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카우프만-부헤러-노이만 실험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카우프만-부헤러-노이만 실험은 전자의 질량이 속도에 따라 증가하는지 여부를 확인하기 위해 수행된 일련의 실험이다. 1896년 방사성 붕괴 현상과 전자의 발견 이후, 전자기 질량에 대한 이론적 예측과 함께 시작되었다. 발터 카우프만의 초기 실험은 전자의 전자기적 질량 증가를 확인했지만, 경쟁 이론들 간의 결정을 내리지 못했다. 이후 알프레트 부헤러, 귄터 노이만 등의 실험을 통해 로렌츠-아인슈타인 이론이 지지받았으며, 특수 상대성 이론의 검증에 기여했다. 현대에는 로저스 등의 정밀한 실험을 통해 특수 상대성 이론이 더욱 확고하게 증명되었다.

2. 역사적 배경

19세기 말, 앙리 베크렐방사성 붕괴 현상을 발견하고, 이 과정에서 방출되는 베타 방사선이 J. J. 톰슨이 발견한 전자와 동일한 입자임이 밝혀졌다. 이는 움직이는 전하를 띤 물체의 질량이 속도에 따라 변할 수 있다는 전자기 질량 이론과 맞물려 큰 관심을 받았다. J. J. 톰슨, 조지 프레더릭 찰스 설, 헨드릭 안톤 로렌츠 등 여러 물리학자들은 이론적으로 전자의 질량이 속도가 증가함에 따라 커지며, 광속에 가까워지면 무한대에 이를 것이라고 예측했다.[1][2][3] 당시에는 이러한 속도 의존적 질량을 "겉보기 질량" 또는 운동 방향에 따라 "횡 질량"과 "종 질량"으로 구분하여 불렀으며, 고전적인 뉴턴 질량은 "실질 질량"으로 칭했다.[4][5]

이러한 이론적 배경 속에서, 실제로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의 질량이 속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실험적으로 측정하려는 시도가 이루어졌다. 특히 로렌츠는 1904년 자신의 전자 이론을 통해 질량 변화에 대한 구체적인 예측을 내놓았다.[21] 이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특수 상대성이론에서도 질량-속도 관계가 핵심적인 요소로 등장하면서, 전자의 질량 변화를 측정하는 실험은 초기 상대론적 에너지와 운동량의 검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게 되었다. 카우프만-부헤러-노이만 실험은 바로 이러한 맥락에서 이루어진 대표적인 실험들이다.

2. 1. 전자기 질량의 등장

1896년, 앙리 베크렐은 여러 화학 원소에서 방사성 붕괴 현상을 발견했다. 곧이어 이 붕괴 과정에서 나오는 베타 방사선이 음전하를 띤 입자의 흐름이라는 사실이 밝혀졌다. 이 입자는 1897년 J. J. 톰슨이 음극선 실험을 통해 발견한 전자와 같은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발견은 1881년 J. J. 톰슨이 이론적으로 예측했던 전자기 질량 개념과 연결되었다. 톰슨은 움직이는 전하를 띤 물체의 경우, 그 물체가 가진 전자기 에너지가 질량에 기여한다는 것을 보였다.[1] 1893년 톰슨과 1897년 조지 프레더릭 찰스 설은 이 전자기 질량이 물체의 속도에 따라 변하며, 특히 물체가 가상의 매질인 광원 에테르에 대해 빛의 속도로 움직일 때 무한대가 된다고 계산했다.[2] 또한, 헨드릭 안톤 로렌츠는 1899년과 1900년에 자신의 전자 이론을 통해 이러한 질량의 속도 의존성을 이론적으로 뒷받침했다.[3] 당시 전자기 질량은 운동 방향에 평행한 성분인 "종 질량"과 수직인 성분인 "횡 질량"으로 구분되었고, 때로는 "겉보기 질량"이라고도 불렸다. 이는 변하지 않는 고전적인 뉴턴 질량, 즉 "실질 질량"과 구분하기 위해서였다.[4][5] 한편, 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막스 아브라함은 더 나아가 모든 질량이 본질적으로 전자기적 현상이며, 뉴턴 역학은 결국 전자기학 법칙의 일부가 될 것이라고 주장했다.[6]

1904년, 로렌츠는 전자의 운동 궤적 방향의 질량(종 질량)과 운동 방향에 수직인 질량(횡 질량)이 다르다는 구체적인 이론을 제시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종 질량은 m_L = \gamma^3 m이고, 횡 질량은 m_T = \gamma m이다. 여기서 \gamma는 로렌츠 인자 (1/\sqrt{1-v^2/c^2})이고, m은 전자의 정지 질량이다.[21] 특정 전자 모델에 기반했던 (횡) 전자기 질량 m_T의 개념은 이후 상대론적 질량이라는 더 일반적인 개념으로 발전했다. 상대론적 질량은 전자기 에너지를 포함한 모든 형태의 에너지를 질량으로 간주하는 순수 운동학적 개념이다. 그러나 오늘날 물리학자들은 상대론적 질량이라는 용어 대신 상대론적 에너지와 운동량 개념을 주로 사용하며, 상대론적 질량은 주로 대중 과학 서적에서 찾아볼 수 있다. 이러한 상대론적 개념들은 질량이 있는 물체는 빛의 속도에 도달할 수 없음을 예측하는데, 이는 관련된 모든 물리량이 로렌츠 인자 \gamma를 포함하기 때문이다.

