쿨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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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쿨라는 세르비아 북부에 위치한 도시로, "탑"을 의미하는 튀르키예어와 세르비아어 단어에서 유래된 이름이다. 오스만 제국 시대에 군사적 요충지였으며, 합스부르크 제국 시기를 거치며 다양한 민족이 거주하게 되었다. 20세기 초 헝가리인이 다수를 차지했으나,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세르비아인이 가장 큰 민족 집단이 되었다. 쿨라는 세르비아의 제과 제조업체인 자파 크벤카의 본고장이며, FK 하이두크 쿨라 축구 클럽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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쿨라 - [지명]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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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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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 | 세르비아 |
자치주 | 보이보디나 |
지역 | 바치카 |
행정 구역 | 서바치카 구 |
자치시 | 쿨라 |
시장 | 다미안 밀야니치 (SNS) |
면적 | 면적 주석: "" |
자치시 면적 | 481 제곱킬로미터 |
해발 고도 | 88 미터 |
인구 | 인구 기준 시점: 2022년 인구 조사 |
도시 인구 | 22105명 |
자치시 인구 | 35592명 |
우편 번호 | 25230 |
지역 번호 | +381 25 |
차량 번호판 | SO |
웹사이트 | www.kula.rs |
시간대 | CET |
UTC 오프셋 | +1 |
여름 시간대 | CEST |
여름 UTC 오프셋 | +2 |
언어별 이름 |
2. 명칭
세르비아어에서는 이 도시를 ''쿨라''(Кула)라고 부르며, 판노니아 루신어로는 Кула, 헝가리어로는 ''쿠라''(Kúla), 크로아티아어와 독일어, 튀르키예어로는 ''쿨라''(Kula)라고 한다. 독일어로는 ''볼프스부르크''(Wolfsburg)라고도 한다.
17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 통치 아래 "고르냐 쿨라"와 "도냐 쿨라"라는 두 정착지가 있었고,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했다.[1] 17세기 말부터 합스부르크 군주국에 속하게 되었고, "말라 쿨라"와 "벨리카 쿨라"로 불렸으나 사람이 살지 않았다.[1] 1714년에는 14가구가 사는 쿨라라는 정착지가 기록되었고,[1] 1733년에는 251가구의 세르비아인이 살았다.[1] 헝가리인은 1740년에, 독일인은 1780년부터 1785년까지 정착하기 시작했다.[1]
''쿨레''라는 이름은 튀르키예어와 세르비아어로 "탑"을 의미한다. 16~17세기에는 이 지역에 오스만 제국의 군사 주둔지가 있는 탑이 있었으며, 이로 인해 도시의 이름이 붙여졌다. 그러나 이 도시의 이름을 오스만 튀르크인이 지었는지 아니면 현지 세르비아인이 지었는지는 확실하게 말할 수 없다.
