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와 이르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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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와 이르파는 고대 노르드 신화에 등장하는 두 인물로, 특히 10세기 노르웨이의 통치자 하콘 시구르드손과 관련된 문헌에서 자주 언급된다. 토르게르드는 "홀기의 신부"라는 뜻으로, 수호 여신, 프레이야와의 연관성, 거인 여신 숭배 등 다양한 학설이 존재한다. 이르파는 "어두운 갈색"을 의미하며, 지하 세계의 여신 또는 토르게르드와 대조적인 인물로 묘사되기도 한다. 이들은 욤스비킹가 사가, 냘의 사가 등 여러 사가에 등장하며, 하콘이 전투에서 승리하기 위해 그들에게 의지하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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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와 이르파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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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종류 | 디시르 |
성별 | 여성 |
문화 | 노르드 신화 |
관련 신 | 토르 호콘 시구르다르손 |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 | |
로마자 표기 | Þorgerðr Hölgabrúðr |
별칭 | 횔기 |
관련된 장소 | 홀라갈란드 트뢴데라그 |
이르파 | |
로마자 표기 | Irpa |
특징 | |
숭배 | 홀라갈란드 지역의 주요 신으로 숭배 받음 그녀에게 바치는 신전이 세워짐 때때로 제물을 받음 |
역할 | 보호 전투 지원 예언 |
능력 | 강력한 마법 사용 날씨 조종 미래 예지 |
상징 | 풍요 전쟁 보호 |
외모 | 아름다운 여성, 때로는 갑옷을 입고 무기를 든 모습으로 묘사됨 |
관련 인물 | |
아버지 | 홀기 (홀라갈란드의 통치자) |
숭배자 | 호콘 시구르다르손 아이나르 탐바르스켈피르 |
2. 어원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Þorgerðr Hölgabrúðr) 또는 ''Hǫlgabrúðr''는 고대 노르드어로 "토르게르드, 홀기의 신부"를 의미한다.[1] 스칼드스카파르말 제42장에 따르면, 홀기는 노르웨이 최북단 주 홀로갈란드의 이름의 기원이 된 인물이자 토르게르드의 아버지이다.[1] ''Þorgerðr''는 신의 이름 ''Þor (토르)''와 "울타리가 쳐진"을 의미하는 ''gerðr''의 합성어이다.[2]
이 인물의 두 번째 이름은 때때로 ''-brúðr''가 ''-troll''로 대체되거나, ''Hölg-'' 대신 ''Hörða-'', ''Hörga-'', ''Hölda-''와 같은 접두사가 붙기도 한다.[1] 토르게르드가 요툰 게르드르에서 파생되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그녀가 종종 트롤이나 거인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1] 또는 ''Gerðr''는 단순히 ''Þorgerðr''의 줄임말일 수도 있다.[3] 틴드르 할켈손의 10세기 하콘에 대한 ''드라파''에서 토르게르드는 ''Gerðr''로 언급되며, 이 시는 헤임스크링글라에 수록된 『올라프 트리그바손 사가』 제43장에 인용되어 있다.
