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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시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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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톰 시버는 1944년 캘리포니아 프레즈노에서 태어나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MLB)에서 20시즌 동안 활약한 투수이다. 1967년 뉴욕 메츠에서 데뷔하여 1977년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기까지 메츠의 에이스로 활약했으며, 이후 시카고 화이트삭스와 보스턴 레드삭스를 거쳐 1986년 은퇴했다. 통산 311승을 기록하고 3번의 사이 영 상을 수상했으며, 1992년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 16번의 개막전 선발 등판은 메이저 리그 기록이며, 10타자 연속 삼진 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은퇴 후에는 야구 해설가로 활동했고, 2020년 레비 소체 치매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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톰 시버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톰 시버, 뉴욕 메츠 시절 (1971년경)
이름톰 시버
원어 이름Tom Seaver
출생일1944년 11월 17일
출생지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
사망일2020년 8월 31일
사망지캘리포니아주 칼리스토가
포지션투수
투구우투
타석우타
신장185 cm
체중93 kg
선수 경력
데뷔 리그MLB
데뷔일1967년 4월 13일
데뷔 팀뉴욕 메츠
최종 리그MLB
최종일1986년 9월 19일
최종 팀보스턴 레드삭스
소속 팀뉴욕 메츠 (1967년–1977년)
신시내티 레즈 (1977년–1982년)
뉴욕 메츠 (1983년)
시카고 화이트삭스 (1984년–1986년)
보스턴 레드삭스 (1986년)
통계 (MLB)
승패 기록311승 205패
평균 자책점2.86
탈삼진3,640
수상 내역
올스타12회 (1967년–1973년, 1975년–1978년, 1981년)
월드 시리즈 우승1969년
사이 영 상3회 (1969년, 1973년, 1975년)
올해의 신인상1967년 (내셔널 리그)
최다 승3회 (1969년, 1975년, 1981년, 내셔널 리그)
평균 자책점 1위3회 (1970년, 1971년, 1973년, 내셔널 리그)
최다 탈삼진5회 (1970년, 1971년, 1973년, 1975년, 1976년, 내셔널 리그)
노히트 노런1978년 6월 16일
영구 결번뉴욕 메츠 41번
명예의 전당뉴욕 메츠 명예의 전당, 신시내티 레즈 명예의 전당
명예의 전당 헌액
유형국립 야구 명예의 전당
헌액 년도1992년
득표율98.8% (첫 투표)
기타 정보
국적미국
대학남캘리포니아 대학교

2. 생애

톰 시버는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서 태어나 9세 때 리틀 리그 야구를 시작했다. 12세에 첫 무안타를 투구했고, 샌디 쿠팩스를 영웅으로 삼아 투수 기술을 배웠다.[1] 프레즈노 고등학교 시절, 학교 야구투수로 활약하며, 작은 체격과 힘의 부족을 뛰어난 제구력으로 보완했다.[1] 1962년 미 해병대 예비군에 입대하여 1963년까지 트웬티나인팜스에서 복무했고, 1970년까지 예비군으로 복무했다.[2][3] 프레즈노 시티 칼리지를 거쳐 남가주 대학교(USC)에서 대학 야구를 했다.[1]

1965년 USC 2학년 시절, 10승 2패를 기록한 시버는 1965 메이저리그 야구 드래프트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지명되었으나, 계약금 문제로 입단하지 않았다.[40][4] 1966년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와 계약했지만, 야구 커미셔너 윌리엄 에커트에 의해 무효화되었다.[40] 이후 NCAA 규정 위반으로 대학 야구 출전 자격을 잃었으나, 아버지의 항의와 소송 위협으로 다른 팀들이 브레이브스의 제안을 따라 할 수 있게 되었다.[4] 추첨 결과 필라델피아 필리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를 제치고 뉴욕 메츠가 시버의 계약권을 획득했다.[5]

1966년 마이너 리그 트리플A 인터내셔널 리그 잭슨빌 선즈에서 프로 경력을 시작하여 12승 12패, 평균자책점 3.13을 기록했다.[6] 1967년 뉴욕 메츠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 16승 13패, 평균자책점 2.76으로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8] 1969년 25승을 거두며 첫 사이 영 상을 수상했고, 1969년 월드 시리즈에서 메츠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1970년 4월 22일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10타자 연속 탈삼진(MLB 신기록) 및 1경기 19탈삼진(당시 MLB 기록)을 기록했다.[82]

1973년 두 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하고 1973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패했다. 1975년 22승으로 세 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1976년 메츠 총지배인과의 갈등으로 1977년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했다.[91] 1978년 6월 16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유일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29]

1982년 시즌 후 뉴욕 메츠로 복귀, 1983년 4월 5일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며 월터 존슨의 메이저리그 개막전 최다 선발 등판 기록(14회)과 타이를 이루었다.[32] 1984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 1985년 8월 4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300승을 달성했다.[37] 1986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1986년 월드 시리즈에는 출전하지 못하고 은퇴했다.

