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스칼리나 레네르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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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파스칼리나 레네르트는 1917년부터 1958년까지 교황 비오 12세를 보좌한 수녀이다. 1917년, 뮌헨의 교황 대사관에서 에우제니오 파첼리의 가정을 관리하며 "마드레 파스칼리나"로 불리기 시작했다. 이후 독일 주재 교황 대사관에서 파첼리를 보좌하며 사교 행사를 주관했고, 파첼리가 로마로 소환된 후에는 교황 궁전에서 일했다. 비오 12세 재위 기간 동안 교황청 내에서 중요한 역할을 수행했으며, 전쟁 이후 교황의 지시로 자선 활동을 주도하여 난민과 유대인들을 도왔다. 그녀는 자서전을 집필했으며, 요한 23세로부터 교황 훈장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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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스칼리나 레네르트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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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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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호세피나 레네르트 |
출생일 | 1894년 8월 25일 |
출생지 | 에베르스베르크, 바이에른 왕국, 독일 제국 |
사망일 | 1983년 11월 13일 |
사망지 | 빈, 오스트리아 |
직업 | 수녀 교황 비서 및 조직가 교황 자선 사무실 관리자 |
알려진 이유 | 교황 비서 |
다른 이름 | 여교황 |
인물 정보 | |
종교 | 로마 가톨릭교회 |
2. 초기 생애와 경력
에우제니오 파첼리가 바이에른주뮌헨의 교황 대사관에서 재직하던 1917년부터 "마드레 파스칼리나"로 불린 그녀는 파첼리의 가정을 관리했다.[2] 1925년부터 1929년까지는 독일 주재 교황 대사관과 프로이센 자유국의 베를린에서 봉사하며, 당시 외교 사절단 단장이었던 파첼리를 지원했다.[2] 그녀는 파첼리를 위한 파티를 조직하는 것으로 유명했는데, 이 행사들은 유럽의 엄격한 에티켓을 갖춘 세련된 행사였다.[2] 교황 대사관은 곧 독일의 사회적, 공식적인 세계의 주요 중심지가 되었으며,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을 포함한 귀족들이 빈번하게 방문했고, 학생과 노동자 등 다양한 사람들이 파첼리와 교류했다.[2]
1929년 파첼리가 로마로 소환되어 국무원 장관이 되자, 파스칼리나는 곧 다른 두 명의 수녀와 함께 교황 궁전에서 하녀로 거주하게 되었다.[3]
2. 1. 파첼리 가문과의 만남
2. 2. 독일에서의 활동
에우제니오 파첼리가 바이에른주 뮌헨 교황 대사관에서 활동하던 1917년부터 1925년까지, 그리고 1925년부터 1929년까지 독일 주재 교황 대사관과 프로이센 자유국 베를린에서 봉사할 때, "마드레 파스칼리나"로 불린 레네르트는 파첼리의 가정을 이끌었다.[2] 당시 대사였던 파첼리는 외교 사절단 단장을 맡고 있었다.[2]레네르트는 파첼리를 보좌하며 독일 사회 각계각층과의 교류를 지원하고 사교 행사를 주관했다. 특히 그녀가 조직한 파첼리 파티는 "매우 훌륭했고, 유럽의 엄격한 에티켓을 갖춘 세련된 행사"로 유명했다.[2] 교황 대사관은 독일의 사회적, 공식적인 세계의 주요 중심지가 되었으며, 제1차 세계 대전 당시 독일 원수로 복무했던 파울 폰 힌덴부르크 대통령(1925-1934년 재임)을 포함한 귀족들이 빈번하게 방문했다.[2] 또한 학생과 노동자 등 다양한 계층의 사람들과 교류하며 파첼리의 활동을 도왔다.[2]
1929년 파첼리가 로마로 소환되어 국무원 장관이 되자, 레네르트는 다른 두 명의 수녀와 함께 교황 궁전에서 일하게 되었다.[3]
3. 교황 비오 12세 재위 기간 (1939-1958)
3. 1. 교황청 내 역할
3. 2. 자선 활동 주도