:\frac{m_{T}}{m}=\frac{p}{mv}=\frac{E}{mc^{2}}=\gamma=\frac{1}{\sqrt{1-\frac{v^{2}}{c^{2}}}}

따라서 카우프만-부헤러-노이만 실험은 상대론적 에너지와 운동량 개념을 초기에 검증하려는 시도로 볼 수 있다. (이후 실험에 대한 역사적 설명에서는 당시 사용되었던 "횡 질량" 또는 "상대론적 질량" 개념이 계속 사용될 것이다.)

2. 2. 로렌츠의 전자 이론과 상대론적 질량

1896년, 앙리 베크렐은 다양한 화학 원소에서 방사성 붕괴 현상을 발견했다. 곧이어 이 붕괴 과정에서 나오는 베타 방사선이 음전하를 띤 입자라는 사실이 밝혀졌고, 이 입자는 1897년 J. J. 톰슨이 음극선 실험을 통해 발견한 전자와 동일한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 발견은 전자기 질량 개념과 관련이 깊다. 1881년 J. J. 톰슨은 움직이는 전하를 띤 물체의 경우, 전자기 에너지가 그 물체의 질량에 기여한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예측했다.[1] 톰슨(1893)과 조지 프레더릭 찰스 설(1897)은 더 나아가 이 전자기 질량이 속도에 따라 변하며, 물체가 가상의 매질인 광원 에테르에 대해 빛의 속도로 움직일 때 무한대가 된다고 계산했다.[2] 헨드릭 안톤 로렌츠 역시 1899년과 1900년에 자신의 전자 이론에서 이러한 질량의 속도 의존성을 가정했다.[3] 당시에는 전자기 질량을 운동 방향에 평행한 "종 질량"과 수직인 "횡 질량"으로 구분했으며, 이를 "겉보기 질량"이라고 부르기도 했다. 반면 변하지 않는 고전적인 뉴턴 질량은 "실질 질량"으로 불렀다.[4][5] 한편, 독일의 이론 물리학자 막스 아브라함은 모든 질량이 전자기적 현상에서 비롯되며, 뉴턴 역학전자기학의 법칙 아래에 통합될 것이라고 주장했다.[6]

1904년, 로렌츠는 전자의 질량이 운동 방향에 따라 다르다고 제안했다. 그의 이론에 따르면, 운동 방향과 나란한 종 질량은 m_L= {m}=\frac{p}{mv}=\frac{E}{mc^{2}}=\gamma=\frac{1}{\sqrt{1-\frac{v^{2}}{c^{2}}}}

따라서 부케러-카우프만-노이만 실험은 초기에 상대론적 에너지와 운동량의 검증 시도로 이해될 수 있다. (이후 실험에 대한 역사적 설명에서는 당시 사용되었던 "횡 질량" 또는 "상대론적 질량" 개념이 계속 등장할 것이다.)

3. 카우프만의 실험

발터 카우프만은 20세기 초, 빠르게 움직이는 전자(당시 베타선으로 알려짐)의 질량속도에 따라 어떻게 변하는지를 측정하기 위한 중요한 실험들을 수행했다. 그의 실험은 라듐에서 방출되는 고속의 베타선을 전기장자기장에 통과시켜 그 편향 정도를 사진 건판에 기록하는 방식으로 이루어졌다. 이를 통해 속도에 따른 전자의 전하-질량비 변화를 측정하고자 했다.

카우프만은 실험을 통해 전자의 속도가 증가할수록 전하-질량비가 감소한다는 사실을 관찰했으며, 이는 속도에 따라 질량(또는 운동량)이 증가함을 시사하는 결과였다. 이 실험 결과는 당시 막스 아브라함, 헨드릭 로런츠 등이 제시한 여러 전자기 질량 이론 및 이후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의 예측과 비교되며, 어떤 이론이 실제 현상을 더 잘 설명하는지에 대한 중요한 논쟁을 촉발했다. 카우프만의 초기 실험과 후속 연구들은 상대성 이론의 실험적 검증 역사에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한다.

3. 1. 초기 실험 (1901-1903)

1901년 카우프만 측정 결과 (1902년 수정). 속도 증가에 따른 전자의 전하-질량비 감소(즉, 운동량 또는 질량 증가)를 보여준다. 정지 상태 전자의 \scriptstyle \epsilon/m_{0}\sim1.95\times10^{7} emu/gm이다.