은퇴 후 뉴욕 메츠뉴욕 양키스 경기 해설가로 활동했고,[75] 캘리포니아주에서 와인 농장을 운영하며 와인 생산자로 활동했다. 2019년 치매 진단을 받고 공개 활동을 중단했으며, 2020년 8월 31일 레비 소체 치매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사망했다.[74][75][76]

1966년 6월 9일 낸시 린 맥킨타이어와 결혼하여 슬하에 두 딸을 두었다.[61]

2. 1. 유년 시절 및 아마추어 경력

캘리포니아주 프레즈노에서 태어난 시버는 9세 때 리틀 리그 야구를 시작하여 12세 때 첫 무안타를 기록했다.[1] 그는 샌디 쿠팩스를 영웅으로 삼아 투수의 기술을 공부했다.

프레즈노 고등학교 시절, 시버는 학교 야구 팀에서 투수로 활약하며, 작은 체격과 힘의 부족을 마운드에서 뛰어난 제구력을 개발하여 보완했다.[1] 1962년 6월 28일 미 해병대 예비군에 입대하여 1963년 7월까지 트웬티나인팜스에서 복무했다.[2] 예비군에서 6개월간 현역 복무 후, 프레즈노 시티 칼리지에 입학했다.[1] 이후 1970년까지 예비군에서 복무했다.[3]

남가주 대학교(USC)는 시버에게 대학 야구를 제안했다. USC는 시버가 장학금을 받을 만한 가치가 있는지 확인하기 위해 1964년 여름 알래스카의 페어뱅크스 알래스카 골드패너스(페어뱅크스)에서 투구하도록 했다. 그는 뛰어난 시즌을 보냈고, 전국 토너먼트에서 만루홈런을 치며 경기를 승리로 이끌었으며, USC 감독 로드 드도는 그에게 장학금을 수여했다. 1965년 2학년 시절, 시버는 트로이 야구단에서 10승 2패를 기록했다.[40]

2. 2. 프로 선수 경력

톰 시버는 1966년 마이너 리그 트리플A 인터내셔널 리그의 잭슨빌 선즈에서 12승 12패, 평균자책점 3.13을 기록하며 프로 선수 경력을 시작했다.[6]

1967년 뉴욕 메츠에서 메이저 리그에 데뷔하여 16승 13패, 평균자책점 2.76을 기록하며 신인왕을 수상했다.[8] 1969년에는 25승을 거두며 첫 사이 영 상을 수상했고, 1969년 월드 시리즈에서 메츠의 창단 첫 우승을 이끌었다. 이때 메츠의 약진은 "미라클 메츠"라고 불렸다.

1970년 4월 22일에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6회 2사부터 MLB 신기록인 10타자 연속 탈삼진을 달성하는 동시에, 당시 MLB 기록과 같은 1경기 19탈삼진을 기록했다.[82] 10타자 연속 탈삼진은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어 있다.[83]

1973년에는 개인 통산 두 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했고, 1973년 월드 시리즈에 진출했으나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에 패했다. 1975년에는 22승을 거두며 세 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1976년 시버는 메츠의 총지배인 M. 도널드 그랜트와 연봉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었다. 1977년 6월 메츠는 4명의 선수들을 대가로 시버를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시켰다.[91] 시버는 신시내티 레즈에서 1977년 14승을 추가하며, 1953년 버질 트럭스 이후 단일시즌 첫 번째 팀 2완봉승 이상-두 번째 팀 2완봉승 이상+같은 해 통산 선발 20승 이상 투수가 됐다.

1978년 6월 16일,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개인 통산 유일한 노히트 노런을 기록했다.[29]

1982년 시즌 후, 시버는 뉴욕 메츠로 복귀했다. 1983년 4월 5일, 1983년 시즌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며 월터 존슨의 메이저리그 개막전 최다 선발 등판 기록(14회)과 타이를 이루었다.[32]

1984년,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이적한 시버는 1985년 8월 4일, 뉴욕 양키스를 상대로 300승을 달성했다.[37]

1986년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으나, 무릎 부상으로 1986년 월드 시리즈에는 출전하지 못했다. 시버는 1986년 시즌을 끝으로 은퇴했다.