3. 역사
19세기 중반까지 쿨라는 합스부르크 헝가리 왕국의 바치-보드로그 군에 속했다.[1] 1848-1849년에는 세르비아 보이보디나, 1849년부터 1860년까지는 세르비아 보이보디나와 테메슈바르 바나트의 일부였다.[1] 1860년 보이보디나가 폐지되면서 다시 바치-보드로그 군에 포함되었다.[1] 19세기 후반에는 루신인도 정착했다.[1]
1867년 이후 헝가리인의 식민화가 강화되어, 20세기 초에는 세르비아인을 제치고 쿨라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 되었다.[1] 1910년 인구 조사에서 총 9,119명 중 헝가리어 사용자는 3,679명, 세르비아어 사용자는 2,510명, 독일어 사용자는 2,425명, 판노니아 루신어 사용자는 456명이었다.[1]
1918년 이후 쿨라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유고슬라비아 왕국)에 속했다.[1] 1918-1919년에는 바나트, 바치카 및 바라냐, 1922년부터 1929년까지는 바치카 오블라스트, 1929년부터 1941년까지는 다뉴브 바노비나의 일부였다.[1]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추축국 점령 하에 호르티의 헝가리에 편입되었다.[1]
1944년 소비에트 붉은 군대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추축군을 몰아내고, 쿨라는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내 보이보디나 자치주에 포함되었다.[1] 1945년 이후 보이보디나는 유고슬라비아 내 세르비아 인민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1]
1953년 인구 조사에서는 헝가리인이 가장 많았지만, 이후 조사에서는 세르비아인이 다수를 차지했다.[1] 제2차 세계 대전 말 독일인들은 쿨라를 떠났고, 몬테네그로인들이 몬테네그로에서 이주하여 독일인들을 대신해 정착했다.[1] 유고슬라비아 해체(1991–1992)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2006) 이후, 독립 세르비아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1] 현재 쿨라에서는 세르비아인이 가장 큰 민족 집단이다.[1]
3. 1. 오스만 제국 시대
17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 행정 하에 "고르냐 쿨라"와 "도냐 쿨라"라는 두 정착지가 언급되었다. 이 정착지들은 오스만 세게딘 산자크의 일부였으며,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했다.[1] 17세기 말부터 이 지역은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행정 하에 놓였고, 두 정착지는 "말라 쿨라"와 "벨리카 쿨라"로 언급되었으며 사람이 살지 않았다.[1] 1714년에는 14채의 가구가 있는 쿨라라는 단일 정착지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1] 1733년에는 이 정착지의 인구가 251가구였으며, 주민들은 세르비아인이었다.[1] 헝가리인들은 1740년에, 독일인들은 1780년부터 1785년까지 그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1]
3. 2. 합스부르크 군주국 시대
17세기 말부터 이 지역은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행정 하에 놓였다. 1714년에는 14채의 가구가 있는 쿨라라는 단일 정착지에 대한 기록이 있었다. 1733년에는 이 정착지의 인구가 251가구였으며, 주민들은 세르비아인이었다. 헝가리인들은 1740년에, 독일인들은 1780년부터 1785년까지 그곳에 정착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이 정착지는 합스부르크 헝가리 왕국 내 바치-보드로그 군의 일부였다. 1848-1849년에는 자치 세르비아 보이보디나의 일부였고, 1849년부터 1860년까지는 세르비아 보이보디나와 테메슈바르 바나트라는 별도의 합스부르크 왕령의 일부였다. 1860년 보이보디나가 폐지된 후, 이 정착지는 다시 바치-보드로그 군에 포함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일부 루신인들도 이곳에 정착했다.
1867년 이후 헝가리인들의 식민화가 강화되었고, 20세기 초까지 그들은 세르비아인을 대체하여 쿨라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 되었다. 19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쿨라의 인구는 민족적으로 혼합되어 있었다. 총 인구 9,119명 중 헝가리어 사용자는 3,679명, 세르비아어 사용자는 2,510명, 독일어 사용자는 2,425명, 판노니아 루신어 사용자는 456명이었다.
3. 3. 19세기 ~ 20세기 초
17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 행정 하에서 "고르냐 쿨라"와 "도냐 쿨라"라는 두 정착지가 언급되었다. 이들은 세게딘 산자크의 일부였으며,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했다. 17세기 말부터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행정 하에 놓였고, "말라 쿨라"와 "벨리카 쿨라"로 언급되었으며 사람이 살지 않았다. 1714년에는 14채의 가구가 있는 쿨라라는 단일 정착지가 기록되었다. 1733년에는 251가구의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했다. 헝가리인들은 1740년에, 독일인들은 1780년부터 1785년까지 정착하기 시작했다.
19세기 중반까지 쿨라는 합스부르크 헝가리 왕국 내의 바치-보드로그 군의 일부였다. 1848-1849년에는 자치 세르비아 보이보디나의 일부였고, 1849년부터 1860년까지는 세르비아 보이보디나와 테메슈바르 바나트의 일부였다. 1860년 보이보디나가 폐지된 후 바치-보드로그 군에 다시 포함되었다. 19세기 후반에는 루신인들도 정착했다.
