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카간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카간은 고대 튀르크 및 몽골 제국에서 사용된 군주 칭호로, 황제 또는 최고 통치자를 의미한다. 어원은 불분명하나, 튀르크어, 몽골어, 예니세이어족 등 다양한 기원설이 존재하며, 흉노, 유연, 선비족 등 여러 민족과 관련된다. 카간 칭호는 유연의 구두벌가한이 처음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으며, 몽골 제국 시대에는 칭기즈 칸과 그의 직계 후손에게만 사용되었다. 돌궐, 하자르, 오스만 제국, 당나라 등 여러 국가에서도 사용되었으며, 현대 몽골어에서는 왕이나 황제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2. 어원

카간이라는 칭호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과 학설이 존재한다. 중국의 『통전(通典)』 「변방전(邊防典)」에는 유연의 구두벌가한(丘豆伐可汗)이 스스로 칭하면서 카간의 칭호가 시작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37] 그러나 이보다 앞선 시기에 카간 칭호가 사용되었음을 시사하는 기록들도 있다.


  • 자치통감(資治通鑑)』 권77에는 유연 이전의 인물로 '카간 모(毛)'와 '카간 추인(推寅)', '카간 인(鄰)' 등이 언급된다.
  • 송서(宋書)』 「열전」 토욕혼(吐谷渾) 조에는 '처가한(處可寒)'이라는 칭호가 등장하는데, 이는 당시 송나라 말로 '너 관가(官家)'라는 의미였다고 한다.
  • 진서(晉書)』 「열전」 사이전(四夷傳)에는 토욕혼의 수락간(樹洛干)이 '무인 카간(戊寅可汗)'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있다.
  • 북사(北史)』 「열전」에는 토욕혼의 과려(夸呂)가 처음으로 가한을 자칭했다는 기록과 함께, 그 이전에도 가한이라는 호칭이 사용된 듯한 대화가 실려 있다.
  • 『진서』 재기 25에는 서진(西秦)의 건국자인 걸복국인이 '걸복가한탁탁막하(乞伏可汗託鐸莫何)'라는 칭호를 사용했다는 기록도 있다.


이러한 기록들에 대해 일본 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는 후대에 추증된 칭호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통전』의 기록을 신뢰했지만,[37] 우치다 긴푸(内田吟風) 등은 구두벌가한 이전부터 카간 칭호가 존재했다고 보았다.[38]

443년 북위(北魏) 태무제가 선비족 탁발부(拓跋部)의 옛 땅인 가선동(嘎仙洞, 현재 내몽골 자치구 후룬베이얼 시 오로첸 자치기 대흥안령 산맥 내 위치)에 조상을 기리는 한문 축문을 새기게 했는데, 1980년 발견된 이 축문에는 "황조(皇祖) 선가한(先可寒)을 모시고 황비(皇妣) 선가돈(先可敦)을 모신다"는 내용이 있어, 북위가 중국식 황제 칭호를 채택하기 전에 군주 칭호로 '가한(可寒)'과 '가돈(可敦)'을 사용했음을 보여주는 증거로 여겨지기도 한다.[39]

카간이라는 용어의 정확한 어원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으며, 유연어에서 차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된다.[2] 여러 언어학적 가설이 제시되었다.

  • 흉노어 기원설: 캐나다의 중국학자 에드윈 G. 풀리블랭크는 흉노의 칭호인 護于|후위중국어 (고대 중국어: *hʷaʔ-hʷaʰ)가 튀르크어족의 ''qaɣan'' ~ ''xaɣan''의 기원일 수 있다고 처음 제안했다.[3]
  • 예니세이어족 기원설: 보빈은 '카간(qaγan)'이 "황제" 또는 "최고 통치자"를 의미하며, 예니세이어족의 ''*qεʔ ~ qaʔ''("크다, 위대하다")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 또한 '칸(qan)' 자체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통치자"를 의미하는 예니세이어 단어 ''*qʌ:j'' 또는 ''*χʌ:j''와 관련 있을 가능성을 제시하며, ''qaγan''과 ''qan'' 모두 흉노와 예니세이어에서 기원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주장했다.[3]
  • 튀르크어족몽골어족 기원설: 람스테트, 시라토리, 풀리블랭크, 시노어, 되르퍼 등 여러 학자들이 튀르크어족 또는 몽골어족(혹은 파라-몽골어족) 기원을 주장했다. 특히 『송서』 기록을 근거로 선비족이 처음 사용했을 것으로 본다.[4] 시노어는 ''qaγan''이 ''qan''의 강조형(튀르크어에서 '검은색'을 뜻하는 ''qara''의 강조형 ''qap-qara''와 유사)이라고 보았으나,[5] 시라토리는 튀르크어 기원을 부정하고 ''qan''과 여성형인 ''qatun'' 모두 몽골어에서 유래했다고 주장했다.[5][6]
  • 이란어 기원설: 디보(Dybo, 2007)는 벤베니스트(Benveniste, 1966)의 견해를 따라 중세 이란어 *''hva-kama-''('자율 통치자, 황제')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안했다. 사벨리예프와 정(Saveliev & Jeong, 2020)은 카간과 그 여성형인 카툰(Khatun) 모두 동이란어에서 유래했을 수 있으며, 특히 초기 사카어 *''hvatuñ''이나 소그드어 단어 ''xwt'w''('통치자', < *''hva-tāvya-'') 및 ''xwt'yn''('통치자의 아내', < *''hva-tāvyani'')과 관련 있을 수 있다고 보았다.[7]


