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운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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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운봉은 일제강점기 친일 영화에 출연하고 광복 후 조선영화동맹에서 활동하다가 월북한 배우이다. 1938년 영화 《한강》으로 데뷔하여, 중일 전쟁과 태평양 전쟁 시기 친일 영화에 출연했다. 안석영 연출의 《지원병》에 문예봉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했으며, 《나는 간다》, 《태양의 아들들》 등의 작품에 참여했다. 광복 후에는 조선영화동맹에 가담하여 서울지부 집행위원을 맡았으나, 1949년 《마음의 고향》 출연을 마지막으로 월북했다.

최운봉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최운봉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최운봉
본명알 수 없음
출생일1914년
출생지알 수 없음
사망일알 수 없음
사망지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다른 이름알 수 없음
배우자알 수 없음
웹사이트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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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최운봉은 1938년 《한강》으로 데뷔했다. 일제 강점기에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 등으로 관제 선동 영화가 주로 제작되던 시기에 여러 친일 영화에 출연하여,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광복 후에는 조선영화동맹에서 활동하다가, 1949년 《마음의 고향》 출연을 마지막으로 월북했다.

2.1. 일제강점기 활동

1938년 《한강》으로 데뷔했다. 최운봉의 데뷔 시기는 중일 전쟁태평양 전쟁으로 관제 선동 영화가 주로 제작되던 시기였다. 1942년에는 영화사가 통폐합되어 국책 영화만 제작할 수 있었다.

최운봉은 지원병 제도를 홍보하는 안석영 연출의 《지원병》(1941년)에 문예봉과 함께 주연으로 출연한데 이어, 《나는 간다(今ど我は行く일본어)》, 《태양의 아들들(太陽の子供達일본어)》, 《감격의 일기(感激の日記일본어)》, 《우리들의 전쟁(我れらの戰爭일본어)》 등 친일 영화에 잇따라 출연했다. 2008년 민족문제연구소의 친일인명사전 수록예정자 명단 연극/영화 부문에 포함되었다.

2.2. 광복 후 활동

광복 후 조선영화동맹에 가담하여 서울지부 집행위원을 맡아 영화 대중화 운동에 참가했다. 조선영화동맹에는 좌익과 우익 영화인들이 대거 참가했으나, 차츰 우익 계열이 분리되었다.

1949년 함세덕의 희곡을 영화화한 《마음의 고향》에 출연한 것을 마지막으로 월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