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의손
1. 개요
신의손은 소비에트 연방과 대한민국에서 활약한 축구 선수 및 코치이다. 선수 시절 파미르 두샨베, 토르페도 모스크바, 성남 FC, FC 서울 등에서 골키퍼로 뛰었으며, 특히 성남 FC 소속으로 K리그 3연패를 달성하고 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우승을 이끌었다. 은퇴 후에는 FC 서울, 경남 FC 등에서 코치로 활동했으며, 대한민국 U-20 대표팀 골키퍼 코치를 맡아 2009 FIFA U-20 월드컵 8강 진출에 기여했다. 2000년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 fullname: 발레리 콘스탄티노비치 사리체프 신 의손 | |
| 출생일 | 1960년 1월 12일 |
|---|---|
| 출생지 | 두샨베, 타지크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
| 신장 | 1.92m |
| 포지션 | 골키퍼 |
| 유소년 클럽 | 해당 정보 없음 |
|---|---|
| 클럽 | 1978–1981: 파미르 두샨베 (93경기, 0골) 1981: CSKA 모스크바 (4경기, 0골) 1982–1991: 토르페도 모스크바 (161경기, 0골) 1992–1998: 일화 천마 (157경기, 0골) 2000–2004: 안양 LG 치타스 (95경기, 0골) |
| 총 출장수 | 510경기 (0골) |
| 국가대표팀 | 1997: 타지키스탄 (1경기, 0골) |
|---|
| 별칭 | 신의 손, 거미손 |
|---|
| 코치 | 1999: FC 서울 (GK 코치) 2005: FC 서울 (코치) 2006-2007: 경남 FC (GK 코치) 2008-2011: 이천 대교 (수석 코치 겸 GK 코치) 2009: 대한민국 U-20 (GK 코치) 2009: 대한민국 U-23 (GK 코치) 2012-2015: 부산 아이파크 (GK 코치) 2016-2017: 이천 대교 (GK 코치) 2018: FC 안양 (GK 코치) 2019-2022: 김해시청 (GK 코치) 2023-: 천안공업고등학교 (GK 코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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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리그1의 타지키스탄인 축구 선수 -
비탈리 파라흐네비치
비탈리 파라흐네비치는 소련과 타지키스탄의 축구 선수로, 공격형 미드필더로 활동하며 K리그와 J리그에서 뛰었고, 1996년 타지키스탄으로 귀화하여 국가대표팀에서 1경기를 뛰었다. -
부산 아이파크의 골키퍼 코치 -
이승준 (축구인)
이승준은 1999년 한국철도 축구단에서 선수 생활을 시작해 대전 하나 시티즌, 부산 아이파크, 임마누엘 축구단, 할렐루야 축구단, 수원 FC 등을 거쳐 2021년 대전 하나 시티즌에 복귀, FA컵 우승에 기여한 대한민국의 축구 선수이다. -
러시아계 타지키스탄인 -
유수프 아브두살로모프
유수프 아브두살로모프는 타지키스탄의 레슬링 선수이며, 아시아 선수권 대회 우승과 올림픽 은메달 2개를 획득했다.
2. 클럽 경력
1978년, 소련 2부 리그에 소속된 CSKA 파미르 두샨베의 테스트에 합격하며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파미르 두샨베에서 공식전 97경기에 출전하였다. 1979 시즌 소비에트 1부 리그 3위, 1980 시즌 소비에트 1부 리그 4위에 기여했다. 1981년에는 군 복무로 1부 리그의 PFC CSKA 모스크바에 소속되었지만, 5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1982년부터 토르페도 모스크바에 재적했다. 토르페도 모스크바에서 공식전 221경기를 뛰었다. 토르페도에서는 몇 년 동안 리저브 팀에서 뛰었지만, 1987년 시즌 막바지에 4년 만에 1군에 기용된 경기에서 활약하여 팀은 최종적으로 UEFA 컵 출전권을 획득했다. 소비에트컵 4회 준우승(1982, 1988, 1989, 1991), 1985-86 시즌 소비에트컵 우승, 1990-91년 UEFA 유로파리그 8강 진출 등에 기여했다. 1991년에는 소련 리그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소비에트 톱리그 올해의 골키퍼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이후 소비에트 톱리그 야신 클럽의 가입 기준을 충족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톱리그가 1991 시즌을 마지막으로 폐지가 되면서 등록까지는 이뤄지지 못했다.