존 맥키넬은 토르게르드의 아버지 이름은 홀로갈란드의 이름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나중에 추가된 것이며, "Hölgabrúðr"는 "홀로갈란드의 (통치자들의) 신부"를, Hörðabrúðr는 "호르달란드의 (통치자들의) 신부"를 의미할 수 있다고 말한다.[4] ''Hörgabrúðr''는 "이교 사당의 신부"이고, ''höldabrúðr''는 "홀데 사람들의 신부" 또는 "귀족들의 신부"를 의미한다.[4]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이름은 토르게르드 숭배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4]
이름 ''Irpa''는 "어두운 갈색"을 의미하는 고대 노르드어 용어 ''jarpr''에서 파생되었을 수 있으며, 이는 여신에 대한 여러 이론으로 이어졌다.[5] ''Jarpr''는 초기 원시 게르만어 단어 *''erpaz''에서 파생되었다.[6]
2. 1.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 (Þorgerðr Hölgabrúðr)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Þorgerðr Hölgabrúðr) 또는 ''Hǫlgabrúðr''는 고대 노르드어로 "토르게르드, 홀기의 신부"를 의미한다.[1] 스칼드스카파르말 제42장에 따르면, 홀기는 노르웨이 최북단 주 홀로갈란드의 이름의 기원이 된 인물이자 토르게르드의 아버지이다.[1] ''Þorgerðr''는 신의 이름 ''Þor (토르)''와 "울타리가 쳐진"을 의미하는 ''gerðr''의 합성어이다.[2]이 인물의 두 번째 이름은 때때로 ''-brúðr''가 ''-troll''로 대체되거나, ''Hölg-'' 대신 ''Hörða-'', ''Hörga-'', ''Hölda-''와 같은 접두사가 붙기도 한다.[1] 토르게르드가 요툰 게르드르에서 파생되었다는 주장도 있는데, 이는 그녀가 종종 트롤이나 거인으로 묘사되기 때문이다.[1] 또는 ''Gerðr''는 단순히 ''Þorgerðr''의 줄임말일 수도 있다.[3] 틴드르 할켈손의 10세기 하콘에 대한 ''드라파''에서 토르게르드는 ''Gerðr''로 언급된다.[1]
존 맥키넬은 토르게르드의 아버지 이름은 홀로갈란드의 이름의 기원을 설명하기 위해 나중에 추가된 것이며, "Hölgabrúðr"는 "홀로갈란드의 (통치자들의) 신부"를, Hörðabrúðr는 "호르달란드의 (통치자들의) 신부"를 의미할 수 있다고 말한다.[4] ''Hörgabrúðr''는 "이교 사당의 신부"이고, ''höldabrúðr''는 "홀데 사람들의 신부" 또는 "귀족들의 신부"를 의미한다.[4] 이러한 다양한 형태의 이름은 토르게르드 숭배가 널리 퍼져 있었음을 시사한다.[4]
2. 2. 이르파 (Irpa)
이름 ''Irpa''는 "어두운 갈색"을 의미하는 고대 노르드어 용어 ''jarpr''에서 파생되었을 수 있으며, 이는 여신에 대한 여러 이론으로 이어졌다. ''Jarpr''는 초기 원시 게르만어 단어 *''erpaz''에서 파생되었다.3. 문헌 기록
''욤스비킹가 사가'' 21장에는 10세기 후반 히요릉가보그 해전에서 욤스비킹 함대가 시그발디 스트루트-하랄드손의 지휘 아래 하콘 시구르드손과 스베인 하콘손의 함대와 전투를 벌이는 내용이 나온다. 하콘은 전투 중 회의를 소집하여 전황이 불리함을 알리고, 히요릉가 만 북쪽 프림시그네드 섬으로 가서 자신의 수호 여신인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에게 기도한다.[7] 토르게르드는 처음에는 제안을 거절했지만, 결국 하콘의 7살 아들을 블로트로 바치는 것을 받아들였고, 하콘의 노예 스코프티가 그 소년을 죽였다.[8]
하콘은 함대로 돌아와 부하들에게 공격을 명령하며, "토르게르드와 이르파 두 자매의 승리를 기원"하며 맹렬한 공격을 독려했다.[9] 하콘이 배에 오르고 함대가 공격을 시작하자 북쪽에서 악천후가 시작되어 욤스비킹 함대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이 던진 무기와 돌은 바람에 되돌아왔다.[9]
