맨위로가기

쿠두루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쿠두루는 1980년대 후반 앙골라 루안다에서 탄생한 전자 음악 장르이다. 아프리카 타악기, 주크 베통, 소카 음악을 섞어 만들어졌으며, 앙골라 내전 시기 젊은 세대가 어려움을 극복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수단으로 사용되었다. 기술 발전에 따라 DIY 제작이 가능해지면서 대중화되었고, 춤은 내전 중 지뢰로 사지를 잃은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기도 한다. 쿠두루는 앙골라를 넘어 포르투갈 리스본을 중심으로 국제적으로 인기를 얻었으며, 부라카 솜 시스템과 같은 아티스트들이 이 장르를 유럽에 알리는 데 기여했다. 또한, I Love Kuduro 페스티벌과 영화를 통해 쿠두루 문화가 확산되었다.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아프리카의 무용 - 키좀바
    키좀바는 1980년대 앙골라 루안다에서 시작된 음악 및 춤 장르로, 셈바를 기원으로 카리브해 주크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느리고 관능적인 리듬과 커플 간 친밀함을 강조하는 춤 스타일이 특징이다.
  • 포르투갈의 음악 - 포르투갈 음반 협회
    포르투갈 음반 협회(AFP)는 포르투갈의 음반 판매량을 집계하고 차트를 운영하며, 음반, 싱글, 음악 DVD에 대한 판매량 인증 기준을 제시한다.
  • 앙골라의 음악 - 키좀바
    키좀바는 1980년대 앙골라 루안다에서 시작된 음악 및 춤 장르로, 셈바를 기원으로 카리브해 주크 음악의 영향을 받았으며, 느리고 관능적인 리듬과 커플 간 친밀함을 강조하는 춤 스타일이 특징이다.
  • 앙골라의 음악 - 앙골라의 국가
    앙골라의 국가는 1975년 독립 후 채택된 "앙골라 아반테"로, 독립과 자유에 대한 열망, 조국에 대한 헌신, 혁명 정신, 인민의 단결, 승리에 대한 믿음을 담고 있으며, 가사는 포르투갈어와 콩고어로 존재한다.
쿠두루
장르 정보
스타일 기원바티다
테크노
하우스
소카
주크
문화적 기원앙골라
악기PC
드럼 머신
보컬
유행 시기2000년대 중반 ~ 후반

2. 기원 및 역사

쿠두루는 1980년대 후반 앙골라 루안다에서 탄생했다. 당시 프로듀서들은 아프리카 타악기 샘플을 주크 베통(하드 주크)과 소카와 섞어 '바티다'(비트)라는 음악 스타일을 만들었다.[1] 유럽과 미국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앙골라 시장에 나타나면서, 앙골라 음악가들은 이에 관심을 갖고 영감을 받아 자신들의 음악 스타일에 유럽과 미국의 비트를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럽과 미국의 비트에 강력한 아프리카 타악기를 추가했고, 하우스테크노 프로듀서들이 하우스와 테크노를 섞었다.[1]

쿠두루는 앙골라 내전 시기에 생겨났으며, 젊은 세대가 어려움에 대처하고 긍정적인 태도를 갖도록 하는 수단이었다.[3] 특히 빈민가에 사는 앙골라 사람들이 도시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주장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대중적인 예술적 표현 형태가 되었다.[4] 앙골라는 전쟁, 탄압, 그리고 몇 차례의 정치적 평화를 경험했고 쿠두루는 이러한 정치적 불안정에서 비롯되었다.[5]

쿠두루의 혼합성은 기술적 진화를 반영한다. 초기 프로듀서들은 테크노와 하우스의 영향을 받아 바티다를 만들었고, 쿠두루는 주로 루프 기반이며 기악적이다. 내전이 완화되면서 개인용 컴퓨터가 보급되었고, 이는 바티다 제작을 민주화했다.[2]

쿠두루의 창시자 토니 아마도는 1989년 영화 ''킥복서''에서 장 클로드 반담이 술에 취해 춤을 추는 것을 보고 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11][6][4]

