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종건 (1926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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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최종건(1926년)은 일제강점기 말기에 태어나 1973년 사망한 기업인이다. 그는 선경직물을 적산불하로 인수하여 선경그룹의 모태를 만들었으며, SK그룹 제2대 회장 최종현의 형이자, SK그룹 제4대 회장 최태원의 큰아버지이다. 경성공립직업학교를 졸업하고 선경직물에 입사하여 생산부장, 선경산업 사장 등을 역임하며 기업을 성장시켰다. 또한 수원상공회의소 회장, 대한배구협회 부회장 등을 역임하며 사회 활동에도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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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종건 (1926년)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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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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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름 | 최종건 |
출생일 | 1926년 1월 9일 |
출생지 | 일제강점기 경기도 수원군 |
사망일 | 1973년 11월 15일 |
사망지 | 대한민국 서울특별시 종로구 연건동 서울대학교병원 |
본관 | 수성 |
국적 | 대한민국 |
직업 | 상인 |
부모 | 아버지 최학배, 어머니 이동대 |
배우자 | 노순애 |
자녀 | 3남 4녀 |
경력 | |
경력 | 선경직물 사장 선경그룹 창업주 |
학력 | |
학력 | 경성공립직업학교 기계과 |
2. 생애
최종건은 1926년 1월 9일에 태어났다. 선경직물은 1939년 일본인 포목회사 선만주단 주식회사와 일본 관서지방의 교토직물이 합작하여 세운 회사였다. SK 제2대 회장 최종현의 형이고, SK그룹 제4대 회장 최태원의 큰아버지이다.
1964년 대한직물공업협동조합 연합회(직련) 회장을 역임했다.[1] 1966년 6월 선경화섬 사장이 되었으며, 선경산업, 선산섬유, 울산섬유 대표이사(선경화섬의 방계회사들)를 지냈다.[1] 1967년 7월 12일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 제6·7·8대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1] 1969년 7월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 선경합섬 회장을 역임했다.[1]
1967년 9월 14일부터 1971년 2월 18일까지 직물수출조합 이사장을 역임했다.[2] 1970년 2월 4일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1] 1971년 2월 19일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 직물원사수출조합 이사장을 역임했다.[1] 1971년 중앙대학교 사회개발대학원을 수료했다. 1972년 서해개발 주식회사를 설립, 대표이사를 지냈다.[1] 1973년 선경석유 주식회사를 설립, 대표이사를 지냈다.[1]
2. 1. 어린 시절과 교육
1926년 경기도 수원군 안용면 평리(坪里) 벌말부락에서 기업인 최학배(崔學培)와 그의 부인 이동대(李同大)의 아들로 태어났다. 아버지 최학배는 나무장수를 하다가 상점 대성상회(大成商會)를 설립하였으며, 볏집과 잠업으로도 사업을 확장하였다. 그의 선대는 수원군 공향면 해창리(현 화성시 팔탄면)였지만 아버지 최학배가 평리로 이사하였다. 누나 2명과 여동생 2명, 남동생 3명이 있었다.방씨 훈장이 운영하는 서당에 들어가 명심보감, 동몽선습, 사서삼경 등 한학을 공부하였다.
1936년 3월 수원군 신풍정의 신풍소학교(新豊小學校)에 10세의 나이로 늦게 입학하였으며, 그의 누나 최양분이 다니고 있었다. 1940년 아버지 최학배가 수원고등농림학교 재학생이며 누나 최양분의 남편인 표현구(表鉉九)를 가정교사로 초빙하여, 동생 최종현과 함께 수학하였다. 1941년 수원 신풍공립심상소학교를 졸업하였다.
