쩐까오 (후 쩐 왕조)
1. 개요
쩐까오는 1426년 레러이에 의해 옹립된 후 쩐 왕조의 황제이다. 그의 초명은 호옹이며, 거지의 아들이었으나 쩐 예종의 조카를 자칭했다. 레러이는 명나라 세력을 몰아낸 후 쩐 왕조 부흥을 명분으로 그를 황제로 옹립했으며, 연호는 티엔킹이었다. 1427년 명나라로부터 안남 국왕으로 책봉되었으나, 1428년 레러이에 의해 살해되었고, 레러이는 이후 황제에 즉위하여 후 레 왕조를 건국했다.
쩐까오 (후 쩐 왕조)
기본 정보
| 이름 | 쩐까오 |
|---|---|
| 한자 표기 | 陳暠 |
| 다른 이름 | 호옹 (胡翁) |
| 칭호 | 대월 황제 |
| 재위 기간 | 1426년 – 1428년 |
| 시대 | 천경 |
생애
| 출생 | 미상 |
|---|---|
| 사망 | 1428년 |
| 매장지 | 미상 |
가족 관계
| 아버지 | 미상 |
|---|---|
| 어머니 | 미상 |
| 배우자 | 미상 |
| 자녀 | 미상 |
기타
| 휘 | 쩐까오 (陳暠), 쩐적 (陳翟) |
|---|---|
| 묘호 | 미상 |
| 시호 | 미상 |
| 종교 | 미상 |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안남국왕 -
레러이
레러이는 후 레 왕조의 창업주이자 초대 황제로, 람선 봉기를 통해 명나라로부터 대월의 독립을 쟁취하고 국가 제도를 정비하며 자주적인 외교 정책을 펼쳐 베트남 민족의 독립과 국가 재건에 기여했다. -
안남국왕 -
호한트엉
호한트엉은 호꾸이리의 아들이자 쩐 왕조의 공주 휘녕공주의 아들로, 호조의 제2대 황제이며, 명나라의 침공으로 포로가 되어 행적이 알려지지 않았다. -
1428년 사망 -
마사초
이탈리아 초기 르네상스 화가 마사초는 선형 원근법과 키아로스쿠로 기법을 활용하여 사실적이고 인간적인 묘사로 르네상스 회화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으며, 브란카치 예배당 프레스코 연작, 《성 삼위일체》, 《피사 제단화》 등의 대표작을 남겼고, 짧은 생애에도 불구하고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
1428년 사망 -
아시카가 요시모치
아시카가 요시모치는 겐추 3년/시토쿠 3년에 태어나 무로마치 막부의 제4대 쇼군을 지냈으며, 아버지 아시카가 요시미쓰 사후 수구적인 정책과 명과의 감합무역 중단 등 독자적인 행보를 보였다. -
생년 미상 -
손니 알리
손니 알리는 송가이 제국의 군주로서 니제르 강 유역을 장악한 후 팀북투와 젠네를 정복하고 군사력을 강화하여 제국을 확장했으며, 전통 신앙과 이슬람교 조화, 법에 의한 국가 통제, 무역 확립 등 내치에도 힘썼다. -
생년 미상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2. 생애
대월사기전서에 따르면, 쩐까오의 초명은 호 옹(Hồ Ông베트남어)이며, 거지의 아들로 태어났다. 그는 예종의 조카를 자칭했다. 람선 봉기를 일으킨 레러이는 민심이 아직 쩐 왕조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명나라의 세력을 몰아낸 후의 명분으로 쩐씨를 황제로 옹립할 것을 생각했다. 쩐까오는 레러이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으며, 이후 명나라와의 관계를 맺기도 했으나, 결국 레러이에게 살해되었다.
2.1. 출신과 옹립
『대월사기전서』에 따르면, 쩐까오는 호옹(Hồ Ông베트남어)이라는 이름으로 태어났으며, 거지(걸인)의 아들이었고, 예종의 조카를 자칭했다고 한다. 람선 봉기를 일으킨 레러이는 민심이 아직 쩐 왕조에 있다는 것을 감안하여, 명나라의 세력을 몰아낸 후의 명분으로 쩐씨를 황제로 옹립할 것을 생각했다. 선덕 원년 11월(1426년 12월)에 쩐까오는 레러이에 의해 황제로 옹립되었고, 연호를 티엔킹으로 고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