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시스 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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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프랑시스 옴은 여러 건의 살인 사건에 연루되어 프랑스 전역에서 재판을 받았으며, 종신형을 포함한 여러 형을 선고받았다. 알코올 중독과 클라인펠터 증후군으로 인한 성적 욕구 불만이 범행 동기로 작용했으며, 1992년 체포 이후에도 자신의 범행을 교묘하게 숨기며 수사에 혼선을 줬다. 1997년 종신형을 선고받았고, 이후에도 추가 살인 혐의로 징역형을 받았다. 그의 수사 과정을 담은 책과 다큐멘터리가 제작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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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시스 옴 - [인물]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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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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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 프랑시스 옴 |
별칭 | 배낭여행 살인자 |
출생일 | 1959년 2월 25일 |
출생지 | 메스, 프랑스 |
국적 | 프랑스 |
범죄 정보 | |
유죄 판결 | 살인 |
형량 | 종신형 |
피해자 수 | 9명 이상 |
범행 시작 시기 | 1985년 |
범행 종료 시기 | 1992년 |
체포 시기 | 1992년 1월 7일 |
2. 생애 및 범행 배경
프랑시스 옴은 17세까지 아버지에게 학대를 받아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20세에 자전거 타기에 대한 열정을 갖게 되었으나, 8년 후 집을 나와 프랑스 전역을 불규칙하게 여행하며 엠마우스 쉼터, 정신과 병원, 해독 센터 등에서 지냈다. 그는 석공이나 금속 노동자로 잡일을 하며 번 적은 수입을 술을 마시는 데 썼고, 때로는 술과 안정제를 섞어 마시기도 했다.[1]
1989년에 옴은 브레스트, 캥페를레, 메스에서 에마우스의 스탭이 되기도 했다. 치료받지 않은 클라인펠터 증후군을 앓고 있던 옴은 범죄를 통해 성욕을 충족시켰으며, 최소 두 번은 다른 남성을 통해 강간을 저지르기도 했다. 의료진에게 살인을 자백했지만, 의료 기밀 때문에 정보는 공개되지 않았다. 그는 경찰서에서 허위 폭행을 진술하기도 했다.[1]
1992년 1월 7일 비스빌러에서 체포된 옴은 유동적인 생활 방식과 알리바이 조작, 불분명한 범행 동기 때문에 사건 입증에 어려움을 겪었다. 경찰 조직 간 협조 부족도 수사를 어렵게 만들었다. 헌병 장교 장-프랑수아 아브그랄은 옴을 추적하며 "그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을 때 가장 많은 것을 말한다"는 것을 알아냈다.[1]
옴은 살인 현장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설명했다. 예를 들어, 한 손으로 머리 뒤를 꽉 잡고 다른 손으로 경동맥을 찔러 죽이는 방법을 보여주었다. 아브그랄은 "그는 거짓말을 하지 않는다. 그는 결코 아무것도 지어내지 않는다. 그러나 그는 범죄, 날짜 및 장소를 뒤섞어 고의로 자신의 흔적을 숨긴다."라고 평가했다.[1]
2. 1. 불우한 유년 시절과 정신 질환
알코올 중독자였던 아버지의 폭행에 일찍부터 시달린 옴은 스스로도 알코올 중독자가 되어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그러나 6세 연상인 누나와는 사이가 좋았고, 어머니와도 원활한 가족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82년에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하고, 이어 누나도 결혼하여 출가하자 옴은 범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1]옴은 히치하이킹, 도보, 철도(부정 승차하는 경우가 많았다)를 이용하여 프랑스 전국을 돌아다녔다. 엠마우스 쉼터나 마약 중독 전문 병원에서 거주했고, 생활보조금은 술 마시는 데 탕진했다. 또 간혹 술에 진정제를 섞어 마시기도 했다. 그러는 틈틈이 공사장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1]
클라인펠터 증후군 환자였던 옴은 그로 인한 공격적인 성욕을 충족시킬 수 없었고, 범죄를 저지름으로써 이러한 성욕을 충족시키기에 이른다. 성행위를 할 수 없던 옴은 두 명의 남성(그 중 한 명은 옴의 먼 친척)을 범하고 살해하기도 했다. 또 거짓말에 능했던 옴은 자신의 범죄를 그럴듯하게 꾸며서 자랑하기도 했으며, 경찰 조사에서 허위 진술을 하기도 했다.[1]
2. 2. 프랑스 전역을 떠돌다
옴은 주로 히치하이킹을 하고, 그 외에 일부는 도보와 철도(부정승차 하는 경우가 많았다)를 이용하여 프랑스 전국을 돌아다녔다. 에마우스 쉼터(fr)나 마약 중독 전문 병원에서 거주했고, 생활보조금은 술 마시는 데 탕진했다. 또 간혹 술에 진정제를 섞어 마시기도 했다. 그러는 틈틈이 공사장 막노동을 하기도 했다.[1]1989년에 옴은 브레스트에서 에마우스의 스탭이 되었다. 이어 캥페를레와 메스에서도 에마우스의 스탭이 되는 데 성공했다.
