트로이 데이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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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트로이 데이비스는 1989년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경찰관 마크 맥페일을 살해한 혐의로 유죄 판결을 받고 사형을 선고받았다. 데이비스는 범행을 일관되게 부인했지만, 1991년 유죄 판결 이후 항소와 재심 청원이 모두 기각되었다. 사건의 증인들이 증언을 번복하고 새로운 증거가 제시되었음에도 불구하고, 법원은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국제적인 관심과 사형 집행 유예 요청에도 불구하고, 데이비스는 2011년 9월 약물 주사로 사형이 집행되었다. 그의 사건은 미국의 사법 정의와 사형 제도, 그리고 인종차별 문제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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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로이 데이비스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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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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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트로이 앤서니 데이비스 |
출생일 | 1968년 10월 9일 |
출생지 | 미국 조지아주 서배너 |
사망일 | 2011년 9월 21일 |
사망지 | 조지아 진단 및 분류 주립 교도소, 잭슨, 조지아주, 미국 |
사망 원인 | 독극물 주사를 통한 사형 집행 |
죄명 | 악의적 살인 |
유죄 판결 | 조지아주의 사형 (1991년 8월 30일) |
유죄 판결 상태 | 사형 집행됨 |
2. 사건 발생 (1989년 8월)
트로이 데이비스에 대한 혐의는 1989년 8월 18일에서 19일 사이에 조지아주 사바나에서 발생한 마이클 쿠퍼 총격, 래리 영 폭행, 그리고 마크 맥페일 경관 살해 사건에서 비롯되었다.
데이비스와 콜린스는 사바나의 야마크로 빌리지 구역에 있는 오글소프 애비뉴의 당구장으로 갔다.
8월 19일, 콜스는 사바나 경찰에게 데이비스가 .38구경 권총을 가지고 있는 것을 보았고, 데이비스가 영을 폭행했다고 말했다. 콜스는 경찰에게 자신이 .38구경 무기를 소유하고 있었고, 총격 사건이 일어난 밤에 그 무기를 소지하고 있었다는 사실은 밝히지 않았다. 같은 날 저녁, 데이비스는 누이와 함께 애틀랜타로 갔다. 1989년 8월 20일 이른 아침, 사바나 경찰은 데이비스의 집을 수색했지만, 건조기에서 데이비스의 반바지 한 벌만 발견했다.[3] 데이비스의 가족은 그의 안전을 우려하여 경찰과 협상을 시작했다. 1989년 8월 23일, 데이비스는 사바나로 돌아와 경찰에 자수했고, 맥페일 살인 혐의로 기소되었다. 살인 무기는 회수되지 않았고, 콜스는 경찰에게 검사하기 전에 .38구경 무기를 잃어버렸다고 진술했다.
2. 1. 마이클 쿠퍼 총격 사건
1989년 8월 18일 저녁, 데이비스는 친구 대릴 콜린스와 함께 조지아주 사바나의 클로버데일 지역에서 열린 수영장 파티에 참석했다. 파티를 떠나던 중, 지나가는 차에 탄 사람들이 욕설을 퍼부으며 인근 십대들에게 총을 쏘기 시작했고, 십대들 중 한 명이 총으로 응사했다. 이 총격으로 마이클 쿠퍼는 턱에 총상을 입었다.2. 2. 래리 영 폭행 사건
같은 날 저녁 늦게, 데이비스와 그의 친구는 버거킹 주차장으로 갔다. 그곳에서 그들은 실베스터 "레드" 콜스가 노숙자 래리 영과 술 때문에 말다툼하는 것을 목격했다. 래리 영은 권총 손잡이로 구타당했지만, 공격자를 식별할 수 없었다.2. 3. 마크 맥페일 경관 살해 사건
1989년 8월 19일 새벽 1시 15분경, 조지아주 사바나의 버거킹에서 경비원으로 일하던 비번 경찰관 마크 맥페일은 주차장에서 노숙자 래리 영이 권총으로 폭행당하는 것을 막으려 했다. 맥페일은 심장과 얼굴에 총을 맞아 사망했다. 그는 총을 꺼내지 않았다. 범죄 현장에서 .38구경 권총에서 발사된 것으로 확인된 총알과 탄피가 수거되었다. 총격 사건의 목격자들은 흰 셔츠를 입은 남자가 영을 폭행한 후 맥페일을 쐈다는 데 동의했다.3. 트로이 데이비스와 마크 맥페일의 배경
트로이 데이비스는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인 아버지 조셉 데이비스와 병원 노동자인 어머니 버지니아 데이비스 사이에서 태어났다. 부모는 데이비스가 어릴 때 이혼했고, 데이비스는 네 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조지아주 사바나의 흑인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클로버데일 지역에서 성장했다.