발터 카우프만(Walter Kaufmann)은 음극선관과 유사한 장치를 사용하여 베타선에 대한 실험을 시작했다. 이 실험에서 전자 공급원은 진공 용기 안에 넣은 라듐의 붕괴였는데, 당시 라듐에서 방출되는 이 선들은 "베크렐선"이라고 불렸다. (그림 1 참조) 기존에 알려진 음극선은 빛의 속도 c의 최대 0.3배(0.3''c'') 속도에 도달했지만, 베크렐선은 최대 0.9''c''에 달하는 훨씬 빠른 속도를 가졌다. 그러나 베타 입자들은 속도가 다양했기 때문에 방사선은 균일하지 않았다. 이를 해결하기 위해 카우프만은 전기장자기장을 서로 평행하게 정렬하여, 각 장에 의한 입자의 편향이 서로 수직이 되도록 설계했다. 사진판에 나타난 흔적은 편향 곡선을 형성했으며, 곡선 위의 각 점은 특정 속도와 질량을 가진 전자에 해당했다. 콘덴서의 전하를 반전시켜 전기장의 방향을 반대로 하면, 자기 편향 방향을 중심으로 대칭적인 두 개의 곡선을 얻을 수 있었다.[7][8]

1901년, 카우프만은 첫 분석 결과를 발표하며 실제로 전자의 전하-질량비가 속도 증가에 따라 감소함을 측정했으며, 이는 질량 또는 운동량이 속도와 함께 증가한다는 것을 실험적으로 입증했다.[9] 그는 Searle이 1897년에 발표한, 전하를 띤 물체의 속도에 따른 전자기 에너지 증가 공식을 이용하여 전자의 전자기 질량 증가를 계산했다.

:\phi(\beta)=\frac{3}{4\beta^{2}}\left[\frac{1}{\beta}\lg\frac{1-\beta}{1+\beta}+\frac{2}{1-\beta^{2}}\right],\;\beta=\frac{v}{c}

하지만 카우프만은 관찰된 질량 증가가 이 공식만으로는 설명되지 않는다고 결론지었다. 그는 측정된 전체 질량을 '기계적(실제) 질량'과 '전자기적(겉보기) 질량'으로 나누었으며, 기계적 질량이 전자기적 질량보다 훨씬 크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 과정에서 두 가지 오류가 있었다. 첫째, 막스 아브라함이 지적한 바와 같이, 카우프만은 Searle의 공식이 입자의 운동 방향(종방향)에만 적용된다는 점을 간과한 점이다. 편향 측정에는 운동 방향에 수직인 방향(횡방향)의 질량 공식이 필요했다. 아브라함은 이에 따라 속도에 의존하는 "횡 전자기 질량" 공식을 다음과 같이 도입했다.

:\phi(\beta)=\frac{3}{4\beta^{2}}\left(\frac{1+\beta^{2}}{2\beta}\lg\frac{1+\beta}{1-\beta}-1\right),

둘째, 카우프만은 편향 곡선을 도출하는 과정에서 계산 실수가 있었다. 이러한 오류들은 1902년에 그에 의해 바로잡혔다.[10]

1902년과 1903년에 걸쳐 카우프만은 개선된 실험 장치로 추가 실험을 진행했다. 그는 이 결과를 아브라함의 이론과 전자의 질량이 순전히 전자기적 기원에서 비롯된다는 가설을 뒷받침한다고 해석했다.[11][12]

한편, 헤르만 슈타르케(Hermann Starke)도 1903년에 유사한 측정을 진행했다. 다만 그는 속도가 0.3c로 제한된 음극선을 사용했는데, 그의 결과 역시 카우프만의 결과와 일치하는 것으로 해석되었다.[13]

3. 2. 경쟁 이론들 (1902-1905)

그림 3. 아브라함, 로렌츠, 부헤러의 이론에 따른 횡전자기 질량의 속도 의존성 예측


1902년, 막스 아브라함은 전자가 표면에 전하가 균등하게 분포된 강체이자 완벽한 라는 가정을 바탕으로 이론을 발표했다. 그는 "종방향 전자기 질량"과 "횡전자기 질량"이라는 개념을 도입했으며, 전자의 질량 전체가 전자기적 기원을 갖는다고 주장했다.[14][15][16][17][18]

한편, 헨드릭 로런츠(1899, 1904)는 전자의 전하가 부피 전체에 퍼져 있으며, 운동 방향으로 압축되고 횡방향으로는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하여 자신의 전자 이론을 확장했다. 로렌츠는 자신의 모델이 카우프만의 실험 데이터와도 잘 일치한다는 것을 보여주었는데, 이는 카우프만에게 놀라운 결과였다. 이 모델은 이후 앙리 푸앵카레 (1905)에 의해 더욱 발전되어 상대성 원리와 완전히 일치하게 되었다.[19][20][21][22]

1904년에는 알프레트 부헤러와 폴 랑제뱅이 유사한 이론을 개발했다. 이들의 이론은 변형된 전자가 차지하는 전체 부피는 변하지 않는다고 가정했다는 점에서 로렌츠의 이론과 차이가 있었다. 이 이론의 예측은 로렌츠의 이론보다는 아브라함의 이론에 더 가까운 것으로 나타났다.[23][24]

마지막으로, 알베르트 아인슈타인의 특수 상대성 이론 (1905)은 점과 같은 전자의 질량 변화를 예측했다. 이는 입자의 정지 좌표계와 측정이 이루어지는 실험실 좌표계 사이의 시공간 변환 속성에 따른 결과였다. 수학적으로 이 계산은 로렌츠의 이론과 동일한 속도-질량 의존성을 예측했지만, 훨씬 다른 물리적 개념에 기반하고 있었다.[25][26]

횡 전자기 질량의 증가에 대한 각 이론의 예측은 다음과 같다 (그림 3 참조).