2. 2. 1. 마이너 리그 (1966)

1966년, 시버는 인터내셔널 리그 소속 메츠 산하 잭슨빌 선즈에서 트리플A 선수로 뛰며 12승 12패, 평균자책점 3.13을 기록했다.[6]

2. 2. 2. 뉴욕 메츠 (1967-1977)

시버는 1967년 메츠 명단에 이름을 올렸고, 1967년 올스타전에 출전하여 15회말 무실점으로 세이브를 기록했다.[7] 신인 시즌에 시버는 최하위 메츠에서 16승 13패, 18경기 완투, 170개 삼진, 2.76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고, 1967년 내셔널리그 신인상을 수상했다.[8]

시버는 나중에 올스타전 직전에 헨리 애런에게 사인을 받으러 갔던 일을 회상했다. 시버는 베테랑 선수가 자신을 알아보지 못할 것이라고 확신했기 때문에 애런에게 자신을 소개할 필요성을 느꼈다. 애런은 시버에게 "꼬마야, 난 네가 누군지 알고 있고, 네 선수 생활이 끝나기 전에 이 경기장에 있는 모든 사람들이 네가 누군지 알게 될 거야."라고 대답했다.[9]

시버는 개막전에서 1968년 메츠 선발 투수로 나섰다.[10] 그는 그 시즌에 다시 16승을 거두었고, 9시즌 연속 200개 이상의 삼진을 기록했지만, 메츠는 순위에서 한 계단만 상승하여 9위에 머물렀다.[11]

1969년 시버는 리그 최다인 25승을 거두었고, 9경기 연속 완투승을 기록했다. 그는 첫 번째 내셔널리그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또한 리그 최우수 선수상에서 윌리 매코비에게 이어 2위를 차지했다.[12]

1969년 7월 9일 뉴욕의 셰이 스타디움에서 59,000명 이상의 관중 앞에서 시버는 디비전 선두 시카고 컵스를 상대로 이닝 동안 완벽한 투구를 선보였다. 그러나 신인 백업 외야수 짐 퀄스가 좌익수 앞에 깨끗한 안타를 쳐 시버의 퍼펙트 게임 도전을 저지했다.[13][14]

첫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 시버는 1차전에서 애틀랜타의 필 니크로를 제치고 9-5 승리를 거두었다. 시버는 월드 시리즈 1차전 선발 투수로도 나섰지만,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마이크 쿠엘라에게 4-1로 패했다. 그런 다음 시버는 4차전에서 10이닝 완투승을 거두며 2-1 승리를 이끌었다. "기적의 메츠"가 시리즈 우승을 차지했다.[1] 연말에 시버는 최고의 프로 선수에게 주어지는 히콕 벨트와 ''스포츠 일러스트레이티드''지의 "올해의 스포츠맨" 상을 수상했다.[15][16]

1974년 셰이 스타디움에서의 시버


1970년 4월 22일, 시버는 셰이 스타디움에서 샌디에이고 파드리스와의 경기에서 마지막 10명의 타자를 삼진으로 잡으며 메이저 리그 기록을 세웠다.[75] 2회초 파드리스의 득점을 기록한 홈런을 친 알 페라라가 이 연속 삼진 기록의 첫 번째와 마지막 삼진의 주인공이 되었다. 10개의 연속 삼진 외에도 시버는 당시 스티브 칼튼의 메이저 리그 기록과 동률을 이룬 9이닝 경기에서 19개의 삼진을 기록했다.[17][18] (이 기록은 나중에 케리 우드, 랜디 존슨, 맥스 셔저, 그리고 두 번의 로저 클레멘스에 의해 20개의 삼진 경기로 깨졌다.)[19] 8월 중순까지 시버의 기록은 17승 6패였고, 그는 두 번째 20승 시즌을 기록할 것처럼 보였다. 하지만 그는 마지막 10경기 중 1경기만 승리했고, 4경기는 짧은 휴식 후 출전했으며, 18승 12패로 시즌을 마쳤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시버는 평균자책점(2.82)과 삼진(283개)에서 내셔널리그를 이끌었다.[20]

1971년, 시버는 평균자책점(1.76)과 삼진(286이닝에서 289개)에서 리그를 이끌었고 20승 10패를 기록했다. 그러나 그는 시카고 컵스의 퍼거슨 젠킨스에게 사이 영 상 투표에서 2위를 차지했다. 젠킨스는 리그 최다인 24승, 325이닝 투구, 그리고 뛰어난 제구력을 보였기 때문이다.[21]