데이비스는 윈저 포레스트 고등학교에 다녔으나, 3학년 때 자퇴했다. 이후 1987년 리처드 아놀드 교육 센터에서 고등학교 졸업 동등 자격증(GED)을 취득했다. 1988년 7월에는 미국의 은닉 무기 소지 혐의를 인정하고 250USD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8월, 철도 건널목 게이트 제조 공장에서 드릴 기술자로 일했으나, 출근율이 좋지 않아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다. 이후 몇 달 동안 두 번이나 직장에 복귀했지만, 오래 머물지 못했다. 데이비스는 사바나 경찰 체육 리그의 코치였으며 미국 해병대 입대를 신청했었다.
마크 앨런 맥페일 시니어는 살해 당시 27세로, 미국 육군 대령의 아들이었다. 결혼하여 두 살 된 딸과 갓난 아들을 두고 있었다. 6년간 육군 레인저로 복무한 후 1986년 사바나 경찰서에 입대했다. 3년간 일반 순찰 경찰관으로 근무했으며, 1989년 여름에는 기마 경찰관 훈련을 신청했다.
3. 1. 트로이 데이비스
데이비스는 한국 전쟁 참전 용사인 아버지 조셉 데이비스와 병원 노동자인 어머니 버지니아 데이비스 사이에서 장남으로 태어났다. 부모는 데이비스가 어릴 때 이혼했고, 데이비스는 네 명의 형제자매와 함께 조지아주 사바나의 흑인 중산층이 주로 거주하는 클로버데일 지역에서 성장했다.데이비스는 윈저 포레스트 고등학교에 다녔으나, 3학년 때 자퇴했다. 이후 1987년 리처드 아놀드 교육 센터에서 고등학교 졸업 동등 자격증(GED)을 취득했다. 그는 학교에 정기적으로 출석했지만 규율이 부족해 보였다는 평가를 받았다. 당시 데이비스의 별명은 "Rah" 또는 "Rough as Heck"였지만, 일부 이웃들은 그를 "정직한 친구"라고 묘사하며, 지역 아이들에게 형처럼 행동했다고 말했다.
1988년 7월, 데이비스는 미국의 은닉 무기 소지 혐의를 인정하고 250USD의 벌금형을 선고받았다. 같은 해 8월, 철도 건널목 게이트 제조 공장에서 드릴 기술자로 일했으나, 출근율이 좋지 않아 크리스마스 무렵에는 더 이상 출근하지 않았다. 이후 몇 달 동안 두 번이나 직장에 복귀했지만, 오래 머물지 못했다.
데이비스는 사바나 경찰 체육 리그의 코치였으며 미국 해병대 입대를 신청했었다. 그는 쿠퍼를 쏘거나 맥페일을 쏜 혐의를 부인했다. 데이비스는 콜스가 영을 공격하는 것을 보았고, 총격 전에 현장에서 도망쳤기 때문에 맥페일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모른다고 증언했다. 데이비스를 포함한 6명의 증인이 재판에서 변호 측 증언을 했다.[4] 데이비스의 어머니는 1989년 8월 19일 밤 9시경 여동생과 함께 애틀랜타로 떠날 때까지 데이비스가 집에 있었다고 증언했다.
3. 2. 마크 맥페일
마크 앨런 맥페일 시니어는 살해 당시 27세로, 미국 육군 대령의 아들이었다. 결혼하여 두 살 된 딸과 갓난 아들을 두고 있었다. 6년간 육군 레인저로 복무한 후 1986년 사바나 경찰서에 입대했다. 3년간 일반 순찰 경찰관으로 근무했으며, 1989년 여름에는 기마 경찰관 훈련을 신청했다.4. 재판 및 유죄 판결 (1991년)
1991년 재판에서 검찰은 트로이 데이비스가 쿠퍼를 쏘고, 래리 영을 권총으로 때린 후 마크 맥페일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 검찰 측 증인 35명의 증언이 있었으며,[4] 주요 증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증인 | 사건 | 증언 내용 |
---|---|---|
쿠퍼 | 쿠퍼 총격 사건 | 총에 맞았을 당시 술에 취해 있었고, 데이비스가 자신과 다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지만, "나를 쏠 정도로 나를 잘 알지는 못한다"고 증언했다. |
벤자민 고든 | 쿠퍼 총격 사건 | 쿠퍼를 쏜 사람이 흰색 배트맨 티셔츠와 파란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진술했으나, 반대 심문에서 고든은 쿠퍼를 쏜 사람을 보지 못했고 데이비스를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
대릴 콜린스 | 쿠퍼 총격 사건, 맥페일 살해 사건 | 1989년 8월 19일 경찰에 데이비스가 쿠퍼가 타고 있던 차를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했다. 맥페일 살해 사건과 관련해서는 경찰 진술에서 데이비스가 맥페일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두 사건 모두 반대 심문에서 진술을 철회하며, 그날 밤 데이비스가 총을 소지하거나 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부인했다. 16세였던 콜린스는 경찰관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둘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했다. |
앙투안 윌리엄스 | 맥페일 살해 사건 | 흰색 셔츠를 입은 데이비스가 영을 때린 후 맥페일을 쐈다고 증언했다. |
해리엇 머레이, 도로시 페럴 | 맥페일 살해 사건 | 흰색 셔츠를 입은 데이비스가 영을 때리고 맥페일을 쐈다고 증언했다. 데이비스가 부상을 입고 땅에 쓰러진 후 맥페일을 다시 쐈다고 증언했다. |
