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복시
1. 개요
태복시는 중국 왕조에서 수레와 말을 관리하는 관청이었다. 진, 한나라 시기부터 존재했으며, 북제 시대에 시(寺)로 명칭이 정해졌다. 원나라 시기에는 중앙에 설치되어 중서성에 소속되었고, 명나라 때는 병부에 속해 목마 관련 정령을 관장했다. 청나라 때는 순치 연간에 설치되었으나 육군부에 통폐합되었다.
| 설명: "太僕寺 (Tài Pǔ Sì)는 중국의 중앙 정부 기관이었다. 어원은 '말을 기르는 관청'이다." | |
| 설명: "주요 업무는 황실의 마차, 말, 목축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시대에 따라 소, 양 등의 가축을 관리하기도 했다." | |
| 설명: "명나라에서는 구사(九寺) 중 하나였다. 청나라에서는 광록사(光祿寺), 태상사(太常寺), 홍려사(鴻臚寺)와 함께 존속했다." |
| 기원 | 정확한 기원은 불분명하나, 진나라와 한나라 시대에 유사한 기능을 수행하는 관직이 존재했다. |
|---|---|
| 수나라 | 581년에 설립되어 '태복시(太僕寺)'로 명명되었다. |
| 당나라 | 마정감(馬政監)과 합쳐져 태복시(太僕寺)의 기능이 강화되었다. |
| 명나라 | 구사(九寺) 중 하나로 유지되었다. |
| 청나라 | 광록사(光祿寺), 태상사(太常寺), 홍려사(鴻臚寺)와 함께 존속했다. |
| 경(卿) | 태복시의 장관 (정3품) |
|---|---|
| 소경(少卿) | 경(卿)의 차관 (정4품) |
| 승(丞) | 경(卿)을 보좌하는 역할 (종6품) |
| 주부(主簿) | 문서 및 기록 관리 (종7품) |
| 녹사(錄事) | 사무 처리 (종8품) |
| 태창승(太倉丞) | 곡물 창고 관리 (종7품) |
| 액정승(掖庭丞) | 황실 여성 관련 업무 (종7품) |
| 도장승(都掌丞) | 마구 및 용품 관리 (종7품) |
| 목감(牧監) | 목장 관리 (품계 없음) |
| 전감(典監) | 마구 및 용품 관리 보조 (품계 없음) |
| 위(尉) | 경비 및 치안 유지 (품계 없음) |
| 사(史) | 기록 및 문서 작성 (품계 없음) |
| 부(府) | 각 지역의 목장 관리 |
| 설명: "주요 직무는 황실의 마차, 말, 목축을 관리하는 것이었다. 제사용 희생물에 쓰일 짐승을 기르기도 했다." | |
| 설명: "시대에 따라 소, 양 등의 가축을 관리하기도 했다." | |
| 설명: "전쟁 시에는 군마를 관리하고 보급하는 역할도 수행했다." |
| 설명: "한국의 태복시는 고려와 조선 시대에 존재했던 관청이다." | |
| 설명: "왕실의 수레와 말을 관리하는 역할을 담당했다." | |
| 설명: "조선 시대에는 종3품 아문으로, 정원은 정3품 당상관인 정(正) 1명, 종3품 아문인 부정(副正) 1명, 종4품의 승(丞) 1명, 주부(主簿) 1명, 직장(直長) 2명, 봉사(奉事) 2명, 사록(司錄) 2명, 산학(算學) 3명, 서리(書吏) 23명, 고직(庫直) 2명, 사령(使令) 6명, 군사(軍士) 10명으로 구성되었다." |
2. 연혁
진과 한에서 태복은 구경(九卿) 중 하나로 수레와 말을 관리하는 관직이었다. 북제(北齊) 때 태복시라는 관서 이름이 제정되었고, 수와 당도 이 제도를 따랐다.
원은 전국적으로 많은 말을 필요로 하여 중앙에 태복시를 설치하고 중서성(中書省)에 소속시켰다. 동쪽의 탐라, 북쪽의 코리토마트, 서쪽의 감숙, 남쪽의 운남 등 14개 목장을 설치했다.