시버는 1971년, 1972년, 1975년, 1977년에 20승 이상을 기록했다. 그는 메츠에서 1973년과 1975년에 사이 영 상을 두 번 더 수상했다. 1970년부터 1976년까지 시버는 5번 내셔널리그 삼진 부문을 이끌었고, 1972년에는 2위, 1974년에는 3위를 기록했다. 시버는 메츠 소속으로 평균자책점 타이틀도 3번 획득했다. 시버에 대한 두 가지 유명한 인용구는 레지 잭슨에게서 나온 것이다. "눈먼 사람들도 그의 투구를 듣기 위해 경기장에 온다."[22] 다른 하나는 1973년 월드 시리즈에서 메츠가 3승 2패로 앞서고 두 번째 우승을 눈앞에 둔 상황에서 나왔다. 시버는 그 경기 선발 투수로 나섰지만, 그날은 제 실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패했다. 잭슨은 "시버는 그날 심장으로 투구했다"고 말했다고 전해진다. 시버는 그의 무릎이 땅에 닿을 정도로 힘찬 다리와 허리 동작을 이용하는 오버핸드 투구 자세로 알려져 있었다.[23]

1977년 자유 계약이 시작되었고, 메츠 구단주와 시버 간의 계약 협상은 순조롭지 않았다. 시버는 다른 최고 투수들의 연봉 수준에 맞추기 위해 계약을 재협상하려 했지만, 당시 메츠 경영진으로부터 원하는 대로 할 수 있는 전권을 위임받은 이사회 의장 M. 도널드 그랜트는 꿈쩍도 하지 않았다. 오랫동안 뉴욕 데일리 뉴스의 칼럼니스트였던 딕 영은 시버의 "탐욕스러운" 요구에 대해 부정적인 칼럼을 정기적으로 작성했다. 시버는 구단주 로린다 드 룰레에게 가서 문제 해결을 시도했는데, 로린다 드 룰레는 단장 조 맥도널드와 함께 6월 중순까지 3년 계약 연장을 원칙적으로 협상했다. 그러나 계약이 체결되기 전에 영은 데일리 뉴스에 출처를 밝히지 않은 기사를 작성하여 시버가 아내의 부추김을 받아 캘리포니아 에인절스에서 더 많은 돈을 버는 놀란 라이언을 시기해서 더 많은 돈을 요구하고 있다고 보도했다. 시버는 이 기사를 보고 드 룰레와 맥도널드에게 즉시 트레이드를 원한다고 알렸다. 그는 그랜트와 공존할 수 없다고 믿었기 때문이다.[24]

뉴욕 스포츠 기자들이 "자정의 대학살"(다른 하나는 부진한 외야수 데이브 킹맨과 관련이 있었다)이라고 부른 두 건의 트레이드 중 하나에서 시버는 1977년 6월 15일 트레이드 마감 시한에 신시내티 레즈로 트레이드되었다. 그 대가로 투수 팻 잭리, 마이너리그 외야수 스티브 헨더슨, 내야수 더그 플린, 마이너리그 외야수 댄 노먼을 받았다.[25][26]

1965년 MLB 드래프트 10라운드 전체 190순위에서 로스앤젤레스 다저스에 지명되었으나 계약하지 않았다.[77] 1966년 1월 드래프트에서 애틀랜타 브레이브스에 지명되었으나, 재학 중이던 서던캘리포니아 대학교 규정으로 무효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브레이브스와는 계약할 수 없었고, 대학에서는 출전 정지 처분을 받아 신분이 불확실해졌다. 브레이브스가 지불할 예정이었던 계약금이 보장되는 것을 조건으로 한 구제를 위한 특별 드래프트가 실시되었고, 추첨 결과 협상권을 획득한 뉴욕 메츠와 4월 3일에 계약했다.[78]

1967년 4월 13일 피츠버그 파이리츠전에서 메이저 리그 데뷔를 했다. 신인이면서 1967년 MLB 올스타전에 선출되어 9회에 등판하여 세이브를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16승 13패, 평균자책점 2.76을 기록하며 리그 최하위 팀에서 혼자 분전했다. 오프시즌에는 최하위 팀 출신으로는 사상 최초로 신인왕을 수상했다.

1968년에는 개막 투수를 맡았다. 4월 15일 휴스턴 애스트로스전에서는 10이닝을 2피안타 무실점으로 호투했으나 승패 없이 경기를 마쳤다.[79][80] 이후에도 호투했으나 援護가 없어 5월까지 평균자책점 1.91에도 불구하고 2승에 그쳤지만, 6월에 5승을 거두었다. 최종적으로 16승 12패, 평균자책점 2.20, 205탈삼진의 성적을 남겼고, 팀은 구단 사상 최고 승률 .451을 기록했다.