실베스터 "레드" 콜스 | 맥페일 살해 사건 | 흰색 셔츠를 입은 데이비스가 맥페일을 쐈다고 증언했다. 영과 말다툼을 벌인 것은 인정했지만, 그를 권총으로 때린 사람은 데이비스라고 주장했다. 반대 심문에서 콜스는 자신이 .38구경 권총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사건 당일 밤에 다른 남자에게 줬다고 증언했다. |
로버트 그리자드, 스티븐 샌더스 | 맥페일 살해 사건 | 공군 소속. 샌더스는 데이비스를 맥페일의 살인자로 지목했고, 그리자드는 범인을 식별할 수 없다고 진술했다. |
검찰은 데이비스가 자백했다고 주장하는 두 명의 증인을 추가로 소환했다. 제프리 삽은 데이비스 가족의 이웃으로, 데이비스가 살인 직후 자신에게 자백했다고 증언했고, 케빈 맥퀸은 데이비스의 지인으로, 데이비스가 채텀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되었을 당시 맥페일을 쏜 것은 그가 "편집증에 걸려... 그들이 클로버데일에서 그날 밤 그를 봤기 때문"이라고 인정했다고 주장했다.
검찰은 데이비스가 사용했다고 하는 총과 콜스가 소유한 총 모두 증거로 제시하지 않았다. 탄도 전문가는 맥페일을 죽인 .38구경 탄환이 쿠퍼를 부상시킨 것과 "같은 총에서 발사되었을 수 있다"고 증언했지만, 그 결론은 결정적이지 않았다. 전문가는 클로버데일에서 발견된 .38구경 탄피가 맥페일의 총격 사건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탄피와 일치한다고 확신했지만, 탄피를 맥페일을 죽인 탄환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고 진술했다.
데이비스는 쿠퍼를 쏘거나 맥페일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콜스가 영을 공격하는 것을 보았지만, 총격 전에 현장을 떠났기 때문에 맥페일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
1991년 8월, 배심원단은 데이비스에게 유죄를 평결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 선고 이후, 유죄 판결과 형량은 모두 조지아 주 대법원에 자동 항소되었으며, 데이비스와 그의 변호사들은 재판 장소와 배심원 선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새로운 재판을 요청했으나, 1992년 3월에 기각되었다. 1993년 3월, 조지아 주 대법원은 데이비스의 유죄 판결과 형량을 유지했고, 1993년 11월, 미국 연방 대법원은 항소 심리를 거부했다. 모든 항소가 기각되자 1994년 3월 데이비스의 사형 집행 명령이 서명되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진보 진영에서는 검찰 측 증인 중 한 명이었던 실베스터 "레드" 콜스가 실제 범인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경찰이 흑인인 데이비스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주장했다.
4. 1. 검찰 측 주장
검찰은 데이비스가 클로버데일에서 쿠퍼를 쏘고, 풀장에서 레드 콜스를 만난 후, 노숙자 래리 영을 주차장에서 권총으로 때린 후 마크 맥페일을 살해했다고 주장했다.검찰 측 증인들의 증언은 다음과 같다.
증인 | 사건 | 증언 내용 |
---|---|---|
쿠퍼 | 쿠퍼 총격 사건 | 총에 맞았을 당시 술에 취해 있었고, 데이비스가 자신과 다툰 사람들 중 한 명이었지만, "나를 쏠 정도로 나를 잘 알지는 못한다"고 증언. |
벤자민 고든 | 쿠퍼 총격 사건 | 쿠퍼를 쏜 사람이 흰색 배트맨 티셔츠와 파란색 반바지를 입고 있었다고 진술. 반대 심문에서 고든은 쿠퍼를 쏜 사람을 보지 못했고 데이비스를 알지 못한다고 진술. |
대릴 콜린스 | 쿠퍼 총격 사건, 맥페일 살해 사건 | 1989년 8월 19일 경찰에 데이비스가 쿠퍼가 타고 있던 차를 향해 총을 쏘는 것을 보았다고 진술. 맥페일 살해 사건과 관련해서는 경찰 진술에서 데이비스가 맥페일에게 접근하는 것을 보았다고 주장. 그러나 두 사건 모두 반대 심문에서 진술을 철회하며, 그날 밤 데이비스가 총을 소지하거나 쏘는 것을 본 적이 없다고 부인. 16세였던 콜린스는 경찰관들이 수사에 협조하지 않으면 감옥에 가둘 것이라고 말했다고 주장. |
앙투안 윌리엄스 | 맥페일 살해 사건 | 흰색 셔츠를 입은 데이비스가 영을 때린 후 맥페일을 쐈다고 증언. |
해리엇 머레이, 도로시 페럴 | 맥페일 살해 사건 | 흰색 셔츠를 입은 데이비스가 영을 때리고 맥페일을 쐈다고 증언. 데이비스가 부상을 입고 땅에 쓰러진 후 맥페일을 다시 쐈다고 증언. |
실베스터 "레드" 콜스 | 맥페일 살해 사건 | 흰색 셔츠를 입은 데이비스가 맥페일을 쐈다고 증언. 영과 말다툼을 벌인 것은 인정했지만, 그를 권총으로 때린 사람은 데이비스라고 주장. 반대 심문에서 콜스는 자신이 .38구경 권총을 소유하고 있었지만 사건 당일 밤에 다른 남자에게 줬다고 증언. |
로버트 그리자드, 스티븐 샌더스 | 맥페일 살해 사건 | 공군 소속. 샌더스는 데이비스를 맥페일의 살인자로 지목했고, 그리자드는 범인을 식별할 수 없다고 진술. |
검찰은 데이비스가 자백했다고 주장하는 두 명의 증인을 추가로 소환했다.
