콜롬비아의 국가
1. 개요
콜롬비아의 국가는 콜롬비아의 국가이다. 1887년 카르타헤나에서 초연되었으며, 라파엘 누녜스의 시에 오레스테 신디치가 곡을 붙여 만들어졌다. 1920년 법률로 공식 채택되었으며, 11개의 절과 후렴구로 구성되어 있다. 국가의 가사는 콜롬비아의 독립, 역사적 사건,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으며, 다양한 의례와 예술 작품을 통해 기념된다.
| 제목 | 콜롬비아 공화국의 국가 |
|---|---|
| 영어 제목 | National Anthem of the Republic of Colombi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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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국가 | 콜롬비아 |
|---|---|
| 작사가 | 라파엘 누녜스 |
| 작사 연도 | 1850년, 1883년 |
| 작곡가 | 오레스테 신디치 |
| 작곡 연도 | 1887년 |
| 채택일 | 1920년 10월 28일 |
| 스페인어 | Himno Nacional de la República de Colombia |
|---|---|
| 로마자 표기 | Imno Nacional de la República de Colombia |
| IPA | ˌimno nasjoˈnal de la reˌpuβlika ðe koˈlombja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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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7년 노래 -
땅 (노래)
땅은 다양한 시대에 걸쳐 여러 버전의 가사가 존재하며, 각 버전은 가사의 표현에서 차이를 보이지만 "하나님이 땅을 백성에게 주셨다"는 핵심 메시지를 공유하며, 주로 조지아 행진곡의 곡조에 맞춰 불렸고 당시 사회적 배경을 반영하여 땅의 자유와 평등을 쟁취하자는 내용을 담고 있는 노래이다. -
콜롬비아의 상징 -
프리기아 모자
프리기아 모자는 뾰족하게 굽은 형태의 모자로, 고대 이란 민족이 착용하고 헬레니즘 시대 아티스와 연관되었으며 로마 시대 여러 민족에게 확장 적용되어 자유, 공화주의, 혁명의 상징으로 사용되어 현재까지도 여러 국가의 문장이나 국기에 등장한다. -
콜롬비아의 상징 -
안데스콘도르
안데스콘도르는 남아메리카 안데스 산맥에 사는 신세계 독수리로, 썩은 고기를 먹는 가장 큰 비행 조류 중 하나이며, 서식지 파괴 등으로 개체수가 줄어 취약종으로 분류되어 보호받고 있고, 안데스 지역 문화와 신화에서 중요한 상징으로 여겨진다. -
스페인어 노래 -
과테말라의 국가
1896년 공모전을 통해 확립된 과테말라의 국가는 라파엘 알바레스 오발레의 음악과 호세 호아킨 팔마의 가사로 이루어져 있으며, 1934년 호세 마리아 보닐라 루아노에 의해 가사가 수정되어 과테말라의 평화, 번영, 국기, 자연, 케찰을 찬양한다. -
스페인어 노래 -
엘살바도르의 국가
엘살바도르의 국가는 1879년 대통령의 주도로 작사 및 작곡되었으며, 쿠데타 시기를 제외하고 1953년 의회의 승인을 받아 현재까지 사용되고 있는 스페인어 가사의 곡이다.
2. 역사
2.1. 배경
1819년 보야카 전투에서 승리한 이후, 시몬 볼리바르를 기리는 다양한 노래들이 만들어졌다. 1836년 7월 20일, 스페인 출신 프란시스코 비얄바가 작곡한 노래는 최초의 국가로 여겨진다. 이 노래의 후렴구는 다음과 같다.
1847년 영국의 작곡가이자 화가인 헨리 프라이스는 산티아고 페레스가 쓴 가사에 곡을 붙여 "한국어=국가/Canción nacional스페인어"를 만들었지만, 단순함 때문에 널리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49년 호세 카이세도 로하스는 시를 썼고, 호세 호아킨 구아린은 "한국어=7월 20일의 송시/Oda al 20 de julio스페인어"의 멜로디를 작곡했다. 이 곡은 복잡성 때문에 대중에게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1883년 네덜란드 바이올리니스트 카를로스 폰 욱켄은 1852년 리노 데 폼보가 쓴 시에 곡을 붙였다.