1991년 11월, 소비에트 톱리그가 폐지된 이후 K리그1의 성남 FC(전 일화 천마)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성남에서 7시즌 동안 공식전 198경기를 소화하며 리그 3연패(1993, 1994, 1995) 및 1회 준우승(1992), 1997년 FA컵 준우승, 1994-95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 1995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6-97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2차례 베스트 골키퍼(1992, 1994)와 4년 연속 K리그 베스트 11(1992, 1993, 1994, 1995)에 선정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리체프는 파미르 두샨베를 거쳐 토르페도 모스크바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대한민국으로 이적했다. 1992년, 일화 천마로 이적한 사리체프의 합류로, 일화는 1989년 K리그 가맹 첫 해부터 매년 리그 최다 실점을 기록하던 팀에서 리그 최소 실점(30경기 21실점)을 기록하며 우승 경쟁에 참여했고,, 이어진 3시즌(1993년, 1994년, 1995년) 동안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1995년에는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사리체프의 활약은 당시 수비가 약했던 성남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활약에 영향을 받아 K리그에서는 다른 클럽들도 앞다투어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게 되었지만, 한국인 골키퍼에게 출전 기회를 주기 위해 한국 프로 축구 연맹은 외국인 골키퍼에 대한 제한을 1996년부터 시작했고, 1999년에는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1999년, FC 서울(당시 안양 LG 치타스)은 사리체프를 골키퍼 코치로 영입했다. FC 서울은 1999년 FA컵 4강에 진출했고, 사리체프는 1999년 말 귀화를 추진하여 2000년 3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FC 서울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하며 2004년까지 공식전 131경기에 출전, 2000년 K리그 우승, 2001년 K리그 준우승, 2001년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2001-02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2005년 5월 1일 울산 HD(당시 울산 현대)와의 2005년 리그컵 11라운드 홈 경기에서 은퇴식을 갖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귀화 후 다시 선수로 뛸 수 있게 된 신의손은 공백기와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FC 서울의 2000년 K리그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1년에도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2000년과 2001년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2.1. K리그 입단 전
1978년, 소련 2부 리그에 소속된 CSKA 파미르 두샨베의 테스트에 합격하며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 파미르 두샨베에서 공식전 97경기에 출전하였다. 1979 시즌 소비에트 1부 리그 3위, 1980 시즌 소비에트 1부 리그 4위에 기여했다. 1981년에는 군 복무로 1부 리그의 PFC CSKA 모스크바에 소속되었지만, 5경기에 출전하는 데 그쳤다.
1982년부터 토르페도 모스크바에 재적했다. 토르페도 모스크바에서 공식전 221경기를 뛰었다. 토르페도에서는 몇 년 동안 리저브 팀에서 뛰었지만, 1987년 시즌 막바지에 4년 만에 1군에 기용된 경기에서 활약하여 팀은 최종적으로 UEFA 컵 출전권을 획득했다. 소비에트컵 4회 준우승(1982, 1988, 1989, 1991), 1985-86 시즌 소비에트컵 우승, 1990-91년 UEFA 유로파리그 8강 진출 등에 기여했다. 1991년에는 소련 리그 최우수 골키퍼로 선정되었다. 소비에트 톱리그 올해의 골키퍼에 선정되기도 했으며 이후 소비에트 톱리그 야신 클럽의 가입 기준을 충족시켰음에도 불구하고 소비에트 톱리그가 1991 시즌을 마지막으로 폐지가 되면서 등록까지는 이뤄지지 못했다.
2.2. [[성남 FC]]
1991년 11월, 소비에트 톱리그가 폐지된 이후 K리그1의 성남 FC(전 일화 천마)와 입단 계약을 체결했다. 성남에서 7시즌 동안 공식전 198경기를 소화하며 리그 3연패(1993, 1994, 1995) 및 1회 준우승(1992), 1997년 FA컵 준우승, 1994-95년 AFC 챔피언스리그 4강, 1995년 AFC 챔피언스리그 우승, 1996-97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또한 2차례 베스트 골키퍼(1992, 1994)와 4년 연속 K리그 베스트 11(1992, 1993, 1994, 1995)에 선정되며 전성기를 구가했다.