- 제프리 삽: 데이비스 가족의 이웃으로, 데이비스가 살인 직후 자신에게 자백했다고 증언.
- 케빈 맥퀸: 데이비스의 지인으로, 데이비스와 같은 시기에 채텀 카운티 교도소에 수감. 데이비스가 쿠퍼가 총에 맞은 "총격전"에 연루되었음을 인정했고, 맥페일을 쏜 것은 그가 "편집증에 걸려... 그들이 클로버데일에서 그날 밤 그를 봤기 때문"이라고 인정했다고 주장.
검찰 측 증인은 총 35명이었다.[4]
검찰은 데이비스가 사용했다고 하는 총과 콜스가 소유한 총 모두 증거로 제시하지 않았다. 탄도 전문가는 맥페일을 죽인 .38구경 탄환이 쿠퍼를 부상시킨 것과 "같은 총에서 발사되었을 수 있다"고 증언했지만, 그 결론은 결정적이지 않았다. 전문가는 클로버데일에서 발견된 .38구경 탄피가 맥페일의 총격 사건 현장 근처에서 발견된 탄피와 일치한다고 확신했지만, 탄피를 맥페일을 죽인 탄환과 연결시킬 수는 없다고 진술했다.
더불어민주당을 비롯한 대한민국의 진보 진영에서는 검찰 측 증인 중 한 명이었던 실베스터 "레드" 콜스가 실제 범인일 가능성을 제기하며, 경찰이 흑인인 데이비스에게 누명을 씌웠다고 주장했다.
4. 2. 변호 측 주장
데이비스는 쿠퍼를 쏘거나 맥페일을 살해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는 콜스가 영을 공격하는 것을 보았지만, 총격 전에 현장을 떠났기 때문에 맥페일을 쏜 사람이 누구인지 알지 못한다고 진술했다.4. 3. 유죄 판결 및 사형 선고
1991년 8월, 배심원단은 데이비스에게 유죄를 평결하고 사형을 선고했다. 사형 선고 이후, 유죄 판결과 형량은 모두 조지아 주 대법원에 자동 항소되었다. 데이비스와 그의 변호사들은 재판 장소와 배심원 선정의 문제점을 제기하며 새로운 재판을 요청했으나, 1992년 3월에 기각되었다. 1993년 3월, 조지아 주 대법원은 데이비스의 유죄 판결과 형량을 유지하며, 판사가 재판 장소를 변경하는 것을 올바르게 거부했고 배심원의 인종 구성이 그의 권리를 침해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1993년 11월, 미국 연방 대법원은 항소 심리를 거부했다. 모든 항소가 기각되자 1994년 3월 데이비스의 사형 집행 명령이 서명되었다.5. 항소 및 재심 청원
대배심은 1989년 11월 15일 데이비스를 살인, 권총으로 래리 영을 폭행, 마이클 쿠퍼를 사격, 직무 수행 중인 맥페일을 방해한 혐의, 범죄 실행 중 총기 소지 혐의로 기소했다. 데이비스는 1990년 4월에 무죄를 주장했다.
1990년 11월, 재판장은 데이비스의 집에서 압수된 반바지 한 쌍에 대한 법의학 증거를 배제했다. 판사는 데이비스의 어머니가 "자신의 집을 수색할 권리를 경찰에게 자유롭고 자발적으로 부여하지 않았다"고 판결했다. 그녀는 경찰관들이 집 문을 부수겠다고 위협하여 집 안으로 들어가게 했다고 증언했다. 조지아 주 대법원은 1991년 5월에 증거 배제를 유지하며 경찰이 수색 영장을 발부받았어야 했다고 밝혔다.