1881년 4월 12일 법령에 따라 국가 선정을 위한 대회가 열렸으나, 심사위원들은 연주된 찬가 중 어떤 것도 열정을 불러일으키지 못해 대회를 무효화했다.
1883년 7월 1일, 군디나마르카 주 정부는 시몬 볼리바르 탄생 100주년을 기념하여 찬가를 선정하는 대회를 열었다. 다니엘 피게로아가 작곡한 곡이 1등을, 카예타노 파하르도가 작곡한 곡이 2등을 차지했으나, 심사위원들은 수상작 모두 국가로 채택하지 않고 애국가로 분류했다.
2.2. 탄생
1887년, 극장 감독 호세 도밍고 토레스는 오레스테 신디치에게 카르타헤나 독립 기념 행사를 위한 노래를 작곡해 달라고 요청했다. 카르타헤나는 1811년 11월 11일 스페인으로부터 독립을 선언한 최초의 콜롬비아 도시였다. 토레스는 대통령 라파엘 누녜스가 카르타헤나를 기리기 위해 쓴 "애국 찬가"(Himno Patriótico)라는 시에 곡을 붙여달라고 요청했다. 이 시는 1850년 11월 11일 기념 행사 때 공개 발표되었고, 누녜스가 카르타헤나 주 정부 장관으로 재직하던 당시 신문 La Democracia에 게재되었다.
신디치는 처음에 작곡을 거부했지만, 부인의 설득으로 마음을 돌렸다. 그는 닐로, 쿤디나마르카에 있는 자신의 하시엔다 "El Prado"로 물러나 하모늄을 사용하여 곡을 썼다. E-플랫 장조 및 4박자(행진곡 템포)의 원본 악보는 현재 콜롬비아 국립 박물관에 보관되어 있다.
국가는 1887년 11월 11일 카르타헤나 독립 기념 행사에서 신디치의 제자들인 초등학생 합창단과 함께 초연되었다. 이 국가의 첫 번째 연주는 바리에다드 극장(Teatro de Variedades)에서 열렸다.
라파엘 누녜스 대통령은 이 곡에 감명받아 신디치를 초청, 1887년 12월 6일 산 카를로스 궁전에서 공식 발표하도록 했다. 국가는 25명의 목소리로 구성된 합창단이 참석하여 국가의 주요 민간, 교회 및 군사 당국 앞에서 불렸다. 이 행사 초청장에는 이 노래가 이미 "국가"로 발표되었다.
2.3. 공식 채택 및 발전
콜롬비아 국가는 빠르게 널리 알려져, 1890년에는 로마, 멕시코, 리마 등지에서 연주되었다. 1910년 7월, 컬럼비아 레코드사 스튜디오에서 안티오키아 리라/La Lira Antioqueña스페인어 음악 그룹이 콜롬비아 독립 100주년을 기념하여 최초로 축음기 녹음을 진행했다. 공식 채택 이전에도 여러 출판물에서 국가로 언급되었으며, 가사와 악보는 1911년 10월 31일에 봉인되어 2010년 7월 20일 콜롬비아 독립 200주년 기념식에서 개봉된 100주년 기념 항아리에 포함되었다.
1920년 8월 9일, 나리뇨주 대표 세르히오 부르바노가 콜롬비아 하원에 국가 채택 법안을 제출했다. 이 법안은 콜롬비아 공화국 의회 본회의에서 승인되어 1920년 10월 18일 법률 33호로 공식화되었으며, 마르코 피델 수아레스 대통령이 비준했다.
페루와의 국경 분쟁 (1932-1934) 동안, 콜롬비아 군인들은 전선에 나갈 때 "조국을 위해 죽는 것은 죽는 것이 아니라 사는 것"이라는 후렴구를 불렀다. 이 구절은 쿠바 국가의 가사와 유사하며, 1930년대 초등학교에서 학생들에게 가르쳐졌고 1960년대에도 여전히 가르쳐졌다.
