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창 표씨
1. 개요
신창 표씨는 중국 후주의 이부상서 표대박이 고려에 귀화하여 정착한 것을 시조로 하는 성씨이다. 고려 충숙왕 때 좌리공신 표인려를 기세조로 하며, 조선 시대에 표계, 표연말, 표빙, 표빈 등 문과 급제자를 배출했다. 주요 인물로는 표연말, 표빈, 표창원 등이 있으며, 본관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일대인 신창이다. 2015년에는 약 2만 8천 명의 인구가 있었다.
| 가문 이름 | 신창 표씨 |
|---|---|
| 한자 표기 | 新昌 表氏 |
| 관향 |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
| 국가 | 한국 |
| 시조 | (표대박) |
|---|---|
| 시조 (한자) | 表大㺪 |
| 중시조 | 표일준(表仁呂)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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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요 인물 | 표창원 P.O 표예진 표현태 표영준 표승주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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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015년 인구 | 28,894명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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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관련 웹사이트 | 신창표씨 중앙종친회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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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기원
중국 오계시대(五季時代) 후주의 이부상서(吏部尙書) 표대박(表大㺪)이 후주가 멸망한 960년(광종 11년) 장(張), 방(方), 위(韋), 변(邊), 윤(尹), 진(秦), 감(甘), 황보(皇甫) 등 8성과 함께 고려에 귀화하였다.
표대박 이후 세보가 실전되어 충숙왕 때 좌리공신(左理功臣)에 올라 온창백(溫昌伯)에 봉해진 표인려(表仁呂)를 기세조로 한다.
3. 역사
1세 표인려(表仁呂)는 합문지후, 2세 표광원(表光遠)은 대부, 3세 표을충(表乙忠)은 군기시소윤을 지냈다.
4세손 장남 표하(表河)는 온수감무, 둘째 표별(表潎)은 참봉, 셋째 표의(表漪)는 예조참의를 역임했다.
표하의 아들 표계는 1429년(세종 11년) 문과에 급제하여 사헌부 감찰을 역임했다.
표계의 아들 표연말은 1472년(성종 3년) 문과에 급제하여 이조참판, 대사성, 대제학을 역임하였다.
표연말의 아들 표빙은 1513년(중종 8년)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직제학에 이르렀다.
표별(表潎)의 증손 표빈은 1520년(중종 15년) 문과에 급제하여 형조 좌랑, 사헌부 집의, 전라도 도사, 울산군수, 안동부사, 김해부사 등을 지냈고, 청백리에 녹선되었다. 표빈의 아들 표헌이 1607년(선조 40년) 선무원종 1등 공신으로 녹훈되면서 표빈도 대광보국숭록대부 영의정으로 증직되었다.
4. 주요 인물
| 시대 | 이름 | 생몰년 | 주요 경력 |
|---|---|---|---|
| 고려/조선 | 표계(表繼) | ? | 5세손, 사헌부 감찰 |
| 고려/조선 | 표영중(表永中) | ? | 표명수(表明秀)의 아들, 도사(都事) |
| 고려/조선 | 표연말(表沿沫) | 1449년 ~ 1498년 | 대사성, 대제학, 『성종실록』 편찬, 갑자사화 때 부관참시, 이조판서 추증 |
| 고려/조선 | 표빙(表憑) | ? ~ 1524년 | 사헌부집의, 홍문관 직제학(弘文館直提學) |
| 고려/조선 | 표빈(表贇) | 1486년 ~ 1563년 | 형조 좌랑, 사헌부 집의, 청백리 |
| 고려/조선 | 표헌(表憲) | ? | 어전통사, 명나라 사신 접견, 진위사/고급사 통역관 |
| 고려/조선 | 표정로(表廷老) | ? | 원접사 역관, 명나라 사신이 조선을 문헌(文獻)의 나라라고 극찬, 지중추부사 |
| 고려/조선 | 표정준(表廷俊) | ? | 무과 급제, 만호(萬戶)·첨사(僉使), 현감 |
| 현대 | 표현태(表鉉台) | 1903년 ~ 1982년 | 대한민국 제헌 국회의원 |
| 현대 | 표양문(表良文) | 1907년 ~ 1962년 | 초대 인천시장, 제3대 국회의원 |
| 현대 | 표세진(表世振) | 1937년 ~ 2005년 | 대한민국 제8대 공정거래위원회 위원장 |
| 현대 | 표완수(表完洙) | 1947년 ~ | 前 YTN 사장, 시사IN 대표 |
| 현대 | 표학길(表鶴吉) | 1948년 ~ | 서울대학교 경제학부 교수 |
| 현대 | 표시열(表時烈) | 1949년 ~ | 고려대학교 공공행정학부 교수 |
| 현대 | 표철수(表哲洙) | 1950년 ~ | 방송위원회 사무총장, 제10대 경기도 정무부지사 |
| 현대 | 표창원(表蒼園) | 1966년 ~ | 대한민국 제20대 국회의원 |
5. 본관
신창(新昌)은 충청남도 아산시 신창면 일대의 지명이다. 백제의 굴직현(屈直縣)이었다. 757년(신라 경덕왕 16)에 기량현(祁梁縣)으로 고쳐 온정군(溫井郡)에 속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는 신창현(新昌縣)으로 개칭하였다. 1414년(태종 14)에 온수현(溫水縣)과 합하여 온창(溫昌)이라 하였다가 신창현이 되었다. 《세종실록지리지》에 충청도 신창현의 토성(土姓)으로 표(表)·맹(孟)·방(方)·조(趙) 4성이 기록되어 있다. 1896년 충청남도 아산군에 속했고, 1917년 신창면이 되었다.
6. 항렬자
| 21세 | 22세 | 23세 | 24세 | 25세 | 26세 | 27세 | 28세 | 29세 | 30세 | 31세 | 32세 | 33세 |
|---|---|---|---|---|---|---|---|---|---|---|---|---|
| 在재 榮영 | 鍾종 烈렬 | 世세 基기 | 重중 善선 | 熙희 炅경 | 垠은 圭규 | 錫석 鎭진 | 海해 澤택 | 楨정 椿춘 | 烈렬 煥환 | 奎규 坤곤 | 鉉현 鉄철 | 模모 榮영 |
7. 인구
| 연도 | 인구(가구) |
|---|---|
| 1985년 | 23,613명 (5,629가구) |
| 2000년 | 24,822명 (7,805가구) |
| 2015년 | 28,894명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