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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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헝가리는 중앙유럽에 위치한 국가로, 수도는 부다페스트이다. 헝가리어는 공용어이며, 헝가리인은 우랄어족에 속하는 헝가리어를 사용한다. 10세기 말 헝가리 왕국을 수립하여 중앙 유럽의 강국으로 군림했으며, 이후 오스만 제국과 합스부르크 왕가의 지배를 받았다. 1918년 제1차 세계 대전 이후 독립하여 공화국을 수립했으나,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시기를 거쳐 호르티 미클로시 섭정 하의 왕국으로 바뀌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공산주의 정권이 수립되었고, 1989년 민주화 이후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를 도입하여 현재 헝가리 공화국을 이루고 있다. 헝가리는 의원내각제와 대통령제를 혼합한 정치 체제를 가지고 있으며, 유럽 연합, NATO, OECD 등 국제기구에 가입하여 대외 관계를 맺고 있다. 경제는 혼합 경제 체제를 기반으로 하며, 외국인 투자를 유치하고 수출 중심의 경제 구조를 가지고 있다. 문화적으로는 전통적인 헝가리 음악과 춤, 요리, 온천 문화 등이 유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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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어원
헝가리의 라틴어 명칭은 '훙가리아' 또는 '웅가리아'(Hungariala)인데, 로마자 'H'는 아바르족 이전에 헝가리 영토에 정착했던 훈족과의 역사적 연관성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303][304] 나머지 이름은 비잔틴 그리스어 '웅그리'(Οὔγγροιgrc)가 라틴 문자로 표기된 형태에서 비롯되었다. 그리스어 명칭은 고대 불가리아어 '아그리누'(ągrinŭ)에서 온 것이고, 다시 '아그리누'는 오구르-튀르크어 '오노구르'(Onogur, '오구르족의 10개 부족')에서 유래했다. '오노구르'는 아바르족 이후 헝가리 동부를 지배했던 불가르족계 부족 연맹에 참여했던 불가르계 부족들의 공통 지칭어였다.[303][304]
헝가리는 헝가리 평원이라 불리는 광대한 평원을 중심으로, 예부터 다양한 민족이 침입하여 정착해 왔다. 고대에는 판노니아라 불렸고, 판노니아족 등이 거주하였다. 기원전 1세기에는 로마 제국에 점령되어 속주 일리리쿰에 편입되었다가, 1세기 중엽 속주 판노니아로 분할되었다.
헝가리의 자칭 지명은 '머저르'(magyarhu, '헝가리인')와 '오르사그'(országhu, '국가, 땅')로 이루어진 '머저로르사그'(Magyarországhu)이다. '머저르'라는 단어는 반유목민이던 헝가리계 주요 7개 부족 중 하나인 '메제르'(megyerhu) 부족의 이름에서 유래했다.[305][306][307]
한국어 표기는 '''헝가리'''이지만, 20세기 중반까지는 '''헝가리아'''로 표기하는 예도 보였다. 한자 표기는 '''洪牙利'''이며, '''洪'''으로 약칭되기도 한다. 중국어에서는 헝가리의 훈족 기원설이 전해진 이후, 훈족과 동족이라고 여겨지는 흉노에서 '''匈牙利'''로 표기하게 되었다.
헝가리어로 '헝가리' 또는 '헝가리인'을 가리키는 명사 'Magyarhu'는 '마저르'로 표기하는 것이 올바르다. 헝가리어에서는 장모음의 경우 모음 문자에 악센트 부호[263]를 붙이는 규칙이 있다.
역사적으로 헝가리 왕국은 다민족 국가였으며, 오늘날의 헝가리인만으로 구성된 것은 아니었다. 따라서 다른 민족과 헝가리 민족을 특히 구별할 때 '마자르인'이라는 표현이 사용되는 경우가 있다.
'헝가리'의 어원으로 일반적으로 인정되는 것은 7세기의 튀르크계의 '''오노구르'''(Onogur)라는 말이며, 10개의 화살(10부족)을 의미한다. 이는 초기 헝가리인이 마자르인 7부족과 카자르 3부족의 연합이었던 데서 유래한다.
