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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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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치(Francesco Lana de Terzi)는 17세기 이탈리아의 예수회 사제이자 학자이다. 그는 1670년 저서 《Prodromo》에서 진공 상태를 이용하여 공중 부양하는 비행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제시했는데, 이는 얇은 구리 호일로 만든 구체를 사용하여 부력을 얻는 방식이었다. 그는 또한 맹인을 위한 새로운 문자 체계를 고안하고, 음악 암호를 개발하기도 했다. 테르치의 비행선 아이디어는 당시 기술적 한계로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의 발명품 모형은 스미소니언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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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치

2. 진공 비행선

1670년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치는 저서 "Prodromo"를 통해 진공을 이용한 비행선, 즉 진공 비행선의 개념을 처음으로 제시했다. 이는 오토 폰 게리케의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에서 영감을 얻은 것으로, 속이 빈 얇은 금속 구체 내부의 공기를 빼내어 진공 상태로 만들면 주변 공기보다 가벼워져 부력이 발생한다는 원리에 기반한다.

라나 데 테르치는 돛으로 조종하는 배에 4개의 커다란 진공 구체를 매달아 하늘을 나는 구조를 구상했으며, 구체의 크기와 무게, 예상되는 부력까지 계산했다. 하지만 당시의 기술로는 외부 대기압을 견딜 만큼 튼튼하면서도 부력을 얻을 만큼 가벼운 금속 구체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라나 데 테르치 자신도 이 기술이 실현될 경우, 공중에서 도시를 공격하는 등 군사적으로 악용될 위험이 크다는 점을 깊이 우려하고 경고했다.

이러한 진공 비행선 구상은 1710년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에 의해 당시 재료 기술의 한계로 실현 불가능하다는 것이 이론적으로 증명되었다. 그러나 라나 데 테르치의 아이디어는 비행 기술의 초기 역사에서 중요한 발상으로 평가받으며, 후대의 과학자들에게 영향을 주었다. 현대에 이르러 그래핀과 같은 신소재의 등장은 그의 아이디어를 새로운 관점에서 재검토할 가능성을 열어주고 있다. 그의 비행선 모형은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협회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2. 1. 초기 고안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치의 비행선 디자인, 1670년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치의 비행선 컨셉, c.1670


1670년,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치는 "Prodromo ovvero saggio di alcune invenzioni nuove premesso all'arte maestra"(주요 기술에 앞서 제시된 몇 가지 새로운 발명에 관한 시론)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는 '하늘을 나는 배', 즉 진공 비행선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었다. 라나 데 테르치는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진공 발견과 이를 응용한 오토 폰 게리케의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1663년)에서 영감을 받아 공기보다 가벼운 비행체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그가 구상한 비행선은 나무 선체 중앙에 돛대가 있고 돛을 달아 범선처럼 조종하는 방식이었다. 선체에는 4개의 작은 돛대가 더 달려 있고, 각 돛대 끝에는 매우 얇은 구리 판으로 만든 속이 빈 구체가 연결되어 있었다. 각 구체의 지름은 7.5m로 설계되었다. 라나 데 테르치는 구체 하나의 무게가 180kg이고, 구체 내부의 공기를 모두 빼내 진공 상태로 만들면 각 구체에서 290kg에 해당하는 부력(아르키메데스의 원리)이 발생하여, 네 구체의 총 부력으로 선체와 6명의 승객 무게를 감당할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하지만 당시 기술로는 이렇게 얇고 큰 구리 구체를 제작하는 것이 불가능했으며, 설령 만들었다 하더라도 외부 대기압 때문에 구체는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라나 데 테르치 자신도 이러한 비행선이 전쟁 무기로 사용될 가능성을 깊이 우려했다. 그는 공중에서 도시를 공격하는 공습의 위험성을 예견하며 다음과 같이 적었다.

"신은 그러한 기계가 건설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어떤 도시도 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철 추, 화염구 및 폭탄을 높은 곳에서 던질 수 있다."

그는 또한 군사적 활용 가능성에 대해 다음과 같이 상세히 묘사하기도 했다.