1969년에는 팀 확장으로 4개 구단이 새롭게 생겨나 동서 2지구제가 되었다. 7월 9일 시카고 컵스전에서 9회 1사까지 퍼펙트로 막고, 1피안타 무사사구의 준완투승을 거두는 등[81], 전반기에 8연승을 포함해 14승을 기록했다. 후반기에는 평균자책점 1.67, 8월 9일부터 3완봉을 포함한 10연승을 기록했다. 25승 7패, 평균자책점 2.21, 208탈삼진을 기록하며 다승왕 타이틀을 획득했다. 팀은 100승을 거두고 지구 우승을 달성했다. 브레이브스와의 1969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7이닝 5실점에도 불구하고 승리 투수가 되었고, 팀은 3연승으로 구단 창설 이래 최초로 리그 우승을 차지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와의 1969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선발 등판했으나 5이닝 4실점으로 패전 투수가 되었다. 4차전에서는 9회에 동점을 허용했으나 연장 10회까지 1실점 완투로 승리에 매우 가까워졌다. 5차전에서도 승리하여 4승 1패로 월드 챔피언에 등극했다. 같은 해 메츠의 약진은 "미라클 메츠"라고 불렸다. 오프시즌에 첫 사이 영 상을 수상했고, MVP 투표에서는 윌리 매코비와 22포인트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1970년 4월 22일에는 경기 전에 전년도 사이 영 상 시상식이 열렸다. 경기에서는 샌디에이고 파드리스를 상대로 6회 2사부터 MLB 신기록인 10타자 연속 탈삼진을 달성하는 동시에, 스티브 칼튼이 보유했던 당시 MLB 기록과 같은 1경기 19탈삼진을 기록했다.[82] 10타자 연속 탈삼진은 기네스 세계 기록에 등재되어 있다.[83] 개막부터 6연승, 6월 9일부터는 9연승을 하는 등 전반기에는 14승 5패, 평균자책점 2.40, 178탈삼진의 성적을 거두었고, 1970년 MLB 올스타전에서는 선발 투수를 맡았다. 후반기에는 4승에 그쳤으나, 18승 12패, 평균자책점 2.82, 283탈삼진을 기록했다. 최종적으로 최우수 평균자책점과 최다 탈삼진 2관왕을 획득했다.

1971년에는 20승 10패, 평균자책점 1.76, 커리어 하이인 289탈삼진을 기록하며 2년 연속으로 최우수 평균자책점과 최다 탈삼진 2관왕을 차지했다.

1972년에는 21승 12패, 평균자책점 2.92의 성적을 기록했다.

1973년에는 19승 10패, 평균자책점 2.08, 251탈삼진, 리그 톱인 18완투를 기록하며 3번째 최우수 평균자책점과 최다 탈삼진 2관왕을 획득했다. 팀은 4년 만에 지구 우승을 달성했다. 신시내티 레즈와의 1973년 내셔널리그 챔피언십 시리즈에서는 1차전에 선발 등판하여 13탈삼진 무사사구 완투의 호투를 보였으나, 9회에 조니 벤치에게 끝내기 홈런을 맞고 패전 투수가 되었다. 2승 2패 동률로 맞이한 최종 5차전에서는 9회 중반까지 2실점 호투로 승리 투수가 되어 리그 우승에 기여했다. 오클랜드 애슬레틱스와의 1973년 월드 시리즈에서는 3차전에서 8이닝 12탈삼진 호투에도 불구하고 승패 없이 경기를 마쳤다. 6차전에서도 7이닝 2실점으로 호투했으나 援護가 없어 패전 투수가 되었고, 팀은 3승 4패로 패퇴했다. 오프시즌에 2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1974년에는 개막부터 컨디션이 오르지 않아 11승 11패, 평균자책점 3.20으로 다소 아쉬운 성적으로 시즌을 마쳤다. 오프시즌의 日米 야구에서 메츠의 일원으로 일본을 방문했다.

1975년에는 부활을 이루어 전반기에 8연승을 포함해 13승을 거두고, 2년 만에 1975년 MLB 올스타전에 선출되었다. 후반기에도 7연승을 하는 등 최종적으로 22승 9패, 평균자책점 2.38, 243탈삼진을 기록하며 다승왕과 최우수 평균자책점 2관왕을 획득했다. 오프시즌에 3번째 사이 영 상을 수상했다.