쿠두루 춤 동작은 장애인의 모습이나 움직임을 모방한다. 쿠두루는 춤을 통해 장애가 있는 신체에 대한 포용성을 확장하고, 흑인 장애인 성에 대한 개념과 서사를 다시 쓰는 점에서 대부분의 춤과 다르다.[9] 쿠두리스타들은 움직임과 정지, 부조화, 넘어짐, 팝 & 락, 브레이크댄싱을 발산하는 신체 움직임을 사용한다.[4] 앙골라의 인기 댄서 코스텔레타는 다리가 절단되었지만, 매혹적인 공연으로 민첩성과 성적 매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2. 1. 앙골라의 초기 음악적 배경 (1980년대 후반)

쿠두루는 1980년대 후반 앙골라 루안다에서 시작되었다. 당시 프로듀서들은 아프리카 타악기 샘플을 주크 베통(하드 주크), 소카와 섞어 '바티다'(비트)라는 음악 스타일을 만들었다.[1]

유럽과 미국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앙골라 시장에 나타나면서, 앙골라 음악가들은 이에 관심을 갖고 영감을 받아 자신들의 음악 스타일에 유럽과 미국의 비트를 결합하기 시작했다. 이들은 유럽과 미국의 비트에 강력한 아프리카 타악기를 추가했다.[1]

2. 2. 앙골라 내전과 쿠두루 (1990년대)

쿠두루는 앙골라 내전 시기에 생겨났으며, 젊은 세대가 어려움과 긍정적인 태도에 대처하는 수단이었다.[3] 특히 빈민가에 사는 앙골라 사람들이 도시에서 자신들의 공간을 주장하고 사회를 비판하는 대중적인 예술적 표현 형태였다.[4]

1975년 앙골라 독립 이후, 집권당인 앙골라 해방 인민 운동(MPLA)은 쿠두루의 인기를 인식하고 정치 캠페인에 이 음악 장르를 사용했다.[4] 쿠두루는 앙골라가 전쟁, 탄압, 그리고 몇 차례의 정치적 평화를 경험한 정치적 불안정에서 비롯되었다.[5]

쿠두루 춤은 내전으로 인해 지뢰밭에서 사지가 절단된 사람들의 움직임을 모방하기도 한다. 이는 장애인의 신체에 대한 포용성을 확장하고, 흑인 장애인 성에 대한 개념과 서사를 다시 쓰는 점에서 의미가 있다.[9] 쿠두리스타들은 주변 지뢰 피해자의 움직임을 모방하며, 자신 또한 피해자임을 인식한다.[10]

2. 3. 기술 발전과 쿠두루의 변화

쿠두루의 발전은 음악가와 프로듀서가 사용할 수 있는 기술에 크게 영향을 받았다. 초기 쿠두루 음악가들은 유럽에서 가져온 일체형 시퀀서/샘플러 워크스테이션을 사용하여 음악을 만들었다. 이러한 기계들의 제한된 메모리는 초기 쿠두루 음악이 짧은 루프를 기반으로 하는 형식으로 나타나는 이유를 설명해준다.

2000년대 초, 앙골라 경제가 점차 자유화되면서 개인용 컴퓨터가 널리 보급되었다. 이에 따라 프로듀서들은 Fruity Loops (이후 FL Studio로 변경)와 같은 제작 프로그램을 사용하여 음악을 만들 수 있게 되었다. 이러한 패턴 기반 소프트웨어는 프로듀서들이 Fruity Loops 프로그램에 내장된 합성 사운드를 통합할 수 있게 하여 쿠두루의 음악적 가능성을 크게 확장시켰다.

또한, Fruity Loops는 복제가 쉬웠기 때문에 쿠두루 제작은 사실상 민주화되었다. 이는 빈민가(musseques)에 사는 하위 계층 앙골라인들도 쿠두루 음악 발전에 기여할 수 있게 했음을 의미한다. 쿠두루의 민주화는 음악이 널리 퍼지는 데 기여했고, 앙골라에서 가장 인기 있는 음악 형태 중 하나가 되면서 하우스 음악과 같은 영향에서 뚜렷하게 구별되는 독자적인 장르로 자리매김하게 했다.[2] 2003년, FL Studio는 소프트웨어를 업그레이드하여 멀티 트랙 녹음과 오디오 직접 녹음 기능을 추가했다. 이러한 기술 혁명은 쿠두루 제작 가능성을 더욱 확장하여 음악가들이 정식 스튜디오를 방문하지 않고도 집에서 보컬을 녹음할 수 있게 했다.