하콘의 함대에 있던 하바르드 더 휴잉이 토르게르드를 처음 발견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았다. 사람들은 토르게르드의 손가락에서 화살이 날아와 욤스비킹 함대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9] 욤스비킹은 시그발디에게 그들이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9]
폭풍이 다시 거세지자 하바르드 더 휴잉은 두 여자가 백작의 배에 서서 토르게르드가 이전에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10] 시그발디는 "오거레스"와 "트롤"이라고 부르는 두 여자 때문에 퇴각을 명령했다. 욤스비킹 함대가 패배한 후, 하콘의 부하들은 폭풍 동안 떨어진 우박의 무게를 달아보았는데, 각각 온스였다.[11]
흐라프는 10세기와 11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뇔의 사가''의 87장에서 하콘이 구드브란드의 집에서 축제를 벌이는 동안 하콘과 구드브란드가 소유한 사원에 침입한다.[12] 흐라프는 토르게르드의 조각상을 약탈하는데, 그녀에게서 큰 금반지와 그녀가 쓰고 있던 린넨 후드를 가져간다.[12] 다음으로 흐라프는 토르의 조각상과 토르의 수레를 발견하고, 토르의 조각상에서도 금반지를 가져갔고, 세 번째로 그곳에 있는 이르파의 조각상에서 반지를 가져갔다.[12] 흐라프는 사원 안의 모든 조각상들을 가져가, 그들의 물건을 벗겨낸 후, 새벽에 떠나기 전까지 사원을 불태운다.[12]
토르게르드는 《산문 에다》의 《시어(詩語) 목록》에 언급된다. 여기에서 Hålogaland는 왕 홀기(Hölgi)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그는 토르게르드의 아버지였다고 묘사한다. 《시어(詩語) 목록》에 따르면, 돈을 포함한 블로트가 그들 모두에게 바쳐졌고, 금과 은의 층으로 만들어진 홀기를 위한 고분이 세워졌으며, 이후 흙과 돌의 층으로 덮였다.[13] 이후 《시어(詩語) 목록》에서 "트롤 아내" 목록이 주어지는데, 여기에는 홀가브루드(Hölgabrúðr)가 포함된다.[14]
J. L. 룬드의 "제물 바침" 그림에서는 토르의 형상에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
'''페로 제도 사가'''의 23장에서 호콘은 시그문드에게 어디에 신뢰를 두는지 묻는다. 시그문드는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신뢰를 두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호콘은 "그렇게 하면 안 되네."라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신뢰를 둔 곳인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에게 신뢰를 두도록 한다.[15] 호콘과 시그문드는 그녀를 만나러 가서 그녀의 손에서 행운을 구한다.[15]
두 사람은 숲 속의 작은 길을 따라가다가 울타리가 쳐진 집에 도착한다. 그 집은 금과 은으로 채워진 조각이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집에 들어가는데, 천장의 유리 창문에서 빛이 들어와 방을 밝히고 그림자가 없었다. 그곳에는 많은 신들의 묘사가 있었고, 문 근처에는 옷을 잘 차려입은 여자가 있었다.[15]
사가는 호콘이 한동안 여자 앞에 엎드려 있었다고 전한다. 그가 일어섰을 때, 그는 시그문드에게 그녀에게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그녀 앞에 있는 의자에 은을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호콘은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그녀의 손에 든 반지를 풀면, 그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또한 시그문드는 그 반지를 통해 행운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15]