1976년에는 14승 11패, MLB 기록인 9년 연속 200탈삼진인 235탈삼진으로 5번째 최다 탈삼진을 기록했다.

2. 2. 3. 신시내티 레즈 (1977-1982)

1976년 시버는 메츠의 총지배인 M. 도널드 그랜트와 연봉 문제 등으로 갈등을 겪었다. 1977년 6월 메츠는 4명의 선수들을 대가로 7승(3완봉승)을 기록한 시버를 신시내티 레즈로 이적시켰다.[91] 이적 후 시버는 14승(4완봉승)을 추가하며[91] 1953년 버질 트럭스 이후 단일시즌 첫 번째 팀 2완봉승 이상-두 번째 팀 2완봉승 이상+같은 해 통산 선발 20승 이상 투수가 됐다. 1977년 시즌 총 21승을 기록했다. 여기에는 메츠 시절 그의 옛 홈구장인 셰이 스타디움으로 돌아와 메츠를 상대로 거둔 5-1 승리도 포함된다. 시버는 이 경기에서 11개의 삼진을 잡았고 2루타도 기록했다. 또한 뉴욕의 양키 스타디움에서 열린 올스타전에서도 뜨거운 박수갈채를 받았다.

레즈 시절의 시버


시버가 뉴욕을 떠난 것은 팬들의 부정적인 반응을 불러일으켰고, 메츠는 리그 최약체 팀이 되어 다음 3시즌 동안 최하위를 기록했다. 양키스의 부활과 맞물려 1978년 뉴욕 메츠 시즌 동안 관중 수가 감소했고, 1979년 뉴욕 메츠 시즌에는 경기당 9,740명으로 급감했다. M. 도널드 그랜트는 1978년 시즌 후 해고되었고, 조 맥도널드는 출판업계 거물 넬슨 더블데이 주니어에게 팀이 매각된 후 1979년 시즌 후 해고되었다.[27] 셰이 스타디움은 일반 매니저를 풍자적으로 비꼬는 의미에서 "그랜트의 무덤"이라는 별명을 얻었다.[28]

메츠 시절 5번의 1피안타 경기를 포함하여, 9회에 노히트 경기가 무산된 경기가 두 번 있었던 시버는 1978년 6월 16일 리버프런트 스타디움에서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를 상대로 레즈 소속으로 4-0 노히터를 기록했다.[29] 이는 그의 프로 경력에서 유일한 노히터였다.[30]

그는 레즈가 서부 지구에서 우승한 1979년과 파업으로 단축된 1981년 시즌(레즈가 메이저 리그 최고 승률을 기록한 시즌)에 신시내티의 투수진을 이끌었다. 1981년 시즌에서 시버는 뛰어난 14승 2패의 성적으로 1981년 사이 영 상을 페르난도 발렌수엘라에 이어 근소한 차이로 2위를 차지했다. (시버는 이전 두 시즌에서 3위와 4위를 기록했다.) 1981년 두 번의 패배 중 한 경기에서 시버는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키스 허난데스를 상대로 3,000번째 삼진을 기록했다. 1982년에는 부상으로 고전하며 5승 13패로 시즌을 마무리했다.[31]

레즈에서 6시즌 동안 시버는 158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75승 46패, 평균자책점 3.18, 42경기 완투를 기록했다.[31]

2. 2. 4. 뉴욕 메츠 복귀 (1983)

1982년 12월 16일, 찰리 풀레오, 로이드 매클렌던, 제이슨 펠리체와의 트레이드를 통해 친정팀 뉴욕 메츠로 복귀했다.[40] 1983년 4월 5일, 1983년 시즌 개막전에 선발 등판하며 월터 존슨의 메이저리그 개막전 최다 선발 등판 기록(14회)과 타이를 이루었고, 필라델피아 필리스를 상대로 6이닝 무실점으로 메츠의 2-0 승리에 기여했다.[32] 하지만 그는 그 시즌 9승 14패의 부진한 성적을 기록했다.[31]

2. 2. 5. 시카고 화이트삭스 (1984-1986)

1984년 1월 20일, 시카고 화이트삭스는 자유 계약 선수 보상 드래프트에서 메츠로부터 시버를 영입했다.[40] 메츠의 단장 프랭크 캐신은 고액 연봉의 39세 선발 투수를 아무도 원하지 않을 것이라고 잘못 판단하여 그를 보호 명단에서 제외했다.[34]