3. 주요 범행 및 수사 과정
프랑시스 옴은 프랑스 전역에서 여러 건의 살인 사건에 연루되었으며, 1980년대 중반부터 1990년대 초반까지 어린이나 젊은 여성을 대상으로 잔혹하고 대담한 범행을 저질렀다.
옴의 범행은 프랑스 전역에 걸쳐 발생했고, 떠돌이 생활로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쉬웠으며, 뚜렷한 범행 동기가 없어 수사에 어려움이 있었다. 또한 수사 기관 간의 협조도 원활하지 않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브그랄은 끈질긴 수사 끝에 옴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옴이 용의자, 피고인 또는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프랑스 87개 부서에서 수십 건이 보고될 정도로 매우 많았다.
3. 1. 초기 범행 (1984-1989)
옴은 프랑스 전국 여러 곳에서 범행을 저질렀다. 1984년 9월, 옴은 공범 조제프 몰랭과 함께 17세의 리오넬 지네스트를 살해했다. 이 사건은 옴의 어머니가 암으로 사망한 것에 영향을 받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1989년 4월, fr에서 8세 소년 조리스 비비유가 살해되었고, 시신은 자동차로 20km가량 운반되었다. 옴은 클라인펠터 증후군으로 인해 운전을 할 수 없었기 때문에, 이는 옴에게 공범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되었다. 재판에서 옴은 다섯 명의 다른 용의자를 공범으로 지목했지만, 결국 단독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1989년 5월, 브레스트에서 49세 여성 알린 페레가 살해되었다. 이 사건으로 옴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당시 렌의 수사 및 개입 여단 소속이었던 헌병 압그랄은 이 사건 수색에 참여하면서 옴을 추적하게 되었고, 4년 뒤 비슈윌러에서 옴을 체포하는 데 성공했다.
3. 2. 메스 지역 연쇄 살인 (1986-1991)
옴이 범인으로 확정된 사건은 프랑스 전국에 걸쳐 여러 건이 있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 및 피살자는 아래와 같다.사건명 | 개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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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랑스 기욤(Laurence Guillaume프랑스어, 당시 14) 살해사건 | 1991년 5월 7일, 메스 교외에서 당시 14세이던 기욤이 살해된 사건으로, 옴은 이 사건으로 무기징역을 선고받았다. 당시 옴은 기욤의 사촌 미셸(Michel Guillaume)과 동행하고 있었는데, 기욤의 사촌은 얼마 전에 옴과 알게 된 사이였다. 기욤의 사촌은 공범으로 징역 18년이 선고되었다. |
조리스 비비유(Jorris Viville프랑스어, 당시 8) 살해사건 | 1989년 4월, 포르-그리모에서 당시 8세인 비비유가 살해되었고, 사체는 자동차로 20km가량 운반되었다. 옴은 클라인펠터 증후군으로 인해 운전을 할 수 없었기에 이는 옴에게 공범이 있었음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제시되었다. 재판 때 다섯 건의 다른 용의가 알려져 궁지에 몰린 옴은 해당 용의들에 대해 공범이 있었던 것같이 꾸며댔지만, 옴 단독으로 무기 징역에 처해지는데 그쳤다. |