카간의 의미에 대해서는 『위서』 열전에서 구두벌가한의 '가한'이 위나라 말로 황제(皇帝)를 뜻한다고 설명한다. 또한 『북사』, 『구당서』, 『신당서』 등의 돌궐전에서는 카간이 옛 흉노선우(單于)와 같고, 그 아내인 가하돈(可賀敦) 또는 가돈(可敦)은 옛 알씨(閼氏)와 같다고 기록하고 있다.[36]

고대 튀르크어(돌궐 문자)로 새겨진 돌궐 비문, 회흘 비문, 예니세이 비문 등에는 카간이 ------[34] (Q.G.N)으로 표기되어 있어, 한자로 기록된 '가한'이 실제로는 '카간(qaġan/qaγan)'으로 발음되었음을 알 수 있다. 7세기 동로마 제국의 역사가 테오필락토스 시모카타 역시 아바르 군주의 칭호를 'Gagan' 또는 'Khaghan'으로 기록했다.

3. 의미

몽골 제국 카간 15명 중 8명(원나라 시대 그림)


중국 사서에서 '카간' 칭호가 처음 언급된 것은 『진서(晉書)』이다. 여기에는 "네 부락이 그에 복종하여 주인으로 받들며 걸복가한탁탁막하(乞伏可汗託鐸莫何)라 하였다"[43]는 기록이 있다. 『위서(魏書)』에서는 유연의 구두벌가한(丘豆伐可汗)에 대해 설명하며, "'구두벌(丘豆伐)'은 위(魏)의 말로 '통솔하고 이끌며 열어 젖히다(駕馭開張)'는 뜻이며, 가한(可汗)은 위의 말로 '황제'라는 뜻이다"[44]라고 하여, 북위(北魏)에서 카간을 중국의 '황제'와 동격으로 이해했음을 보여준다.

또한 『북사(北史)』,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에서는 돌궐의 시조 토문(土門)이 스스로 '이리가한(伊利可汗)'이라 칭한 것을 언급하며, "카간이란 옛날의 선우(單于)이며, 아내를 가하돈(可賀敦) 또는 가돈(可敦)이라고 하는 것은 옛날의 알지(閼氏)이다"[45][46][47]라고 설명하여, 카간을 흉노의 군주 칭호인 선우와 같은 의미로 보았다.

중국의 『통전(通典)』은 카간 칭호가 유연의 구두벌가한 때부터 시작되었다고 설명하지만[36], 『자치통감(資治通鑑)』, 『송서(宋書)』, 『진서(晉書)』, 『북사(北史)』 등 다른 기록에서는 그 이전 시대 인물들에게도 카간(또는 가한, 可寒) 칭호가 사용된 사례가 나타난다. 예를 들어 『송서』에는 토욕혼의 군주에게 '처가한(處可寒)'이라는 칭호가 사용되었는데, 이는 '너 관가(官家)'라는 의미라고 설명되어 있다.[36] 『진서』에는 수락간(樹洛干)이 '무인 카간(戊寅可汗)'이라 불렸다는 기록이 있으며[36], 『북사』에는 토욕혼의 과려(夸呂)가 처음으로 '가한'을 자칭했다는 기록도 있다.[36] 이러한 기록들에 대해 일본 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는 후대에 추증된 칭호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통전』의 기록을 신뢰했지만, 우치다 긴푸(内田吟風) 등은 카간 칭호가 구두벌가한 이전부터 존재했을 것으로 보았다.[36] 1980년에 발견된 북위 선비족 탁발부(拓跋部)의 옛 땅 알선동(嘎仙洞) 석벽 축문(태평진군 4년, 443년)에는 「황조(皇祖) 선가한(先可寒)을 모시고 황비(皇妣) 선가돈(先可敦)을 모신다」는 구절이 있어, 북위가 중국식 황제 칭호를 채택하기 전에 '가한(可寒)'과 '가돈(可敦)'이라는 군주호를 사용했음을 시사한다.[36]