"언제 이 배가 상공에 나타나 그곳에서 병사들이 내려올지 모르니, 어떤 마을도 기습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사택의 지붕이나 해상의 배에도 하늘의 해적들은 쉽게 내려올 것이다. 쇠 덩어리를 떨어뜨려 배를 침몰시키거나, 승무원을 죽이거나, 화살, 탄환, 폭탄 등으로 배에 화재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배뿐만 아니라 가옥, 성, 마을을 똑같이 공격할 수 있으며, 자신은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결국 라나 데 테르치의 진공 비행선은 실제로 제작되지 못했다. 1710년,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당시 알려진 재료의 물리적 한계를 근거로 이러한 진공 구체가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것을 이론적으로 증명했다.[6] 하지만 최근 그래핀과 같은 새로운 소재의 발견과 생산 기술의 발전은 과거의 기술적 한계를 넘어설 가능성을 보여주고 있다. 라나 데 테르치의 비행선 모형은 현재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소니언 협회의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라나 데 테르치의 아이디어는 당대에도 주목받아, 라이프니츠가 그의 저서 "Hypothesis physica nova"(1671)에서 논의하기도 했다. 또한 1671년 헨리 올덴버그는 영국 왕립학회의 학술지인 철학 회보에 라나 데 테르치의 "Prodromo"에 대한 리뷰를 게재했으며,[2] 왕립 학회의 실험 책임자였던 로버트 훅 역시 관련 이론을 상세히 논하며 "Prodromo"의 일부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했다.[3][4]

2. 2. 구조와 원리



1670년,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치는 Prodromo ovvero saggio di alcune invenzioni nuove premesso all'arte maestraita(초안 단계에 있는 몇 가지 새로운 발명에 관한 문제 또는 소론)라는 책을 출판했다. 이 책에는 '비행선'에 대한 구상이 담겨 있었다. 그는 에반젤리스타 토리첼리진공 발견과 이를 바탕으로 한 오토 폰 게리케의 마그데부르크 반구 실험(1663년)에서 영감을 받아, 1663년부터 중력보다 가벼운 항공기, 즉 진공 비행선에 대한 아이디어를 발전시켰다.

라나 데 테르치가 구상한 비행선은 나무로 만든 선체 중앙에 돛이 달린 큰 돛대가 있고, 4개의 작은 돛대 끝에는 매우 얇은 구리 호일로 만든 구체 4개가 부착된 형태였다. 각 구체의 직경은 7.5m로 설계되었다. 이 구체 내부의 공기를 모두 빼내어 진공 상태로 만들면, 주변 공기와의 밀도 차이로 인해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따라 부력이 발생하여 배가 떠오를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행선의 조종은 일반적인 범선처럼 돛을 이용하는 방식이었다.

테르치는 각 구체의 무게가 180kg이고, 구체 내부를 진공으로 만들었을 때 비워진 공기의 무게에 해당하는 290kg만큼의 부력을 얻을 수 있어, 4개의 구체가 만들어내는 총 부력으로 6명의 승객과 선체 자체를 충분히 들어 올릴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이렇게 얇고 가벼우면서도 외부 대기압을 견딜 수 있을 만큼 튼튼한 구리 구체를 만드는 것이 불가능했다. 외부 공기의 압력 때문에 구체는 쉽게 찌그러질 수밖에 없었다. 라나 데 테르치 자신도 이러한 비행선이 실현될 경우, 공중에서 도시를 공격하는 공습과 같은 전쟁 무기로 사용될 수 있다는 점을 우려했다. 그는 다음과 같이 기록했다.

> 언제 이 배가 상공에 나타나 그곳에서 병사들이 내려올지 모르니, 어떤 마을도 기습을 막아낼 수 없을 것이다. 사택의 지붕이나 해상의 배에도 하늘의 해적들은 쉽게 내려올 것이다. 쇠 덩어리를 떨어뜨려 배를 침몰시키거나, 승무원을 죽이거나, 화살, 탄환, 폭탄 등으로 배에 화재를 일으킬 수 있을 것이다. 배뿐만 아니라 가옥, 성, 마을을 똑같이 공격할 수 있으며, 자신은 아무런 위험도 느끼지 않을 것이다.