알린 페레(Aline Peres프랑스어, 당시 49) 살해사건 | 1989년 5월, 브레스트에서 당시 49세인 페레가 살해되었고, 이 사건으로 옴은 징역 20년을 선고받게 된다. 한편, 압그랄이 활약하게 되는 것도 이 사건에서 렌 일대의 수색에 종사하면서 부터였고, 결과적으로 4년 뒤에 비슈윌러에서 옴을 체포하기에 이른다. |
로랑 뷔로(Laurent Bureau프랑스어, 당시 19) 살해사건 | 이 사건 당시 옴은 1989년의 셀린 주르당(Céline Jourdan프랑스어, 당시 7) 살해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디디에 장티(Didier Gentil)와 동행하고 있었는데, 어느 쪽이 뷰로를 살해하였는가를 판가름내지 못한 법원은 두 사람 모두를 범인으로 판결했다. |
시릴 베이닝과 알렉산더 베크리히 살해 사건 | 1986년 9월 29일, 몽티니레메스의 철로에서 사망한 채 발견된 두 어린이, 시릴 베이닝과 알렉산더 베크리히 살해 사건. 패트릭 딜스라는 남자가 이 범죄로 유죄 판결을 받고 15년 징역형을 살았지만 2002년에 무죄로 풀려났다. |
3. 3. 기타 범행
프랑시스 옴은 프랑스 전국에 걸쳐 여러 건의 범행을 저질렀다. 그 중 대표적인 사건 및 피살자는 다음과 같다.- 리오넬 지네스트(Lyonelle Gineste프랑스어, 당시 17세) 살해 사건: 1984년 9월, 옴은 공범 조제프 몰랭과 함께 리오넬을 살해했다.
- 조리스 비비유(Jorris Viville프랑스어, 당시 8세) 살해 사건: 1989년 4월, 포르-그리모(fr)에서 살해되었고, 옴은 단독으로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 알린 페레(Aline Peres프랑스어, 당시 49세) 살해 사건: 1989년 5월, 브레스트에서 살해되었고, 옴은 징역 20년을 선고받았다.
- 로랑스 기욤(Laurence Guillaume프랑스어, 당시 14세) 살해 사건: 1991년 5월 7일, 메스 교외에서 살해되었고, 옴은 무기 징역을 선고받았다. 기욤의 사촌은 공범으로 징역 18년이 선고되었다.
- 로랑 뷔로(Laurent Bureau프랑스어, 당시 19세) 살해 사건: 1989년의 셀린 주르당(Céline Jourdan프랑스어, 당시 7세) 살해 사건의 범인으로 지목된 디디에 장티(Didier Gentil)와 동행, 법원은 두 사람 모두를 범인으로 판결했다.
그 외에도 옴은 다음과 같은 사건들에 연루되었다.
- 보클루즈의 코르테종에서 퇴역 군인을 살해한 사건: 옴은 무죄 판결을 받았다.
- 1986년 9월 29일, 몽티니-레-메츠에서 발생한 시릴 베이닝과 알렉산더 베크리히 살해 사건: 패트릭 딜스가 유죄 판결을 받았으나 2002년에 무죄로 풀려났다.
3. 4. 수사의 어려움
1992년 1월 7일 비슈윌러(fr)에서 체포된 옴은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쉬운 떠돌이 생활을 했고, 특별한 범행 동기도 없어 경찰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수사기관 간의 협조가 원활하지 않았던 점도 수사의 걸림돌이었다. 낮은 직위에 있었던 압그랄은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옴이 추궁당할 때보다 그렇지 않을 때 더 많은 진술을 한다는 것을 알아냈다.옴은 사건 당시를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진술했지만, 마치 꿈 속 이야기를 하듯 직접적인 표현을 사용하지 않았다. 예를 들어, 옴은 한 손으로 피살자의 머리를 잡고 다른 한 손으로 경동맥을 베는 시늉을 하거나 그렸고, 그러고 나서는 마치 실제로 사건을 저지른 뒤처럼 물러났다. 압그랄은 "옴은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꾸며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각각의 사건과 그 장소, 시간을 뒤섞음으로써 (수사하는 쪽을) 교란시킨다."고 평가했다.