시간이 지나면서 국가의 다양한 버전이 나타났고, 1946년 콜롬비아 교육부는 기준 통일을 위해 전문가 위원회를 임명했다. 위원회 조사 결과, 정부는 1946년 7월 4일 행정 법령 1963호를 발표하여 호세 로소 콘트레라스가 편곡한 버전을 공식 악보 및 교향악단용 편곡으로 채택했다. 벨리사리오 베탄쿠르 정부는 산안드레스, 프로비덴시아 및 산타 카탈리나 제도 주민들에게 영어로, 원주민들에게는 자신의 언어로 국가를 부르는 것을 허용했다.
1995년 7월 17일 법률 198호는 국가 상징에 관한 법률로, 매일 오전 6시와 오후 6시에 전국의 모든 라디오 및 콜롬비아의 텔레비전 방송국에서 국가를 방송하도록 의무화했다.
2.4. 개정 시도
1997년, 국가 가사의 폭력성, 종교 차별 및 계급 투쟁 조장을 이유로 위헌 소송이 제기되었으나, 헌법재판소는 합헌 결정을 내렸다. 헌법재판소는 국가는 역사적 인물과 사건을 기리는 목적의 시적-음악적 작품이며, 그 가사는 철학적, 역사적, 애국적인 의미를 넘어가지 않고 문화 유산의 일부로 간주되어 보호받아야 한다고 판시했다.
2008년에는 국가를 들을 때 오른손을 가슴에 대는 제스처를 의무화하는 법안이 알바로 우리베 전 대통령의 제스처에서 영감을 받아 제안되었다.
2009년에는 프란시스코 데 파울라 산탄데르 장군을 기리는 내용으로 가사를 수정하려는 시도가 있었다.
2016년에는 평화 회담을 기념하기 위해 새로운 절을 추가하는 것이 제안되었다.
3. 가사
콜롬비아 국가는 알렉산드린 합창과 {{llang/7음절스페인어} {{llang/8행 연스페인어}로 구성되어 있다. 가사는 콜롬비아와 라틴 아메리카 독립의 역사적 사건과 철학적 성찰을 담고 있다.
| 한국어 가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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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 한국어 가사
오 불멸의 영광이여!(¡Oh gloria inmarcesible!)
오 불멸의 환희여!(¡Oh júbilo inmortal!)
고통의 굴레 속에서(¡En surcos de dolores)
행복은 지금 싹트고 있네.(el bien germina ya!)
1절
공포의 밤은 이제 끝났네,
고귀한 자유가
그 불멸의 광채의
오로라를 발하네.
사슬 속에서 고통받은
모든 사람들은
십자가에서 돌아가신
그분의 말씀을 깨달았네.
2절
"독립이다!" 라고 외쳤네.
아메리카의 세계가,
콜럼버스의 땅이,
영웅들의 피로 적셔졌다네
그러나 이 위대한 원칙,
"왕은 주권자가 아니다"가,
울려퍼졌고, 고통받는 사람들은,
그들의 열정을 축복했다네.
3절
오리노코 강의 바닥은
약탈물로 가득 쌓여 있다네,
피와 눈물이 마치 강이 되어
흐르는 것처럼 보인다네.
바르불라에서는,
영혼도 눈도 모르고,
공포나 고통을 느끼는 것이
감탄할 만한 일이라네.
4절
카리브 해의 연안에서,
굶주린 사람들이 싸운다네.
공포를 선호하고
건강을 해치기 위해.
오, 카르타헤나에서,
고난은 무거운 것이라네,
그리고 죽음은 흔적을 남긴다네
그녀의 미덕을 경멸하며.
5절
보야카 주 평원에서,
영광의 천재가,
모든 나뭇가지마다 영웅이 되어
지지 않고 왕이 되었다네.
갑옷이 없는 전사가
전투에서 승리했고,
그들의 용맹한 숨결은
그들의 방패가 되었다네
6절
볼리바르가 안데스 산맥을 건넜다,
두 개의 대양에 적셔진.
불꽃이 튀는 듯한 검은
후닌에서 빛났다네.
불굴의 켄타우로스는
평원으로 내려갔고
이 대서사시가 끝날 것만 같은
예감이 들었다네.
7절
승리의 나팔이
아야쿠초에서 천둥같이 울려퍼졌다네,
그리고 모든 승리 속에서 자라나는 듯 했다네
그 장엄한 소리가.
