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상광
1. 개요
차상광은 대한민국의 전 축구 선수이자 코치로, 골키퍼로 활약했다. 1986년 럭키금성 황소에서 선수 경력을 시작하여 포항 스틸러스, 유공 코끼리, LG 치타스, 성남 일화 천마 등 여러 팀에서 뛰었다. 1992년 다이너스티컵,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 게임, 1995년 코리아컵 등 국가대표로도 활약했으며, 1994년 아시안 게임에서 실수를 범하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성남 일화 천마의 골키퍼 코치를 시작으로 U-17, U-23, 성인 국가대표팀 코치를 역임했다. 선수 시절 K리그 베스트 골키퍼상과 베스트 11에 선정되었으며, K리그 올스타에도 두 차례 뽑혔다.
| 이름 | 차상광 |
|---|---|
| 본명 | 차상광 |
| 로마자 표기 | Cha Sang-Kwang |
| 출생일 | 1963년 5월 31일 |
| 출생지 | 경기도 이천시 |
| 키 | 189cm |
| 포지션 | 골키퍼 |
| 대학교 | 한양대학교 (1982–1985) |
|---|---|
| 선수 경력 | LG 치타스 (1986–1991): 133경기 0골 POSCO Atoms (1992–1993): 36경기 0골 유공 코끼리 (1994): 16경기 0골 LG 치타스 (1995): 10경기 0골 부천 유공 (1996): 1경기 0골 천안 일화 천마 (1997): 9경기 0골 |
| 총 출장수 | 205경기 0골 |
| 국가대표 B팀 | 대한민국 B (1985) |
|---|---|
| 국가대표팀 | 대한민국 (1991–1996): 10경기 0골 |
| 코치 경력 | 성남 일화 천마 GK 코치 (1998-2012) 성남 일화 천마 스카우터 (2013) 대한민국 U-17 GK 코치 (2014-2015) 대한민국 GK 코치 (2016-2017) 대한민국 U-23 GK 코치 (2018-2021) 대한민국 U-20 GK 코치 (2022-2023) 제주 유나이티드 FC GK 코치 (2023-) |
|---|---|
| 현재 소속팀 | 제주 유나이티드 FC (GK 코치) |
-
성남 FC의 스카우터 -
김기동 (축구인)
김기동은 K리그와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을 경험한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K리그 감독상과 FA컵 우승을 이끈 축구 지도자이다.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 -
이운재
이운재는 '거미손'이라는 별명으로 불리며 2002년 FIFA 월드컵 4강 진출에 기여하고 K리그 MVP를 수상하는 등 대한민국 축구 역사에 굵직한 족적을 남긴 은퇴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이다. -
대한민국 U-23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 -
신의손
신의손은 러시아 출신으로 한국으로 귀화하여 K리그 3연패와 우승에 기여한 축구 선수이자 지도자로, 외국인 골키퍼 기용 제한을 초래했으며 구리 신씨의 시조가 되었다. -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 -
김범수 (1968년생 축구인)
-
대한민국 U-17 축구 국가대표팀 골키퍼 코치 -
김풍주
김풍주는 K리그 원년 멤버로 부산 대우 로얄즈에서 1983년부터 1996년까지 활약했으며, 190cm의 키와 빠른 판단력을 바탕으로 안정적인 플레이를 펼치는 골키퍼였다.
2. 클럽 경력
차상광은 1986년 럭키금성 황소에서 프로 선수 생활을 시작하여, 포철, 유공, 일화 등 여러 팀을 거치며 골키퍼로 활약했다.
1991년에는 복잡한 트레이드를 통해 포철로 이적했고, 1994년에는 유공으로 현금 트레이드되었다가 다시 친정팀인 LG로 복귀하기도 했다. 1996년에는 유공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려 은퇴를 선언했으나, 1997년 일화에 영입되어 선수 생활을 이어갔다. 하지만, 1998년과 1999년에는 김해운 때문에 주전 경쟁에서 밀려 출전 기회를 얻지 못하고 1999년 시즌 후 최종 은퇴했다.
2.1. 럭키금성 황소 / LG 치타스 (1986-1991, 1995)
1986년 럭키금성 황소에서 성인 축구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1991년 12월 6일 포철로 이적했는데, 이 과정에서 LG는 한 달 전 1992 K리그 드래프트에서 1순위로 지명한 전경준을 차상광과 함께 포철로 보냈고, 포철은 수비수 손형선과 골키퍼 박철우를 LG로 보냈다.