3. 역사

기원전 16년부터 15년까지 로마 제국은 알프스 산맥과 다뉴브 강 서쪽 지역을 정복했고, 다뉴브 강은 제국의 국경이 되었다.[39] 기원전 14년, 오늘날 헝가리 서부를 포함하는 판노니아 분지(카르파티아 분지)의 서쪽 부분인 판노니아는 아우구스투스 황제에 의해 ''로마 황제 업적기''에서 로마 제국 영토로 인정받았다.[39] 판노니아 남동쪽 지역은 기원전 6년 로마 속주 모이시아로 편입되었다.[39] 티사 강 동쪽 지역은 106년 오늘날 헝가리 동부를 포함하는 로마 속주 다키아가 되었다. 다키아는 271년까지 로마의 지배를 받았다.[40]
235년부터 로마 제국은 반란, 세력 다툼, 잦은 황제 교체로 혼란을 겪었다. 서로마 제국은 5세기에 게르만 부족과 카르피족의 압력으로 몰락했다.[40] 이 기간 동안 많은 침략자들이 중앙 유럽으로 들어왔는데, 그 시작은 훈족 제국(약 370년~469년)이었다. 훈족 제국의 가장 강력한 지배자는 아틸라(434년~453년)였는데, 그는 나중에 헝가리 신화의 중심 인물이 되었다.[41] 훈족 제국이 붕괴된 후, 훈족의 속국이었던 동게르만 부족인 게피드족이 카르파티아 분지에 자신의 왕국을 세웠다.[42] 이주 시대에 카르파티아 분지에 도착한 다른 집단으로는 고트족, 반달족, 롬바르드족, 그리고 초기 슬라브족이 있었다.[40]
560년대 아바르족은 아바르 카가네이트를 건설했고, 이 국가는 2세기 이상 이 지역에서 패권을 유지했다. 샤를마뉴 휘하의 프랑크족은 790년대 일련의 전투에서 아바르족을 물리쳤다.[43] 804년부터 829년까지 제1 불가리아 제국은 다뉴브 강 동쪽 땅을 정복하고 현지 슬라브족과 아바르족 잔여 세력을 지배했다.[44] 9세기 중반, 발라톤 공국(또는 하판노니아)이 프랑크의 판노니아 변경 지역의 일부로 다뉴브 강 서쪽에 설립되었다.[45]
10세기 말 헝가리인이 헝가리 왕국을 수립하여, 14세기부터 15세기경에는 주변의 여러 왕국과 동군 연합을 맺고 오스만 제국의 침입을 받을 때까지는 중앙 유럽의 강국으로 군림하였다. 15세기 후반까지 오스만 제국의 강력한 압력을 받게 되었다. 1526년 모하치 전투에서 오스만 제국군에 패배하여 국왕 러요시 2세가 전사하였다. 1541년 부다가 함락되어 동남부와 중부의 3분의 2는 오스만 제국(오스만 제국령 헝가리), 북서부의 3분의 1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오스트리아에 의해 분할 지배되어(왕령 헝가리), 양 제국이 충돌하는 최전선이 되었다. 오스만 제국이 군사적으로 후퇴하자,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에 따라 헝가리 및 헝가리 국왕령의 크로아티아와 트란실바니아는 오스트리아에 할양되었다.
헝가리 측에서는 지배자가 합스부르크 왕가로 바뀐 것일 뿐, 꾸준히 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반복되었다. 1848년 3월 혁명에서는 코슈트 러요시가 지도한 독립운동은 러시아군의 개입으로 실패하였으나, 오스트리아에 민족독립운동을 억제하기 위한 타협을 결단케하여, 1867년에 아우스글라이히(화협)가 맺어졌다. 이렇게 하여,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에서 이중군주로서 군림하였으나, 양국은 외교 등을 제외하고는 각각의 정부를 가지고 연합하는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되었다.