그리고 그 장대한 힘에서
자유란 제일 먼저 느껴지는 것이었네,
아메리카의 하늘에
덮개를 이루는.
8절
고통 속에서, 성모의,
머리카락이 다 빠졌다네.
그리고 그녀의 사랑을 배신당해
키프로스에서 목 매어 돌아가셨다네.
차가운 묘비로 덮힌
그녀의 희망은 후회했지만
하지만 영광스러운 긍지는
그녀의 하얀 피부를 거룩이 했다네.
9절
우리의 조국이 탄생했으니
빛나는 테르모필레,
외눈박이의 별자리가
밤을 밝게 밝혔다네.
꽃은 떨면서도,
언젠가 바람이 멎길 바라며
월계수 나무 아래에서
안전을 찾고 있었다네
10절
하지만 완전한 영광은 아니라네.
전쟁에서 승리하는 것만은.
전투에서 싸우는 그 팔은
진리로 힘을 얻는다네.
오직 독립 하나만으로는
그 위대한 외침은 사그라들지 않는다네.
태양이 모두에게 빛나고 있는 한,
정의가 바로 자유라네.
11절
인간의 권리에 대한
나리뇨의 설교가,
투쟁의 영혼으로
예언적으로 가르쳤다네.
산 마테오에서 리카우르테,
원자들 속에서 날아다니며,
"목숨 이전에 의무"라고
불꽃을 튀기며 썼다네
후렴
오, 불멸의 영광이여!
오, 불멸의 기쁨이여!
고통의 구렁텅이 속에서
선한 것은 싹을 틔운다
1절
끔찍한 밤은 이제 끝을 고하고
숭고한 자유가 온 세상에.
새벽의 빛 속에서.
모든 인류가
쇠사슬에 묶여 신음하는 자가
구원을 찾으리라
십자가에서 죽은 자의 말을
2절
독립의 높은 소리가 울려 퍼진다
이 아메리카의 세계에.
영웅의 피로 물든
이 콜럼버스의 땅이.
우리의 목표는:
"왕은 주권자가 아니다"라는 것
고통받는 모든 사람들이 그 목표에
열정을 느끼고 축복할 것이다.
4. 의례
콜롬비아 국가를 부르고 청취하는 프로토콜 규칙은 1991년 8월 15일 법령 1967의 10조와 11조에 규정되어 있다. 국가는 애국적 성격을 띠는 공식 행사, 콜롬비아 국기를 게양하고 강하할 때, 성체를 기릴 때, 교육 행사 및 스포츠 경기에 연주할 수 있다. 또한 일반 대중이 음악 반주와 함께 또는 없이 부르는 것도 허용된다.
국가를 청취할 때 참석자는 하던 일을 멈추고 기립해야 하며, 남자는 머리를 숙여야 한다. 모든 사람은 팔을 풀고 존경과 경의의 자세를 취해야 한다. 기수, 운전자 및 차량의 승객은 내려서 이에 따라 행동해야 한다. 국가는 결코 박수를 받지 않는다.
1942년 1월 21일 법령 91에 따라, 캠퍼스에서 열리는 우호 국가를 기리는 특별 행사를 제외하고는, 콜롬비아의 교육 기관에서는 콜롬비아 애국가만 부를 수 있다. 1942년 7월 16일 법령 1722에 따라 모든 학교는 매월 첫 번째 월요일에 국가의 화음에 맞춰 국기를 게양하고 전체 구성원이 국가를 부르는 짧지만 엄숙한 행사로 업무를 시작해야 한다. 외교부의 프로토콜 매뉴얼에 따르면, 신임 대사의 신임장 제정 시, 국가 연주는 제37 보병 대통령 경비대대의 악대에게 할당된다.
국가는 후렴-절-후렴 순으로 연주되어야 한다. 비록 첫 번째 절이 보통 후렴 사이에 불리지만, 열한 개의 절 중 어느 것이든 사용될 수 있다. 이것이 공공, 정치 및 기타 중요 행사에서 관례적으로 연주되는 방식이다.