몽골 울루스에서는 『몽골비사』에서 '카간(Qa'an)'과 '칸(Khan)'을 명확히 구분했다. '카간'은 칭기즈 칸과 그의 직계 후계자에게만 사용되는 최고의 칭호였으며, 다른 통치자들은 '칸'으로 불렸다. '카간' 또는 '카안'은 몽골어로 "위대한/최고의 통치자", 즉 "황제"나 "군주"를 의미한다. 때로는 "예케 카간(Yeke Qa'an)", 즉 "대황제"라는 표현도 사용되었다. 우구데이는 칭기즈 칸의 뒤를 이어 즉위하면서 '카안'이라는 칭호를 받았다.[48]

우구데이 사후 '카안' 칭호는 점차 일반명사화되어 귀위크 칸과 뭉케에게도 사용되었으며, 울제이투 카안 시대에는 여러 '칸'들을 거느리는 군주를 가리키는 칭호로 자리 잡았다.[48] 그러나 몽골 제국이 분열되고 원나라가 멸망한 이후 카안과 칸의 구분은 점차 희미해져 16세기 이후에는 거의 사라졌다.[49] 원나라 황제들은 중국 황제 칭호와 함께 '카간' 칭호를 사용했으며[16], 서쪽의 차가타이 칸국, 킵차크 칸국, 일 칸국 등 다른 몽골 칸국들의 명목상 종주로 여겨졌다.[18] 1368년 원나라가 붕괴된 후에도 북원의 군주들이 이 칭호를 계속 사용했다.[16] 다얀 칸(1464–1517/1543?)이 일시적으로 카간의 권위를 회복하기도 했으나, 그의 사후 몽골은 다시 분열되었다. 마지막 카간으로 알려진 차하르의 린단 칸은 1634년 후금과의 전투에서 사망했다. 현대 몽골어에서는 '카안(хаан)'과 '칸(хан)'이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외국어에서는 종종 구분 없이 사용된다. 이 칭호는 왕이나 황제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도 사용된다.

'카간'의 어원은 명확하지 않으며 여러 학설이 존재한다. 유연어에서 차용되었을 가능성이 제기되며[2], 캐나다의 중국학자 에드윈 G. 풀리블랭크는 흉노의 칭호 護于중국어 (고대 중국어: *''hʷaʔ-hʷaʰ'')가 튀르크어족의 ''qaɣan'' ~ ''xaɣan''의 기원일 수 있다고 주장했다.[3] 알렉산더 보빈은 '카간(qaγan)'이 "황제" 또는 "최고 통치자"를 의미하며, 여러 언어, 특히 튀르크어와 몽골어에서 차용되었다고 보았다.[3] 람스테트, 시라토리, 풀리블랭크, 시노어, 되르퍼 등 여러 학자들은 튀르크어족 또는 몽골어족 기원설을 제시했다.[4] 시노어는 '카간(qaγan)'이 '칸(qan)'의 강조형이라고 보았고[5], 시라토리는 튀르크어 기원설을 부정하며 몽골어 기원을 주장했다.[6] 보빈은 '카간(*qa-qan)'이 알타이어족 기원이 아니며, 예니세이어족의 '크다, 위대하다'는 의미의 단어(*qεʔ ~ qaʔ)와 관련이 있을 수 있다고 주장했다. 또한 '칸(qan)' 자체의 기원은 불분명하지만, 예니세이어족의 '통치자'를 의미하는 단어(*qʌ:j 또는 *χʌ:j)와 관련 있을 가능성을 제기하며, 궁극적으로 흉노와 예니세이어족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이 높다고 보았다.[3] 한편, 디보(2007)와 사벨리예프 및 정(2020) 등은 이란어 기원설을 주장하며, 중세 이란어 *''hva-kama-'' (자율 통치자, 황제)나 초기 사카어 *''hvatuñ'' (소그드어 ''xwt'w'' '통치자', ''xwt'yn'' '통치자의 아내'와 관련)에서 유래했을 가능성을 제시했다.[7]

'카간' 칭호는 돌궐의 지배 씨족인 아시나와 그 후계 왕조인 하자르 등에서도 사용되었다. 하위 통치자들은 '칸'이라는 낮은 칭호를 사용했다. 오스만 제국의 술탄들은 공식 칭호 중 하나로 튀르크어 형태인 '하칸(Hakan)'을 사용했으며, 이는 '두 땅(대륙)과 두 바다의 하칸(Hakan ül-Berreyn vel-Bahreyn)'이라는 표현과 함께 사용되어 제국의 광대함과 역사적 정통성을 나타냈다.