이러한 진공 구체를 이용한 비행선이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는 사실은 1710년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에 의해 이론적으로 증명되었다. 라이프니츠는 당시 알려진 재료로는 외부 대기압을 견딜 만큼 충분히 강하면서도 가벼운 구체를 만들 수 없다고 결론지었다.[6] 하지만 최근 그래핀과 같은 신소재의 발견과 생산 기술의 발전으로 인해, 과거의 기술적 한계는 극복될 가능성도 제기되고 있다.

라나 데 테르치의 아이디어는 라이프니츠의 "Hypothesis physica nova"(1671)에서 논의되었으며, 같은 해 헨리 올덴버그는 왕립 학회의 철학 논문에 "Prodromo"에 대한 리뷰를 게재했다.[2] 왕립 학회의 큐레이터였던 로버트 훅 역시 관련된 이론에 대한 긴 논의와 함께 "Prodromo"의 일부 내용을 영어로 번역하여 소개했다.[3][4] 라나 데 테르치의 비행선 모형은 현재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소니언 협회의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2. 3. 이론적 한계와 군사적 이용에 대한 경고



라나 데 테르치의 비행선 설계는 당시 기술로는 실현 불가능한 한계를 안고 있었다. 그는 각 구체의 직경이 7.5m이고 무게는 180kg이며, 내부 공기를 빼내면 290kg의 부력을 얻어 6명의 승객을 태울 수 있을 것이라고 계산했다. 그러나 당시 기술로는 이렇게 얇은 구리 호일을 제작할 수 없었으며, 설령 제작한다 하더라도 외부 공기의 압력(대기압)을 견디지 못하고 구체가 찌그러질 운명이었다.

라나 데 테르치 자신도 이러한 비행선이 군사적으로 악용될 가능성을 깊이 우려했다. 그는 이 발명품이 전쟁 무기로 사용되어 도시를 공습하는 데 쓰일 수 있음을 예견하며 다음과 같이 경고했다: "신은 그러한 기계가 건설되는 것을 결코 허락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모든 사람이 어떤 도시도 습격으로부터 안전하지 않다는 것을 깨닫기 때문이다... 철 추, 화염구 및 폭탄을 높은 곳에서 던질 수 있다." 그는 하늘에서 병력이 내려오거나 쇠 덩어리, 폭탄 등을 투하하여 배나 가옥, 마을을 공격하는 상황을 묘사하며 공중 공격의 위협을 정확히 예측했다.

결국 이러한 진공 구체를 이용한 비행선은 이론적으로도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1710년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에 의해 증명되었다. 라이프니츠는 당시 알려진 재료로는 구체가 대기압을 견딜 만큼 충분히 강하면서도 아르키메데스의 원리에 따른 부력을 가질 만큼 가벼울 수 없음을 밝혔다.[6] 라나 데 테르치의 아이디어는 실현되지 못했지만, 그의 비행선 모형은 미국 워싱턴 D.C.의 스미소니언 협회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다.

2. 4. 현대적 재평가

1710년 고트프리트 빌헬름 라이프니츠는 당시 알려진 재료의 한계를 근거로 라나 데 테르치의 진공 구체가 물리적으로 불가능하다고 증명했다. 라이프니츠는 충분히 얇게 만든 구형 껍질은 외부 대기압을 견디지 못하고 찌그러질 것이라고 결론지었다.[6]

그러나 라이프니츠의 이러한 판단은 당시의 재료 과학 기술 수준에 기반한 것이었다. 최근 그래핀과 같은 혁신적인 신소재의 발견과 생산 기술의 발전은 과거의 기술적 한계를 극복할 가능성을 열어주면서, 라나 데 테르치의 아이디어를 현대적인 관점에서 다시 평가할 수 있는 계기를 마련하고 있다.