:\begin{align}

&\text{아브라함} & \phi(\beta) &=\frac{3}{4\beta^{2}}\left(\frac{1+\beta^{2}}{2\beta}\lg\frac{1+\beta}{1-\beta}-1\right)\\

&\text{로렌츠-아인슈타인} & \phi(\beta) &=(1-\beta^{2})^{-1/2}\\

&\text{부헤러-랑제뱅} & \phi(\beta) &=(1-\beta^{2})^{-1/3}

\end{align}

3. 3. 1905년 실험과 논쟁

이론들 사이에서 어떤 것이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 카우프만은 더 정밀하게 실험을 다시 진행했다. 카우프만은 이 실험을 통해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을 결정적으로 반증했으며, 나아가 상대성 원리 역시 틀렸다고 확신했다. 그는 이제 남은 가능성은 아브라함과 부헤러의 이론뿐이라고 생각했다. 이에 로렌츠는 당혹감을 느끼며 Finis Latinis|라틴어의 끝la에 다다랐다고 표현했다.[27][28][29][30]

하지만 카우프만의 실험 결과에 대한 비판이 곧바로 제기되었다.[31][32] 카우프만이 실험 결과와 분석을 발표하자, 막스 플랑크는 이 데이터를 직접 재분석하기 시작했다. 플랑크는 1906년과 1907년에 걸쳐 고속 전자의 질량 변화에 대한 자신의 분석 결과를 발표했다. 그는 카우프만이 1905년에 발표한 9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바탕으로 각 측정 지점에서의 정확한 전자기장 설정을 다시 계산하고, 측정 결과를 경쟁 이론들의 예측과 비교했다. 플랑크는 분석을 통해 카우프만의 결과가 결정적이지 않으며, 심지어 초광속이라는 비현실적인 결과를 낳을 수도 있음을 지적했다.[33][34] 아인슈타인 역시 1907년에 카우프만의 실험 결과가 자신의 상대성 이론보다는 아브라함이나 부헤러의 이론과 더 잘 맞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 이론들의 기본적인 전제가 타당하지 않기 때문에 옳을 가능성은 낮다고 평가했다.[35]

4. 부헤러의 실험과 이후의 발전

카우프만의 초기 실험은 사용된 실험 장치의 한계로 인해 명확한 결론을 내리기 어려웠다. 특히 아돌프 베스텔마이어(1907)는 카우프만이 ''평행''한 자기장과 전기장을 사용한 점을 문제로 지적했다.[36] J. J. 톰슨이 고안하고 빌헬름 빈이 발전시킨 속도 필터 방식, 즉 ''수직'' 자기장과 전기장을 사용하는 방법을 통해 베스텔마이어는 다른 전하-질량비 값을 얻었지만, 그의 실험 역시 이론들을 명확히 구분할 만큼 정밀하지는 않았다.

이에 알프레트 부헤러(1908)는 베스텔마이어와 유사한 속도 필터를 사용하여 훨씬 정밀한 측정을 수행했다.[37][38] 부헤러는 실험 결과를 로렌츠의 공식과 아브라함의 공식에 각각 대입하여 분석했는데, 로렌츠의 공식(이는 이후 아인슈타인특수 상대성이론과 일치함이 밝혀진다)이 실험 데이터와 훨씬 잘 부합함을 발견했다. 부헤러는 이를 상대성 원리로렌츠-아인슈타인 이론의 실험적 증거로 해석했고, 로렌츠, 아인슈타인, 헤르만 민코프스키 등 당대의 주요 물리학자들은 이 결과를 환영했다.[39][40]

부헤러의 실험 이후, 그의 제자인 쿠르트 볼츠(Kurt Wolz, 1909)[41], 카를 에리히 후프카(Karl Erich Hupka, 1909)[48], 귄터 노이만(Günther Neumann, 1914)[52], 그리고 샤를-외젠 기예와 샤를 라방시(Charles-Eugène Guye and Charles Lavanchy, 1915)[53][54] 등이 더욱 개선된 장비와 방법으로 유사한 실험들을 수행했다. 이들 후속 실험들은 약간의 논쟁과 비판[42][43][44][45][46][47][49][50][51]에도 불구하고, 일관되게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의 일치를 보여주었으며 아브라함의 이론을 반증했다. 특히 노이만과 기예/라방시의 정밀한 실험은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을 결정적으로 확립하는 데 중요한 기여를 한 것으로 평가받는다.[55][56][57]

이러한 일련의 실험적 노력에 대해 로렌츠는 1915년에 다음과 같이 평가했다.[58]