2. 4. 쿠두루 춤의 기원과 의미

쿠두루 춤은 1989년 영화 ''킥복서''에서 장 클로드 반담이 술에 취해 춤을 추는 장면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졌다.[11][6] 쿠두루의 창시자 토니 아마도는 이 장면을 보고 춤에 대한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한다.[4]

쿠두루 춤 동작은 앙골라 내전 당시 지뢰 폭발로 인해 사지를 잃은 사람들의 모습을 반영하여 장애인의 움직임을 모방하는 특징이 있다.[9] 쿠두루는 춤을 통해 장애를 포용하고, 흑인 장애인의 성에 대한 개념을 재구성한다는 점에서 다른 춤들과 차별성을 가진다.[9]

쿠두리스타들은 춤을 출 때 움직임과 정지, 부조화, 넘어짐 등의 동작을 사용하며, 신체 부위를 분리하는 듯한 스타카토 동작을 통해 쇠약함과 정상/장애 신체의 혼합을 표현한다.[4] 이들은 거리에서 공연하며, 원을 이룬 그룹에서 한 명씩 나와 춤을 추는 방식으로 진행된다. 참여는 모든 사람에게 열려 있으며, 관객은 춤을 추는 사람들에게 박수를 보내며 응원한다.[4] 앙골라의 유명한 댄서 코스텔레타는 다리가 절단되었음에도 불구하고, 그의 공연을 통해 민첩성과 성적 매력을 보여주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10]

쿠두리스타들은 춤을 통해 흑인 신체의 규범을 제시하고 공간 질서를 재구성하는데, 이는 식민주의와 폭력으로 억압받던 환경을 극복하고 자신의 공간을 차지하려는 의지를 보여준다.[10]

3. 용어 (Terminology)

"쿠두루"라는 춤의 이름은 댄서들이 딱딱한 엉덩이를 가진 것처럼 보이는 독특한 동작을 가리키는 것으로, "'''쿠 두루'''"는 포르투갈어로 이러한 춤 스타일을 흉내 낸 것이다.[11] 이 이름은 또한 "힘든 시기에" 또는 "힘든 상황에서"로 번역될 수 있는데, 여기서 "쿠"는 킨분두어에서 처격으로 사용되어 이 예술 형식의 물리적 움직임보다는 상태와 역사를 강조한다.[12] 쿠두루 음악은 키보드와 휴대폰과 같은 일상생활의 소리를 샘플링하는 경우가 많아, 힘든 시기와 장소를 견디는 주제를 소리로 재현함으로써 이 두 번째 의미를 반영한다. 쿠두루의 의미에 대한 두 가지 해석 모두 쿠두루 댄스 공연에 포함된다.[9]

이 장르의 명칭은 앙골라 북부의 언어인 킨분두어로 장소를 의미한다. 이는 앙골라의 공용어포르투갈어로 "hard ass" 또는 "stiff bottom"과 같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쿠두루 춤은 자메이카의 댄스홀 레게 춤과 유사하며, 주크, 소카 등의 장르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서양의 하우스와 테크노, 그리고 앙골라의 전통적인 킬라판가와 셈바도 결합되어 있다.[27]

4. 세대별 발전

쿠두루는 약 10년 주기로 세 개의 주요 세대를 거치며 발전해왔다. 각 세대는 공통적으로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텔링을 특징으로 한다. 쿠두루 가사는 주로 비정치적이며 비트와 춤에 부수적이다. 음악과 춤을 통해 쿠두루는 말로는 표현하기 어려운 노동 생활의 어려움을 다룬다.[2] 이러한 메시지는 아프리카 기원의 사운드를 글로벌 장르로 사용하여 아프리카적인 것의 영향을 초국적으로 확산시키면서, 본질적으로 디아스포라를 대표한다.[2]

다른 음악 장르와 달리, 쿠두루의 각 세대는 이전 세대의 청취자와 음악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장르의 진화하는 본질은 계속해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14]

쿠두루의 기원은 1980년대 후반 루안다의 프로듀서들로 거슬러 올라간다. 앙골라는 바티다로 알려진 음악 양식을 창조하기 위해 아프리카 타악기 샘플과 단순한 칼립소소카 리듬을 융합했다. 유럽과 미국의 일렉트로니카 음악이 시장에 나오기 시작하면서, 이에 매료된 앙골라의 뮤지션들은 그들만의 음악 양식과 일렉트로니카를 결합했다.[25] 앙골라의 MC 세벤은 이를 DJ하며 장르를 시작했다.[26]