비록 그의 생전에 실현되지는 못했지만, 라나 데 테르치의 진공 비행선 구상은 항공 역사에서 선구적인 아이디어로 인정받고 있다. 그의 발명품 모형은 미국 워싱턴 D.C.에 있는 스미소니언 협회의 국립 항공 우주 박물관에 전시되어 역사적 중요성을 인정받고 있다. 라나 데 테르치의 아이디어는 라이프니츠의 "Hypothesis physica nova"(1671)에서도 논의되었으며, 1671년 헨리 올덴버그는 "Prodromus"에 대한 리뷰를 철학 논문에 게재했다.[2] 왕립 학회의 큐레이터였던 로버트 훅 역시 관련된 이론에 대한 긴 논의와 함께 "Prodromo"의 특정 섹션을 영어로 번역하여 제시하기도 했다.[3][4]

3. 맹인을 위한 문자 체계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치는 그의 저서 ''프로드로모''에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새로운 문자 체계를 제안했다. 이는 기존의 문자 형태를 모방하는 대신, 손가락의 체감 감각으로 식별할 수 있는 선과 점을 이용한 기호를 사용하는 독창적인 아이디어에 기반했다.[5] 라나는 이 문자를 두꺼운 종이에 돋을새김하여 촉각으로 읽을 수 있도록 고안했다.

라나가 고안한 시각 장애인용 문자 체계 예시


또한, 그는 알파벳 문자를 음표로 변환하는 음악 암호를 고안하여, 악보를 통해 비밀 메시지를 전달하거나 멜로디를 통해 시각 장애인도 정보를 주고받을 수 있는 방법을 제시했다. 라나의 이러한 시도는 후대의 점자 개발에 영향을 미친 선구적인 노력 중 하나였다.

3. 1. 새로운 문자 체계 고안

그의 저서 ''프로드로모''에서, 그는 자신이 고안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알파벳을 소개했다. 이전의 시각 장애인 문자 체계와 달리, 라나의 알파벳은 일반적인 필기체나 인쇄된 문자를 모방할 필요 없이, 손가락의 체감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호(대시)를 기반으로 해야 한다는 아이디어를 바탕으로 했다. 그러나 라나는 점이 촉각으로 대시보다 더 쉽게 인식된다는 점을 깨닫지 못했고, 이는 그의 발명이 널리 사용되지 못한 요인이 되었다. 훗날 루이 브라유는 이러한 기본적인 통찰을 바탕으로 오늘날 널리 쓰이는 점자 체계를 고안하게 된다.[5]

『프로드로모』(원제: 소론)에는 "맹인을 위한 독학 가능한 기법, 혹은 비밀을 숨기기 위한 암호"라는 장이 있는데, 여기서 라나는 후대의 점자와 유사한 시스템을 제안했다. 그의 방식은 라틴 알파벳을 3개 이하의 점과 3개 이하의 선의 조합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오른쪽 그림 참조). 이 기호들은 손가락으로 읽을 수 있도록 두꺼운 종이에 돋을새김(부조) 형태로 새겨졌다.

또한 ''프로드로모''에는 알파벳 문자를 음표로 변환하는 음악 암호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주로 악보를 통해 비밀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한 목적이었지만, 결과적으로 만들어진 멜로디는 귀로 들을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각 장애인도 접근할 수 있는 방식이었다.

3. 2. 한계와 루이 브라유의 점자

그의 저서 ''프로드로모''에서, 그는 자신이 고안한 시각 장애인을 위한 완전히 새로운 알파벳을 소개했다. 이전의 시각 장애인 문자 체계와 달리, 라나의 알파벳은 일반적인 필기체나 인쇄된 문자를 모방할 필요가 없다는 아이디어를 기반으로 했으며, 손가락의 체감 감각으로 인식할 수 있는 기호(대시)를 기반으로 해야 했다. 이 발명의 성공을 막은 한 가지 세부 사항은 라나가 점이 촉각으로 대시보다 더 쉽게 인식된다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루이 브라유는 이 기본적인 직관을 통해 그를 기리는 이름을 딴 시각 장애인 문자 알파벳, 즉 점자를 고안했다.[5]

''프로드로모''에는 "맹인을 위한 독학 가능한 기법, 혹은 비밀을 숨기기 위한 암호"라는 장이 있으며, 라나는 이후의 점자와 유사한 시스템을 발안했다. 그의 기법은 라틴 문자를 3개 이하의 점과 3개 이하의 선의 조합으로 나타내는 것이었다(오른쪽 그림 참조). 이 문자들은 손가락으로 읽을 수 있도록 두꺼운 종이에 부조로 새겨졌다.