:''후기 실험[..]은 횡전자기 질량에 대한 공식을 확인했으므로, 변형 가능한 전자 가설과 상대성 원리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유일한 반대가 이제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1. 부헤러의 실험 (1908)



이전 카우프만 실험의 주요 문제점은 아돌프 베스텔마이어(1907)가 지적했듯이 ''평행'' 자기장과 전기장을 사용했다는 점이다. J. J. 톰슨이 도입하고 빌헬름 빈에 의해 속도 필터로 더 발전된 ''수직'' 자기장과 전기장을 사용하는 방법을 사용하여 베스텔마이어는 최대 0.3c에 이르는 음극선에 대한 전하-질량비의 상당히 다른 값을 얻었다. 그러나 베스텔마이어는 자신의 실험이 이론들 사이에서 결정적인 결정을 내릴 만큼 정확하지는 않다고 덧붙였다.[36]

따라서 알프레트 부헤러(1908)는 베스텔마이어와 유사한 속도 필터를 사용하여 정밀한 측정을 수행했다. 그림 4와 5를 참조하면, 라듐 베타 선원은 0.25mm 간격으로 떨어져 있고 약 500 볼트로 충전된 두 개의 은도금 유리판으로 구성된 원형 콘덴서의 중심에 위치했으며, 140 가우스 균일 자기장 내에 설치되었다. 라듐은 모든 방향으로 베타선을 방출했지만, 임의의 특정 방향 α에서, 속도 필터를 빠져나가는 베타선은 전기장과 자기장이 정확히 상쇄되는 속도를 가진 베타선뿐이었다. 콘덴서를 떠난 후, 광선은 자기장에 의해 편향되었고, 콘덴서 가장자리에 평행하고 편향되지 않은 광선에 수직으로 놓인 사진 건판을 노출시켰다.[37][38]

그림 6. 부헤러의 다섯 번의 실험 데이터.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녹색)이 아브라함 공식(빨간색)보다 실험 결과와 잘 일치함을 보여준다.


그림 7. 볼츠의 13번의 실험 데이터. 부헤러의 결과와 마찬가지로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의 일치를 보여준다.


최종 분석을 위해 부헤러는 전자가 정지해 있는 것처럼 전하-질량비를 얻기 위해 로렌츠와 아브라함의 공식으로 측정값을 각각 재계산했다. 정지해 있는 전자의 경우 비율이 변하지 않으므로 데이터 점은 단일 수평선상에 있어야 한다(그림 6 참조). 그러나 데이터는 로렌츠의 공식으로 계산했을 때만 대략적으로 수평선에 가까웠고, 아브라함의 공식 결과는 크게 벗어났다.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의 일치는 부헤러에 의해 상대성 원리와 로렌츠-아인슈타인 이론의 확인으로 해석되었으며, 이 결과는 로렌츠, 아인슈타인, 헤르만 민코프스키에 의해 즉시 환영받았다.[39][40]

또한 부헤러의 장치는 1909년 그의 제자인 쿠르트 볼츠에 의해 개선되었으며, 그는 또한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의 일치를 얻었다(그림 7).[41]

많은 물리학자들이 부헤러의 결과를 받아들였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몇 가지 의문이 남아 있었다.[42][43] 예를 들어, 베스텔마이어는 부헤러의 결과의 타당성에 의문을 제기하는 논문을 발표했다. 그는 한 번의 실험만으로는 중요한 물리 법칙의 정확성을 확립할 수 없으며, 부헤러의 결과는 보상되지 않은 광선이 사진 건판에 도달하여 크게 왜곡될 수 있으며, 광범위한 데이터 프로토콜과 오차 분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했다.[44] 이 두 학자 간에 일련의 간행물에서 논쟁이 벌어졌으며, 베스텔마이어는 볼츠의 실험도 동일한 문제의 영향을 받는다고 주장했다.[45][46][47]

4. 2. 후프카, 노이만, 기예/라방시의 실험 (1909-1915)

카를 에리히 후프카(Karl Erich Hupka, 1909)는 카우프만과 부헤러와는 다르게 측정을 위해 광속의 절반(0.5c)에 달하는 속도의 음극선을 사용했다. 구리 음극에서 생성된 방사선은 고도로 진공 처리된 방전관 내부에서 음극과 양극 사이의 전기장에 의해 강하게 가속되었다. 조리개 역할을 하는 양극은 일정한 속도로 광선을 통과시켰고, 두 개의 월러스톤 와이어의 그림자 이미지를 두 번째 조리개 뒤의 인광 스크린에 만들었다. 이 두 번째 조리개 뒤에서 전류가 흐르면 광선이 휘어져 그림자 이미지가 이동했다. 후프카는 이 실험이 결정적인 결과를 보여주지는 못했다고 언급했지만, 결과는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 일치하는 경향을 보였다.[48] 이후 W. 하일(W. Heil)은 이 결과에 대한 비판과 해석을 담은 몇 편의 논문을 발표했고, 후프카는 이에 대해 답변하는 글을 썼다.[49][50][51]