제1차 세계 대전 종전 직전인 1918년에 헝가리는 제국으로부터 분리 독립하면서 공화국이 되었다. 헝가리 최초의 공화제 국가인 헝가리 민주 공화국이 성립되어, 사회민주당계의 카로이 미하이(Károlyi Mihály)가 초대 대통령 및 수상을 맡았다. 그러나 1920년 트리아농 조약으로 헝가리는 트란실바니아 등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시대 왕국령의 상당 부분을 잃었다. 합스부르크가를 대신하는 왕이 선출되지 않음에 따라, 1920년 3월 1일 호르티 미클로시가 섭정으로서 통치하는 헝가리 왕국의 성립을 선언하였으나, 영토 상실에 따른 반작용으로 점차 우경화되었다.
헝가리는 나치 독일의 후원하에 1930년대 말, 뮌헨 협정과 빈 중재, 슬로바키아-헝가리 전쟁 등으로 일부 영토를 회복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잃은 땅을 회복하기 위해, 또한 나치 독일의 압박을 받아 추축국에 가담하였으나, 전쟁의 국면은 서서히 열세가 되어, 1944년 호르티는 추축국으로부터 이탈하려고 하였으나, 나치 독일군의 판처파우스트 작전, 화살십자당에 의한 쿠데타로 저지되어, 1945년 5월 8일 패전까지 추축국으로서 전쟁을 치렀다.
1945년 5월 8일 패전으로 소비에트 연방에 점령된 헝가리에서는 공산화가 추진되었다. 1946년 2월 1일에 군주제가 폐지되고 헝가리 왕국은 붕괴하였다. 소비에트 연방 점령하의 헝가리에서는 1949년 사회주의 공화국을 표방한 헝가리 공화국(제2공화국)이 성립하였다.
1956년 1956년 헝가리 혁명이 일어났으나 소련군에 의해 진압되었다. 그러나 이후 헝가리는 중앙유럽의 민주화를 주도했다. 1989년 5월 헝가리는 서방측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의 "철의 장막"을 구성하던 철조망을 철거하고 국경을 개방하였다. 1989년 10월 23일에는 신헌법(헝가리 공화국 헌법) 시행으로 다당제와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국호를 "'''헝가리 공화국'''"(Magyar Köztársaság|머저르 쾨스타르셔샤그hu)으로 변경하면서, 헝가리 인민 공화국은 붕괴되었다.
1989년 10월 23일, 헝가리는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를 청산하고 자유 민주주의로 전환했다.[308] 신헌법(헝가리 공화국 헌법) 시행으로 다당제와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국호를 '''헝가리 공화국'''(Magyar Köztársaság|머저르 쾨스타르셔샤그hu)으로 변경했다.[308] 이로써 헝가리 인민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1990년대 헝가리는 유럽 사회 복귀를 목표로 개혁 개방을 추진하여, 1996년 OECD, 1999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2004년 유럽 연합(EU)에 가입했다. 헝가리 제3공화국의 국기와 국장에서는 공산당 시대의 붉은 별 문장이 제거되었다. 또한 나치 독일, 화살십자당,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일당 독재에 의한 억압에 대한 반발로 하켄크로이츠, 화살십자, 낫과 망치, 붉은 별의 사용이 1993년 개정 형법에 의해 금지되었다.
2011년 4월 18일, 헝가리 의회는 새 헌법인 《헝가리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새 헌법은 2012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했으며, 정식 국호도 "'''헝가리 공화국'''"에서 "'''헝가리'''"로 변경되었다.
2010년 총리에 재취임한 오르반 빅토르는 점차 친러시아 노선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는 국가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거부하며 다른 NATO 회원국들과 차별화되었다.[271]
3. 1. 헝가리 왕국 시대 (1000년 ~ 1918년)
헝가리인들은 대공 알모시와 그의 아들 아르파드의 지휘 아래 카르파티아 분지에 도착했다. 그들은 아르파드 왕조의 창시자이며, 헝가리 통치 왕조이자 헝가리 국가의 기초를 세웠다. 아르파드 왕조는 아틸라 훈족의 직계 후손이라고 주장했다.[52][53][54] 헝가리인들은 862년부터 895년 사이에 장기간에 걸쳐 계획적으로 이 지역을 점령했다.[55]
972년, 아르파드 왕조의 지배자이자 왕자()였던 게자는 공식적으로 헝가리를 기독교 서유럽에 통합하기 시작했다.[59] 그의 아들인 성 이슈트반 1세는 이교도 삼촌인 코파니를 물리치고 헝가리의 첫 번째 왕이 되었다. 이슈트반 1세 치하에서 헝가리는 가톨릭 사도 왕국으로 인정받았다.[60]
10세기 말에 즉위한 헝가리 군주 이슈트반 1세는 서기 1000년에 기독교로 개종하고 서유럽의 가톨릭 여러 왕국 중 하나인 헝가리 왕국(아르파드 왕조)을 건국했다. 헝가리 왕국은 이후 트란실바니아, 보이보디나, 크로아티아, 달마티아 등을 광범위하게 지배하는 강대국으로 발전했다.