호콘은 반지를 잡으려고 했고, 시그문드에게는 그녀가 손으로 반지를 움켜쥐는 것처럼 보였다. 호콘은 반지를 받지 못했다. 호콘은 그녀 앞에서 두 번째로 엎드렸고, 시그문드는 호콘이 울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다시 일어섰고, 반지를 잡았고, 그것이 풀린 것을 발견했다. 호콘은 시그문드에게 반지를 주고, 결코 그것을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그문드는 이에 동의했고, 그들은 헤어져 각자 배로 돌아갔다. 폭풍이 나타나 두 배는 서로 멀리 떨어졌고, 그 후 많은 날들이 흘렀다고 묘사된다.[15]
하르다르 사가 오크 홀름베르야의 19장에서 하콘과 가까운 고디인 그림켈 비아르나르손은 딸의 성공적인 결혼을 빌기 위해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의 신전(호프)에 간다.[16] 그가 도착했을 때, 신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16] 그림켈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토르게르드와 언쟁을 벌인 후, 모든 신들과 함께 호프를 불태운다.[16] 그날 저녁, 그림켈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죽는다.[16]
케틸의 사가 호잉스 5장에서 케틸은 숲에서 만난 트롤 여인에게서 트롤들의 회합인 "트롤라-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트롤 여인에 따르면, 그 회합에는 트롤 왕 스켈킹그르와 토르게르드 호르가트뢸이 주요 인물로 참석할 예정이었다.[17]
토르레이프 아스게이르손은 "야를의 시인"으로 알려진 ''야를스칼드''(jarlsskáld)로서, 야를 하콘의 연회장에서 폭력적이고 마법적인 시를 읊는다.[18] 《올라프 트리그바손 사가》의 173장에 해당되는 제7장에서 하콘은 부상에서 회복한 후 토르게르드 호르다브루드와 그녀의 여동생 이르파에게 토르레이프에게 복수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며 선물을 제공한다.[18] 그들의 조언에 따라 하콘은 유목으로 나무인간(고대 노르드어 ''트레마드르''(trémaðr))을 만들고 인간의 심장을 부여한다.[18] 하콘과 두 자매는 그 후 ''트레마드르''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할버드를 무장시킨 다음 아이슬란드로 보내 토르레이프를 죽이게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다.[18]
3. 1. 욤스비킹가 사가 (Jómsvíkinga saga)
''욤스비킹가 사가'' 21장에는 10세기 후반 히요릉가보그 해전에서 욤스비킹 함대가 시그발디 스트루트-하랄드손의 지휘 아래 하콘 시구르드손과 스베인 하콘손의 함대와 전투를 벌이는 내용이 나온다. 하콘은 전투 중 회의를 소집하여 전황이 불리함을 알리고, 히요릉가 만 북쪽 프림시그네드 섬으로 가서 자신의 수호 여신인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에게 기도한다.[7] 토르게르드는 처음에는 제안을 거절했지만, 결국 하콘의 7살 아들을 블로트로 바치는 것을 받아들였고, 하콘의 노예 스코프티가 그 소년을 죽였다.[8]
하콘은 함대로 돌아와 부하들에게 공격을 명령하며, "토르게르드와 이르파 두 자매의 승리를 기원"하며 맹렬한 공격을 독려했다.[9] 하콘이 배에 오르고 함대가 공격을 시작하자 북쪽에서 악천후가 시작되어 욤스비킹 함대는 어려움을 겪었다. 그들이 던진 무기와 돌은 바람에 되돌아왔다.[9]