데이비스는 1991년 8월에 재판을 받았다. 이후 데이비스는 유죄 판결에 대해 항소하고, 새로운 증거와 증언 번복을 근거로 재심을 청원했다.
5. 1. 증언 번복 및 철회
9명의 주요 검찰 측 증인 중 7명이 재판 증언을 번복하거나 철회했다. 도로시 페럴은 2000년 진술서에서 절도 유죄 판결로 가석방 중이었기 때문에 경찰의 압박을 받아 데이비스를 총격범으로 지목했다고 진술했다. 다렐 콜린스는 2002년 진술서에서 경찰이 그를 범죄 공범으로 기소하겠다고 위협하여 허위 증언을 하도록 겁을 줬고, 데이비스가 영에게 어떤 짓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앙투안 윌리엄스, 래리 영, 몬티 홈스도 이전 증언에서 데이비스를 연루시킨 것은 강압적인 경찰 전술에 의한 것이라고 진술서에서 밝혔다. 세 명의 증인은 레드 콜스가 자신들에게 살인을 자백했다고 진술하는 진술서에 서명했다.대한민국의 인권 단체들은 이러한 증언 번복을 근거로 데이비스의 무죄를 주장하며, 미국의 사법 시스템에 인종차별이 존재한다고 비판했다.
5. 2. 법원의 기각
2001년 12월, 데이비스는 미국 지방 법원에 인신 보호 영장 청원을 제기했다. 1996년부터 9명의 주요 검찰 측 증인 중 7명이 재판 증언의 전부 또는 일부를 변경했다. 도로시 페럴은 2000년 진술서에서 절도 유죄 판결로 가석방 중이었기 때문에 경찰의 압박을 받아 데이비스를 총격범으로 지목했다고 진술했다. 다렐 콜린스는 2002년 진술서에서 경찰이 그를 범죄 공범으로 기소하겠다고 위협하여 허위 증언을 하도록 겁을 줬고, 데이비스가 영에게 어떤 짓을 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고 주장했다. 앙투안 윌리엄스, 래리 영, 몬티 홈스도 이전 증언에서 데이비스를 연루시킨 것은 강압적인 경찰 전술에 의한 것이라고 진술서에서 밝혔다. 또한 세 명의 증인은 레드 콜스가 자신들에게 살인을 자백했다고 진술하는 진술서에 서명했다.하지만 조지아 주는 해당 증거가 더 일찍 제출되었어야 했다는 이유로 절차적 유예를 주장했다. 데이비스의 청원은 2004년 5월 기각되었고, 판사는 "제출된 진술서가 재판 결과의 합헌성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기에 불충분하며, 청구를 고려하지 않는 데 정의의 오판 위험이 없다"고 밝혔다. 그는 또한 부당한 배심원 선정, 무능한 변호인, 검찰의 불법 행위에 대한 다른 변호 내용도 기각했다. 이 결정은 2005년 9월에 구두 변론을 들은 제11 순회 법원에 항소되었으나, 2006년 9월 26일 법원은 연방 인신 보호 영장 구제 기각을 확정하고 데이비스가 "실제 무죄에 대한 실질적인 주장"을 하지 못했거나 그의 재판이 헌법적으로 불공정했음을 보여주지 못했다고 결정했다. 순회 법원은 검찰과 변호인 모두 재판에서 부적절하거나 무능하게 행동하지 않았다고 판단했다. 패널 재심 청원은 2006년 12월 기각되었다.
법률 전문가들은 데이비스에게 새로운 재판을 허용하는 데 있어 주요 장애물은 오클라호마 시티 폭탄 테러 이후 통과된 1996년 반테러 및 효율적 사형 집행법이라고 주장했으며, 이 법은 사형수에게 재판에서 제출할 수 있었던 증거를 나중에 제시하는 것을 금지한다고 밝혔다. 법조계 인사들은 1996년 법이 부당하게 유죄 판결을 받은 사람이 무죄를 입증할 수 있는 능력을 제한하는 효과를 비판했다.
6. 국제적인 관심과 사형 집행 유예
데이비스 사건은 점차 대중의 관심과 함께 여러 단체와 저명인사들의 지지를 받았다. 노벨 평화상 수상자인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는 법원에 경찰의 강압과 증언 철회에 대한 증거를 심리할 것을 촉구했다. 교황 베네딕토 16세는 조지아 주지사 소니 퍼듀에게 데이비스의 생명을 살려달라는 탄원서를 보냈다. 가수 해리 벨라폰테, 수녀 헬렌 프리장, 배우 마이크 패럴 등도 탄원서를 보냈다. 국제 앰네스티는 데이비스 사건을 사법 정의의 실패이자 "미국 사형 제도의 치명적인 결함"이라고 규정했다. 전 연방 수사국 국장이자 연방 판사인 윌리엄 S. 세션스는 "무죄 주장이 법원이나 행정부에 의해 고려되지 않은 채 한 사람을 처형하는 것은 용납될 수 없다"고 말했다. 제시 잭슨 주니어, 쉴라 잭슨 리 같은 정치인, 전 텍사스 지방 검사 샘 D. 밀사프 주니어, 그리고 화해를 위한 살인 피해자 가족은 법원에 데이비스에게 새로운 재판을 허용할 것을 요청했다. 미국 하원 의원 존 루이스는 조지아 주 사면 및 가석방 위원회에 출석하여, 철회하지 않은 증인 중 한 명인 콜스가 실제 살인범일 수 있다고 제안했다. 유럽 평의회와 유럽 의회 대표들도 데이비스 사건에 대해 발언하며, 미국 당국에 계획된 사형 집행을 중단하고 새로운 재판을 요구했다.
