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상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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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상림은 일제강점기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주도한 독립운동가이자 목사이다. 1888년 동래에서 출생하여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은 후, 동래교회와 남해교회에서 목회 활동을 했다. 1938년 경남노회에서 신사참배 반대 결의를 주도하고, 한상동 목사의 항거 설교를 계기로 남해를 중심으로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펼치다 투옥되어 옥고를 치렀으며,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1945년 순국했다. 1991년 대한민국 정부는 그의 공훈을 기려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최상림
기본 정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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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림의 모습
본관해주(海州)
호해성(海星)
종교개신교
인물 정보
출생1888년
사망1945년
직업목사, 독립운동가
주요 활동
주요 활동3·1 운동 참가, 만주에서 기독교 독립운동 지도
서훈건국훈장 애족장 (1995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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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최상림 목사는 1888년 기장군에서 태어나 1926년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목사 안수를 받았다. 1933년 남해교회로 옮겨 1937년 경남노회장에 선출되었으며, 1938년 경남노회에서 신사참배 반대 결의를 주도했다. 이후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전개하다 투옥되어 평양형무소에서 옥고를 치르던 중 1945년 해방을 앞두고 고문으로 건강이 악화되어 순국하였다. 1991년 대한민국 정부는 최상림에게 건국훈장을 수여했다.

2.1. 출생과 신학 공부

1888년 기장군 동래에서 태어났다. 1926년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일명 평양신학교)를 졸업하였다.

2.2. 목회 활동과 신사참배 반대 운동

1926년 조선예수교장로회신학교(일명 평양신학교)를 졸업하고, 그 해에 경남노회에서 목사안수를 받고 동래교회 위임목사로 부임하였다. 1933년 남해교회로 옮겼으며, 1937년 경남노회장에 선출되었다. 1938년 6월 부산 해운대교회에서 열린 제41차 경남노회에서 노회 차원의 공식적인 신사참배반대 결의를 주도했다. 이는 교회 내에서 공식적으로 결정한 유일한 신사참배 반대였다. 1938년 10월 한상동 목사가 부산 초량교회에서 신사참배 항거 설교를 한 것을 계기로 경남노회에서 신사참배반대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남해를 중심으로 신사참배반대운동을 전개했다.

2.3. 투옥과 순국

1938년 10월 한상동 목사가 부산 초량교회에서 신사참배 항거 설교를 한 것을 계기로 경남노회에서 신사참배 반대 운동이 시작되었는데, 이때 최상림은 남해를 중심으로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전개했다. 당시 일본 식민 권력에 의해 일본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이 금지되면서, 최상림은 다른 반일 신사 참배 운동가들과 함께 체포되어 평양 감옥에 수감되었다.

1945년 5월 6일, 고문 후유증으로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3. 사후

최상림 목사는 일제강점기 말 신사참배 강요에 맞서 항거하다 1945년 5월 6일 평양형무소에서 옥사하였다.

3.1. 건국훈장 추서

1991년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건국훈장 애국장이 추서되었다.

3.2. 평가

최상림 목사는 일제강점기에 신사참배에 반대하며 민족의 자주독립과 신앙의 양심을 지키기 위해 헌신한 독립운동가이자 종교 지도자로 평가받는다. 특히, 경상남도 지역 개신교계의 신사참배 반대 운동을 이끈 핵심 인물로, 그의 용기와 희생은 오늘날까지도 많은 이들에게 귀감이 되고 있다. 그는 1938년 10월부터 일본 천황 숭배에 참여하는 것을 거부했으며, 남해 지역을 중심으로 신사 참배 반대 운동을 시작했다. 평양 감옥에 수감되었고, 1945년 5월 6일 옥중에서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1991년 대한민국 정부는 최상림에게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