1994년 2월 17일 유공으로 현금 트레이드되었으나, 그 해 10월 말 박성화 감독이 팀을 떠난 뒤 후임으로 부임한 니폼니시 감독에 의해 영입된 샤샤가 들어오자 1990년부터 1991년까지 LG에서 함께 뛰었던 김상진과의 맞트레이드를 통해 12월 14일 친정팀 LG로 복귀했다.
1995년 아디다스컵과 하이트배 전기리그에서 주전으로 활약했지만, 후기리그에서는 김봉수에게 주전 자리를 내주었고, 결국 그 해 12월 LG에서 방출되었다. 한편, 주말 2연전 제도가 시행된 1987년 당시 럭키금성의 제2홈구장이었던 청주에서 현대전 2경기 연속 무실점(9월 26일 1-0, 27일 0-0 무)을 기록하기도 했다. 주말 2연전 제도는 선수 부상 등의 문제점 때문에 1년 만에 폐지되었고, 프로야구의 사례를 본따 전년도에 홈팀이 흰색 유니폼, 원정팀이 유색 유니폼을 입어야 하는 규정이 시행된 것은 1년 만에 반대 형식으로 변경되었다.
2.2. 포항 스틸러스 (1992-1993)
1991년 12월 6일 포철 유니폼을 입었는데, 이 과정에서 LG는 한 달 전인 11월 20일 1992 K리그 드래프트 1순위로 지명한 전경준을 차상광과 함께 포철로 넘겼고, 포철은 수비수 손형선과 골키퍼 박철우를 LG로 넘겼다.
2.3. 유공 코끼리 / 부천 유공 (1994, 1996)
1994년 2월 17일 유공에 현금 트레이드되었으나, 그 해 10월 말 박성화 감독이 3년 임기 종료로 팀을 떠난 뒤 후임으로 부임한 니폼니시 감독에 의해 영입된 샤샤가 들어오자 1990년부터 1991년까지 LG (1991년부터 구단명 변경)에서 한솥밥을 먹은 김상진과의 맞트레이드를 통해 12월 14일 친정 LG로 돌아왔다.
1995년 아디다스컵과 하이트배 전기리그에서 주전 자리를 꿰찼으나, 후기리그에서는 김봉수에게 주전 자리를 빼앗겼다. 결국 그 해 12월 LG에서 방출된 후 유공으로 복귀했는데, 유공은 1994년 입단한 2년생 김민철이 전남으로 이적한 데다가 쓸만한 토종 골키퍼로는 또 다른 2년생 이용발 밖에 없어 차상광을 재영입했다. 하지만, 1996년 아디다스컵에서는 이용발에게 밀려 단 한 차례도 출전하지 못하는 등 설 자리를 잃어, 1996년 12월 27일 유공에서 자유계약선수로 풀린 뒤 은퇴를 선언했다.
2.4. 성남 일화 천마 (1997-1999)
1996년 시즌 후 박동우를 유공으로 트레이드시킨 뒤 유일하게 남은 토종 골키퍼이자 다음 해 아디다스컵에서 주전으로 발탁된 김해운이 같은 해 4월 16일 전북전에서 뜻밖의 부상을 당하여(후반 17분 사리체프와 교체) 시즌을 마감하면서 쓸만한 토종 골키퍼가 부족해진 일화에서 4월 21일 차상광을 영입했다. 하지만, 1998년과 1999년에는 김해운 때문에 한 차례도 출전하지 못했으며 결국 1999년 시즌 후 은퇴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차상광은 1992년 다이너스티컵,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 1995년 코리아컵 대회에 국가대표로 활약했다.
1994년 히로시마 아시안게임에서는 어이없는 플레이로 실점해 비난을 받았다. 1994년 아시안 게임에서 대한민국 축구 국가대표팀의 골키퍼로 활약했으나, 첫 번째이자 마지막 주요 토너먼트는 그에게 좋지 않은 기억과 불명예를 안겨주었다. 우즈베키스탄과의 준결승전에서 단 두 개의 유효 슈팅을 허용했지만, 실수로 공을 제대로 잡지 못해 한 골을 내주었다. 반면 대한민국은 28개의 슈팅을 기록했음에도 불구하고 득점에 실패하여 탈락했다. 토너먼트 이후 그는 모국에서 자신의 실수로 인해 광범위한 비판을 받았다.
4. 지도자 경력
차상광은 선수 은퇴 후 골키퍼 코치가 되었다. 그는 친정팀인 성남 일화 천마의 GK 코치를 맡았다. 이후 U-17 국가대표팀과 U-23 국가대표팀, 성인 국가대표팀 코치를 역임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