성 벨라 1세는 성 이슈트반 1세의 업적을 완성하여 헝가리 국가의 권력을 강화하고 기독교를 강화했다. 그의 카리스마 넘치는 성격, 전략적 리더십 및 군사적 재능은 내부 권력 투쟁과 외부 군사적 위협을 종식시켰다.[61] 크로아티아 왕국은 1102년 콜로만 왕이 비오그라드에서 "크로아티아와 달마티아의 왕"으로 즉위하면서 헝가리 왕국과 인적 동군연합을 맺었다.[63]
13세기에는 몽골 제국군의 침입(모히 전투)을 받아 큰 피해를 입었다. 14세기부터 15세기경에는 주변 여러 왕국과 동군연합을 맺어 중앙유럽의 강국이 되었다.[265]
헝가리 왕국은 아르파드 왕조 시대에 최대 영토에 도달했으나, 1301년 그들의 통치 말기에 왕권은 약화되었다. 파괴적인 무왕 시대(1301–1308) 이후, 첫 번째 앙주 계열 국왕인 카롤 1세 – 아르파드 왕조의 혈통을 이은 인물 – 은 성공적으로 왕권을 회복하고 소위 "작은 왕들"이라 불리는 과두 정치 세력을 물리쳤다.
1396년, 오스만 제국과의 니코폴리스 전투에서 패배했다. 15세기 후반부터 오스만 제국의 강한 압력을 받게 되었다.
중세 헝가리의 마지막 강력한 국왕은 르네상스 시대의 국왕 마티아스 코르비누스(1458–1490)였다. 그의 즉위는 귀족 출신이 왕조적 배경 없이 헝가리 왕위에 오른 최초의 사례였다. 그는 성공적인 군사 지도자이자 예술과 학문의 뛰어난 후원자였다.[70]
1526년에는 모하치 전투에서 패배하고 라요슈 2세 국왕이 전사했다. 1541년 부다가 함락되면서 그 결과 동남부와 중부의 3분의 2는 오스만 제국(오스만 제국령 헝가리), 북서부의 3분의 1은 합스부르크 왕가의 합스부르크 군주국(오스트리아)에 의해 분할 지배되어(왕령 헝가리) 두 제국의 충돌 최전선이 되었다.
30년 전쟁(1618년-1648년)에는 프로테스탄트 측에 트란실바니아 공국이, 가톨릭 측에 왕령 헝가리가 분열되어 참전했다.
1683년 제2차 빈 포위에서 패배한 오스만 제국이 군사적으로 후퇴하자 1699년 카를로비츠 조약에서 헝가리와 헝가리 왕국령인 크로아티아 및 트란실바니아는 오스트리아에 할양되었다. 헝가리 입장에서는 지배자가 합스부르크 왕가로 바뀐 것뿐이었고, 독립을 요구하는 운동이 여러 번 반복되었다.
1848년 3월 혁명에서는 코슈트 러요시가 지휘한 독립 운동은 러시아 제국군의 개입으로 실패했지만, 오스트리아로 하여금 민족 독립 운동을 억압하기 위한 타협을 결정하게 만들었고, 1867년에 아우스글라이히(키에체지시)가 체결되었다. 이에 따라 합스부르크 왕가는 오스트리아 제국과 헝가리 왕국에서 이중 군주로 군림하지만, 두 국가는 외교를 제외하고는 별도의 정부를 가진 연합국인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이 되었다.