1867년 이후 헝가리인들의 식민화가 강화되었고, 20세기 초까지 그들은 쿨라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으로서 세르비아인을 대체했다. 19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쿨라의 인구는 민족적으로 혼합되어 있었다. 총 인구 9,119명 중 헝가리어 사용자는 3,679명, 세르비아어 사용자는 2,510명, 독일어 사용자는 2,425명, 판노니아 루신어 사용자는 456명이었다.
1918년 이후, 쿨라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유고슬라비아 왕국)의 일부였다. 1918-1919년에는 바나트, 바치카 및 바라냐 지역의 일부였고, 1918년부터 1922년까지는 노비 사드 군의 일부였다. 1922년부터 1929년까지는 바치카 오블라스트, 1929년부터 1941년까지는 다뉴브 바노비나의 일부였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쿨라는 추축국 점령 하에 있었고, 호르티의 헝가리에 부속되었다.
1944년, 소비에트 붉은 군대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은 추축군을 몰아냈고, 쿨라는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내의 보이보디나 자치주에 포함되었다. 1945년 이후, 보이보디나는 유고슬라비아 내의 세르비아 인민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1953년 인구 조사에서는 헝가리인이 가장 큰 민족 집단이었지만, 이후 인구 조사에서는 세르비아인이 다수를 차지했다. 독일인 공동체는 제2차 세계 대전 말에 쿨라를 떠났고, 세르비아 몬테네그로인들이 몬테네그로에서 와서 독일인을 대신하여 정착했다. 유고슬라비아 붕괴(1991–1992)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2006) 이후, 쿨라는 독립적인 세르비아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오늘날 세르비아인들이 도시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다.
3. 4.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1918년 이후, 쿨라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나중에 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의 일부였다. 1918년부터 1919년까지는 바나트, 바치카 및 바라냐 지역의 일부였고, 1918년부터 1922년까지는 노비사드 군의 일부였다. 1922년부터 1929년까지는 바치카 오블라스트의 일부였고, 1929년부터 1941년까지는 다뉴브 바노비나의 일부였다.
3. 5. 제2차 세계 대전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제2차 세계 대전 기간 동안 쿨라는 추축국 점령 하에 있었고, 호르티 미클로시의 헝가리에 부속되었다.[1] 1944년, 소비에트 붉은 군대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은 이 지역에서 추축군을 몰아냈으며,[1] 쿨라는 새로운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내의 보이보디나 자치주에 포함되었다.[1] 이후 보이보디나는 유고슬라비아 내의 세르비아 인민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1]
제2차 세계 대전 말, 독일인 공동체는 쿨라를 떠났고,[1] 상당수의 세르비아계 몬테네그로인들이 몬테네그로에서 이주하여 독일인들의 자리를 대신하였다.[1]
3. 6. 유고슬라비아 사회주의 연방 공화국 시대
1944년, 소비에트 붉은 군대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은 이 지역에서 추축군을 몰아냈고, 쿨라는 새로운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내의 보이보디나 자치주에 포함되었다. 1945년 이후, 보이보디나는 유고슬라비아 내의 세르비아 인민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
1953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헝가리인이 도시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었지만, 이후 인구 조사에서는 세르비아인이 다수를 차지했다. 제2차 세계 대전 말, 독일인 공동체는 쿨라를 떠났고, 상당수의 몬테네그로인들이 몬테네그로에서 와서 독일인을 대신하여 정착했다.