시버는 시카고에서 2년 반 동안 활약하며 1985년 7월 19일, 방문 경기 인디언스전에서 마지막 완봉을 기록했다. 특이하게도 1984년 5월 9일에는 두 경기에서 승리했는데, 전날 중단된 경기의 25번째이자 마지막 이닝을 구원으로 던져 밀워키 브루어스를 상대로 승리한 후, 같은 날 정규 경기에 선발 등판하여 브루어스를 상대로 승리했다.[35][36]

1985년 8월 4일, 시버는 양키 스타디움에서 양키스를 상대로 300승을 달성했다. 그는 완투 경기에서 4대 1로 승리했으며, 메츠의 해설자 린지 넬슨이 중계석에 있었다.[37][38]

시버는 1986년 개막전에 커리어 마지막이자 16번째로 선발 등판했다.[39] 화이트삭스에서 3시즌 동안 시버는 81경기에 등판하여 33승 28패, 평균자책점 3.67, 완투 17경기를 기록했다.[31]

2. 2. 6. 보스턴 레드삭스 (1986)

Steve Lyons영어와의 트레이드로 보스턴 레드삭스로 이적했다.[40] 시버의 311번째이자 마지막 승리는 1986년 8월 18일, 미네소타 트윈스를 상대로 거두었다.

무릎 부상으로 시버는 레드삭스 소속으로 뉴욕 메츠와의 1986년 월드시리즈에 출전하지 못했지만, 1차전 선수 소개 때 가장 큰 박수갈채를 받았다. 로저 클레멘스는 시버와 한솥밥을 먹은 시간이 그가 투수에서 투피처로 전환하는 데 큰 도움이 되었다고 말한다. 레드삭스는 시버에게 1987년 시즌 계약으로 만족할 만한 금액을 제시하지 않았다. 시버의 1986년 연봉은 100만달러였지만, 레드삭스는 500000USD를 제시했고 시버는 거절했다. 새로운 계약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자, 시버는 1986년 11월 12일 자유 계약 선수가 되었다.[40]

시버는 1986년 보스턴에서 16경기에 선발 출전하여 5승 7패, 평균자책점 3.80을 기록했다.[31]

2. 3. 은퇴 이후

시버는 선수 은퇴 후 야구 해설가로 활동하며, 뉴욕 메츠뉴욕 양키스의 경기 중계를 맡았다.[75]

은퇴 후 캘리포니아로 돌아가 와인 농장을 운영하며 와인 생산자로도 활동했다. 2002년에는 116에이커(47ha) 부지에 3.5에이커(1.4ha) 규모의 '시버 패밀리 비니어드'라는 자신의 포도원을 설립했다.[61][62] 2005년에 첫 빈티지를 생산했고,[63][64][65] 2010년 4월 소호에서 열린 와인 시음 행사에서 "낸시스 팬시"와 "GTS"라는 두 가지 카베르네 와인을 선보여 호평을 받았다.[66]

시버는 밥 깁슨, 샌디 쿠팩스, 스티브 칼튼 등과 함께 명예의 전당 헌액식에 매년 참석하여, 오테사가 호텔에서 열리는 만찬에 자신이 만든 와인을 가져와 함께 나누기도 했다.[67][68]

2019년 3월 7일, 시버의 가족은 그가 치매를 앓고 있어 공개 활동을 중단한다고 발표했다.[74] 2020년 8월 31일, 레비 소체 치매와 코로나19 합병증으로 인해 수면 중 사망했다. 향년 75세였다.[75][76]

3. 선수로서의 특징

톰 시버는 강력한 패스트볼과 슬라이더, 커브, 체인지업 등 다양한 구종을 구사했다. 뛰어난 제구력과 경기 운영 능력을 갖춘 투수였다. 투구 시 무릎이 땅에 닿을 정도로 역동적인 투구폼을 가지고 있었다.[42] 월터 존슨과 톰 시버만이 300승, 3,000탈삼진, 그리고 3.00 이하의 평균자책점을 기록했다. 16번의 개막전 선발 등판은 메이저 리그 기록이다.[22] 은퇴 당시 메이저 리그 역대 탈삼진 순위에서 3위(3,640개)였으며, 현재는 6위이다. 놀런 라이언과 함께 메이저 리그 역대 완봉승 순위에서 공동 7위(61개)를 기록하고 있다.[76] 10명의 타자를 연속으로 삼진으로 잡은 기록은 2021년 애런 놀라가 달성할 때까지 유일했다.[43] 9시즌 연속 200탈삼진(1968~1976년)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76]