장르의 명칭은 앙골라 북부의 언어인 킨분두어로 장소를 의미한다. 이는 앙골라의 공용어포르투갈어로 "hard ass" 또는 "stiff bottom"과 같은 이중적인 의미를 가진다. 쿠두루의 춤은 자메이카의 댄스홀 레게 춤과 유사하다. 주크, 소카, 라라 등의 장르의 영향을 받았다. 또한, 서양의 하우스와 테크노, 그리고 앙골라의 전통적인 킬라판가와 셈바도 결합되어 있다.[27] 비비안 호스트가 지적했듯이, 비서양 세계에서 기원한 "월드 뮤직"은 서양의 모던한 음악과의 공통점이 없다는 일반적인 추정에도 불구하고, 앙골라의 쿠두루는 "펑크, 딥 트라이벌 하우스, 심지어는 다프트 펑크의 요소까지"[28] 가지고 있다. 이처럼 문화적 경계선과 음악적 스펙트럼의 한계는 끊임없이 이동하고 재정의되고 있다. 앙골라의 쿠두르는 이러한 이해와 더 나아가 서양의 음악 양식의 해석을 반영하며, 월드 뮤직의 범주가 거부하려는 서양 음악의 제국주의에 익숙하다.[28] 기술과 커뮤니케이션의 진보, 그리고 전자 매체를 통한 음악의 급증이 문화적, 음속적인 음악적 구조를 능가할 수 있다는 더 큰 사상이 여기에 존재한다. 블렌트웰 팟캐스트(Blentwell Podcasts)에 따르면, 쿠두루는 "하우스, 힙합, 라가의 요소의 혼합"이다.[29]

1990년대 1세대 쿠두루는 주로 중산층 청년들을 중심으로 나타났으며, 정치적 불안의 영향을 반영했다. 2000년대 2세대는 저소득층 지역을 중심으로 제작되어 'DIY' 미학으로 산업을 확장시켰다. 2010년대 3세대는 지역 기반의 공연에 더 집중했으며, 참여적인 측면이 증가했다.

4. 1. 1세대 (1990년대)

1990년대 초, 쿠두루 1세대는 주로 중산층 청년들을 중심으로 나타났으며, 이는 당시 정치적 불안의 영향을 반영했다. 아티스트와 프로듀서들은 클럽에서 유행하던 테크노와 하우스 음악을 앙골라 현지에 맞게 변형하여 실험했다. 이 음악은 분당 128~135 비트의 속도를 가졌으며, 메시지 전달을 위해 보컬 사용은 최소화되었다. 또한, 어쿠스틱 악기 소리를 합성하는 프로덕션 방식을 선호했다.[2]

이 시기 쿠두루 음악은 올인원 시퀀서/샘플러 키보드 및 워크스테이션으로 제작되었다. 이러한 악기들은 유럽에서 생활한 중산층 청년들이 앙골라로 다시 가져온 것이었다. 상당수의 젊은이들이 해외에서 교육받을 수 있는 자원을 가지고 있었고, 이는 내전의 참혹한 현실에서 벗어나는 데 도움이 되었다. 초기 쿠두루 프로덕션은 사용된 시퀀서의 제한된 메모리 용량 때문에 간결한 루프를 기반으로 한 편곡에 의존했다. 멀티트랙 녹음 기술이 부족하여 이러한 편곡은 테이프나 CD 라이터에 직접 녹음되었고, 오버더빙은 불가능했다.

1990년대 초 앙골라에는 보컬 녹음 스튜디오가 부족했기 때문에, 이 세대 쿠두루 프로덕션에는 보컬이 거의 포함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기 쿠두루 작곡의 루프 중심적이고 기악적인 특성은 초기 프로듀서들에게 영감을 준 하우스 및 테크노 장르의 영향을 반영한다. 이러한 예술적 선택은 기술적 제약과 의도적인 창의적 결정이 결합된 결과였다.[2]

4. 2. 2세대 (2000년대)

이 세대는 저소득층 지역을 중심으로 제작되어 산업을 확장시키는 'DIY' 미학을 가지고 있었다.[2] 이 무렵, 많은 홈 스튜디오는 다양한 신디사이저와 샘플을 통합한 시퀀서인 Fruity Loops를 중심으로 운영되었다. 컴퓨터와 불법 복제 기술, 특히 음악 제작 소프트웨어 FruityLoops의 보급이 증가하면서 쿠두루는 대중이 더 쉽게 제작할 수 있게 되었다.[2] 이 세대는 분당 140 비트로 첫 번째 세대의 템포를 빠르게 한 것이 특징이었다.[2] 이 세대 동안 쿠두루 곡에는 "긴급한" 보컬 스타일이 사용되었다.[2]