하콘의 함대에 있던 하바르드 더 휴잉이 토르게르드를 처음 발견했고, 이후 많은 사람들이 그녀를 보았다. 사람들은 토르게르드의 손가락에서 화살이 날아와 욤스비킹 함대의 사람들을 죽이는 것을 목격했다.[9] 욤스비킹은 시그발디에게 그들이 혼자 싸우는 것이 아니라고 말했다.[9]
폭풍이 다시 거세지자 하바르드 더 휴잉은 두 여자가 백작의 배에 서서 토르게르드가 이전에 했던 것과 같은 일을 하는 것을 보았다.[10] 시그발디는 "오거레스"와 "트롤"이라고 부르는 두 여자 때문에 퇴각을 명령했다. 욤스비킹 함대가 패배한 후, 하콘의 부하들은 폭풍 동안 떨어진 우박의 무게를 달아보았는데, 각각 온스였다.[11]
3. 2. 냘의 사가 (Njáls saga)
흐라프는 10세기와 11세기를 배경으로 하는 ''뇔의 사가''의 87장에서 하콘이 구드브란드의 집에서 축제를 벌이는 동안 하콘과 구드브란드가 소유한 사원에 침입한다.[12] 흐라프는 토르게르드의 조각상을 약탈하는데, 그녀에게서 큰 금반지와 그녀가 쓰고 있던 린넨 후드를 가져간다.[12] 다음으로 흐라프는 토르의 조각상과 토르의 수레를 발견하고, 토르의 조각상에서도 금반지를 가져갔고, 세 번째로 그곳에 있는 이르파의 조각상에서 반지를 가져갔다.[12] 흐라프는 사원 안의 모든 조각상들을 가져가, 그들의 물건을 벗겨낸 후, 새벽에 떠나기 전까지 사원을 불태운다.[12]3. 3. 산문 에다 (Prose Edda) - 시어 목록 (Skáldskaparmál)
토르게르드는 《산문 에다》의 《시어(詩語) 목록》에 언급된다. 여기에서 Hålogaland는 왕 홀기(Hölgi)의 이름을 따서 명명되었으며, 그는 토르게르드의 아버지였다고 묘사한다. 《시어(詩語) 목록》에 따르면, 돈을 포함한 블로트가 그들 모두에게 바쳐졌고, 금과 은의 층으로 만들어진 홀기를 위한 고분이 세워졌으며, 이후 흙과 돌의 층으로 덮였다.[13] 이후 《시어(詩語) 목록》에서 "트롤 아내" 목록이 주어지는데, 여기에는 홀가브루드(Hölgabrúðr)가 포함된다.[14]3. 4. 페로 제도 사가 (Færeyinga Saga)
J. L. 룬드의 "제물 바침" 그림에서는 토르의 형상에 제물을 바치는 모습을 묘사하고 있다.'''페로 제도 사가'''의 23장에서 호콘은 시그문드에게 어디에 신뢰를 두는지 묻는다. 시그문드는 자신 외에는 아무에게도 신뢰를 두지 않는다고 대답한다. 호콘은 "그렇게 하면 안 되네."라고 말하며, 자신의 모든 신뢰를 둔 곳인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에게 신뢰를 두도록 한다.[15] 호콘과 시그문드는 그녀를 만나러 가서 그녀의 손에서 행운을 구한다.[15]
두 사람은 숲 속의 작은 길을 따라가다가 울타리가 쳐진 집에 도착한다. 그 집은 금과 은으로 채워진 조각이 있는 아름다운 곳으로 묘사된다. 그들은 몇몇 사람들과 함께 집에 들어가는데, 천장의 유리 창문에서 빛이 들어와 방을 밝히고 그림자가 없었다. 그곳에는 많은 신들의 묘사가 있었고, 문 근처에는 옷을 잘 차려입은 여자가 있었다.[15]
사가는 호콘이 한동안 여자 앞에 엎드려 있었다고 전한다. 그가 일어섰을 때, 그는 시그문드에게 그녀에게 제물을 바쳐야 한다고, 그녀 앞에 있는 의자에 은을 놓아야 한다고 말했다. 호콘은 그녀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하고 그녀의 손에 든 반지를 풀면, 그녀가 이것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 수 있을 것이라 말한다. 또한 시그문드는 그 반지를 통해 행운을 얻을 것이라고 말한다.[15]
호콘은 반지를 잡으려고 했고, 시그문드에게는 그녀가 손으로 반지를 움켜쥐는 것처럼 보였다. 호콘은 반지를 받지 못했다. 호콘은 그녀 앞에서 두 번째로 엎드렸고, 시그문드는 호콘이 울고 있는 것을 알아차렸다. 그는 다시 일어섰고, 반지를 잡았고, 그것이 풀린 것을 발견했다. 호콘은 시그문드에게 반지를 주고, 결코 그것을 떼어놓아서는 안 된다고 말했다. 시그문드는 이에 동의했고, 그들은 헤어져 각자 배로 돌아갔다. 폭풍이 나타나 두 배는 서로 멀리 떨어졌고, 그 후 많은 날들이 흘렀다고 묘사된다.[15]
3. 5. 하르다르 사가 오크 홀름베르야 (Harðar saga ok Hólmverja)
