 칭송받았다.
2.2. 영안 수비
223년, 유비가 죽은 후 진도는 영안도독(永安都督), 정서장군(征西将軍)의 관위에 오르고 정후(亭侯)에 봉해졌다.
226년, 이엄은 영안에서 강주(현재의 충칭)로 진을 옮겼지만, 진도는 계속 영안에 주둔하면서 이를 수비했다. 제갈량이 북벌을 준비하여 촉의 경쟁국인 조위를 공격하려 할 때, 이엄을 강주로 재배치하여 병참을 담당하게 했다. 진도는 이엄을 대신하여 촉과 동맹국인 오나라 사이의 국경 근처에 있는 영안현(현재의 펑제현, 충칭)의 이전 직책을 맡도록 명령받았다.
3. 평가
194년, 유비가 예주 자사로 있을 당시 그의 수하로 들어갔다. 명성이나 벼슬이 조운에 버금갔으며 충성스럽고 용맹스러운 무장이었다고 하나, 실제 전적은 이민족 토벌이나 반란 진압 같은 소소한 전투에 그친 게 대부분이다. 유비가 예주 자사를 역임했을 때부터 가신으로 있었으며, 백예병 또는 백이병으로 불리는 정예 부대의 대장을 맡았다. 명성과 관위 모두 조운에 버금갔기에 충절과 용맹함을 갖춘 무장으로 칭송받았다.
양희는 《계한보신찬》(季漢輔臣贊; 241년 출판)에서 "정남장군은 인자하고 성실했고, 정서장군(征西將軍; 진도)은 충성스럽고 근면했다. 둘 다 당시의 엘리트 전사였으며 명망 높은 맹장들 중에서도 맹렬한 장수였다."라고 평가했다.
223년부터 234년까지 촉의 섭정을 맡았던 제갈량은 제갈근에게 보내는 편지에서 백제성을 지키는 병사들이 제대로 훈련되지 않았다고 언급했지만, 군사 업무를 담당하는 사람이 진도이며, 그는 이전에 유비의 호위병인 "백이병"(白毦兵)의 지휘관을 맡았는데, 이는 당시 촉 군대에서 가장 정예 부대 중 하나였다고 안심시켰다.
촉에서는 사관을 두지 않아 기록이 흩어져, 진수가 『삼국지』를 편찬할 때 사용할 수 있었던 자료는 상당히 적었다. 촉의 명신을 칭송하는 양희의 『계한보신찬』에서는 진도의 "충성"을 평가하고 있다. 또한, 조운과 함께 "선발된 병사를 지휘하여 훈공을 세운 맹장"이라고 칭찬받고 있다.
4. 소설 《삼국지연의》에서의 진도
진도는 14세기 역사 소설인 삼국지연의에 등장하지 않으며, 이 소설은 삼국 시대 전후의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낭만적으로 묘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