4. 3. 3세대 (2010년대)

쿠두루는 각기 거의 10년 동안 지속된 세 개의 주요 세대가 있었으며, 3세대는 2010년대에 해당한다. 모든 세대를 통틀어 주요 공통점은 사회적, 정치적 메시지를 담은 스토리텔링이었다. 쿠두루 가사는 주로 비정치적이며 비트와 춤에 부수적이다. 음악과 춤을 통해 쿠두루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노동 생활의 어려움을 다룬다. 이러한 메시지는 아프리카 기원의 사운드를 글로벌 장르로 사용하여 아프리카적인 것의 영향을 초국적으로 확산시키면서, 본질적으로 디아스포라를 대표한다.[2]

현재의 선배들을 비판하는 다른 음악 장르와 달리, 이 세대는 다른 세대의 청취자와 쿠두루 음악가들로부터 존경을 받으며, 장르의 진화하는 본질은 청취자와 예술가 모두에게 계속해서 가치를 인정받고 있다.[14]

3세대는 지역 기반의 공연에 더 집중했으며, 참여적인 측면이 증가했다. 아프로하우스와 N'dombolo의 사용은 모두 느린 비트를 사용하여 이 장르의 세계적인 연결성을 나타냈다. 기술적으로, 이 세대는 FL Studio가 주요 제작 수단에서 Cubase 또는 Logic Pro와 같은 시퀀스 기반 소프트웨어로 전환되는 변화를 나타냈다.

5. 대중적 인기와 국제적 확산

쿠두루는 아프리카의 옛 포르투갈 해외 영토뿐만 아니라, 많은 앙골라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포르투갈 리스본 교외에서도 인기가 높다. 부라카 솜 시스템(Buraka Som Sistema)이라는 포르투갈/앙골라 전자 댄스 음악 프로젝트가 쿠두루를 국제화하면서 이러한 인기는 더욱 확산되었다.[15]

부라카 솜 시스템의 등장 이후, 쿠두루 댄스 공연 영상은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비디오 플랫폼에서 점점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하고 있다. 영상의 품질은 MTV 수준에서부터 휴대폰 촬영 영상까지 다양하다.

5. 1. 앙골라 및 포르투갈에서의 인기

쿠두루는 아프리카의 옛 포르투갈 해외 영토뿐만 아니라, 많은 앙골라 이민자들이 거주하는 포르투갈 리스본 교외(특히 아마도라와 켈루스)에서도 매우 인기가 높다.[15] 리스본에서는 쿠두루와 하우스, 테크노 음악을 혼합한 스타일(또는 '프로그레시브 쿠두루')이 나타났으며, 부라카 솜 시스템(Buraka Som Sistema)이라는 포르투갈/앙골라 전자 댄스 음악 프로젝트가 쿠두루를 국제화하는 데 기여했다. 이들은 유럽 전역에 이 장르를 소개했으며, 히트곡 "Yah!" ("Yeah!")는 여러 국제 음악 잡지에 소개되었다. 부라카 솜 시스템은 아마도라 시에 위치한 리스본 교외 지역인 부라카(Buraca)에서 이름을 따왔다.[15] 부라카 솜 시스템의 등장 이후, 쿠두루 댄스 공연 영상은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비디오 플랫폼에서 점점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하고 있다.

5. 2. 부라카 솜 시스템(Buraka Som Sistema)과 국제화

리스본 스타일(또는 '프로그레시브 쿠두루')의 쿠두루와 하우스, 테크노 음악을 혼합한 형태는 포르투갈에 기반을 둔 포르투갈/앙골라 전자 댄스 음악 프로젝트인 부라카 솜 시스템(Buraka Som Sistema)에 의해 국제화되었다.[15] 이들은 유럽 전역에 쿠두루 장르를 소개했다. 부라카 솜 시스템은 리스본 교외 지역인 부라카(Buraca)에서 이름을 따왔으며, "Yah!" ("Yeah!")와 같은 히트곡으로 여러 국제 음악 잡지에 소개되었다.[15] 부라카 솜 시스템의 등장 이후, 쿠두루 댄스 공연 영상은 유튜브와 같은 인터넷 비디오 플랫폼에서 점점 더 많은 관객을 확보하고 있다.