오스트리아-헝가리 제국 체제하에서 자본주의 경제가 발전하고 민족주의가 고양되었지만, 제1차 세계 대전에서 패전국이 되어 오스트리아와 분리되었다.
3. 2. 헝가리 공화국 시대 (1918년 ~ 1919년)
1918년 10월 31일, 아스터 혁명(Őszirózsás forradalom)으로 헝가리 최초의 공화국인 헝가리 공화국(1918년-1919년)이 성립되었고, 사회민주당 계열의 카로이 미하이가 초대 대통령 겸 총리가 되었다.[308]
3. 3.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 시대 (1919년)
1919년 3월, 헝가리 공산당의 쿤 벨라가 주도한 헝가리 혁명으로 쿤 벨라를 수반으로 하는 헝가리 소비에트 공화국(3월 21일 - 8월 6일)이 일시적으로 수립되었으나, 헝가리-루마니아 전쟁에서 루마니아가 개입하여 타도되었다.
3. 4. 헝가리 왕국 시대 (1920년 ~ 1945년)
1920년 3월 1일, 합스부르크 왕가의 후계자가 선출되지 않은 채 호르티 미클로시가 섭정으로서 통치하는 헝가리 왕국의 성립이 선포되었다. 1920년 6월 4일에 체결된 헝가리와 연합국 간의 트리아농 조약에 따라 이중 제국의 왕국 영토 중 트란실바니아와 헝가리 북부(슬로바키아) 등 면적의 72%, 인구의 64%를 상실하였고, 헝가리인 전체 인구의 절반 정도가 헝가리 국외에 남게 되었다. 영토 상실의 반발과 주변의 구 연합국으로부터의 고립 등의 요인으로 점차 우경화되었다.
1930년대 후반부터는 나치 독일과 협조하게 되어 1938년의 뮌헨 협정[266], 1939년의 슬로바키아-헝가리 전쟁, 두 차례의 빈 중재 등으로 일부 영토를 회복하였다. 제2차 세계 대전에서는 영토 확장과 나치 독일의 압력을 받아 추축국에 가담하여 독소전쟁 등에서 싸웠으나, 전황은 점차 불리해졌고, 1944년에는 호르티가 추축국으로부터 이탈을 시도하였으나, 나치 독일군과 화살십자당의 쿠데타(판처파우스트 작전)로 저지당하고 실각하였다. 이어 화살십자당의 국민통일정부가 성립하여 1945년 5월 8일의 패전까지 추축국으로서 싸우게 되었다. 한편 소비에트 연방군의 점령 지역에서는 군 일부와 여러 정당이 참여한 헝가리 임시 국민 정부가 수립되어 전후 헝가리 정부의 전신이 되었다. 1945년 4월 4일에는 헝가리 전역에서 독일군이 축출되었고, 나치 독일의 붕괴와 함께 잔존 헝가리군 부대도 항복하였다.
3. 5. 전후 공산주의 정권 시대 (1946년 ~ 1989년)
1945년 5월 8일 패전으로 소비에트 연방에 점령된 헝가리에서는 공산화가 추진되었다. 1946년 2월 1일에 군주제가 폐지되고 헝가리 왕국은 붕괴하였다. 소비에트 연방 점령 하의 헝가리에서는 1949년 사회주의 공화국을 표방한 헝가리 공화국(제2공화국)이 성립하였다. 1989년 10월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를 청산하고 자유민주주의로 전환했다.[308]
1956년 10월 23일 1956년 헝가리 혁명이 발발하자, 10월 24일 수상으로 임명된 임레 너지는 소련의 간섭에서 벗어나고자 바르샤바 조약 기구 탈퇴와 코메콘 탈퇴를 선언했다. 그러자 소련군이 개입하여 임레 너지를 사형시키고 반공 시위를 무력으로 진압했다.