1941년 할아버지 최두혁(崔斗赫)의 권고 및 외삼촌의 영향으로 경성공립직업학교(현 서울과학기술대학교) 기계과에 입학, 1944년에 졸업하였다. 1944년 기계기사 3급 자격증을 취득하였다.[1]
2. 2. 선경직물 입사와 초기 경력
1944년 4월 최종건은 경성공립직업학교 기계과를 졸업하고 기계기사 3급 자격증을 취득한 뒤, 선경직물 수원공장에 견습기사로 입사하였다.[1] 선경직물은 1939년 일본인 포목회사 선만주단 주식회사와 일본 관서지방의 교토직물이 합작하여 세운 회사였다.[1] 그해 8월에는 선경직물 수원 제2공장의 생산부 2조장으로 임명되었다.[1]1945년 11월 11일, 광복 이후 선경직물은 적산으로 분류되어 조업이 정지되었다.[1] 1946년 2월, 최대 주주 황청하와 김덕유가 공동관리자로 선임되면서 최종건은 다시 선경직물에 출근하여 생산부장이 되었다.[1]
1950년 6월 24일, 최종건은 그동안 월급을 모은 돈으로 기업 인수를 시도했지만, 다음날 한국전쟁이 발발하면서 피난을 가게 되었다.[1] 1953년 7월 휴전 직후, 공동 관리자들이 부재한 상황에서 최종건은 적산불하를 통해 선경직물 주식회사를 인수했다.[1] 해방 후 8년이 지났지만 일제강점기에 설립된 기업과 시설은 모두 북한 관련 시설들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에 의해 적산으로 취급되었다.[1] 이는 선경그룹의 모태가 되었다.
2. 3. 선경그룹 창업과 성장
1944년 4월 선경직물 수원공장에 견습기사로 입사하였으며, 1953년 한국전쟁 휴전 이후 선경직물을 적산불하로 인수하여 선경그룹의 모태를 완성시켰다.[1] 선경직물은 1939년 일본인 포목회사 선만주단 주식회사와 일본 관서지방의 교토직물의 합작으로 세운 회사였다.[1]1953년 7월 휴전 직후, 공동 관리자 부재로 선경직물 주식회사를 적산불하로 인수했다. 해방 후 8년이 지났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설립된 기업, 시설은 모두 북한 관련 시설들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에서 적산으로 취급되었다.
1962년 8월 선경산업을 설립, 나일론, 인견, 테트론 등을 생산했다. 1966년 일본 데이진 주식회사와 합작투자로 인조섬유(폴리에스테르) 공장을 현지에 설립했다.
1970년 선경산업과 선경직물을 통합, 선경직물로 개편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 1973년 워커힐을 인수하였다.
2. 4. 말년과 사망
최종건은 1973년 11월 15일 서울특별시 종로구 삼청동 142-1번지 자택에서 폐렴으로 사망하였다.[1]3. 경영 활동 및 사회 활동
최종건은 기업 경영뿐만 아니라 다양한 사회 활동에도 참여했다. 1964년 대한직물공업협동조합 연합회(직련) 회장을 역임하고, 1967년부터 1971년까지 직물수출조합 이사장[2], 1971년부터 1973년까지 직물원사수출조합 이사장을 역임하며 섬유 산업 발전에 기여했다. 또한 1967년부터 1973년까지 수원상공회의소 회장[1], 1970년부터 1973년까지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을 맡아 지역 사회와 스포츠 분야에도 공헌했다.
3. 1. 경영 활동
1944년 4월 선경직물 수원공장에 기계 기술자로 입사하여 견습사원으로 근무하였다.[1] 1944년 8월 선경직물 수원 제2공장의 생산부 2조장으로 임명되었다.[1] 1945년 11월 11일 선경직물이 적산으로 분류되어 조업이 정지될 때까지 근무하였다.[1] 1946년 2월 선경직물에 다시 출근하여 최대 주주 황청하, 김덕유가 공동관리자로 선임된 후 생산부장이 되었다.[1]1950년 6월 24일, 그동안 월급을 모은 돈으로 기업 인수를 시도했으나, 다음날 6.25 전쟁이 발발하여 피난을 가게 되었다.[1] 1953년 7월 휴전 직후, 공동 관리자 부재로 선경직물 주식회사를 적산불하로 인수하였다.[1] 해방 후 8년이 지났으나 일제강점기 당시 설립된 기업과 시설은 모두 북한 관련 시설들과 함께 대한민국 정부에서 적산으로 취급되었다.