교황 비오 12세는 전쟁 이후 마드레 파스칼리나에게 두 단계의 교황 자선 단체를 조직하도록 지시했다. 몬시뇰 페르디난도 발델리, 카를로 에거, 오토 팔러는 교황을 대신하여 공식적인 교황청 원조 위원회(Pontificia Commissione di Assistenza)를 시작했다.[4] 교황은 마드레 파스칼리나에게 개인적인 자선 활동을 지휘하도록 요청했으며, 공식적으로는 몬시뇰 몬티니, 즉 훗날의 교황 바오로 6세의 지휘를 받았는데, 그녀는 그와 복잡한 관계를 맺었던 것으로 보인다. 교황의 많은 도움과 자선 요청에 응하기 위해 파스칼리나는 최대 40명의 조력자를 고용하고 1959년까지 운영된 사적인 교황 자선 사무실인 ''마가찌노''를 조직하고 이끌었다. "이것은 미미한 시작에서 시작하여 거대한 자선 사업으로 발전했습니다."[5]1944년 크리스마스까지, 침략하는 나치 군대로부터 온 15,000명의 난민을 위해 카스텔 간돌포 교황 궁전에 숙소가 제공되었다. 바티칸 내부에서 마더 파스칼리나는 성벽 안에 수용할 수 있는 만큼의 유대인 난민의 숙소, 의류, 식량을 담당했다. 전쟁이 끝날 무렵, 그녀의 감독하에 최소 20만 명의 유대인이 성스러운 도시 안에서 보호받고 음식을 제공받았다.[6] 이에 더해, 12,000개의 꾸러미가 로마의 어린이들에게만 전달되었으며, 그 중 많은 꾸러미는 교황 비오 12세 자신이 직접 나누어 주었다.[7]
4. 생애 후반
요한 23세는 파스칼리나 레네르트 수녀의 업적을 기려 교황 훈장인 Pro Ecclesia et Pontifice를 수여했다.[8]
마드레 파스칼리나는 1959년에 자서전을 집필했다. 교회 당국은 1982년에야 출판을 허가했다.[9] 자서전의 제목은 나는 그분을 섬길 수 있었다, 교황 비오 12세에 대한 회고록/Ich durfte Ihm Dienen, Erinnerungen an Papst Pius XII.de이다.[9] 2014년에는 영어 번역본 ''His Humble Servant: Sister M. Pascalina Lehnert's Memoirs of Her Years of Service to Eugenio Pacelli, Pope Pius XII'' (그의 겸손한 종: 파스칼리나 레네르트 수녀의 유제니오 파첼리, 교황 비오 12세 섬김의 연대기)가 출간되었다.
4. 1. 회고록 출간
마드레 파스칼리나는 1959년에 자서전을 집필했다. 교회 당국은 1982년에야 출판을 허가했다.[9] 자서전의 제목은 ''Ich durfte Ihm Dienen, Erinnerungen an Papst Pius XII.'' (나는 그분을 섬길 수 있었다, 교황 비오 12세에 대한 회고록/Ich durfte Ihm Dienen, Erinnerungen an Papst Pius XII.de)이다.[9] 2014년에는 영어 번역본 ''His Humble Servant: Sister M. Pascalina Lehnert's Memoirs of Her Years of Service to Eugenio Pacelli, Pope Pius XII'' (그의 겸손한 종: 파스칼리나 레네르트 수녀의 유제니오 파첼리, 교황 비오 12세 섬김의 연대기)가 출간되었다.5. 유산 및 평가
참조
[1]
간행물
The Hound of Hitler
Encyclopædia Britannica Online
2013-04-26
[2]
서적
La Popessa: The Controversial Biography of Sister Pascalina, the Most Powerful Woman in Vatican History
Warner Books Inc.
1983
[3]
서적
Hitler's Pope: The Secret History of Pius XII
Viking
1999
[4]
서적
La Carita Del Papa, Pio XII.e la ricostruzione dell'Italia
Edizione Paoline
1991
[5]
서적
Ich durfte Ihm Dienen
Naumann, Würzburg
1986
[6]
서적
La Popessa
Warner Books
1983
[7]
서적
Gottes Mächtige Dienerin, Schwester Pascalina und Papst Pius XII
Herbig, München
2007
[8]
뉴스
"La Popessa" speaks
https://www.firstthi[...]
2014-09-13
[9]
서적
Ich durfte Ihm Dienen
Naumann, Würzburg
19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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