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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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요사는 1343년부터 1344년까지 약 11개월 동안 편찬된 요나라의 역사서이다. 토크토가 총재관으로 임명되어 편찬되었으며, 야율엄의 《실록》과 진대임의 《요사》 초고본을 주요 자료로 활용했다. 116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본기, 지, 표, 열전, 국어해로 이루어져 있다. 요나라가 비한족 정복 왕조였기에 중국 학자들은 요나라의 역사를 송나라 역사에 포함시켜야 한다고 주장했지만, 원나라 조정의 의지에 따라 요, 금, 송을 동등하게 대우하여 편찬되었다. 내용상 오류와 부정확성, 한족 중심의 역사관 서술 등의 한계가 있지만, 요나라의 정치, 경제, 사회, 문화를 연구하는 데 필수적인 자료로 평가받는다. 한국 학계에서는 요사 연구를 통해 한국 고대사 및 북방 민족과의 역사적 연관성을 밝히는 데 기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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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편찬 과정
1343년, 원나라의 토크토가 송사, 요사, 금사 편찬의 총 책임자인 총재(總裁)로 임명되면서 요사 편찬이 시작되었다.[12] 실제 편찬 작업은 렴혜산해아(廉惠山海牙), 왕기(王沂), 서병(徐昺), 진역증(陳繹曾) 네 명의 학자가 담당했다.[12]
편찬은 1343년 4월부터 1344년 3월까지 약 11개월이라는 비교적 짧은 기간 동안 이루어졌다.[12] 이 때문에 편찬 과정이 충분히 충실하기는 어려웠다는 평가도 있다.
요사 편찬에는 다음과 같은 자료들이 주로 활용되었다.[12]
- 요나라 때 야율엄(耶律儼)이 편찬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실록》(實錄).
- 금나라 때 진대임(陳大任)이 편찬했으나 출판되지 않고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요사》 초고본.
- 송나라 때 편찬된 《자치통감》.
- 송나라 때 편찬된 《거란국지》(契丹國志).
- 《위서》, 《수서》 등 이전 왕조들의 역사서(정사)에 기록된 거란 관련 내용.
3. 구성 및 내용
1344년에 편찬된 『요사』는 주로 다음과 같은 이전 자료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다.
- 요나라(916–1125) 시기 야율엄(耶律儼)의 주도로 편찬되었으나 현재는 전해지지 않는 『실록』(實錄)
- 여진족이 세운 금나라(1115-1234)의 관리 진대임(陳大任)이 편찬했으나 출판되지 못하고 소실된 『요사』 초고본
- 자치통감(1080년대), 기단국지 및 이전 왕조들의 역사서(위서, 수서 등)에 포함된 거란 관련 기록들
『요사』는 총 116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내용은 크게 다섯 부분으로 나뉜다.
- 본기(本紀): 30권. 요나라 역대 황제들의 기록을 연대순으로 담고 있다. 창건자인 태조 아보기부터 시작하여(1~2권), 서요를 세운 야율대석의 초기 활동(30권)까지 다룬다. 특히 30권은 서요 역사 연구의 중요한 자료로 평가받는다.
- 지(志): 32권. 요나라의 각종 제도와 문물에 대해 설명한다. 요나라의 행정 구역(37~41권, 지리(地理))은 5개의 주요 도(道)로 나누어 설명하며, 관직(百官)은 45~48권에서 다룬다.
- 표(表): 8권. 요나라 황실 가계, 주요 인물, 부족, 외교 관계 등을 도표 형태로 정리했다. 63권은 통치 씨족인 야율씨와 다른 씨족들의 계보, 69권은 부족(部族), 70권은 속국(屬國)에 대한 내용을 담고 있다.
- 열전(列傳): 45권. 황후, 종실, 신하 등 주요 인물들의 전기를 다룬다. 한나라 출신 재상 한연휘(74권), 후당 출신 장군 조연수(76권), 1004년~1005년 전연의 맹 체결에 기여한 왕계충(王繼忠, 81권) 등의 인물 기록이 포함되어 있다.
- 국어해(國語解): 1권. 거란어 단어를 한자로 음차하여 기록하고 그 의미를 풀이한 목록이다.[2][3][4] 이 자료는 제116권([https://zh.wikisource.org/wiki/遼史/卷116 遼史/卷116])에서 찾아볼 수 있다.
3. 1. 본기(本紀)
총 30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요나라 역대 황제들의 재위 기간 동안 일어난 주요 사건들을 연대순으로 기록했다. 태조 (야율아보기 耶律阿保機중국어)부터 마지막 황제인 천조제(天祚帝)까지, 그리고 서요(西遼)를 건국한 야율대석(야율대석 耶律大石중국어)의 초기 활동까지 다루고 있다. 각 황제의 기록은 내용에 따라 상(上), 하(下) 또는 여러 권으로 나누어 상세히 기술되어 있다.