5. 다양한 버전 및 해석
오레스테 신디치가 출판한 국가의 첫 번째 판에는 노래와 피아노 연주를 위한 악보가 포함되었다. 1946년 호세 로소 콘트레라스가 출판한 교향악단 및 군악대 악보가 공식화되었다. 로소는 소프라노, 알토, 테너, 베이스 음성을 위한 아카펠라 혼성 합창단을 위한 버전도 출판했다.
국가는 바예나토 전설 축제에서 호르헤 셀레돈, 라파엘 오로스코, 실베스트레 당공드 등이 아코디언과 바예나토 리듬으로 연주했다. 후아네스가 멤버였던 그룹 에키모시스는 1995년 라디오악티바를 위해 록 리듬의 국가 버전을 만들었는데, 이는 여러 매체에서 논란을 일으켰다. 애니메이션 시리즈 다음 프로그램/El siguiente programa스페인어 ("다음 프로그램")은 시즌 2의 에피소드 4에서 "부패의 국가"로 알려진 "치브촘비아 국가"를 패러디했다.
2009년 6월 바예 델 카우카 문화 사무국은 콜롬비아 태평양의 원주민 리듬을 사용, 라울 로세로의 음악 감독하에 마림바로 연주된 국가 버전을 발표했다.
2010년 7월 콜롬비아 독립 200주년 기념 전국 콘서트에서 다양한 언어와 해석 스타일로 국가의 여러 버전이 연주되었다. 올란도 "엘 촐로" 발데라마/Cholo Valderrama스페인어의 목소리와 국립 교향악단의 야네라 하프 버전으로 타메에서 연주되었고, 레티시아시에서 샤키라가 아카펠라로 불렀으며, 와유어, 초코어, 산 안드레스-프로비덴시아 크리올어 등으로 연주되었다. 샤키라는 2012년 4월 14일 카르타헤나 데 인디아스 컨벤션 센터에서 열린 제6차 미주 정상회담 개막식에서 다시 한번 아카펠라로 국가를 불렀다.
6. 예술적 표현
콜롬비아 국가는 다양한 예술적 표현을 통해 언급되어 왔다. 1944년 6월 칼리의 신문 La Pluma에는 교육자 에반젤리스타 킨타나가 쓴 La escuela pública da a Colombia su Himno Nacional스페인어 ("공립 학교는 콜롬비아에 국가를 부여한다")라는 기사에 국가를 기리는 두 편의 시가 게재되었다.
보야카 다리에 세워진 개선문에는 국가의 가사가 새겨져 있다. 이 아치는 1954년 교사 루이스 알베르토 아쿠냐가 건설했으며, 보야카 전투가 벌어진 장소의 하단 부분에 국가의 완전한 악보를 담고 있다.
이바게 역사 지구에 위치한 톨리마 음악원의 알베르토 카스티야 음악당 정면에는 국가의 악보가 장식되어 있다. 이 건물은 1932년에서 1934년 사이에 엘리 모레노 오테로에 의해 건설되었으며, 1996년 4월 24일 법령 745호에 의해 Bien de Interés Cultural (Colombia)스페인어 (문화 유산)로 지정되었다.
1988년에는 국가의 멜로디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국립 우편 행정처에서 국가 기념 우표를 발행했다.
콜롬비아 국가에 대한 최초의 언급 중 하나는 1937년 4월 1일 아세베도 형제가 제작한 영화 Los primeros ensayos del cine parlante nacional스페인어("국가 유성 영화의 첫 번째 리허설")에서 나타났는데, 여기서 호세 로소 콘트레라스가 지휘하는 국립 밴드가 1946년에 공식화된 교향악 편곡으로 기악 연주를 한다. Antonia Santos(1944)와 같은 일부 초기 영화의 초연은 국가의 라이브 공연과 함께 진행되었다.
2006년에는 영화 엘 콜롬비안 드림에 사용된 노래 "italic=no/Aquí manda el patrón스페인어"("여기 주인이 명령한다")이 국가의 음악을 기반으로 하여 논란이 일었다.
2009년 10월 영화 개발 기금의 경쟁에서 문화부에서 선정된 라파엘 엔리케 갈란이 제작한 단편 영화의 제목은 국가의 첫 번째 구절을 암시하는 ¡Oh gloria inmarcesible!였다. 이 작품은 단편 영화 제작 부문에서 경쟁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