이란의 사파비 왕조카자르 왕조의 샤들도 '카간'을 칭호로 사용했다. 예를 들어, 아가 모함마드 칸 카자르, 파트 알리 샤 등 카자르 왕조의 샤들이 이 칭호를 사용했으며, 샤 이스마일 등 사파비 왕조의 샤들은 '솔로몬의 영광을 가진 카간(Kagan-i Suleyman shan)'이라는 별칭으로 불리기도 했다.

4. 역사

카간(Khagan)은 유라시아 유목민족 사회에서 최고 통치자를 지칭하는 칭호로 널리 사용되었다. 이 칭호의 정확한 기원에 대해서는 선비족 계통 부족에서 시작되었다는 설[1][8]과 유연에서 처음 공식적으로 사용했다는 설[9] 등 다양한 견해가 존재한다. 중국의 여러 역사서에는 '가한(可汗|커한중국어)', '가한(可寒|커한중국어)' 등의 형태로 기록되어 있다.

카간 칭호는 유연[9] 이후 돌궐, 아바르, 위구르 등 여러 유목 제국에서 최고 군주의 칭호로 계승되었다. 특히 몽골 제국 시대에는 칭기즈 칸과 그의 직계 후손인 대칸에게만 사용되어 '(Khan)'보다 상위의 칭호로 구분되기도 했다. ''몽골비사''는 이러한 구분을 명확히 보여준다. 몽골 제국 분열 이후에도 원나라 황제들은 '이크 카간(대칸)' 칭호를 사용했으며[16], 명목상 다른 칸국들의 종주로 여겨지기도 했다.[18]

이 칭호는 유목 제국 외에도 오스만 제국의 술탄, 초기 루스의 군주, 이란사파비 왕조카자르 왕조 샤 등 다른 지역과 시대의 군주들도 사용했으며, 당나라당 태종은 주변 민족으로부터 천가한(天可汗)이라는 존칭을 받기도 했다.[24]

카간 칭호의 구체적인 기원 논쟁과 각 국가 및 민족별 사용 사례는 하위 문단에서 상세히 다룬다.

4. 1. 카간 칭호를 사용한 국가 및 민족

카간 칭호의 기원에 대해서는 여러 기록과 학설이 존재한다. 중국의 역사서 『진서(晉書)』에는 선비족의 일파인 걸복부가 그들의 지도자를 '걸복가한탁탁막하(乞伏可汗託鐸莫何)'라 칭했다는 기록이 있어[43], 중국 사서 중에서는 비교적 이른 시기에 '가한' 칭호가 언급된다. 『위서(魏書)』는 유연의 구두벌가한(丘豆伐可汗)에 대해 설명하며 '가한(可汗)'은 당시 북위(北魏)의 말로 '황제'를 의미한다고 하여[44], 북위에서 카간을 중국식 황제와 동격으로 인식했음을 보여준다. 『북사(北史)』, 『구당서(舊唐書)』, 『신당서(新唐書)』 등에서는 돌궐의 카간을 과거 흉노선우와 같은 존재로 설명하고 있다.[45][46][47]

중국의 『통전(通典)』은 유연의 구두벌가한 때부터 카간 칭호가 시작되었다고 기록했지만[43], 『자치통감(資治通鑑)』, 『송서(宋書)』, 『진서(晉書)』 등 다른 사서에는 구두벌가한 이전에도 '가한' 또는 유사한 칭호(처가한處可寒, 무인가한戊寅可汗 등)가 선비족 계열의 토욕혼, 걸복부 등에서 사용된 정황이 기록되어 있다. 일본 학자 시라토리 구라키치(白鳥庫吉)는 이를 후대에 추증된 것으로 보아 『통전』의 기록을 신뢰했지만[37], 우치다 긴푸(内田吟風) 등은 구두벌가한 이전부터 카간 칭호가 존재했을 가능성을 인정한다.[38] 또한 1980년 내몽골 자치구에서 발견된 북위 태무제 시기( 443년)의 알선동 석벽 축문에는 북위의 선조를 '선가한(先可寒)', 그 부인을 '선가돈(先可敦)'으로 칭한 기록이 있어, 북위가 중국식 황제 칭호를 채택하기 전에 이미 카간 칭호를 사용했음을 시사하는 증거로 제시되기도 한다.[39]

카간 칭호가 명확히 나타나는 초기 사례 중 하나는 283년에서 289년 사이, 선비족 추장 토욕혼이 이복 동생 모용외를 피해 요동반도에서 오르도스 사막 지역으로 이동할 때이다. 모용외의 장군 이나루가 토욕혼을 '케한(可寒|커한중국어, 이후 可汗|커한중국어)'이라 불렀다는 기록이 있으며, 토욕혼이 3세기에 칭하이호 부근에 정착한 후 이 칭호를 사용했을 가능성도 제기된다.[1][8]

다음은 카간 칭호를 사용한 주요 국가 및 민족이다.