그림 8. 각 이론에 대한 26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이용한 노이만의 평가


1914년, 귄터 노이만(Günther Neumann)은 부허러의 실험 장비를 사용하여 새로운 측정을 수행했다. 그는 특히 베스텔마이어(Bestelmeyer)의 비판, 그중에서도 보상되지 않은 광선에 대한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몇 가지 개선 작업을 진행했고, 데이터 기록 방식을 광범위하게 개선했다. 계산 방법은 부허러가 사용했던 방법과 동일했다(그림 6 참조). 이 실험에서도 로렌츠 공식에 해당하는 데이터는 이론에서 요구하는 대로 거의 수평선에 가깝게 나타났지만, 아브라함 공식에서 얻은 데이터는 급격하게 벗어나는 모습을 보였다(그림 8 참조). 노이만은 자신의 실험이 부허러와 후프카의 실험 결과와 일치하며, 광속의 0.4배에서 0.7배(0.4–0.7c) 범위에서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을 확실히 증명하고 아브라함 공식을 반증한다고 결론지었다. 광속의 0.7배에서 0.8배(0.7–0.8c) 범위에서는 기기적인 불확실성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 범위에서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의 편차는 의미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52]

그림 9. 각 이론에 대한 25개의 데이터 포인트를 이용한 기예와 라방시의 평가


1915년, 샤를-외젠 기예(Charles-Eugène Guye)와 샤를 라방시(Charles Lavanchy)는 광속의 0.25배에서 0.5배(0.25c–0.5c) 속도를 가진 음극선의 편향을 측정했다. 그들은 광선을 가속하기 위해 음극과 양극이 있는 튜브를 사용했다. 양극에 있는 조리개는 편향될 빔을 생성했다. 장치 끝에는 스크린을 놓아 빔이 충돌하는 지점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그들은 이후 횡전자기 질량 ''mT''과 정지 질량 ''m0''의 비율을 계산하여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 매우 잘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다(그림 9의 적색 및 청색 곡선 참조). 이는 노이만의 실험 결과를 보완하는 것이었다.[53][54]

노이만과 기예/라방시의 실험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을 결정적으로 증명한 것으로 받아들여졌다.[55][56][57] 로렌츠는 1915년에 이러한 실험적 노력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했다.[58]

:''최근의 실험들[..]은 횡전자기 질량에 대한 공식을 확인해주었다. 따라서 변형 가능한 전자 가설과 상대성 원리에 대해 제기될 수 있었던 유일한 반대가 이제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4. 3. 논쟁과 상대성 이론의 확립



1914년, 귄터 노이만은 부허러의 장비를 사용하여 새로운 측정을 수행했다. 그는 특히 베스텔마이어의 비판, 특히 보상되지 않은 광선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장비를 개선하고 데이터 기록 방식을 광범위하게 개선했다. 계산 방법은 부허러의 방법과 동일했다. 이 실험에서도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에 해당하는 데이터는 예측대로 거의 수평선을 그렸지만, 아브라함 공식에서 예측한 데이터는 실제 측정값과 크게 벗어났다(그림 8 참조). 노이만은 자신의 실험이 부허러와 홉카의 실험 결과와 일치하며, speed of light|빛의 속도eng의 0.4배에서 0.7배(0.4–0.7c) 범위에서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을 확실히 증명하고 아브라함 공식을 반증한다고 결론지었다. 빛의 속도의 0.7배에서 0.8배(0.7–0.8c) 범위에서는 기기적 불확실성이 발생했기 때문에, 이 범위에서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의 편차는 의미 있는 것으로 간주되지 않았다.[52]

1915년, 샤를-외젠 기예와 샤를 라방시는 빛의 속도의 0.25배에서 0.5배(0.25c–0.5c) 속도를 가진 음극선의 편향을 측정했다. 그들은 음극과 양극이 있는 튜브를 사용하여 광선을 가속했고, 양극의 작은 구멍을 통과한 광선이 편향되는 빔을 만들었다. 장치 끝에 놓인 스크린에 광선이 충돌하는 지점을 카메라로 촬영했다. 이후 그들은 실험 데이터를 바탕으로 횡전자기 질량 ''mT''과 정지 질량 ''m0''의 비율을 계산했고,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 잘 일치하는 결과를 얻었다(그림 9 참조). 이는 노이만의 결과를 뒷받침하는 것이었다.[53][54]

노이만과 기예/라방시의 실험은 많은 과학자들에게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을 결정적으로 증명한 것으로 여겨졌다.[55][56][57] 로렌츠는 1915년에 이러한 실험적 성과들을 요약하며 다음과 같이 언급했다.[58]

:''후기 실험[..]은 횡전자기 질량에 대한 공식을 확인했으므로, 변형 가능한 전자 가설과 상대성 원리에 대해 제기될 수 있는 유일한 반대가 이제 제거되었을 가능성이 매우 높다.''