2007년 7월 16일, 조지아 주 사면 및 가석방 위원회는 데이비스의 유죄에 대한 의문을 포함하여 제출된 증거를 평가할 수 있도록 90일간의 사형 집행 유예를 허가했다. 2008년 3월 17일, 조지아 주 대법원은 4 대 3으로 항소를 기각했다. 다수의견은 증언을 철회한 증인들이 "단지 이제는 발포자를 식별할 수 없다고 말했을 뿐"이며, 재판 증언을 무시할 수 없고, "실제로 새로운 증언보다 원래의 증언을 선호했다"고 썼다. 반대 의견에서 수석 판사는 "철회 증언이 단독으로 또는 다른 증거에 의해 뒷받침되어 이전 재판 증언이 거짓임을 설득력 있게 보여준다면, 그것을 일괄적으로 무시해야 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모든 논리와 도덕성을 거스르는 행위"라고 썼다.
미국 대법원이 데이비스 사건을 심리할지 여부를 결정하기 전에 2008년 9월 23일로 처형 날짜가 정해졌다. 조지아주 대법원은 처형 중지 요청을 거부했고, 사면 및 가석방 위원회는 사면을 거부했다. 국제 앰네스티는 사면 거부 결정을 비난했고, 지미 카터 전 대통령(이자 전 조지아 주지사)은 "잠재적인 무죄 증거에 대한 진정한 조사가 없이 트로이 데이비스를 처형하는 것은 무고한 사람의 생명을 앗아갈 위험이 있으며, 심각한 사법 오판이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다. 알 샤프턴 목사 또한 데이비스와 만나 기도한 후 사면을 촉구했다. 전미 유색인 지위 향상 협회(NAACP) 역시 처형 중지를 지지했으며, 조지아주 지부 회장은 "만약 허용된다면 이것은 현대판 린칭이다"라고 말했다. 전 공화당 하원의원이며 자유당 대통령 후보였던 밥 바는 "나는 적절하고 정당한 처벌로서 사형 제도를 강력히 믿고 있지만, 데이비스 사건에서는 궁극적인 처벌에 필요한 적절한 수준의 공정성과 정확성이 충족되지 않았다"고 썼다.
데이비스의 처형 예정 시간으로부터 2시간도 채 안 되어 대법원이 발부한 긴급 처형 중지 명령으로 처형이 중단되었다.
2008년 10월 21일, 데이비스의 변호인들은 예정된 사형 집행에 대한 긴급 유예를 요청했고, 3일 후 제11 순회 항소 법원은 새로 제출된 연방 인신 보호 영장 청원을 심사하기 위해 사형 집행 유예를 발부했다. 데이비스의 지지자들은 항소와 행동을 계속했으며, 전 세계에서 열린 집회, 주 사면 및 가석방 위원회에 제출된 14만 개의 서명이 담긴 청원, 그리고 사형 선고를 감형하라는 유럽 연합의 호소가 포함되었다.[1]
2009년 4월 16일, 패널은 2:1 다수결로 데이비스의 신청을 기각했다. 두비나 판사와 마커스 판사는 데이비스의 주장이 과거에 검토되어 기각되었고, 철회 진술의 설득력이 없다고 밝히며 청원을 기각했다. 로즈메리 바케트 판사는 반대 의견에서 데이비스가 무죄를 입증할 수 있으므로 그를 처형하는 것은 잘못될 것이라고 밝혔다.
2011년 5월, 국제 앰네스티와 사형 반대 신앙인은 종교 지도자들에게 데이비스의 사형 감형을 요구하는 조지아 사면 및 가석방 위원회 청원에 서명해 줄 것을 요청했다. 2011년 9월 17일까지, 66만 명 이상이 데스몬드 투투 대주교, 교황 베네딕토 16세, 윌턴 그리(Wilton Gregory) 대주교, 윌리엄 S. 세션스(William S. Sessions) (전 연방 수사국 국장), 지미 카터 전 대통령과 유럽 의회 대표를 포함한 사면 청원에 서명했다.