그가 용의자, 피고인 또는 유죄 판결을 받은 사건은 프랑스 87개 부서에서 수십 건이 보고될 정도로 매우 많았다.
4. 옴의 심리 및 진술 특징
어려서부터 알코올 중독이었던 아버지에게 폭행당하며 자란 옴은 스스로도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고, 자살을 시도하기도 했다. 하지만 6살 많은 누나와는 사이가 좋았고, 어머니와도 원만한 관계를 유지했다. 그러나 1982년 어머니가 암으로 세상을 떠나고, 누나마저 결혼하여 집을 떠나자 옴은 범죄에 빠져들기 시작했다.[1]
옴은 클라인펠터 증후군을 앓고 있어 정상적인 성욕을 충족시킬 수 없었고, 범죄를 통해 이를 해소하려 했다.[1] 실제로 옴은 두 명의 남성을 상대로 범죄를 저지르고 살해하기도 했다. 또한 옴은 거짓말에 능숙하여 자신의 범죄를 그럴듯하게 꾸며 자랑하거나, 경찰 조사에서 허위 진술을 하기도 했다.
옴은 사건 당시 상황을 놀라울 정도로 정확하게 묘사했지만, 자신이 직접 범행을 저질렀다는 표현은 전혀 사용하지 않고 마치 꿈 이야기를 하듯 말했다. 예를 들어, 한 손으로 피해자의 머리를 잡고 다른 손으로 경동맥을 베는 시늉을 하거나 그림을 그렸고, 마치 실제 범행 후처럼 물러서는 모습을 보였다. 압그랄은 이에 대해 "옴은 거짓말을 하지도 않고, 꾸며내지도 않는다. 하지만 각각의 사건과 그 장소, 시간을 뒤섞음으로써 (수사하는 쪽을) 교란시킨다"고 평가했다.
그의 변호사였던 가스파르는 옴이 경찰, 경찰관, 판사 등 권위자에게 약한 모습을 보이며, 그들이 원하는 대로 말하게 할 수 있다고 느낀다고 설명했다.
5. 재판 및 판결
1997년 5월, 바르주 지방법원은 여러 건의 살인 혐의로 옴에게 종신형을 선고했으며, 그 중 22년은 가석방이 불가능하다.[1] 1999년, 뫼르트에모젤주 지방법원은 1984년 리오넬 지네스트 살해 사건과 관련하여 옴에게 징역 30년을 선고했다. 이 사건에서 옴의 공범으로 1996년에 옴에 의해 고발된 조제 몰랭(José Molins프랑스어)에게는 징역 10년이 선고되었다.
2004년 12월 16일, 1988년과 1989년에 마른주에서 벌인 세 건의 살인으로 옴은 추가 징역 30년(그 중 20년간 가석방이나 감형 없음)을 선고받았다. 2017년 5월 17일, 옴은 소년 시릴 베이닝(Cyril Beining)과 알렉상드르 베크리치(Alexandre Beckrich)를 살해한 혐의로 종신형을 선고받았다. 유죄 판결에 대해 그의 변호사는 항소했다.
6. 미디어
- 압그랄은 수사 경과를 기록한 수기 ''Dans la tête du tueur''Dans la tête du tueur|살인자의 머리 속에서프랑스어라는 책을 펴냈다.[1]
- 압그랄의 수기는 2005년 클로드미셸 롬(fr)에 의해 텔레비전 드라마화되었다(fr). 프랑스의 TF1(fr)에서 방송된 이 드라마에서 옴 역은 티에리 프레몽이, 압그랄 역은 베르나르 지로도(fr)가 각각 맡았다.[1]
- 2005년 11월, 유선방송 채널 13번가(fr)는 옴의 살해 행각 경로를 그대로 따라가면서 제작한 ''la route sanglante - sur les traces de Francis Heaulme''이라는 90분짜리 다큐멘터리를 방송했다.[1]
- 2008년 2월 24일, BBC One에서 압그랄의 옴에 대한 수사를 주제로 한 ''Dance with a Serial Killer''라는 70분짜리 다큐멘터리가 방송되었다.[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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