콩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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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콩타이지는 몽골 제국과 그 후계 국가에서 사용된 칭호로, 특히 군주 선출과 관련된 역사적 맥락을 지닌다. 몽골 제국은 쿠릴타이를 통해 카간을 선출하는 선거군주제 국가였으며, 쿠빌라이 카안은 황태자 책봉을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테무르 욀제이튀 카안은 쿠릴타이를 통해 카간으로 즉위했다.

콩타이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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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원

'콩타이지'는 중화제국에서 황태자를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다. 중국에 번역, 소개될 때는 원래의 명칭인 황태자가 아닌 혼태길 또는 홍태길로 번역되었는데, 이유는 알려진 것이 없다.

3. 역사

중화제국에서 황태자를 의미하는 황태자에서 유래했다. 하지만 몽골 제국에는 황태자가 제대로 존재한 적이 없었다.

중국에 번역, 소개될 때는 원래의 명칭인 황태자가 아닌 혼태길 또는 홍태길로 번역되었는데, 이유는 알려진 것이 없다.

3.1. 몽골 제국

몽골 제국은 기본적으로 쿠릴타이에 의해 카간이 선출되는 선거군주제 국가였다. 쿠빌라이 카안은 이 전통을 깨고 차남 친킴을 황태자로 봉하려 했으나 1286년 친킴이 쿠빌라이보다 먼저 죽으면서 무위로 돌아갔다. 1293년 친킴의 삼남 테뮈르 욀제이튀 카안이 쿠빌라이 카안의 후계자로 즉위하기는 했으나 황태자로서가 아니라 쿠릴타이의 선출을 받은 것이었다.

3.2. 북원

이후 북원의 알탄 칸이 튀메드 투먼에 쿵타이지 작위를 설치하고 부왕(assitant khan) 같은 것으로 삼았다.

1630년대에 달라이 라마 5세가 중가르 칸들에게 "바가투르 콩타이지"라는 칭호를 주었다. 갈단체렌의 아들 체왕도르지 남질은 "콩타이지"를 칭호로 칭했다. 중가르가 강성해지면서 콩타이지 칭호의 격도 상승했다. 18세기 중반이 되면 오이라트부 사이에서는 콩타이지가 칸(왕)보다 격이 높아지는데, 청 제국이 몽골 부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부족장들에게 칸 작위를 남발했기 때문이다.

3.3. 중가르

1630년대에 달라이 라마 5세는 중가르 칸들에게 "바가투르 콩타이지"라는 칭호를 주었다. 갈단체렌의 아들 체왕도르지 남질은 "콩타이지"를 칭호로 사용했다. 중가르가 강성해지면서 콩타이지 칭호의 격도 상승했다. 18세기 중반이 되면 오이라트부 사이에서는 콩타이지가 칸(왕)보다 격이 높아졌는데, 청 제국이 몽골 부족들을 포섭하기 위해 부족장들에게 칸 작위를 남발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