5. 현대적 관점

잔(Zahn)과 스피스(Spees) (1938)[59], 그리고 퍼러고(Faragó)와 야노시 라요시(1954)[60] 등 후대의 연구자들은 초기 전자 편향 실험들이 실험 장치나 전자의 특성에 대한 부정확한 가정을 기반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카우프만이나 부헤러-노이만 실험처럼, 이들 초기 실험은 질량 증가 현상을 정성적으로 보여주었을 뿐, 여러 경쟁 이론 중 어느 것이 옳은지 명확히 판별하기에는 부족했다.[61][62]

이러한 전자 편향 실험 결과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칼 글리처가 아르놀트 조머펠트의 연구를 바탕으로 수소 스펙트럼 선미세 구조를 분석한 결과는 이미 1917년에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을 명확하게 뒷받침했다. 이는 미세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운동량과 에너지에 대한 상대론적 표현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며, 아브라함의 이론과는 맞지 않았다.[63][64]

충분한 정밀도를 갖춘 최초의 전자 편향 실험은 로저스(Rogers) 연구팀(1940)에 의해 수행되었으며, 이들은 개선된 장치를 통해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을 1% 이내의 오차 범위에서 실험적으로 증명했다.[65] 이 실험은 마침내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66]

그 이후, 상대론적 에너지-운동량 관계에 관한 많은 추가 실험이 수행되었으며, 전자 편향 측정 등을 포함하여 모두 특수 상대성 이론을 고도로 정확하게 확인했다. 또한 현대의 입자 가속기에서도 특수 상대성 이론의 예측이 일상적으로 확인된다.

5. 1. 상대론적 에너지-운동량 관계

그 이후, 상대론적 에너지-운동량 관계에 관한 많은 추가 실험이 수행되었으며, 전자 편향 측정 등을 포함하여 모두 특수 상대성 이론을 고도로 정확하게 확인했다. 또한 현대의 입자 가속기에서도 특수 상대성 이론의 예측이 일상적으로 확인된다.

5. 2. 로저스 등의 정밀 실험 (1940)

그림 10. 로저스 연구팀의 정전기 분광기


잔(Zahn)과 스피스(Spees) (1938)[59], 그리고 퍼러고(Faragó)와 야노시 라요시(1954)[60]는 초기 전자 편향 실험들이 실험 장치나 전자의 특성에 대한 부정확한 가정을 기반으로 했다고 지적했다. 카우프만이나 부헤러-노이만 실험처럼, 이들 초기 실험은 질량 증가 현상을 정성적으로 보여주었을 뿐, 여러 경쟁 이론 중 어느 것이 옳은지 명확히 판별하기에는 부족했다.[61][62]

이러한 전자 편향 실험 결과에 대한 논란과는 별개로, 칼 글리처가 아르놀트 조머펠트의 연구를 바탕으로 수소 스펙트럼 선미세 구조를 분석한 결과는 이미 1917년에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을 명확하게 뒷받침했다. 이는 미세 구조를 설명하기 위해 운동량과 에너지에 대한 상대론적 표현이 필수적이었기 때문이며, 아브라함의 이론과는 맞지 않았다.[63][64]

그림 11. 로저스 연구팀의 3개 데이터 포인트는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 일치한다.


충분한 정밀도를 갖춘 최초의 전자 편향 실험은 로저스(Rogers) 연구팀(1940)에 의해 수행되었다.[65] 이들은 이전 실험들의 단점을 보완한 개선된 장치를 개발했다. 라듐 붕괴 계열에서 방출되는 베타 입자는 넓은 에너지 분포를 가지는데, 카우프만이나 부헤러 등이 사용했던 평행판 축전기는 이 베타 입자들을 효과적으로 초점화하지 못했다. 로저스 연구팀은 대신 정전기 분광기(그림 10 참고)를 제작하여 라듐 붕괴 계열에서 나오는 특정 에너지의 베타 입자 선들을 분리해낼 수 있었다. 이 정전기 분광기는 진공 처리된 철 상자 안에 두 개의 원통형 전극으로 구성되었다. 베타선은 라듐 활성 물질이 코팅된 가는 백금 선에서 방출되었고, 분산된 베타선은 가이거 계수기 앞에 놓인 슬릿을 통과하도록 설계되었다.

연구팀은 이 실험에서 얻은 데이터와 기존의 자기 분광계 측정값(''Hρ'')을 결합하여 전자의 전하 대 질량 비를 계산했다. 이 결과를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과 아브라함 이론에서 예측하는 횡단 질량과 정지 질량의 비율과 비교하였다. 실험 결과로 얻어진 데이터 포인트들은 모두 로렌츠-아인슈타인 공식을 나타내는 이론 곡선과 1% 이내의 오차 범위에서 일치했다(그림 11 참고).[65] 이 실험은 마침내 경쟁하는 이론들 사이에서 명확한 결론을 내릴 수 있을 만큼 충분히 정밀하다는 평가를 받았다.[66]