5. 3. I Love Kuduro (페스티벌)

I Love Kuduro영어 페스티벌은 쿠두루 장르와 라이프스타일에 헌정된 최대 규모의 행사 중 하나로 알려진 순회 축제이다. 2011년 앙골라 출신 예술가 코레온 두(Coréon Dú)가 쿠두루 세션(Kuduro Sessions)이라는 이름으로 파리의 쇼케이스 클럽(Showcase Club)과 베를린의 아레나 클럽(Arena Club)에서 초연 이벤트를 개최하면서 시작되었다.[1]

이 행사에는 노이트 에 디아(Noite e Dia), 나코베타(Nacobeta), 브루노 M(Bruno M), DJ 즈노비아(DJ Znobia), 빅 넬로(Big Nelo), 당시 떠오르는 티티카(Titica), 프란시스 보이 오스 나마예르(Francis Boy Os Namayer), DJ 데프(DJ Djeff) & DJ 실비(DJ Sylivi)와 같은 앙골라의 전설적인 인물들이 참여했으며, 루이 베가(Louie Vega) & 아나네 베가(Anané Vega), 오순라데(Ousunlade), 다니엘 하크스만(Daniel Haaksman), 존 디그위드(John Digweed), 에르난 카타네오(Hernan Cattaneo), 트렌템묄러(Trentemoller), 티프슈바르츠(Tiefshwarz), 디에고 미란다(Diego Miranda), 래치 32(Wretch 32) 등 다수의 해외 게스트 및 쿠두루 지지자들도 참여했다.[1]

2012년 1월 루안다 국제 박람회장에서 14,000명 이상의 쿠두루 팬들이 모인 이틀간의 축제였던 첫 번째 I Love Kuduro영어 행사가 루안다에서 열렸다.[1] 이 행사는 매년 루안다에서 개최되었으며, 파리, 암스테르담, 스톡홀름, 리우데자네이루, 뉴욕, 워싱턴 D.C.와 같은 도시에서 다양한 행사가 열렸다.[1]

최근 행사로는 2014년 파리 테크노퍼레이드(TechnoParade)에서 열린 행사와 쿠두루 세션 테마 투어의 후속 행사로, 댄스에 중점을 두고 전 세계 쿠두루 애호가들에게 더 넓은 루안다 도시 문화를 선보이는 데 주력한 Os Kuduristas 투어가 있었다.[1] 가장 최근의 행사는 2014년 파리 테크노퍼레이드에서 열린 I Love Kuduro영어 팝업 플로트였다.[1]

5. 4. I Love Kuduro (영화)

'''''아이 러브 쿠두루'''''(I Love Kuduro)는 마리우 파트라시니우(Mário Patrocínio)와 페드루 파트라시니우(Pedro Patrocínio) 형제, 그리고 코레옹 두(Coréon Dú)가 감독한 영화이다. 이 영화는 쿠두루 현상의 기원을 다루고 있으며, 앙골라에서 촬영되었다.[20][21][22] 리우데자네이루 국제 영화제와 포르투갈의 도클리스보아(DocLisboa)에서 초연되어 큰 성공을 거두었다.[20][21][22]

5. 5. M.I.A.의 쿠두루 지지

M.I.A.는 부라카 솜 시스테마와 함께 "Sound of Kuduro"라는 곡을 작업했는데, 이 곡은 앙골라에서 녹음되었다. M.I.A.는 쿠두루에 대해, 쿠두루가 전통적인 민속 음악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라 1996년경부터 순수한 댄스 음악을 만들던 젊은이들에게서 나왔으며, 이 새로운 아프리카 음악을 연주하는 것이 그 자체로 정치적인 의미를 가진다고 언급했다.[8]

6. 리스본의 쿠두루 씬

쿠두루는 과거 아프리카의 포르투갈 식민지였던 여러 나라와 앙골라 이민이 많은 포르투갈 리스본 교외(아마도라, 케루스 등)에서도 인기를 유지하고 있다. 리스본에서는 다양한 (혹은 '''프로그레시브 쿠두루''') 아프리카 음악과 하우스, 테크노를 융합하고 있으며, 브라카 송 시스테마는 현재 가장 인기 있는 쿠두루 밴드이며, 이미 그들의 사운드를 유럽 전역에 전파하고 있다. 타밀계 영국인 가수 M.I.A.는 2007년에 브라카 송 시스테마와 함께 앙골라를 방문하여 현지에서 싱글 "사운드 오브 쿠두르"를 녹음했다.[1]