3. 2. 지(志)
'''지(志)'''는 총 32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요나라의 제도, 문물, 풍속 등을 분야별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다. 크게 영위(營衞), 병위(兵衞), 지리(地理), 역상(曆象), 백관(百官), 예(禮), 악(樂), 의위(儀衞), 식화(食貨), 형법(刑法)의 10개 분야로 나뉘며, 각 분야는 다시 세부 항목으로 나뉘어 상세한 내용을 담고 있다.
특히 지리지(地理志)(권37~41)는 요나라의 행정 구역을 상경도, 동경도, 중경도, 남경도, 서경도의 5개 도(道)로 나누어 설명한다. 이 중 동경도(東京道)에 대한 설명(권38)에서는 동경요양부(東京遼陽府)를 "본래 조선의 땅(本朝鮮之地)"이라고 기록하여, 한국 고대사 연구에 중요한 단서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주목받는다.
3. 3. 표(表)
『요사』의 표(表)는 총 8권(권63~권70)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요나라의 황실 가계, 주요 인물, 부족, 외교 관계 등을 도표 형태로 정리하고 있다. 63권에는 통치 씨족인 야율씨의 계보와 다른 씨족, 69권에는 부족(部族), 70권에는 속국(屬國)에 대한 내용이 포함되어 있다.
3. 4. 열전(列傳)
총 45권(권71~권115)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요나라의 주요 인물들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다. 황후와 비(后妃), 종실(宗室), 일반 신하, 문학(文學), 능리(能吏), 탁행(卓行), 열녀(列女), 방기(方技), 영관(伶官) 및 환관(宦官), 간신(姦臣), 역신(逆臣) 등 다양한 부류의 인물들을 다루었다.
특히 권115 이국외기(二國外記)에는 고려(高麗)와 서하(西夏)에 대한 기록이 포함되어 있으며, 고려와의 관계를 다룬 부분은 한국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권116 국어해(國語解)에는 거란어 단어 목록이 한자 음차로 기록되어 있다.
3. 5. 국어해(國語解)
'국어해'(國語解)는 요사 총 116권 중 마지막 제116권에 해당하는 부분이다.[2][3][4] 내용은 한자로 음차된 거란어 단어들의 의미를 풀이한 목록으로 이루어져 있다. 이는 요나라의 고유 언어였던 거란어를 이해하는 데 중요한 자료로 활용된다. 해당 내용은 중문 위키문헌의 [https://zh.wikisource.org/wiki/遼史/卷116 遼史/卷116]에서 찾아볼 수 있다.4. 요사의 한계와 비판
요사는 편찬 과정에서부터 여러 문제점을 안고 있었다. 당시 원나라 조정에서는 요나라가 한족 왕조가 아니라는 이유로 독립된 정사(正史)로서의 자격이 있는지에 대한 논란이 있었다. 일부 중국 학자들은 요나라의 역사를 송나라 역사의 부록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했다. 이러한 논쟁은 한번에 하나의 왕조만이 정통성을 가질 수 있다는 전통적인 중국의 정치 이론과 여러 왕조를 포용하려는 몽골의 입장이 충돌한 결과이기도 했다.[5] 결국 원나라는 요, 금, 송을 모두 정통 왕조로 인정하는 방향으로 정책을 정했지만, 이러한 갈등 속에서 요사의 편찬은 1343년 토크토가 관련 역사 편찬 사업을 재개할 때까지 지연되었다.
본격적인 편찬 작업은 1년이라는 짧은 기간 안에 완료되었고, 교정 작업 역시 충분히 이루어지지 못했다. 이 때문에 『요사』에는 기술적인 오류나 부정확한 내용이 많고, 특히 거란어와 같은 비중국어 용어나 이름 표기에 일관성이 부족하며, 내용이 중복되는 문제점 등이 지적된다. 청나라 시대의 학자 첸다신과 자오이는 자신들의 저술에서 『요사』의 이러한 문제점들을 구체적으로 비판하기도 했다.
또한, 후대에 이루어진 수정 시도가 오히려 문제를 더 악화시킨 경우도 있다. 청나라의 건륭제는 거란족과 솔론족을 동일시하는 오류를 범하여, 『요사』에 나오는 거란 이름의 한자 표기를 솔론어 발음에 맞춰 수정하도록 지시했다.[8] "흠정요금원삼사국어해"(欽定遼金元三史國語解)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이 작업은 원문의 오류를 바로잡기는커녕, 잘못된 언어 지식에 기반하여 오히려 외국어 단어의 음역을 더욱 혼란스럽게 만들었다는 비판을 받았다.[9] 마셜 브룸홀(Marshall Broomhall)은 이러한 건륭제의 수정본이 "매우 비과학적이어서 사실상 쓸모가 없다"고 평가했으며,[10] 에밀 브레체네이더(Emil Bretschneider) 역시 건륭제가 제시한 어원의 오류를 지적했다.[11]
5. 요사의 가치와 의의
《요사》는 요나라의 역사를 기록한 유일한 정사로서 중요한 사료적 가치를 지닌다. 비록 1344년 토크토의 주도 하에 단 11개월이라는 짧은 기간 동안 편찬되어[12] 내용의 충실성 면에서는 한계가 지적되기도 하지만, 요나라 시대를 이해하는 데 있어 필수적인 자료로 평가받는다.