하르다르 사가 오크 홀름베르야의 19장에서 하콘과 가까운 고디인 그림켈 비아르나르손은 딸의 성공적인 결혼을 빌기 위해 토르게르드 홀가브루드의 신전(호프)에 간다.[16] 그가 도착했을 때, 신들은 떠날 준비를 하고 있었다.[16] 그림켈은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고 말하는 토르게르드와 언쟁을 벌인 후, 모든 신들과 함께 호프를 불태운다.[16] 그날 저녁, 그림켈은 저녁 식사 자리에서 갑자기 죽는다.[16]
3. 6. 케틸의 사가 호잉스 (Ketils saga hœngs)
케틸의 사가 호잉스 5장에서 케틸은 숲에서 만난 트롤 여인에게서 트롤들의 회합인 "트롤라-팅"에 대한 이야기를 듣는다. 트롤 여인에 따르면, 그 회합에는 트롤 왕 스켈킹그르와 토르게르드 호르가트뢸이 주요 인물로 참석할 예정이었다.[17]3. 7. 토르레이프 야를스칼드 (Þorleifs þáttr jarlsskálds)
토르레이프 아스게이르손은 "야를의 시인"으로 알려진 ''야를스칼드''(jarlsskáld)로서, 야를 하콘의 연회장에서 폭력적이고 마법적인 시를 읊는다.[18] 《올라프 트리그바손 사가》의 173장에 해당되는 제7장에서 하콘은 부상에서 회복한 후 토르게르드 호르다브루드와 그녀의 여동생 이르파에게 토르레이프에게 복수하는 최선의 방법에 대한 조언을 구하며 선물을 제공한다.[18] 그들의 조언에 따라 하콘은 유목으로 나무인간(고대 노르드어 ''트레마드르''(trémaðr))을 만들고 인간의 심장을 부여한다.[18] 하콘과 두 자매는 그 후 ''트레마드르''에게 생명을 불어넣고 할버드를 무장시킨 다음 아이슬란드로 보내 토르레이프를 죽이게 하는데, 실제로 그렇게 된다.[18]4. 학설
토르게르드와 이르파에 관해서는 여러 가지 설이 존재한다.[19]
수호 여신힐다 엘리스 데이비슨은 토르게르드와 이르파를 게르만 이교에서 수호 여신의 예시로 여기며, 그들의 역할을 디스와 발키리의 역할과 비교한다.[21] 데이비슨은 헬기가 호르갈란드의 신화적인 창시자라면, 토르게르드의 마지막 이름("헬기의 신부")을 설명할 수 있으며, 그 결과 그녀는 차례로 왕국의 각 통치자의 아내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21][20] 데이비슨은 이 역할을 바이킹 시대에 왕이나 지도자가 발할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설명과 비교하며, 왕을 환영하는 수호 여신의 아이디어는 본질적으로 귀족적인 개념이었고, 이러한 전통이 시 ''하콘의 시''(Hákonarmál)를 예로 들어 죽은 왕을 사후 세계로 맞이하는 귀족 발키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21]
프레이야와의 연관성데이비슨은 토르게르드의 이름이 원래 게르드였을 수 있다고 이론화하며, 이 형태가 초기 스칼드 시에서 발견되고, 여신 프레이야에게 주어진 이름 중 하나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21] 데이비슨은 하콘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올라프 사가 트리그바손》의 48장에서 땅 속에 숨어 있던 돼지를 통해 같은 여신에게 의지했을 수 있으며, 이는 프레이야의 둔덕을 상징할 수 있는데, 그녀의 이름 중 하나는 "암퇘지"(고대 노르드어: ''sýr'')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21] 노르웨이의 올라프 1세가 하콘의 죽음 이후 토르게르드의 조각상을 사원에서 끌어내 프레이르 (프레이야의 남성 쌍둥이)의 묘사 옆에서 불태운 이야기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한다고 이론화한다.[21]