참조

[1] 웹사이트 Producers explain the origins of Kuduro http://g1.globo.com/[...] Globo.com 2007-05-24
[2] 간행물 Fruity Batidas: The Technologies and Aesthetics of Kuduro 2014
[3] 뉴스 "'Kuduro,' The Dance That Keeps Angola Going" https://www.npr.org/[...] 2017-07-11
[4] 웹사이트 Angolan Kuduro: Dance Conquers the City {{!}} FIELD https://field-journa[...] 2023-12-15
[5] 간행물 Fruity Batidas: The Technologies and Aesthetics of Kuduro 2014
[6] 웹사이트 The Afrofunk Music Forum: Kuduro: Techno from Angola to the World http://afrofunkforum[...] Afrofunkforum.blogspot.com 2011-09-11
[7] 문서 The New World Music 2007-08
[8] 간행물 Buzz and Rumble: Global Pop Music and Utopian Impulse 2010-03-08
[9] 간행물 "Sound of Kuduro knocking at my door": Kuduro Dance and the Poetics of Debility https://muse.jhu.edu[...] 2012
[10] 문서 "Sound of Kuduro knocking at my door": Kuduro Dance and the Poetics of Debility" The Johns Hopkins University Press and Saint Louis University 2013
[11] 웹사이트 What is Kuduro? http://super.abril.c[...] Superinteressante Magazine 2012-05
[12] 문서 "'Always on the up and up!': Kuduro Music and Dance in Post-Colonial Angola." 2010-04-20
[13] 문서 "Fruity Batidas: The Technologies and Aesthetics of Kuduro." 2014
[14] 간행물 Fruity Batidas: The Technologies and Aesthetics of Kuduro https://dj.dancecult[...] 2014
[15] 문서 VISÃO nº 752 2007-08-03
[16] 웹사이트 Kuduro Sessions https://www.resident[...] 2017-07-11
[17] 웹사이트 Soirée IKF - KUDURO SESSIONS {{!}} LITTLE LOUIE VEGA ft. ANANÉ & OSUNLADE à Paris @ Showcase NE PAS UTILISER - Billets & Places https://web.archive.[...] 2017-07-11
[18] 웹사이트 OS KUDURISTAS QUINTAL | NOW IN PARIS - Part I | Daily METAL https://web.archive.[...] 2015-04-30
[19] 뉴스 Parcours et chars de la Technoparade ce samedi 13 septembre. - Leblogtvnews.com http://www.leblogtvn[...] 2017-07-11
[20] 웹사이트 O bairro e a cidade encontraram-se e o kuduro pôs Angola no mundo http://www.publico.p[...] Público 2014-09-20
[21] 웹사이트 Coréon Dú esteve em Amsterdão para apresentar o documentário I Love Kuduro: From Angola to the World https://maisfutebol.[...] 2022-02-16
[22] 웹사이트 I LOVE KUDURO by Coréon Dú https://web.archive.[...]
[23] 잡지 M.I.A. Picks Best Global Sound 2008-05
[24] 문서 VISÃO nº 752 2007-08-03
[25] 웹사이트 http://www.factmagaz[...]
[26] 웹사이트 "Bottoms Up" http://www.factmagaz[...] 2007-12-07
[27] 웹사이트 The Afrofunk Music Forum: Kuduro: Techno from Angola to the World http://afrofunkforum[...]
[28] 문서 The New World Music 2007-08
[29] 웹사이트 Kiasma. Masolicism http://www.blentwell[...] 2008-04-17



본 사이트는 AI가 위키백과와 뉴스 기사,정부 간행물,학술 논문등을 바탕으로 정보를 가공하여 제공하는 백과사전형 서비스입니다.
모든 문서는 AI에 의해 자동 생성되며, CC BY-SA 4.0 라이선스에 따라 이용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위키백과나 뉴스 기사 자체에 오류, 부정확한 정보, 또는 가짜 뉴스가 포함될 수 있으며, AI는 이러한 내용을 완벽하게 걸러내지 못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제공되는 정보에 일부 오류나 편향이 있을 수 있으므로, 중요한 정보는 반드시 다른 출처를 통해 교차 검증하시기 바랍니다.

문의하기 : help@durumis.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