명에서는 목마 관련 정령을 관장하고 병부에 소속되었다. 홍무 6년 제주(滁州)에 남경태복시를 설치하고 경, 소경, 시승 등의 관직을 임명했고, 30년에는 북평, 요동, 산서, 섬서, 감숙 등에 행태복시를 두었다.
청은 순치 원년에 태복시를 설치했으나 처음에는 전담 부서가 아니었고, 병부의 무고시와 함께 그해 12월 철폐되었다. 순치 2년 2월 다시 설치되어 황제 순시 때 호종하는 수레, 말, 물품을 총괄했다. 경, 소경, 원외랑 등의 관직이 있었다.
1910년대 청 말기 신정에서 병부, 연병처와 함께 육군부에 통합되었다.
2.1. 중국
진과 한에서 태복은 구경(九卿) 중 하나로 수레와 말을 관리하는 관직이었다. 북제(北齊) 때 태복시라는 관서 이름이 제정되었고, 수와 당도 이 제도를 따랐다.
원은 전국적으로 많은 말을 필요로 하여 중앙에 태복시를 설치하고 중서성(中書省)에 소속시켰다. 동쪽의 탐라, 북쪽의 코리토마트, 서쪽의 감숙, 남쪽의 운남 등 14개 목장을 설치했다.
명에서는 목마 관련 정령을 관장하고 병부에 소속되었다. 홍무 6년 제주(滁州)에 남경태복시를 설치하고 경, 소경, 시승 등의 관직을 임명했고, 30년에는 북평, 요동, 산서, 섬서, 감숙 등에 행태복시를 두었다.
청은 순치 원년에 태복시를 설치했으나 처음에는 전담 부서가 아니었고, 병부의 무고시와 함께 그해 12월 철폐되었다. 순치 2년 2월 다시 설치되어 황제 순시 때 호종하는 수레, 말, 물품을 총괄했다. 경, 소경, 원외랑 등의 관직이 있었다.
1910년대 청 말기 신정에서 병부, 연병처와 함께 육군부에 통합되었다.
2.1.1. 진, 한
진(秦), 한(漢)에서는 구경(九卿) 가운데 하나로 태복이 존재하였는데, 수레나 말을 맡아 보는 관직이었다. 북제(北齊) 때에 제도로 정하여 시(寺)로서 관서의 이름을 정하였다. 수(隋), 당(唐) 이후로도 모두 그 제도를 따랐다.
2.1.4. 원
원(元) 왕조는 전국적으로 상당히 많은 말을 필요로 하여 중앙에 태복시를 설치하고 중서성(中書省)에 배속시켰다. 동쪽에는 탐라, 북쪽에는 코리토마트(火里秃麻, Qori-tumat), 서쪽에는 감숙(甘肅), 남쪽에는 운남(雲南) 등 14개의 목장을 설치했다.
2.1.5. 명
진(秦), 한에서 구경(九卿) 가운데 하나인 태복은 수레나 말을 관리하는 직책이었다. 북제(北齊) 때 태복을 관서 명칭으로 하는 제도가 정해졌고, 수(隋), 당(唐)도 이 제도를 따랐다.
명에서는 목마(牧馬) 관련 정령(政令)을 담당하고 병부(兵部)에 소속되었다. 홍무(洪武) 6년(1373년) 제주(滁州)에 남경태복시(南京太僕寺)를 설치하고 경(卿), 소경(少卿), 시승(寺丞) 등의 관직을 두었으며, 30년(1397년)에는 북평(北平), 요동(遼東), 산서(山西), 섬서(陝西), 감숙(甘肅) 등에 행태복시(行太僕寺)를 설치했다.
2.1.6. 청
청 왕조는 순치 원년에 태복시를 설치했으나, 처음에는 관련 업무를 전담하는 부서가 아니었고 병부에 부설된 무고시(武库司)와 함께 그 해 12월에 철폐되었다. 순치 2년(1645년) 2월에 태복시가 다시 설치되어 황제가 순시할 때 호종하는 수레나 말 및 잡다한 물품들을 총괄하였다. 청대의 태복시에는 경, 소경, 원외랑(員外郎) 등의 관직이 있었다.
1910년대 청 왕조 말기의 신정(新政)에서 태복시는 병부, 연병처(練兵處)와 마찬가지로 육군부(陸軍部)에 통폐합되었다.
2.2. 한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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