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 (성씨)
1. 개요
표(表)는 신창 표씨를 비롯한 한국의 성씨들을 설명하는 문서이다. 신창 표씨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을 본관으로 하며, 후주 이부상서 표대박이 고려에 귀화한 것을 시초로 한다. 표인려를 기세조로 하여 표계, 표연말, 표빙 등이 문과에 급제하며 관직에 올랐다. 이 외에도 다양한 본관의 표씨들이 존재하며, 주요 인물로는 표연말, 표빙, 표현태, 표창원, 타이거 토구, 피오 등이 있다.
| 한자 | 表 |
|---|---|
| 로마자 표기 | alphabet-type: 영어 표기 alphabet: Pyo, P'yo, Phyo, Pio, Puo, Peo, Pyho |
| 한글 | 표 |
| 한국어 발음 | 표 |
2. 역사
표(表)씨는 신창 표씨를 비롯하여 여러 본관이 있는 것으로 전해진다.
신창 표씨의 시조는 표대박(表大㺪)인데, 그는 후주(後周)에서 이부상서(吏部尙書)를 지내다가 960년(광종 11년)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표대박 이후의 세계(世系)는 전해지지 않아, 충숙왕 때 좌리공신(左理功臣)으로 온창백(溫昌伯)에 봉해진 표인려(表仁呂)를 1세조로 하고 있다.
고려사에는 표덕린(表德麟)과 표영(表營)에 대한 기록이 있다. 표덕린은 1363년(공민왕 12년)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하는 데 공을 세워 김용을 밀성군에 유배 보낼 때 순군제공(巡軍提控)으로서 압송하였고, 이후 판도판서(版圖判書)와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하였다. 표영은 1389년(창왕 원년)에 판사(判事)를 지냈다.
조선시대에는 표계(表繼)가 1429년(세종 11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했고, 그의 아들 표연말(表沿沫)은 1472년(성종 3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吏曹參判), 대사성(大司成),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표연말의 아들 표빙(表憑)은 1513년(중종 8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고, 표별(表潎)의 증손 표빈(表贇)은 1520년(중종 15년) 문과에 급제하여 울산군수 재임 시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2015년 인구 조사에서 표(表)씨는 총 28,894명으로 조사되었으며, 이 중 신창 표씨가 대부분을 차지한다. 그 외에도 다양한 본관이 존재한다.
2.1. 신창 표씨
신창 표씨(新昌表氏)는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을 본관으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후주(後周)의 이부상서(吏部尙書) 표대박(表大㺪)이 960년(광종 11년)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표대박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충숙왕 때 좌리공신(左理功臣)에 올라 온창백(溫昌伯)에 봉해진 표인려(表仁呂)를 기세조로 한다.
『고려사』에 표덕린(表德麟)이 1363년(공민왕 12년)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하여 밀성군에 유배 보낼 때 순군제공(巡軍提控)으로서 김용을 압송하였고, 판도판서(版圖判書),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표영(表營)은 1389년(창왕 원년)에 판사(判事)를 지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세 표인려는 합문지후(閤門祗侯), 2세 표광원(表光遠)은 대부(大夫), 3세 표을충(表乙忠)은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을 지냈다. 4세 표하(表河)는 온수감무(溫水監務), 표별(表潎)은 참봉을 지냈다.
표하의 아들인 표계(表繼)가 1429년(세종 11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했다.
표계의 아들인 표연말(表沿沫, 1449년 ∼ 1498년)도 1472년(성종 3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吏曹參判), 대사성(大司成),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표연말의 아들인 표빙(表憑)은 1513년(중종 8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표별의 증손인 표빈(表贇)도 1520년(중종 15년)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 좌랑(刑曹佐郞),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전라도 도사(全羅道都事), 울산군수(蔚山郡守), 안동부사(安東府使), 김해부사(金海府使) 등을 지냈고, 울산군수 재임 시에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2.2. 기타 본관
| 씨족 (지역) | 인구 (2015년) |
|---|---|
| 거창 표씨 | 58 |
| 경주 표씨 | 37 |
| 광산 표씨 | 42 |
| 광주 표씨 | 16 |
| 광택 표씨 | 8 |
| 극창 표씨 | 18 |
| 김해 표씨 | 22 |
| 남계 표씨 | 13 |
| 남원 표씨 | 38 |
| 능주 표씨 | 7 |
| 다양 표씨 | 18 |
| 단성 표씨 | 13 |
| 대전 표씨 | 6 |
| 동창 표씨 | 6 |
| 밀양 표씨 | 35 |
| 백천 표씨 | 13 |
| 부안 표씨 | 11 |
| 사천 표씨 | 26 |
| 설창 표씨 | 5 |
| 송동 표씨 | 6 |
| 순창 표씨 | 252 |
| 신갈 표씨 | 5 |
| 신반 표씨 | 8 |
| 신안 표씨 | 57 |
| 신양 표씨 | 7 |
| 신일 표씨 | 5 |
| 신창 표씨 | 28,894 |
| 신천 표씨 | 11 |
| 신평 표씨 | 15 |
| 안악 표씨 | 10 |
| 양주 표씨 | 11 |
| 양평 표씨 | 12 |
| 온양 표씨 | 32 |
| 울산 표씨 | 35 |
| 원주 표씨 | 5 |
| 의령 표씨 | 29 |
| 전주 표씨 | 74 |
| 정주 표씨 | 12 |
| 죽산 표씨 | 195 |
| 창녕 표씨 | 76 |
| 창원 표씨 | 14 |
| 청주 표씨 | 52 |
| 청풍 표씨 | 8 |
| 충주 표씨 | 11 |
| 파평 표씨 | 43 |
| 평산 표씨 | 10 |
| 평창 표씨 | 13 |
| 평택 표씨 | 8 |
| 평해 표씨 | 29 |
| 하양 표씨 | 29 |
| 한양 표씨 | 39 |
| 함양 표씨 | 11 |
| 함창 표씨 | 47 |
| 합천 표씨 | 11 |
| 해주 표씨 | 31 |
| 황해 표씨 | 14 |
3. 주요 인물
크게 고려, 조선, 현대로 시기를 나누어 주요 인물을 설명할 수 있다.