  • 선비족: 초기 카간 칭호 사용의 흔적이 보이는 집단이다.
  • 탁발부: 북위 건국 세력으로, 황제 칭호 사용 전 '가한', '가돈' 칭호를 사용한 것으로 추정된다.[39]
  • 걸복부: 『진서』에 '걸복가한탁탁막하'라는 칭호 사용 기록이 있다.[43]
  • 토욕혼: 『송서』에 '처가한'이라는 칭호가 언급되며[43], 『진서』에는 수락간(樹洛干)이 '무인가한'을 칭했다는 기록이 있다.[43]
  • 유연 (330–555): 공식적으로 카간 칭호를 사용한 최초의 국가로 알려져 있다. 이들은 흉노선우 칭호를 대체하여 카간과 칸 칭호를 사용했다.[9] 유연은 동호의 후예로 여겨지며[10], 동호는 원(原)몽골족[11] 또는 몽골어족 계통[12]으로 추정된다.
  • 아바르 (567–804): 돌궐에 의해 멸망한 유연의 구성원을 포함했을 가능성이 있으며, 카간 칭호를 사용했다. 이들은 유럽으로 이동하여 카르파티아 지역을 지배했으며, 서방 기록에는 '가가누스(gaganus)', '카간(kagan)', '카카노(kakano)' 등으로 기록되었다.
  • 돌궐: 아시나 씨족이 이끄는 돌궐과 그 후계 국가들(예: 하자르)은 카간 칭호를 사용했으며, 하위 통치자에게는 칸 칭호를 부여했다.
  • 동돌궐
  • 서돌궐
  • 돌기시
  • 하자르: 돌궐의 후계 국가 중 하나로 카간 칭호를 사용했다. (카간 베크 참조)
  • 철륵
  • 위구르: 돌궐을 멸망시키고 카간 칭호를 계승했다.
  • 감주 위구르 왕국
  • 천산 위구르 왕국
  • 예니세이 키르기스
  • 거란 (요나라)
  • 몽골 제국: 몽골비사는 ''카간''과 ''칸''을 명확히 구분하는데, 오직 칭기즈 칸과 그의 통치 혈통만이 ''카간''으로 불리고, 다른 통치자들은 ''칸''으로 불린다. "카간" 또는 "카안"이라는 칭호는 몽골어로 가장 문자적으로 "위대한/최고의 통치자"를 의미하며, 나아가 "주권자", "군주", "상왕", 또는 "황제"를 의미한다. 이 칭호는 "예케" (뜻: "위대한" 또는 "웅대한")를 더하여 "예케 카간"을 만들어 "대황제"를 의미할 수도 있다. 우구데이가 처음 '카안' 칭호를 받았으며[48], 이후 구육 칸, 뭉케 칸 등도 카안으로 불렸다. 울제이투 카안 시대에는 여러 칸을 거느리는 최고 군주의 칭호로 정착했으나[48], 몽골 제국 분열 후 카안과 칸의 구분은 점차 희미해져 16세기 이후 소멸했다.[49] 원나라(1271–1368) 황제들은 '이크 카간(대칸)' 칭호와 중국 황제 칭호를 병행했으며, 원 멸망 후 북원 군주들도 이 칭호를 사용했다.[16] 원나라는 때때로 서쪽에 있는 차카타이 칸국과 킵차크 칸국을 포함한 다른 독립적인 몽골 지배 칸국과 공존하는 ''대칸 제국''으로 불린다. 오직 일 칸국만이 실제로 원나라의 종주권을 동맹국으로서 인정했다(비록 사실상 자치국이었지만). 쿠빌라이가 원나라를 세웠기 때문에, 보르지긴의 다른 분파들은 경쟁자 중 한 명의 지지자로서 새로운 카간의 선거에 참여할 수 있었지만, 그들 스스로는 후보로 출마할 수 없었다.[17] 이후 원나라 황제들은 몽골 제국의 서부 칸국 세 곳과 평화를 맺었고, 그들의 명목상 종주로 여겨졌다.[18] 명목상 지위는 이전 카간의 지위와 같은 기반(예: 그들 간의 지속적인 국경 충돌)을 전혀 기반으로 하지 않았지만, 1368년 원나라가 붕괴될 때까지 수십 년 동안 지속되었다. 14세기 중반 몽골 제국의 붕괴와 원나라의 멸망 이후, 몽골은 정치적 혼란에 빠졌다. 다얀 칸 (1464–1517/1543)은 한때 황제의 권위를 부활시키고 몽골 고원에서 명성을 회복했지만, 그의 제국을 그의 아들과 친척들에게 봉토로 분배하면서 다시 분권화된 통치를 초래했다. 차하르의 마지막 카간인 린단 칸은 1634년 여진족이 이끄는 후금과 싸우다 사망했다. 현대 몽골어에서 "카안"과 "칸"은 서로 다른 의미를 가지지만, 영어는 일반적으로 이 둘을 구별하지 않는다. 이 칭호는 또한 "эзэн хаан|에젠 칸mn"과 같이 왕이나 황제를 지칭하는 일반적인 용어로 사용된다. 예를 들어 "Испанийн хаан Хуан Карлос|이스파니인 칸 후안 카를로스mn" ("스페인 왕/카안 후안 카를로스")가 있다.