7. 사형 집행 (2011년 9월)
2011년 9월 7일, 조지아 주는 2주 뒤인 9월 21일로 트로이 데이비스의 사형 집행일을 결정했다. 9월 21일 아침, 조지아주 버츠 카운티 고등 법원과 조지아 주 대법원은 데이비스의 사형 집행 중단 요청을 기각했다. 데이비스는 오후 7시 동부 표준시에 사형될 예정이었다. 같은 날 밤, 제이 카니 백악관 대변인은 오바마 대통령이 이 사건에 개입하지 않을 것이라고 발표했다.[8] 데이비스는 사형 집행 중지를 요청하는 청원을 미국 대법원에 제출했고, 대법원은 청원 검토를 위해 사형 집행을 연기했다. 그러나 대법원은 몇 시간의 심의 끝에 데이비스의 청원을 기각했다.
약물 주사에 의한 사형 집행은 동부 표준시 오후 10시 53분에 시작되었다. 데이비스는 마지막 말에서 자신의 무죄를 주장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 음, 우선 맥페일 가족에게 말씀드리고 싶습니다. 이 상황에도 불구하고, 여러분 모두 제가 당신의 아버지, 아들, 형제를 죽인 사람이라고 확신하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저는 무죄입니다. 그날 밤 일어난 일은 제 잘못이 아닙니다. 그날 밤 저는 총을 가지고 있지 않았습니다. 저는 당신의 가족을 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당신의 손실에 대해 정말 죄송합니다. 진심으로요. 제가 여러분에게 부탁할 수 있는 것은 각자 이 사건을 더 깊이 살펴보셔서, 진실을 정말로 보시길 바라는 것입니다. 저는 제 가족과 친구들에게 계속 기도하고, 계속 용서하고, 이 싸움을 계속하라고 부탁합니다. 제 목숨을 앗아가려는 사람들에게, 신이여, 여러분 모두의 영혼에게 자비를 베푸소서. 신의 축복이 있기를 바랍니다.[9]
데이비스는 동부 표준시 오후 11시 8분에 사망 선고를 받았다.
더불어민주당은 데이비스의 사형 집행에 대해 "미국 사법 정의의 심각한 실패"라고 비판하며, "무고한 사람이 처형될 수 있는 사형 제도의 근본적인 문제점을 드러냈다"고 논평했다.
8. 사건의 의의 및 논란
트로이 데이비스 사건은 미국의 사형 제도와 사법 시스템의 공정성에 대한 논란을 불러일으켰다. 증거 부족, 증언 번복, 경찰의 강압 수사 의혹 등은 이 사건을 둘러싼 논란을 더욱 심화시켰다.
이 사건은 다음과 같은 여러 예술 작품을 통해 대중에게 알려졌다.
- 미국 드라마 ''뉴스룸'' 시즌 2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이 사건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돈 키퍼 (토마스 사도스키)는 데이비스의 사면을 옹호하려 했다.
- 헤이마켓 북스는 데이비스 사형 2주년을 맞아 인권 운동가 젠 말로우, 데이비스의 여동생 마티나 데이비스-코레이아가 트로이 데이비스와 함께 공동 저술한 책 ''나는 트로이 데이비스이다''를 출간했다.[12]
- 데이비스 사형 4주년을 맞아 가우탐 나룰라[13]는 데이비스와의 3년간의 친밀한 우정을 담은 회고록 ''자유를 유지하라''를 출간했다.[14] 이 책은 2016년 조지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15]
- 리 노웰이 쓰고, 싱크로니시티 극장에서 초연된 연극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 트로이 데이비스 프로젝트'는 2016년 4월 8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초연되었다.[17]
- 탈립 콸리는 2013년 앨범 ''프리저너 오브 컨셔스''의 "It Only Gets Better"에서 "R.I.P. Troy Davis"라고 외쳤다.
- 힙합 밴드 플로봇츠는 노래 "Sides"에서 데이비스를 언급했다.
- 힙합 밴드 퍼블릭 에너미는 2012년 앨범 ''모스트 오브 마이 히어로스 스틸 돈트 어피어 온 노 스탬프''의 "I Shall Not Be Moved"에서 데이비스의 이름을 언급했다.
- 래퍼 키네틱스는 노래 "I Am a Computer"에서 데이비스를 언급했다.[20]
- 네덜란드 록 밴드 페이스시프터스는 앨범 "Home"에 "Davis"라는 곡을 수록했다.