3. 7. 현대
17세기 중반, 오스만 제국 행정 하에서 "고르냐 쿨라"와 "도냐 쿨라"라는 두 정착지가 언급되었으며, 이들은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했다.[1] 17세기 말부터 합스부르크 군주국의 행정 하에 놓였고, "말라 쿨라"와 "벨리카 쿨라"로 언급되었으나 사람이 살지 않았다.[1] 1714년에는 14채의 가구가 있는 쿨라라는 단일 정착지가 기록되었고,[1] 1733년에는 251가구의 세르비아인들이 거주했다.[1] 헝가리인들은 1740년에, 독일인들은 1780년부터 1785년까지 정착하기 시작했다.[1]
19세기 중반까지 쿨라는 합스부르크 헝가리 왕국 내의 바치-보드로그 군의 일부였다.[1] 1848-1849년에는 자치 세르비아 보이보디나의, 1849년부터 1860년까지는 세르비아 보이보디나와 테메슈바르 바나트의 일부였다.[1] 1860년 보이보디나가 폐지된 후 다시 바치-보드로그 군에 포함되었다.[1] 19세기 후반에는 루신인들도 이곳에 정착했다.[1]
1867년 이후 헝가리인들의 식민화가 강화되어, 20세기 초에는 세르비아인을 대체하여 쿨라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 되었다.[1] 1910년 인구 조사에 따르면, 총 인구 9,119명 중 헝가리어 사용자는 3,679명, 세르비아어 사용자는 2,510명, 독일어 사용자는 2,425명, 판노니아 루신어 사용자는 456명이었다.[1]
1918년 이후 쿨라는 세르비아인, 크로아티아인, 슬로베니아인 왕국(유고슬라비아 왕국으로 개칭)의 일부였다.[1] 1918-1919년에는 바나트, 바치카 및 바라냐 지역, 1922년부터 1929년까지는 바치카 오블라스트, 1929년부터 1941년까지는 다뉴브 바노비나의 일부였다.[1] 제2차 세계 대전 중인 1941년부터 1944년까지 추축국 점령 하에 호르티의 헝가리에 부속되었다.[1]
1944년 소비에트 붉은 군대와 유고슬라비아 파르티잔이 추축군을 몰아내고, 쿨라는 사회주의 유고슬라비아 내 보이보디나 자치주에 포함되었다.[1] 1945년 이후 보이보디나는 유고슬라비아 내 세르비아 인민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1]
1953년 인구 조사에서는 헝가리인이 가장 큰 민족 집단이었지만, 이후 세르비아인이 다수를 차지했다.[1] 제2차 세계 대전 말 독일인 공동체는 쿨라를 떠났고, 몬테네그로인들이 몬테네그로에서 와서 독일인을 대신하여 정착했다.[1] 유고슬라비아 붕괴(1991–1992)와 세르비아 몬테네그로 (2006) 이후, 독립적인 세르비아 공화국의 일부가 되었다.[1] 오늘날 세르비아인들이 도시에서 가장 큰 민족 집단이다.[1]
4. 인구
쿨라의 인구는 1948년 39,488명에서 1981년 49,898명으로 정점을 찍은 후, 2011년 43,101명[11], 2022년 35,592명[4][5][6]으로 감소하였다.
연도 | 인구 | 변화율(%) |
---|---|---|
1948년 | 39,488명 | - |
1953년 | 41,622명 | +5.4% |
1961년 | 46,062명 | +10.7% |
1971년 | 48,727명 | +5.8% |
1981년 | 49,898명 | +2.4% |
1991년 | 49,311명 | -1.2% |
2002년 | 48,353명 | -2.0% |
2011년 | 43,101명 | -10.9% |
2022년 | 35,592명 | -17.4% |
4. 1. 쿨라 시의 민족 구성 (2022년)
민족 | 인구 | % |
---|---|---|
세르비아인 | 22,210 | 62.40% |
루신인 | 3,595 | 10.10% |
헝가리인 | 2,660 | 7.47% |
몬테네그로인 | 1,992 | 5.60% |
우크라이나인 | 946 | 2.66% |
크로아티아인 | 369 | 1.04% |
로마 | 282 | 0.79% |
유고슬라비아인 | 138 | 0.39% |
마케도니아인 | 121 | 0.34% |
슬로바키아인 | 115 | 0.32% |
기타 | 3,164 | 8.89% |
합계 | 35,592 |
4. 2. 쿨라 시의 언어 (2002년)
2002년 인구 조사에서 쿨라 시 주민의 77%는 세르비아어를 모국어로 신고했다.[11]4. 3. 정착촌별 민족 구성
세르비아인 다수 거주 지역은 리파르, 노바 크르벤카, 시바츠, 크르벤카이다. 루신인 다수 거주 지역은 루스키 크르스투르이다. 민족 혼합 거주 지역은 쿨라(상대적으로 세르비아인 다수)와 크루슈치치(상대적으로 몬테네그로인 다수)이다.[11]4. 4. 쿨라 도시의 민족 구성 (2011년)
5. 경제
쿨라는 세르비아의 유명 제과 제품 제조업체인 자파 크벤카(Jaffa Crvenka)의 본고장이다.