시버는 타석에서도 능숙한 번트 실력과 괜찮은 타격 능력을 갖추고 있었다. 선수 경력 동안 12개의 홈런을 기록했고, 투수로서는 상당히 괜찮은 통산 타율 .154를 기록했다.[31]

항목승률평균자책점경기선발 등판완투승완봉승세이브이닝안타자책점실점홈런볼넷탈삼진야생구사구참고자료
합계311205.6032.866566472316114782.2397115211674380364012676[31]



연도구단투수 (P)
경기병살보살실책병살수비율
1967NYM35173813.982
196836214814.986
196936184827.971
197037194633.956
197136173813.982
197235174033.950
197336263551.924
19743294217.981
197536214346.941
197635124113.981
19771361710.958
CIN20716031.000
'77계33133313.979
197836152862.878
197932222622.960
1980261626001.000
19812382211.968
19822171121.900
1983NYM34222840.926
1984CWS341140021.000
198535204322.969
19861247001.000
BOS1613921.917
'86계28171621.943
MLB6563286924254.960


  • 각 연도의 '''굵은 글씨'''는 리그 최고

4. 수상 및 영예

톰 시버는 1969년, 1973년, 1975년 3회의 사이 영 상과 신인왕을 수상했다.[42] 올스타에 12번 선정되었고, 1969년 월드 시리즈에서 뉴욕 메츠 소속으로 우승을 차지했다.[42] 메츠는 1988년 그의 등번호 41번을 영구 결번으로 지정했다.[44]

1992년에는 98.84%의 득표율로 미국 야구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었다.[45] 마이크 피아자와 함께 메츠 모자를 쓰고 명예의 전당에 헌액된 두 명의 선수 중 한 명이다.[45] 뉴욕 메츠 명예의 전당,[44] 해병대 스포츠 명예의 전당,[46] 신시내티 레즈 명예의 전당에도 헌액되었다.[47]

월터 존슨과 함께 300승, 3,000탈삼진, 3.00 이하의 평균자책점을 모두 달성한 유이한 선수이다.[42] 16번의 개막전 선발 등판은 메이저 리그 기록이다.[22] 은퇴 당시 메이저 리그 통산 탈삼진 3위(3,640개)였으며, 현재는 6위이다. 놀런 라이언과 함께 통산 완봉승 공동 7위(61개)를 기록하고 있다.[76] 10타자 연속 탈삼진 기록은 2021년 애런 놀라에 의해 타이기록이 작성되기 전까지 유일한 기록이었다.[43] 9시즌 연속 200탈삼진(1968~1976년) 기록도 보유하고 있다.[76]

1999년 ''스포팅 뉴스'' 선정 역대 최고 야구 선수 100인 목록에서 32위에 올랐으며,[48] 2016년 ESPN.com은 역대 최고 MLB 선수 목록에서 34위,[49] 2020년 ''디 애슬레틱''은 41위로 선정했다.[50] 2006년 ESPN 선정 메츠 프랜차이즈 "고향 영웅"으로 선정되었다.[51]

2013 메이저 리그 베이스볼 올스타전은 시버에게 헌정되었다.[53] 2019년, 뉴욕시는 시티 필드 밖 126번가를 시버 웨이(Seaver Way)로 변경하고 구장 주소를 41 시버 웨이로 변경했다.[54][55][56] 2017년, 밥 펠러 용기상을 수상했다.[57] 2022년, 메츠는 시티 필드 앞에 톰 시버 동상을 공개했다.[58]


  • 최다 승리: 3회 (1969년, 1975년, 1981년)
  • 최저 평균 자책점: 3회 (1970년, 1971년, 1973년)
  • 최다 탈삼진: 5회 (1970년, 1971년, 1973년, 1975년, 1976년)

5. 한국과의 관계

톰 시버는 선수 시절이나 은퇴 후에 한국을 방문하거나 한국 선수와 직접 교류한 기록은 없다. 하지만 1974년, 1978년, 1979년에 미일 올스타전에 참가하여 일본을 방문한 적이 있다.

5. 1. 1974년 미일 올스타전

주어진 원본 소스에 1974년 미일 올스타전 관련 내용이 없으므로, 해당 섹션은 작성할 수 없습니다. 따라서 이전 출력과 동일하게 빈칸으로 출력합니다.

5. 2. 1978년 미일 올스타전

주어진 원본 소스에는 해당 섹션 제목에 대한 내용이 없으므로, 섹션 내용을 작성할 수 없습니다.

5. 3. 1979년 미일 올스타전

1979년, 톰 시버는 메이저 리그 올스타팀의 일원으로 세 번째로 미일 올스타전에 참가했다.

참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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