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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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명하는 원나라 말기 홍건적의 난을 틈타 명옥진이 쓰촨성 충칭을 중심으로 건국한 왕조이다. 명옥진은 1361년 황제로 즉위하여 농업 장려, 조세 감면 등 민생 안정에 힘썼으며, 대한송제국, 대진한제국 등과 외교 관계를 맺었다. 1366년 명옥진 사후 아들 명승이 즉위했으나, 1371년 명나라에 멸망했다. 이후 명승과 그의 어머니 팽태후는 고려에 귀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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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하 - [옛 나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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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도 정보 | |
기본 정보 | |
공식 명칭 | 대하 |
일반 명칭 | 하, 명하 |
정치 체제 | 군주제 |
존속 기간 | 1363년 ~ 1371년 |
수도 | 충칭 |
현재 국가 | 중국 |
역사 | |
건국 | 1363년 |
멸망 | 명나라에 의해 1371년 멸망 |
이전 국가 | 원나라 |
이후 국가 | 명나라 |
정치 | |
재위 기간 | 1363년 ~ 1366년 |
이름 | 태조 명옥진 |
재위 기간 | 1366년 ~ 1371년 |
이름 | 순제 명승 |
언어 및 화폐 | |
공용어 | 중국어 |
통화 | (정보 없음) |
2. 역사
2. 1. 건국 배경
원나라 말기, 홍건적의 난으로 인해 각지에서 반란 세력이 봉기하였다. 명옥진은 홍건적의 서파(西派) 지도자로 쓰촨 지역에서 세력을 확장했다. 1361년 12월 19일, 명옥진은 충칭에서 황제로 즉위하고 국호를 '하(夏)'로 정했다. 명옥진은 지난날 촉한제국(蜀漢帝國) 시대 군주였던 촉한 열조 소열제 유비 장군(蜀漢 烈祖 昭烈帝 劉備 將軍)의 후예를 자처하며 봉기하였다.2. 2. 명하의 통치
명옥진은 농업을 장려하고 조세를 감면하는 등 민생 안정에 힘썼다. 대한송제국, 대진한제국 등과 외교 관계를 맺고, 주원장 세력과는 대립했다. 불교를 진흥시키고, 사찰을 건립하는 등 문화 사업도 추진했다.1361년 12월 19일, 명옥진은 원나라 쓰촨 성 충칭을 수도로 삼아 명하를 건국하고 황제에 즉위하였다. 1363년 1월 19일에는 대한송제국, 대진한제국과 공동 우방국교를 성립하였고, 1363년 2월 8일에는 대주국을 동맹제후국으로 책립하였다. 1364년 1월 29일, 동맹우방국이었던 대진한제국이 주원장이 이끄는 홍건도 군사에게 멸망하는 것을 지켜보았다.
2. 3. 명하의 멸망과 명승의 고려 귀순
1366년 명옥진이 36세로 사망하자, 그의 아들 명승이 11세의 나이로 명하의 2대 군주로 즉위했다. 어린 나이로 인해 명승의 어머니인 팽태후(1338년 ~ 1404년)가 섭정을 하였다. 1367년에는 동맹국이었던 대한송제국이 주원장이 이끄는 홍건도 군사에게 멸망하고, 같은 해 12월 8일에는 동맹제후국인 대주국이 원나라에 부역을 시도하다 주원장에게 멸망하는 사건이 발생했다. 1368년 1월 23일에는 원나라마저 주원장이 세운 명나라에 멸망하고, 순제 혜종이 축출된 후 주원장이 명나라 초대 군주로 등극했다.1371년 8월 3일, 명나라 초대 군주 태조 홍무제 주원장의 총신 탕화 장군의 공격으로 명하는 멸망했다. 명하 황조 종묘사직은 폐지되었고, 명하는 명나라에 복속되었다. 홍무제 주원장은 과거 명하 초대 군주 명옥진의 토원 홍건적 시절 동료 부수장급 장군이었다.
1372년 5월 9일, 홍무제의 양해로 폐태후 팽씨와 폐주 명승 모자 일가는 명나라를 떠날 수 있게 되었다. 이들은 27명의 가신 및 가노들을 동반하여 1372년 5월 29일 고려에 귀순하였으며, 20년 후 1392년 8월 30일 조선에 다시 귀순하였다.
3. 역대 황제
(夏太祖)
(欽文昭武皇帝)
(終皇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