이르파의 역할이르파는 이름이 "짙은 갈색"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대지의 여신으로 추정되었지만,[22] F.R. 슈뢰더는 이러한 증거를 바탕으로 이르파가 대지의 여신이라고 결론짓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5] 존 맥키넬은 이르파가 "검은" 측면을 나타낼 수 있으며, 그녀의 이름이 "거무스름한"을 의미할 수 있으며, 두 인물은 아마도 대조적인 외모를 가졌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이르파는 이름을 짓기에 불운했고 트롤로 여겨졌다.[4] 맥키넬은 또한 이르파와 헬 사이의 연관성을 제안하며, 두 인물이 동의어로 여겨졌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4]
기타 학설노라 채드윅(1950)은 토르게르드와 이르파의 신화적 전설이 하콘의 아내 토라와 그녀의 여동생 구드룬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혼동되고 뒤얽혔을 것이라고 제안했다.[23] 그리고 '데인족의 사적'에 등장하는 방패 여전사 라게르타의 모습 역시 토르게르드의 일면일 수 있다고 보았다.[24] 로테 모츠(1993)는 토르게르드가 이교도 스칸디나비아에서 숭배를 받은, 희귀한 거인 여신 숭배의 사례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25]
4. 1. 수호 여신
힐다 엘리스 데이비슨은 토르게르드와 이르파를 게르만 이교에서 수호 여신의 예시로 여기며, 그들의 역할을 디스와 발키리의 역할과 비교한다.[21] 데이비슨은 헬기가 호르갈란드의 신화적인 창시자라면, 토르게르드의 마지막 이름("헬기의 신부")을 설명할 수 있으며, 그 결과 그녀는 차례로 왕국의 각 통치자의 아내가 되었을 것이라고 말한다.[21][20] 데이비슨은 이 역할을 바이킹 시대에 왕이나 지도자가 발할라에 들어가는 것에 대한 설명과 비교하며, 왕을 환영하는 수호 여신의 아이디어는 본질적으로 귀족적인 개념이었고, 이러한 전통이 시 ''하콘의 시''(Hákonarmál)를 예로 들어 죽은 왕을 사후 세계로 맞이하는 귀족 발키리를 설명할 수 있다고 말한다.[21]4. 2. 프레이야와의 연관성
데이비슨은 토르게르드의 이름이 원래 게르드였을 수 있다고 이론화하며, 이 형태가 초기 스칼드 시에서 발견되고, 여신 프레이야에게 주어진 이름 중 하나라는 점을 근거로 제시한다.[21] 데이비슨은 하콘이 죽음을 맞이하기 직전, 《올라프 사가 트리그바손》의 48장에서 땅 속에 숨어 있던 돼지를 통해 같은 여신에게 의지했을 수 있으며, 이는 프레이야의 둔덕을 상징할 수 있는데, 그녀의 이름 중 하나는 "암퇘지"(고대 노르드어: ''sýr'')를 의미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한다.[21] 노르웨이의 올라프 1세가 하콘의 죽음 이후 토르게르드의 조각상을 사원에서 끌어내 프레이르 (프레이야의 남성 쌍둥이)의 묘사 옆에서 불태운 이야기가 이러한 견해를 뒷받침한다고 이론화한다.[21]4. 3. 이르파의 역할
이르파는 이름이 "짙은 갈색"을 의미하는 단어에서 유래했기 때문에 대지의 여신으로 추정되었지만,[22] F.R. 슈뢰더는 이러한 증거를 바탕으로 이르파가 대지의 여신이라고 결론짓는 것에 대해 비판적인 입장을 표명했다.[5] 존 맥키넬은 이르파가 "검은" 측면을 나타낼 수 있으며, 그녀의 이름이 "거무스름한"을 의미할 수 있으며, 두 인물은 아마도 대조적인 외모를 가졌을 것이라고 제안한다. 이르파는 이름을 짓기에 불운했고 트롤로 여겨졌다.[4] 맥키넬은 또한 이르파와 헬 사이의 연관성을 제안하며, 두 인물이 동의어로 여겨졌을 수 있다고 언급했다.[4]4. 4. 기타 학설
노라 채드윅(1950)은 토르게르드와 이르파의 신화적 전설이 하콘의 아내 토라와 그녀의 여동생 구드룬에 대한 역사적 기록과 혼동되고 뒤얽혔을 것이라고 제안했다.[23] 그리고 '데인족의 사적'에 등장하는 방패 여전사 라게르타의 모습 역시 토르게르드의 일면일 수 있다고 보았다.[24] 로테 모츠(1993)는 토르게르드가 이교도 스칸디나비아에서 숭배를 받은, 희귀한 거인 여신 숭배의 사례였을 것이라고 주장했다.[25]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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