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부경
1. 개요
천부경은 총 81자로 구성된 경전으로, 1917년 계연수가 단군교에 발견 사실을 알리면서 처음 알려졌다. 이후 대종교에서 경전으로 수용하기까지 논의를 거쳤으며, 1975년에 정식 경전으로 채택되었다. 묘향산 석벽본, 태백일사본, 농은 유집본 등 여러 판본이 존재하며, 신채호는 위조된 것이라고 비판했다.
-
환단고기 -
치우
치우는 중국 신화에서 신농의 후예로 전해지며 황제 헌원과 전쟁을 벌인 신이자 구려족의 지도자로 여겨지며, 일부 민족에게 조상으로 추앙받고 전쟁의 신으로 숭배받는 인물이다. -
환단고기 -
가림토
가림토는 단기고사, 환단고기 등에서 고대 한민족의 문자라고 주장되지만, 고고학적 증거 부족과 언어학적 근거 미흡으로 비판받고 있으며, 학계에서 실존 여부 및 한글과의 연관성에 대한 논쟁이 있다. -
대종교 -
개천절
개천절은 대한민국과 북한의 국경일로, 단군이 고조선을 건국한 것을 기념하며, 대종교에서는 환웅이 하늘을 연 날로 여겨 다양한 행사가 열리지만 단군신화의 역사성에 대한 논란도 있다. -
대종교 -
단군
단군은 한국 건국 신화에 나오는 인물로 고조선의 건국 시조로 여겨지며, 환웅과 웅녀 사이에서 태어났다고 전해지고 조선 시대부터 국조로 숭앙받았고 구한말 민족주의 운동의 구심점으로서 의미가 강조되었으며 현대에는 역사적 실존 여부 논쟁이 있지만 한국 민족 기원을 상징하는 중요한 존재로 인식된다. -
경전 -
동경대전
동경대전은 동학의 창도 이유와 핵심 사상을 담은 경전으로, 서학을 비판하고 유교, 불교, 도교, 민간 신앙을 아우르는 사상을 제시하며, 포덕문, 논학문 등 동학의 핵심 교리를 담은 다양한 글들을 수록하고 있다. -
경전 -
위경
위경은 실제 저자가 아닌 다른 인물의 이름으로 쓰인 문서나 저작물을 지칭하는 용어로, 성경 연구에서는 특정 권위자가 쓴 것으로 여겨지는 작품을, 현대에는 정경이나 외경에 포함되지 않는 문서를 포괄적으로 지칭하며 문학 작품에서 허구성을 강조하는 기법으로도 사용된다.
2. 전래 및 수용
《천부경》은 대종교 중광(1909년) 당시에는 알려지지 않았다. 1917년 계연수가 단군교에 《천부경》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처음 세상에 알려졌다.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1920년)에 따르면, 계연수는 묘향산의 석벽에서 최치원이 새긴 《천부경》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1917년 단군교에서 공개한 이후 김용기, 강우 등 일부 대종교 인사들이 관심을 보였으나, 만주의 대종교 총본사는 《천부경》을 경전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 윤세복이 귀국하여 대종교를 재건했을 때에도 《천부경》은 대종교의 경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1975년에 이르러서야 대종교는 《천부경》과 《참전계경》을 정식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2.1. 계연수의 발견
1916년 계연수는 묘향산에서 수도하던 중 석벽에서 《천부경》을 발견했다고 한다. 1917년 계연수는 단군교에 자신이 발견한 《천부경》에 대한 내용의 편지를 보냈으며, 이 편지를 통해 《천부경》이 처음 세상에 알려지게 되었다.
전병훈의 《정신철학통편》(1920년)에 따르면, 계연수는 묘향산의 석벽에서 최치원이 새긴 《천부경》을 발견했다고 주장했다.
2.2. 대종교의 수용
1917년 계연수가 단군교에 《천부경》을 발견했다는 내용의 편지를 보내면서 처음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계연수는 1916년 9월 9일 묘향산에서 수도하던 도중 석벽에서 《천부경》을 발견하였다고 한다.
1917년 단군교에서 공개한 이후 김용기, 강우 등 일부 대종교 인사들이 관심을 표명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만주의 대종교 총본사는 《천부경》을 경전으로 수용하지 않았다. 해방 이후 윤세복이 귀국하여 대종교를 재건하였을 때에도 역시 《천부경》은 대종교의 경전으로 인정받지 못했다.
윤세복의 사후 단군교 신자들이 대거 종단에 참여하게 되면서 단군교 계열의 경전들도 다시 주목받기 시작하였다. 1975년에 이르러서야 대종교는 《천부경》과 《참전계경》을 정식 경전으로 받아들였다.
4. 판본
재야사학자 송호수는 천부경의 여러 판본이 전해지고 있다고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정리하였다.