1962년 8월 선경산업을 설립, 나일론, 인견, 테트론 등을 생산하였다.[1] 1964년 대한직물공업협동조합 연합회(직련) 회장에 선출되었다.[1] 1966년 일본 데이진 주식회사와 합작투자로 인조섬유(폴리에스테르) 공장을 현지에 설립하였다.[1] 같은 해 6월 선경화섬 사장에 취임하였다.[1]
선경산업, 선산섬유, 울산섬유 대표이사(선경화섬의 방계회사들)를 역임하였다.[1] 1967년 7월 12일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 제6·7·8대 수원상공회의소 회장을 역임했다.[1] 1969년 7월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 선경합섬 회장을 역임했다. 1970년 선경산업과 선경직물을 통합, 선경직물로 개편하고 회장에 취임하였다.[1]
1967년 9월 14일부터 1971년 2월 18일까지 직물수출조합 이사장을 역임했다.[2] 1970년 2월 4일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했다.[1] 1971년 2월 19일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 직물원사수출조합 이사장을 역임했다.[1] 1972년 서해개발 주식회사를 설립하고 대표이사에 취임하였다.[1] 1973년 워커힐을 인수하고, 선경석유 주식회사를 설립하여 대표이사가 되었다.[1]
3. 2. 사회 활동
1964년 대한직물공업협동조합 연합회(직련) 회장에 선출되었다.[1] 1967년 9월 14일부터 1971년 2월 18일까지 직물수출조합 이사장을 역임했고[2], 1971년 2월 19일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 직물원사수출조합 이사장을 역임했다.1967년 7월 12일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 제6·7·8대 수원 상공회의소 회장을 지냈다.[1] 1970년 2월 4일부터 1973년 11월 15일까지는 대한배구협회 부회장을 역임하였다.
4. 수상 내역
연도 | 수상 내역 |
---|---|
1963년 | 금탑산업훈장 |
1966년 | 대통령 식산포장(수출유공) |
1969년 | 국무총리 표창장(수출유공) |
1970년 | 국무총리 표창장(수출유공) |
1971년 | 국무총리 표창장(수출유공) |
5. 가족 관계
관계 | 이름 | 출생일 | 사망일 | 활동사항 |
---|---|---|---|---|
할아버지 | 최두혁(崔斗赫) | 1868년 | 1938년 | |
할머니 | 홍씨 | 1868년 | 1907년 | |
아버지 | 최학배(崔學培) | 1900년 | 1962년 10월 2일 | 대성상회(大成商會) 사장 |
어머니 | 이동대(李同大) | 1903년 | 1972년 11월 | |
부인 | 노순애(盧順愛) | 1928년 | 2016년 1월 28일 | 선경최종건재단 이사장 |
장남 | 최윤원(崔允源) | 1950년 11월 11일 | 2000년 8월 31일 | SK 케미칼 부사장, 회장 역임, 폐암, 후두암으로 사망 |
차남 | 최신원(崔信源) | 1953년 1월 5일 | SKC 회장 | |
장녀 | 최정원(崔貞源) | 1955년 | ||
차녀 | 최혜원(崔惠源) | 1957년 | ||
삼녀 | 최지원(崔支源) | 1959년 | ||
사녀 | 최예정(崔藝靜) | 1962년 | ||
삼남 | 최창원(崔昌源) | 1964년 8월 27일 | SK 케미칼 부회장, SK 와이번스 구단주 | |
누나 | 최양분(崔養分) | 1922년 | 2010년 5월 5일 | SK텔레콤 사장 표문수의 어머니 |
자형 | 표현구 | 1920년 | 1994년 6월 26일 | |
누나 | 최양순(崔養順) | 1923년 | 2008년 5월 1일 | |
자형 | 여운창 | 1919년 | 사망 | |
남동생 | 최종현(崔鍾賢) | 1929년 11월 21일 | 1998년 8월 26일 | SK그룹 2대 회장 |
여동생 | 최종분(崔鍾分) | 1932년 | ||
남동생 | 최종관(崔鍾寬) | 1934년 | 2018년 2월 24일 | SKC 고문 |
여동생 | 최종순(崔鍾順) | 1936년 | ||
남동생 | 최종욱(崔鍾旭) | 1939년 |
참조
[1]
웹인용
수원상공회의소 역대 회장
http://suwoncci.korc[...]
2016-01-30
[2]
문서
1971년 직물원사수출조합으로 개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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