  • 오스만 제국: 오스만 술탄들은 다양한 칭호 중 하나로 '하칸(Hakan)'을 사용했다. 이는 튀르크 전통 계승을 나타내며, 특히 '두 땅과 두 바다의 카간(Hakan ül-Berreyn vel-Bahreyn)'이라는 칭호는 메흐메트 2세, 술레이만 1세 등이 사용했다.[20][21] 오스만 왕조는 오구즈 칸의 후예임을 주장하며 아나톨리아의 다른 투르크계 군주들에 대한 우위를 내세우기도 했다.[22][23]
  • 당나라: 당 태종돌궐을 복속시킨 후 주변 민족들로부터 천가한(天可汗, 천상의 카간)이라는 칭호를 받았다.[24][25][26] 당나라 조정이 예니세이 키르기스 카간에게 보낸 후의 편지에서는 "북서부의 백성들"이 당 태종에게 "천 가한"이 되어 줄 것을 요청했다고 설명했다.[27] 당나라 중국 황제들은 적어도 665년부터 705년까지 튀르크의 카간으로 인정받았다. 더욱이, 튀르크 혼혈 통치자 아시나 쿠틀르그 톤 타르두가 727년에 보낸 두 통의 호소문, 토하리스탄의 야브구, 그리고 타슈켄트의 왕인 이나 투둔 쿨레가 741년에 우마이야 왕조의 팽창 동안 당 현종을 '''천 가한'''으로 지칭했다.[28][29] 중세 튀르크-페르시아 전통 문학 작품, 예를 들어 11세기 대서사시 샤나메에는 권력의 상징으로서 중국의 통치자 (즉, 중국 황제)를 지칭하는 "중국 카간" (''Khāqān-i Chīn'', "중국의 카간")이라는 이름이 등장했으며,[31] 이는 페르시아, 중앙 아시아, 신장에서 널리 유통되었다. 18세기까지 내몽골의 청나라로 확장된 만주족이 이끄는 청나라 동안 튀르크계 무슬림 신민 (그리고 코칸트 칸국과 같은 주변 무슬림 칸국)은 청나라 통치자를 이 이름과 연관시켜 청나라 황제를 "중국 카간" (''Khāqān-i Chīn'')으로 흔히 불렀다.[32][33]
  • 루스: 10세기 초 루스인 통치자들이 '카간(Chaganus 또는 Khagan)' 칭호를 사용했다는 기록이 페르시아 지리학자 아흐마드 이븐 루스타에 의해 전해진다. 이 전통은 11세기에도 이어졌을 것으로 여겨지는데, 키예프 루스의 키예프 대주교인 힐라리온 키예프는 키예프 대공 블라디미르 1세 (978–1015)와 키예프 대공 야로슬라프 현공 (1019–1054) 모두를 ''카간''이라고 칭했으며, 키예프 성 소피아 대성당 벽에 새겨진 그라피토에는 야로슬라프의 아들인 대공 스뱌토슬라프 2세 (1073–1076)에게도 같은 칭호가 부여되어 있다.
  • 이란: 사파비 왕조카자르 왕조들도 카간 칭호를 사용했다. 샤 이스마일 등 사파비 샤들은 '솔로몬의 영광을 가진 카간(Kagan-i Suleyman shan)'이라는 별칭을 가졌으며, 아가 모함마드 칸 카자르, 파트 알리 샤 등 카자르 샤들도 카간 칭호를 사용했다.