하지만 이후 헝가리는 중앙유럽의 민주화를 주도했다. 1980년대 후반이 되자, 소련의 페레스트로이카와 함께 공산당(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 독재의 한계가 드러났다. 1980년대 후반의 헝가리 자유 민주화 운동 결과, 1989년 5월 헝가리는 서방측 오스트리아와의 국경의 "철의 장막"을 구성하던 철조망을 철거하고 국경을 개방하였다. 1989년 8월에는 헝가리 사회주의 노동자당이 하야하고, 1989년 10월 23일에는 신헌법(헝가리 공화국 헌법)의 시행으로, 다당제와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국호를 "'''헝가리 공화국'''"(Magyar Köztársaság|머저르 쾨스타르셔샤그hu)으로 변경하면서, 헝가리 인민 공화국은 명실공히 붕괴되었다. 헝가리는 1980년대 말 바르샤바 조약 폐지와 코메콘 폐지도 주도하였다.
3. 6. 제3공화국 (1989년 ~ 현재)
1989년 10월 23일, 헝가리는 공산당 일당 지배 체제를 청산하고 자유 민주주의로 전환했다.[308] 신헌법(헝가리공화국헌법) 시행으로 다당제와 대통령제를 기반으로 한 자유주의와 시장 경제를 도입하고, 국호를 '''헝가리 공화국'''(Magyar Köztársaság|머저르 쾨스타르셔샤그hu)으로 변경했다.[308] 이로써 헝가리 인민 공화국은 공식적으로 막을 내렸다.
1990년대 헝가리는 유럽 사회 복귀를 목표로 개혁 개방을 추진하여, 1996년 OECD, 1999년 북대서양 조약기구(NATO), 2004년 유럽 연합(EU)에 가입했다. 헝가리 제3공화국의 국기와 국장에서는 공산당 시대의 붉은 별 문장이 제거되었다. 또한 나치 독일, 화살십자당, 소비에트 연방, 공산당 일당 독재에 의한 억압에 대한 반발로 하켄크로이츠, 화살십자, 낫과 망치, 붉은 별의 사용이 1993년 개정 형법에 의해 금지되었다.
하지만 헝가리의 정치는 여전히 불안정하여, 2007년에는 반정부 폭동이 발생하기도 했다. 2009년 3월 15일에는 부다페스트에서 혁명 기념일에 반정부 시위가 일어나기도 했다.[310]
2002년 사회당 출신의 주르차니 페렌츠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8년 후인 2010년 총선에서 피데스가 압승하여 오르반 빅토르가 총리로 선출되었다.
2011년 4월 18일, 헝가리 의회는 새 헌법인 《헝가리 기본법》을 통과시켰다. 새 헌법은 2012년 1월 1일부터 효력이 발생했으며, 정식 국호도 "'''헝가리 공화국'''"에서 "'''헝가리'''"로 변경되었다. 그러나 이러한 헌법 개정은 국체의 변동을 의미하는 것이 아니라 헝가리 공화국의 체제와 자유주의를 계승한 것으로, 헝가리와 헝가리 공화국이 동일한 명칭임을 의미한다.
2010년 총리에 재취임한 오르반 빅토르는 점차 친러시아 노선으로 전환하기 시작했다. 2022년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당시에는 국가 이익에 반한다는 이유로 우크라이나에 대한 군사 지원을 거부하며 다른 NATO 회원국들과 차별화되었다.[271] 러시아에 대한 제재에도 거리를 두었는데, 이는 러시아에 대한 에너지 의존도가 높다는 사정도 있다.
4. 정치
헝가리는 의원내각제 국가이다. 헝가리 대통령은 국민의회에서 5년 임기로 선출되며, 총리 임명 등 상징적인 직무를 수행한다. 대통령 관저는 부다 왕궁 인근의 샨도르궁이다. 실질적인 권한은 총리에게 있으며, 총리는 각료를 선출하여 행정을 수행한다.
국민의회는 일원제 입법부로, 임기는 4년, 의석은 199석이다. 국민의회는 국가 최고 권위 기관이며, 모든 법률은 국민의회 승인을 받아야 한다.
V-Dem 연구소는 헝가리를 유럽 연합 회원국 중 유일한 선거 독재주의 국가로 평가하며, 프리덤 하우스는 "부분적으로 자유로운 국가"로 평가한다.[272]
헌법재판소는 법률의 합헌성을 심사하며, 대법원과는 별도로 사법권을 행사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