* 묘향산 석벽본: 계연수가 1916년에 발견하여 1917년에 단군교에 보냈다는 판본이다. 계연수는 최치원이 석벽에 새겨놓은 것이라 주장하였다. 현재 여러 천부경 판본의 원본으로 보인다.
* 최고운 사적본: 김용기가 1925년에 쓴 《단전요의(檀典要義)》에 소개되었다. 최국술이 《최문창후전집(崔文昌候全集)》에 실은 천부경의 출전으로 기재되어 있다.
* 최문창후전집본: 최국술이 1925년에 쓴 《최문창후전집(崔文昌候全集)》에 출처를 《단전요의(檀典要義)》라고 기재한 천부경이 실려있다.
* 노사 전비문본: 김형택이 1957년에 쓴 《단군철학석의(檀君哲學釋義)》에 소개된 것으로, 1920년경 습득한 것이라고 한다.
* 태백일사본: 이유립이 1979년에 공개한 《환단고기》에 실린 천부경이다. 최치원의 첩(帖)으로 세상에 전하는 것을 1911년 계연수가 적어넣었다고 한다.
* 농은유집본: 민홍규가 2000년에 《뉴스피플》에 기고하면서 알려졌다. 민안부의 유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민홍규는 이것이 일반적인 천부경이 아닌 갑골문으로 된 천부경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천부경의 갑골문은 실제 갑골문과 전혀 다른 위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묘향산 석벽본, 태백일사본, 농은유집본에 대한 자세한 내용은 하위 항목에서 다룬다.
4.1. 묘향산 석벽본
계연수가 1916년에 묘향산에서 발견하여 1917년에 단군교에 보냈다는 판본으로, 계연수는 최치원이 석벽에 새겨놓은 것이라 주장하였다. 현재 여러 천부경 판본의 원본으로 보인다. 김택영의 《소호당전집》(1922년)에 따르면, 단군의 신하인 신지(神志)가 篆書중국어로 비에다가 경을 새겨 단군의 탄생지에 세워두었던 것을 최치원이 해서체(楷書중국어)로 풀어서 다시 새긴 것이라고 한다.
4.2. 태백일사본
이유립이 1979년에 공개한 《환단고기》에 실린 판본이다. 최치원의 첩(帖)으로 세상에 전하는 것을 1911년 계연수가 적어넣었다고 한다. 환단고기에 따르면 天符經중국어은 천제(天帝) 환국(桓國)에서 구전(口傳)으로 전해지는 글이다. 환웅대성존(桓雄大聖尊)이 하늘에서 내려온 후 신지(神誌) 혁덕(赫德)에게 명하여 녹도문(鹿圖文)으로 썼다. 최고운 치원(崔孤雲致遠)이 일찍이 전고비(篆古碑)를 보고 다시 첩(帖)을 만들어 세상에 전한 것이다.
4.3. 농은유집본
2000년 민홍규가 《뉴스피플》에 기고하면서 알려진 판본으로, 민안부의 유품에서 나온 것이라고 한다. 민홍규는 이것이 일반적인 천부경이 아닌 갑골문으로 된 천부경이라고 주장하였다. 하지만 이 갑골문은 실제 갑골문과 전혀 다른 위작이라는 것이 일반적인 견해이다.
5. 비판
신채호는 《조선사연구초》와 《조선상고사》에서 천부경을 후대에 위조된 것이라고 평가절하했다. 일각에서는 신채호의 언급이 “《천부경》이 위작이 아니라 말한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인정되지 않는다.
환단고기 〈태백일사〉에는 천부경이 실려 있다. 그런데 계연수가 천부경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16년으로, 환단고기를 쓴 1911년보다 5년 뒤여서 모순이 발생한다.
5.1. 친일 논란과 단군교
1910년 조선이 일제에 병합되기 직전, 나철은 대종교로 이름을 바꾸고 만주로 건너가 일제에 대립하였다. 그러나 나철의 노선에 반발한 정훈모는 친일파들과 함께 조선에 남아 '단군교'라는 이름을 고수하며 새 종단을 세웠다. 이로써 일제에 대항하는 민족종교인 대종교와 일제의 통치에 순응하는 친일 교단인 단군교가 분리, 양립하게 되었다. 전병훈의 저서 《정신철학통편》(1920)에 《천부경》을 전한 윤효정은 당시 단군교 대선사였고, 계연수는 <계연수기서>에서 "《천부경》을 발견, 서울의 단군교당에 전했다"고 했는데, 여기서 말하는 단군교당은 정훈모의 단군교를 가리킨다. 《정신철학통편》에 기재된 《천부경》의 유래 또한 단군교의 주장과 같아, 결국 원 출전은 단군교인 것으로 판단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