사리체프는 파미르 두샨베를 거쳐 토르페도 모스크바에서 전성기를 보내고 대한민국으로 이적했다. 1992년, 일화 천마로 이적한 사리체프의 합류로, 일화는 1989년 K리그 가맹 첫 해부터 매년 리그 최다 실점을 기록하던 팀에서 리그 최소 실점(30경기 21실점)을 기록하며 우승 경쟁에 참여했고,, 이어진 3시즌(1993년, 1994년, 1995년) 동안 리그 3연패를 달성했다. 1995년에는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 우승했다.
사리체프의 활약은 당시 수비가 약했던 성남에 큰 영향을 주었으며, 그의 활약에 영향을 받아 K리그에서는 다른 클럽들도 앞다투어 외국인 골키퍼를 영입하게 되었지만, 한국인 골키퍼에게 출전 기회를 주기 위해 한국 프로 축구 연맹은 외국인 골키퍼에 대한 제한을 1996년부터 시작했고, 1999년에는 전면적으로 금지했다.
2.3. [[FC 서울]]
1999년, FC 서울(당시 안양 LG 치타스)은 사리체프를 골키퍼 코치로 영입했다. FC 서울은 1999년 FA컵 4강에 진출했고, 사리체프는 1999년 말 귀화를 추진하여 2000년 3월 대한민국 국적을 취득했다. 그는 FC 서울에서 플레잉코치로 활동하며 2004년까지 공식전 131경기에 출전, 2000년 K리그 우승, 2001년 K리그 준우승, 2001년 대한민국 슈퍼컵 우승, 2001-02년 AFC 챔피언스리그 준우승에 기여했다. 2005년 5월 1일 울산 HD(당시 울산 현대)와의 2005년 리그컵 11라운드 홈 경기에서 은퇴식을 갖고 현역에서 물러났다.
귀화 후 다시 선수로 뛸 수 있게 된 신의손은 공백기와 40세의 나이에도 불구하고 뛰어난 활약을 보이며 FC 서울의 2000년 K리그 우승에 핵심적인 역할을 했다. 2001년에도 리그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2000년과 2001년에는 K리그 베스트 11에 선정되었다.
3. 국가대표팀 경력
귀화 전에는 타지키스탄 대표팀의 일원으로 활동했고 1997년 대구시민운동장에서 벌어진 대한민국과의 경기가 현재까지 유일한 국제 A매치 기록이다. 1988년 하계 올림픽에 소련 대표팀의 일원으로 출전하지 못한 것을 더 아쉬워했다.
1997년 8월, 타지키스탄 국가대표팀은 대한민국과의 경기를 위해 16명의 선수를 대한민국으로 소집하려 했으나, 여권 문제로 인해 12명의 선수만 입국했다. 이에 타지키스탄 축구 연맹은 K리그에서 활약하고 있던 사리체프와 비탈리 파라흐네비치를 소집했다.
1997년 8월 24일 대한민국에서 열린 대한민국 대 타지키스탄의 친선 경기에서 타지키스탄 대표로 1경기 출전했다. 타지키스탄은 여권 문제로 인해 선수 부족에 시달렸고, 급하게 한국에서 뛰고 있던 사리체프와 비탈리 파라크네비치 등 소련 출신 2명이 소집되었다. 경기는 4-1로 대한민국이 승리했다.
| 국가대표팀 | 연도 | 출장 | 득점 |
|---|---|---|---|
| 타지키스탄 | 1997 | 1 | 0 |
4. 지도자 경력
은퇴 후에는 FC 서울, 경남 FC의 코치를 역임했다. 여자 축구 클럽인 고양 대교 누리 WFC를 지도하는 한편, 2009년에는 FIFA U-20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한 대한민국 U-20 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를 맡았다.
4.1. [[이천 대교 여자 축구단|이천 대교]]
2005년 선수 은퇴 후 FC 서울과 경남 FC의 GK 코치를 거쳐, 2008년 WK리그의 이천 대교 수석 코치 겸 골키퍼 코치로 부임했다. 2010년 이천 대교로 복귀하여 2011년 WK리그 우승, 전국체육대회 2연패 (2010, 2011)를 이끌었다. 2016년 다시 이천 대교의 골키퍼 코치로 복귀하여 2016년 WK리그 준우승, 2016년 전국체육대회 금메달 등을 이끌었다. 한편, 2009년에는 FIFA U-20 월드컵에서 8강에 진출한 대한민국 U-20 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를 맡았다.