아래는 각 국가 및 민족별 카간 목록의 일부이다. (전체 목록은 각 국가별 문서 참조)

  • '''유연'''

칭호 (이름)재위 기간비고
구두벌 가한 (사륜)402년 - 410년
애고개 가한 (홀률)410년 - 414년사륜의 동생, 축출됨
울구려보록진414년사륜·홀률의 맏형 아들, 살해됨
모한흘승개 가한 (대단)414년 - 429년사륜의 숙부 아들
칙련 가한 (오제)429년 - 444년대단의 아들
처 가한 (토하진)444년 - 450년오제의 아들
수라부진 가한 (여성)450년 - 485년토하진의 아들
복고돈 가한 (두륜)485년 - 492년여성의 아들, 살해됨
후기복대고자 가한 (나개)492년 - 506년두륜의 숙부
타한 가한 (복도)506년 - 508년나개의 아들, 살해됨
두라복발두벌 가한 (추노)508년 - 520년복도의 아들, 살해됨
칙련두병두벌 가한 (아나괴)520년 - 552년추노의 동생, 자살
미우가사구 가한 (파라문)521년 - 524년아나괴의 사촌 (병립)
울구려철벌552년 - 553년등주의 둘째 아들, 살해됨
울구려등숙자552년 - 555년아나괴의 숙부, 처형됨 (병립)
울구려등주553년아나괴의 사촌, 살해됨
울구려고제553년등주의 아들, 폐위됨
울구려암라진553년 - 554년아나괴의 아들


  • '''돌궐 제1카간국'''

구분칭호 (이름)재위 기간비고
대가한이리 가한 (토문, 부민)552년 - 553년돌궐 건국
을식기 가한 (과라, 일가한)553년이리 가한의 아들 (또는 동생)
목간 가한 (사근, 연도)553년 - 572년을식기 가한의 동생, 최성기 구축
타발 가한 (타토파루)572년 - 581년목간 가한의 동생
아사나암라581년타발 가한의 아들
사발략 가한 (섭도)581년 - 587년을식기 가한의 아들
(경쟁)아파 가한 (대라변)581년 - 587년목간 가한의 아들
엽호 가한 (처라후)587년섭도의 동생
대가한힐가시타나 돌람 가한 (옹우려)587년 - 599년섭도의 아들
서면 가한실점밀 가한 (이스테미)562년 - 576년이리 가한의 동생
달두 가한 (타르두슈)576년 - 603년실점밀의 아들


구분칭호 (이름)재위 기간비고
돌궐 제1 카간국 (동돌궐)계민가한 (염간)587년 - 609년사발략가한의 아들
시필가한 (돌길세)609년 - 619년계민가한의 장남
처라가한 (사리불설)619년 - 620년계민가한의 차남
힐리가한 (일리그 카간, 돌필)620년 - 630년계민가한의 삼남, 당에 항복
(경쟁)돌리 가한 (테리스 카간, 십발필)620년 - 631년시필가한의 아들
당 기미 정책 하을미니숙사리필가한 (사마)639년 - 644년힐리가한의 족인
을주차비가한 (곡발)? - 650년돌궐 별부
아사나니숙복679년 - 680년
아사나복념680년 - 681년힐리가한의 종형 아들
돌궐 제2 카간국아사나골돌록 (일티리쉬 카간)682년 - 690년당으로부터 독립, 동돌궐 부흥
아사나묵철 (카프간 카간)690년경 - 716년골돌록의 동생, 살해됨
비가가한 (빌게 카간, 묵극련)716년 - 734년골돌록의 아들, 살해됨
이란가한 (이넬 카간)734년비가가한의 아들
등리가한 (텡그리 카간)734년 - 741년이란가한의 동생, 살해됨
골돌엽호 (쿠트 야브구)741년 - 742년살해됨
힐첩이시가한 (일티리쉬 카간)742년 - 744년발실밀부 수장 (병립), 살해됨
오소미시가한 (오즈미쉬 카간)742년경 - 744년판궐특근의 아들, 살해됨
백미가한 (골롱복)744년 - 745년오소미시가한의 동생, 살해됨 (745년 위구르에 멸망)


구분칭호 (이름)재위 기간비고
돌궐 제1 카간국 (서돌궐)아파 가한 (대라변)581년 - 587년목한 가한의 아들
니리 카간587년앙소특근의 아들
니결처라 가한 (달만, 갈사나 가한)587년 - 611년니리 가한의 아들
사궤 카간612년경 - 619년달두 가한의 손자
서돌궐 카간국통엽호 가한619년 - 628년사궤 가한의 동생
막하돌후굴리사비 가한628년 - 630년통엽호 가한의 백부
사엽호 가한 (질력특근)628년 - 632년통엽호 가한의 아들
돌륙 가한 (니숙막하설, 튀르크 카간)632년 - 634년
사발라 질리실 가한 (동아설)634년 - 639년돌륙 가한의 동생
을비돌륙 가한 (욕곡설)638년 - 653년(병립)
을굴리실을비 가한 (막하돌을비 가한)639년 - 640년사발라 질리실 가한의 아들
(분열)을비사발라엽호 가한 (박포특근)640년 - 641년
을비사궤 가한641년 - 651년막하돌을비 가한의 아들
사발라 가한 (아사나하로, 이슈바라 카간)651년 - 657년예보리설사궤특근의 아들