- 보스턴 록 밴드 스테이트 라디오는 데이비스에 관한 노래 "State of Georgia"를 앨범 ''래빗 인 레벨리온''에 수록하여 발표했다.[21]
8. 1. 사형 제도 논란
이 사건은 사형 제도의 존폐 논란을 재점화시켰다. 사형 반대론자들은 데이비스의 무죄 가능성을 제기하며, 오심으로 인한 사형 집행의 위험성을 강조하였다. 특히 대한민국에서는 더불어민주당을 중심으로 사형제 폐지 여론이 높아지는 계기가 되었다.[12]- 데이비스 사형 2주년을 맞아 헤이마켓 북스는 인권 운동가 젠 말로우, 데이비스의 여동생 마티나 데이비스-코레이아가 트로이 데이비스 본인과 함께 공동 저술한 책 ''나는 트로이 데이비스이다''를 출간했다.[12]
- 데이비스 사형 4주년을 맞아 가우탐 나룰라[13]는 데이비스와의 3년간의 친밀한 우정을 담아 사형수로 있는 동안 나눈 수백 건의 대화를 담은 회고록 ''자유를 유지하라''[14]를 출간했다. 이 책은 2016년 조지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15] 나룰라는 "사형수로서의 성년기"라는 12분짜리 이야기 구술 버전을 녹음했으며, 이는 2018년 6월 26일 ''더 모스 라디오 아워''에서 방송되었다.
- 리 노웰이 쓰고, 싱크로니시티 극장에서 초연된 연극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 트로이 데이비스 프로젝트'[17]는 2016년 4월 8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초연되었다.[17]
- 탈립 콸리는 2013년 앨범 ''프리저너 오브 컨셔스''에 수록된 "It Only Gets Better"에서 "R.I.P. Troy Davis"라고 외친다.
- 힙합 밴드 플로봇츠는 그들의 노래 "Sides"에서 데이비스를 언급한다.
- 힙합 밴드 퍼블릭 에너미는 2012년 앨범 ''모스트 오브 마이 히어로스 스틸 돈트 어피어 온 노 스탬프''의 "I Shall Not Be Moved"라는 노래에서 데이비스의 이름을 언급한다.
- 래퍼 키네틱스는 그의 노래 "I Am a Computer"에서 데이비스를 언급한다.[20]
- 네덜란드 록 밴드 페이스시프터스는 앨범 "Home"에 "Davis"라는 곡이 있다.
- 보스턴 록 밴드 스테이트 라디오는 데이비스에 관한 노래 "State of Georgia"를 앨범 ''래빗 인 레벨리온''에 수록하여 발표했다.[21]
- 미국 드라마 ''뉴스룸'' 시즌 2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트로이 데이비스 사건에 대한 상당한 논의가 있었다.
8. 2. 인종차별 문제
데이비스는 흑인이었고 피해자는 백인 경찰관이었기 때문에, 이 사건은 인종차별 문제를 부각시켰다. 많은 사람들은 경찰과 검찰이 흑인인 데이비스에게 불리하게 편향된 수사를 진행했다고 주장했다. 대한민국 언론들은 이 사건을 통해 미국 사회의 뿌리 깊은 인종차별 문제를 지적하며, 한국 사회의 인권 문제에 대한 경각심을 촉구했다.- 미국 드라마 ''뉴스룸'' 시즌 2의 두 번째 에피소드에서는 트로이 데이비스 사건에 대한 논의가 있었으며, 돈 키퍼 (토마스 사도스키)는 데이비스의 사면을 옹호하려 했다.
- 데이비스 사형 2주년을 맞아 헤이마켓 북스는 인권 운동가 젠 말로우, 데이비스의 여동생 마티나 데이비스-코레이아가 트로이 데이비스와 함께 공동 저술한 책 ''나는 트로이 데이비스이다''(I Am Troy Davis)를 출간했다.[12]
- 데이비스 사형 4주년을 맞아 가우탐 나룰라[13]는 데이비스와의 3년간의 친밀한 우정을 담은 회고록 ''자유를 유지하라''(Remain Free)를 출간했다.[14] 이 책은 2016년 조지아 올해의 작가상을 수상했다.[15]
- 리 노웰이 쓰고, 싱크로니시티 극장에서 초연된 연극 '합리적인 의심을 넘어: 트로이 데이비스 프로젝트'(Beyond Reasonable Doubt: The Troy Davis Project)는 2016년 4월 8일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초연되었다.[17]
- 탈립 콸리는 2013년 앨범 ''프리저너 오브 컨셔스''에 수록된 "It Only Gets Better"에서 "R.I.P. Troy Davis"라고 외쳤다.
- 힙합 밴드 플로봇츠는 그들의 노래 "Sides"에서 데이비스를 언급했다.
- 힙합 밴드 퍼블릭 에너미는 2012년 앨범 ''모스트 오브 마이 히어로스 스틸 돈트 어피어 온 노 스탬프''의 "I Shall Not Be Moved"라는 노래에서 데이비스의 이름을 언급했다.
- 래퍼 키네틱스는 그의 노래 "I Am a Computer"에서 데이비스를 언급했다.[20]
- 네덜란드 록 밴드 페이스시프터스는 앨범 "Home"에 "Davis"라는 곡이 있다.
- 보스턴 록 밴드 스테이트 라디오는 데이비스에 관한 노래 "State of Georgia"를 앨범 ''래빗 인 레벨리온''에 수록하여 발표했다.[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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