4.2. 대한민국 청소년 대표팀
2009년 3월 홍명보 감독의 부름을 받아 대한민국 U-20 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를 병행하며 2009년 FIFA U-20 월드컵 8강 진출에 기여했다. 이후 대한민국 U-23 대표팀의 골키퍼 코치를 잠시 역임했다.
4.3. [[부산 아이파크]]
안익수 감독의 부름을 받아 부산 아이파크의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여 2013년 FA컵 4강 진출을 이끌었다. 하지만 2015년 K리그1에서 12팀 중 11위에 그쳐 차기 시즌 K리그2로 강등되었고 결국 부산 아이파크를 떠났다.
4.4. [[김해시청 축구단|김해시청]]
2019년 내셔널리그의 김해시청 골키퍼 코치로 부임하여 2020년 K3리그 우승을 이끌었다. 2022 시즌까지 김해시청에서 골키퍼 코치를 역임했다.
4.5. [[천안 시티 FC U-18|천안공업고등학교]]
2022년, 천안 시티 산하 유소년팀인 천안공업고등학교의 골키퍼 코치로 부임했다.
5. 수상
토르페도 모스크바
*소련 컵: 1985-86
일화 천마
*K리그1: 1993, 1994, 1995
*대한민국 리그컵: 1992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5
*아시안 슈퍼컵: 1996
*아프리카-아시아 클럽 챔피언십: 1996
안양 LG 치타스
*K리그1: 2000
*대한민국 슈퍼컵: 2001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준우승: 2001-02
개인
*오고니오크/Вратарь года러시아어 올해의 골키퍼 (레프 야신 상): 1991
*K리그 올스타: 1992, 1995, 1997, 2000, 2001, 2002
*K리그1 최고 수비수/골키퍼: 1992, 1994
*K리그1 베스트 11: 1992, 1993, 1994, 1995, 2000, 2001
*K리그 30주년 베스트 11: 2013
5.1. 클럽 (선수)
신의손은 소련 컵에서 1985-86 시즌 우승을 차지했고, 1988, 1989, 1991년에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1991년에는 오고니오크 올해의 골키퍼/Вратарь года러시아어 상을 수상했다.
일화 천마, 천안 일화 천마 소속으로 K리그1에서 1993년부터 1995년까지 3회 연속 우승을 달성했고, 1992년에는 준우승을 기록했다. 리그컵에서는 1992년에 우승, 1995년에 준우승을 차지했다. FA컵에서는 1999년에 우승, 1997년에 준우승을 기록했다.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는 1995년에 우승, 1996-97 시즌에 준우승을 차지했으며, 아시안 슈퍼컵 (1996)과 아프로-아시안 클럽 챔피언십 (1996)에서도 우승컵을 들어 올렸다.
안양 LG 치타스 (현 FC 서울)에서는 K리그1 2000 시즌 우승과 2001 시즌 준우승을 이끌었고, 대한민국 슈퍼컵에서 2001년에 우승을 차지했다. 아시안 클럽 챔피언십에서는 2001-02 시즌 준우승을 기록했다.
K리그 올스타에 1992, 1995, 1997, 2000, 2001, 2002년에 선정되었고, K리그1 최고 수비수/골키퍼 상을 1992년과 1994년에 받았다. K리그1 베스트 11에는 1992년부터 1995년까지, 그리고 2000년과 2001년에 선정되었으며, 2013년에는 K리그 30주년 베스트 11에 이름을 올렸다.
5.2. 클럽 (지도자)
FC 서울에서 골키퍼 코치를 역임하며 1999년 아디다스컵 준우승을 이끌었다. 이천 대교에서는 골키퍼 코치로서 WK리그 우승(2011), 준우승(2016), 3위(2010, 2017)를 달성했고, 전국체육대회에서 금메달(2010, 2011, 2016)을 획득하는 성과를 거두었다. 김해시청에서는 골키퍼 코치로 2020년 K3리그 우승에 기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