2018년 기준, 쿨라 지역 법인에 고용된 등록 인원의 총수를 주요 활동별로 나타내면 다음과 같다.[9]
활동 | 총계 |
---|---|
농업, 임업 및 어업 | 591 |
제조업 | 1,964 |
전기, 가스, 증기 및 공기 조절 공급 | 21 |
수도 공급; 하수도, 폐기물 관리 및 복구 활동 | 241 |
건설업 | 207 |
도매 및 소매 무역, 자동차 및 오토바이 수리 | 1,448 |
운송 및 보관 | 601 |
숙박 및 음식 서비스 | 238 |
정보 및 통신 | 59 |
금융 및 보험 활동 | 92 |
부동산 활동 | 3 |
전문, 과학 및 기술 활동 | 202 |
행정 및 지원 서비스 활동 | 221 |
공공 행정 및 국방; 의무 사회 보장 | 380 |
교육 | 751 |
인간 건강 및 사회 복지 활동 | 294 |
예술, 엔터테인먼트 및 레크리에이션 | 85 |
기타 서비스 활동 | 164 |
개인 농업 종사자 | 349 |
총계 | 7,913 |
6. 정치
크르벤카와 루스키 크르스투르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 두 정착촌이 쿨라와 완전히 분리되어 자체적인 자치체가 되도록 하는 움직임이 있다.
7. 스포츠
쿨라에는 하이두크 쿨라라는 축구 클럽이 있다.
8. 자매 도시
참조
[1]
문서
Serbian municipalities 2006
[2]
문서
Serbian census 2022
[3]
웹사이트
2022 Census of Population, Households and Dwellings
https://publikacije.[...]
2023-12-07
[4]
웹사이트
2011 Census of Population, Households and Dwellings in the Republic of Serbia
http://pod2.stat.gov[...]
Statistical Office of the Republic of Serbia
2017-12-12
[5]
웹사이트
2022 Census of Population, Households and Dwellings
https://publikacije.[...]
2023-12-07
[6]
웹사이트
2022 Census of Population, Households and Dwellings
https://publikacije.[...]
2023-12-07
[7]
웹사이트
2022 Census of Population, Households and Dwellings
https://publikacije.[...]
2023-12-07
[8]
웹사이트
Population by ethnicity – Kula
http://webrzs.stat.g[...]
Statistical Office of the Republic of Serbia (SORS)
2013-02-28
[9]
웹사이트
MUNICIPALITIES AND REGIONS OF THE REPUBLIC OF SERBIA, 2019.
https://publikacije.[...]
Statistical Office of the Republic of Serbia
2019-12-25
[10]
웹사이트
Вечерас свечана академија поводом Дана општине Кула
http://kula.rs/2017/[...]
Kula
2017-11-15
[11]
웹인용
2011 Census of Population, Households and Dwellings in the Republic of Serbia
http://pod2.stat.gov[...]
Statistical Office of the Republic of Serbia
2017-1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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