참조

[1] 논문 On the Electric and Magnetic Effects produced by the Motion of Electrified Bodies https://zenodo.org/r[...]
[2] 논문 On the Steady Motion of an Electrified Ellipsoid https://zenodo.org/r[...]
[3] 논문 Über die scheinbare Masse der Ionen (On the Apparent Mass of the Ions)
[4] 서적
[5] 서적
[6] 서적
[7] 서적
[8] 서적
[9] 논문 Die magnetische und elektrische Ablenkbarkeit der Bequerelstrahlen und die scheinbare Masse der Elektronen https://de.wikisourc[...]
[10] 논문 Über die elektromagnetische Masse des Elektrons http://resolver.sub.[...]
[11] 논문 Die elektromagnetische Masse des Elektrons (The Electromagnetic Mass of the Electron)
[12] 논문 Über die "Elektromagnetische Masse" der Elektronen https://archive.org/[...]
[13] 간행물 Über die elektrische und magnetische Ablenkung schneller Kathodenstrahlen
[14] 서적
[15] 서적
[16] 간행물 Dynamik des Electrons
[17] 간행물 Prinzipien der Dynamik des Elektrons (Principles of the Dynamics of the Electron (1902))
[18] 간행물 Prinzipien der Dynamik des Elektrons https://zenodo.org/r[...]
[19] 서적
[20] 문서
[21] 논문 Electromagnetic phenomena in a system moving with any velocity smaller than that of light
[22] 논문 Sur la dynamique de l'électron (On the Dynamics of the Electron) https://zenodo.org/r[...]
[23] 문서
[24] 서적 Mathematische Einführung in die Elektronentheorie Teubner, Leipzig
[25] 서적
[26] 논문 Zur Elektrodynamik bewegter Körper http://sedici.unlp.e[...]
[27] 서적
[28] 서적
[29] 논문 Über die Konstitution des Elektrons (On the Constitution of the Electron)
[30] 논문 Über die Konstitution des Elektrons (On the Constitution of the Electron) https://zenodo.org/r[...]
[31] 서적
[32] 서적
[33] 논문 Die Kaufmannschen Messungen der Ablenkbarkeit der β-Strahlen in ihrer Bedeutung für die Dynamik der Elektronen (The Measurements of Kaufmann on the Deflectability of β-Rays in their Importance for the Dynamics of the Electrons)
[34] 간행물 Nachtrag zu der Besprechung der Kaufmannschen Ablenkungsmessungen
[35] 논문 Über das Relativitätsprinzip und die aus demselben gezogenen Folgerungen
[36] 논문 Spezifische Ladung und Geschwindigkeit der durch Röntgenstrahlen erzeugten Kathodenstrahlen https://zenodo.org/r[...]
[37] 논문 Messungen an Becquerelstrahlen. Die experimentelle Bestätigung der Lorentz-Einsteinschen Theorie. (Measurements of Becquerel rays. The Experimental Confirmation of the Lorentz-Einstein Theory)
[38] 논문 Die experimentelle Bestätigung des Relativitätsprinzips https://zenodo.org/r[...]
[39] 서적
[40] 서적
[41] 논문 Die Bestimmung von e/m0 https://zenodo.org/r[...]
[42] 서적
[43] 서적
[44] 논문 Bemerkungen zu der Abhandlung Hrn. A. H. Bucherers: Die experimentelle Bestätigung des Relativitätsprinzips https://zenodo.org/r[...]
[45] 논문 Antwort auf die Kritik des Hrn. E. Bestelmeyer bezüglich meiner experimentellen Bestätigung des Relativitätsprinzips https://zenodo.org/r[...]
[46] 논문 Erwiderung auf die Antwort des Hrn. A. H. Bucherer https://zenodo.org/r[...]
[47] 논문 Erwiderung auf die Bemerkungen des Hrn. A. Bestelmeyer https://zenodo.org/r[...]
[48] 논문 Beitrag zur Kenntnis der trägen Masse bewegter Elektronen https://zenodo.org/r[...]
[49] 논문 Diskussion der Versuche über die träge Masse bewegter Elektronen https://zenodo.org/r[...]
[50] 논문 Zur Frage der trägen Masse bewegter Elektronen https://zenodo.org/r[...]
[51] 논문 Zur Diskussion der Hupkaschen Versuche über die träge Masse bewegter Elektronen https://zenodo.org/r[...]
[52] 논문 Die träge Masse schnell bewegter Elektronen
[53] 논문 Vérification expérimentale de la formule de Lorentz–Einstein par les rayons cathodiques de grande vitesse http://gallica.bnf.f[...]
[54] 논문 Vérification expérimentale de la formule de Lorentz–Einstein par les rayons cathodiques de grande vitesse https://archive.org/[...]
[55] 서적
[56] 서적
[57] 서적
[58] 서적
[59] 논문 A Critical Analysis of the Classical Experiments on the Variation of Electron Mass
[60] 논문 Review of the experimental evidence for the law of variation of the electron mass with velocity
[61] 서적
[62] 문서
[63] 논문 Spektroskopischer Vergleich zwischen den Theorien des starren und des deformierbaren Elektrons https://zenodo.org/r[...]
[64] 서적
[65] 논문 A Determination of the Masses and Velocities of Three Radium B Beta-Particles
[66] 문서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