  • '''당 기미 정책 하 (서돌궐)'''

{| class="wikitable"

|-

! 구분 !! 칭호 (이름) !! 재위 기간 !! 비고

|-

| rowspan="3" | 미사 가 || 흥식망 가한 (아사나미사) || 657년 - 662년 || 실점밀 가한의 5대손

|-

| 흥식망 가한 (아사나원경) || 685년 - 692년・693년 || 미사의 아들

|-

| 아사나헌 || 657년 - 662년 || 원경의 아

참조

[1] 서적 p. 367 https://books.google[...] Fairbank 1978
[2] 간행물 "Once Again on the Ruan-ruan language." ''Ötüken'den İstanbul'a Türkçenin 1290 Yılı (720–2010) Sempozyumu / From Ötüken to Istanbul, 1290 Years of Turkish (720–2010).'' Vovin, Alexander 2010-12-03
[3] 간행물 "Once again on the etymology of the title ''qaγan''" http://ejournals.eu/[...] Vovin, Alexander 2007
[4] 서적 vol. 96 https://zh.wikisourc[...] Songshu 1962
[5] 논문 On the Titles KHAN and KAGHAN 1926
[6] 논문 QAN-QAγAN AND THE BEGINNINGS OF MONGOL KINGSHIP 1955
[7] 논문 Early nomads of the Eastern Steppe and their tentative connections in the West 2020
[8] 서적 pp. 3–6 Zhou 1985
[9] 서적 pp. 61, 585, n. 92. Grousset 1970
[10] 서적 vol. 103 https://zh.wikisourc[...] Wei Shou
[11] 서적 "Ji 姬 and Jiang 姜: The Role of Exogamic Clans in the Organization of the Zhou Polity" https://web.archive.[...] Pulleyblank, Edwin G. 2000
[12] 논문 A Sketch of the Earliest Mongolic Language: the Brāhmī Bugut and Khüis Tolgoi Inscriptions https://www.academia[...]
[13] 간행물 Art, Iranian-Bulletin of the Asia Institute
[14] 간행물 Nihon Gakushiin-Proceedings of the Japan Academy
[15] 간행물 Teikoku Gakushiin (Japan) – Proceedings of the Imperial Academy
[16] 서적 History of The Mongols
[17] 서적 The Cambridge History of China: Alien regimes and border states, 907–1368
[18] 서적 The Mongol Empire and Its Legacy
[19] 서적 Caliphate Redefined: The Mystical Turn in Ottoman Political Thought 2018
[20] 서적 The Ottomans and the Mamluks: Imperial Diplomacy and Warfare in the Islamic World 2014
[21] 서적 Narrative of Travels in Europe, Asia, and Africa in the Seventeenth Century
[22] 서적 The Ottoman Empire, 1300–1650 2002
[23] 서적 Islamic Gunpowder Empires: Ottomans, Safavids, and Mughals 2010
[24] 서적 pp. 81–83.
[25] 서적 The Chinese, their history and culture https://books.google[...] Macmillan 2012-02-08
[26] 서적 pp. 120–121. https://books.google[...] 2012
[27] 서적 Tang China and the collapse of the Uighur Empire: a documentary history https://books.google[...] Brill 2012-02-08
[28] 서적 p. 230.
[29] 서적 pp. 674–675.
[30] 웹사이트 Tendencies of Change of Socio-Political Lexicon in Persian and Azerbaijani Languages https://pathofscienc[...] 2023-09-21
[31] 서적 The Turks in the Early Islamic World Taylor & Francis
[32] 논문 The Qing Dynasty and Its Central Asian Neighbors https://quod.lib.umi[...] 2023-09-17
[33] 서적 The Muslim Emperor of China: Everyday Politics in Colonial Xinjiang, 1877-1933 https://dash.harvard[...] Harvard University
[34] 문서 右から読む。
[35] 웹사이트 可汗 https://kotobank.jp/[...] 精選版 日本国語大辞典 2022-09-29
[36] 서적 魏書、北史、旧唐書、新唐書
[37] 논문 可汗及可敦称号考
[38] 논문 柔然族に関する研究
[39] 서적 草原とオアシスの世界 岩波書店 1999
[40] 서적 通典、資治通鑑、宋書、晋書、北史
[41] 서적 1970
[42] 서적 1975
[43] 서적 진서
[44] 서적 위서
[45] 서적 북사
[46] 서적 구당서
[47] 서적 신당서
[48] 서적인용 몽골제국과 세계사의 탄생 돌베개 2010-08-20
[49] 뉴스 몽골 황제는 ‘칸’이 아닌 ‘카안’이었다 https://www.hankooki[...]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