* 고려 시대: 표대박은 고려에 귀화한 인물이며, 표인려는 충숙왕 때 좌리공신에 올랐다. 『고려사』에는 표덕린과 표영이 관직을 역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표인려는 합문지후, 표광원은 대부, 표을충은 군기시소윤, 표하는 온수감무, 표별은 참봉을 지냈다.
* 조선 시대: 표계는 세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을 역임했다. 표연말은 성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 대사성,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표빙은 중종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직제학에 이르렀다. 표빈은 중종 때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거쳤고, 울산군수 재임 시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 현대: 표현태, 표양문, 표창원은 대한민국의 국회의원이다. 타이거 토구는 재일 조선인 프로레슬러로 본명은 표정덕이다. 표영준은 대한민국의 아나운서이다. 표명일은 대한민국의 농구 선수 출신 코치이다. 표예진은 대한민국의 배우, 표승주는 대한민국의 배구 선수이다. 피오는 대한민국의 가수이자 블락비의 멤버로 본명은 표지훈이다.
3.1. 고려
후주의 이부상서(吏部尙書) 표대박(表大㺪)이 960년(광종 11년)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표대박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충숙왕 때 좌리공신(左理功臣)에 올라 온창백(溫昌伯)에 봉해진 표인려(表仁呂)를 기세조로 한다.
『고려사』에 표덕린(表德麟)이 1363년(공민왕 12년)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하여 밀성군에 유배 보낼 때 순군제공(巡軍提控)으로서 김용을 압송하였고, 판도판서(版圖判書),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표영(表營)은 1389년(창왕 원년)에 판사(判事)를 지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세 표인려(表仁呂)는 합문지후(閤門祗侯), 2세 표광원(表光遠)은 대부(大夫), 3세 표을충(表乙忠)은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을 지냈다. 4세 표하(表河)는 온수감무(溫水監務), 표별(表潎)은 참봉을 지냈다.
3.2. 조선
후주(後周)의 이부상서(吏部尙書) 표대박(表大㺪)이 960년(광종 11년) 고려에 귀화하였다고 한다. 표대박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충숙왕 때 좌리공신(左理功臣)에 올라 온창백(溫昌伯)에 봉해진 표인려(表仁呂)를 기세조로 한다.
『고려사』에 표덕린(表德麟)이 1363년(공민왕 12년) 김용(金鏞)의 난을 진압하여 밀성군에 유배 보낼 때 순군제공(巡軍提控)으로서 김용을 압송하였고, 판도판서(版圖判書), 밀직부사(密直副使)를 역임한 사실이 기록되어 있다. 표영(表營)은 1389년(창왕 원년)에 판사(判事)를 지낸 것으로 기록되어 있다.
1세 표인려(表仁呂)는 합문지후(閤門祗侯), 2세 표광원(表光遠)은 대부(大夫), 3세 표을충(表乙忠)은 군기시소윤(軍器寺少尹)을 지냈다. 4세 표하(表河)는 온수감무(溫水監務), 표별(表潎)은 참봉을 지냈다.
표하의 아들인 표계(表繼)가 1429년(세종 11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역임했다. 표계의 아들인 표연말(表沿沫, 1449년 ∼ 1498년)도 1472년(성종 3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吏曹參判), 대사성(大司成), 대제학(大提學)을 역임하였다. 표연말의 아들인 표빙(表憑)은 1513년(중종(中宗) 8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직제학(直提學)에 이르렀다. 표별(表潎)의 증손인 표빈(表贇)도 1520년(중종 15년)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 좌랑(刑曹佐郞), 사헌부 집의(司憲府執義), 전라도 도사(全羅道都事), 울산군수(蔚山郡守), 안동부사(安東府使), 김해부사(金海府使) 등을 지냈고, 울산군수 재임 시에 선정을 베풀어 청백리에 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