편찬 당시 원나라 조정 내에서는 요나라의 정통성을 둘러싼 논쟁이 있었다. 일부 한족 학자들은 요나라를 '야만' 왕조로 간주하며 송나라 역사의 부록으로 취급해야 한다고 주장했으나, 원나라는 최종적으로 요나라, 금나라, 송나라를 모두 동등한 정통 왕조로 인정하는 입장을 취했다.[5] 이러한 결정에 따라 편찬이 이루어졌지만, 짧은 편찬 기간과 최소한의 교정으로 인해 기술적 오류, 부정확성, 비중국어 용어 및 이름 표기의 불일치, 내용상의 중복 등 여러 문제점이 나타났다. 청나라의 학자 첸다신과 자오이(趙翼) 등은 이러한 문제점들을 지적하며 《요사》를 비판하기도 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요사》는 거란 제국의 독특한 부족 정치와 전통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매우 중요한 정보를 제공한다. 특히 야율엄(耶律儼)이 편찬한 《실록》이나 진대임(陳大任)의 《요사》 원본 등 요나라 자체 기록이 소실된 상황에서, 토크토가 편찬한 《요사》는 현존하는 유일한 중국식 요나라 통사(通史)라는 점에서 그 가치가 매우 크다.
요나라의 정통성에 대한 논쟁은 《요사》 편찬 이후에도 계속되었다. 양유정(楊維楨)은 출판 당시 오직 송나라만이 정통 왕조이고 요나라와 금나라는 찬탈자라고 주장했다. 그는 이 주장을 굽히지 않고 '정통 계승에 대하여' (正統辯)라는 제목의 논문을 썼다. 명나라 학자 왕주(王洙)는 요나라와 금나라를 외국에 관한 논문에 격하시킨 《송사질》(宋史質)이라는 송나라의 대체 역사를 저술했다. 그러나 왕주의 저작은 청나라 학자들로부터 의도적인 역사 왜곡이라는 비판을 받았다. 또한, 명나라 학자 소경방(邵經邦, 1491–1561)의 저서 《역사 기록 대강》(大綱 of Historical Records)에서도 요나라와 금나라는 이민족 찬탈자의 지위를 부여받았다.
결론적으로 《요사》는 편찬 과정에서의 한계와 지속적인 정통성 논쟁에도 불구하고, 요나라의 정치, 사회, 문화를 연구하는 데 있어 대체 불가능한 핵심 자료로서 중요한 의의를 지닌다.
6. 한국 학계의 요사 연구
요사(遼史)에 따르면 요나라는 조선의 옛 땅에서 유래했으며, 고조선과 같이 팔조범금(八條犯禁) 관습과 전통을 보존하고 있다고 전한다. 또한 요사 지리지에는 '(수도의 동쪽 관문인) 동경요양부는 본래 조선의 땅'이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여기서 동경요양부는 현재의 랴오양시이다.[12]
단국대학교 부설 북방문화연구소는 '한한대사전' 및 '한국한자어사전' 편찬 경험을 바탕으로 거란의 역사를 담은 '요사' 국역을 추진했다. 이는 중국의 정사(正史)인 25사(史) 가운데 '사기(史記)'와 '삼국지(三國志)'에 이어 세 번째 완역 사례로, 한국 상고사 및 고대·중세사 연구에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13]
연구소는 총 116권 규모의 '요사' 번역 작업을 2008년 11월 10일 시작했다. '요사'는 원나라 말기인 1343년 편찬에 착수하여 이듬해 완성된 역사서로, 본기(本記) 30권, 지(志) 32권, 표(表) 8권, 열전(列傳) 45권, 국어해(國語解) 1권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907년부터 1125년까지 219년간의 요나라 역사를 망라하고 있다.[13] 북방문화연구소는 번역의 필요성에 대해 "한민족의 활동 무대 중 하나인 북방지역 역사는 우리에게 매우 중요하지만, 중국 측 기록은 동북공정에서 보인 중국 입장을 대변하고 있다"고 지적하며, 비교적 객관적인 시각에서 서술된 '요사' 번역을 통해 한국 상고사 및 고대·중세사 연구, 특히 북방사 연구에 기여하고자 했다.[13]
번역 작업 결과, 2012년 12월 31일 단국대학교 북방문화연구소에서 번역본 3권을 출간했다. 발행소식 이 작업은 한국사 연구의 외연을 넓히고, 특히 중국의 동북공정 논리에 대응하여 북방 지역 역사에 대한 주체적인 연구 토대를 마련하는 데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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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나라는 고조선 옛 땅서 유래, 8조범금 전통도 지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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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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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
거란의 역사 '요사' 완역 대장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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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일보
2013-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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