또한 ''프로드로모''에는 알파벳의 문자를 음표로 변환하는 음악 암호도 포함되어 있다. 이는 주로 악보를 통해 숨겨진 비밀 메시지를 보내기 위한 것이었지만, 결과 멜로디는 귀로 전달될 수 있었기 때문에 시각 장애인도 접근할 수 있었다.

4. 음악 암호

그의 저서 ''프로드로모''에는 알파벳 문자를 음표로 바꾸는 방식의 음악 암호가 소개되어 있다. 이 암호는 주로 악보 형태로 비밀 메시지를 주고받기 위해 고안되었으나, 만들어진 멜로디는 귀로 들을 수도 있어 맹인도 이용할 수 있다는 특징이 있었다.[5]

5. 저서


  • ''Prodromo ovvero saggio di alcune inventione nuove premesso all'arte Maestra Opera che prepara il P. Francesco Lana, Bresciano della Compagnia di Giesu. Per mostrare li più reconditi proncipij della Naturale Filosofia, riconosciuti con accurata Teorica nelle più segnalate inventioni, ed isperienze fin'hora ritrovate da gli scrittori di questa materia & altre nuove dell'autore medesimo'' (작품명, 즉 프란체스코 라나 데 테르치 신부가 준비한 마에스트라 예술의 서문. 자연 철학의 가장 숨겨진 원리를 보여주기 위해, 이 분야의 작가들이 발견한 가장 뛰어난 발명과 실험, 그리고 저자 자신이 발견한 새로운 것들을 주의 깊은 이론으로 인식함). 브레시아: Rizzardi, 1670년. (재판: 밀라노, 롱가네시, 1977년)
  • ''크리스탈 형성에 관한 이탈리아 광산 감독관 M. 안토니오 카스타냐 씨의 관찰에 대한 P. 프란체스코 라나 S. F.의 성찰: 영어로 번역 XI. 베네치아 문학 저널에서''. 철학적 거래, 7권 (83호), 1672년, 4068–4069쪽.
  • Magisterium naturae, et artis. Opus physico-mathematicum|자연과 예술의 마기스테리움, 수학적 물리 작품la.
  • * 1권: 브레시아, Io. Mariam Ricciardum, 1684년.
  • * 2권: 브레시아, Io. Mariam Ricciardum, 1686년.
  • * 3권: 파르마, Typis Hyppoliti Rosati ac sumptibus Iosephi ab Oleo, 1692년.

참조

[1] 웹사이트 Francesco Lana-Terzi, S.J. (1631-1687); The Father of Aeronautics http://www.faculty.f[...] 2010-05-01
[2] 논문 An accompt of two books. - I. Prodromo overo saggio di alcune inventioni nuove premesso all'Arte Maestra di P. Francisco Lana della Campagnia di Jesu, in Brescia, 1670. in 4˚. II Joh. Henr. Meibomii de cerevisiis, potibùsque & ebriaminibus extra vinum aliis Commentarius, annexo libello Turnebi de vino. Helmestadii 1668. in 4˚ 1671
[3] 논문 P. Fran. Lana's Way of Making a Flying Chariot; with an Examination of the Grounds and Principles thereof https://books.google[...] 1679
[4] 논문 Ready for Takeoff. Robert Hooke's flying experiments http://www.cabinetma[...] 2007
[5] 뉴스 Francesco Lana, visionario tra velivoli e l'alfabeto dei ciechi Giornale di Brescia 2011-12-30
[6] 서적 航空発達物語(上)
[7] 웹인용 Francesco Lana-Terzi, S.J. (1631-1687); The Father of Aeronautics http://www.faculty.f[...] 2010-05-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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