플라이드 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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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플라이드 컴리(Plaid Cymru)는 1925년 웨일스 민족주의를 목표로 창당된 정당이다. 웨일스어 보존을 최우선으로 시작하여, 자치 정부 및 웨일스 문화 보존을 목표로 활동했다. 1966년 첫 원내 진출 이후, 1970년대에 영국 하원 의석을 확보하며 성장했으나, 1979년 자치 찬반 투표 부결로 위기를 겪었다. 1990년대 웨일스 자치에 대한 지지가 높아지면서 웨일스 의회 설립에 기여했고, 1999년 웨일스 의회에서 노동당에 이어 제2당으로 부상했다. 이후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채택하여 웨일스 독립과 자치를 추구하며, 2021년에는 노동당과 협력 협정을 체결했다. 현재는 웨일스 의회와 영국 의회에서 의석을 확보하고 있으며, 웨일스어 사용 확대, 사회 복지 서비스 강화 등의 정책을 추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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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라이드 컴리 - [정당]에 관한 문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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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본 정보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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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당 이름 | 플라이드 컴리 – 웨일스당 |
웨일스어 이름 | Plaid Cymru |
영어 이름 | The Party of Wales |
창당일 | 1925년 8월 5일 |
본부 | Tŷ Gwynfor, Marine Chambers, Anson Court, Atlantic Wharf, 카디프 CF10 4AL |
웹사이트 (웨일스어) | 플라이드 컴리 공식 웹사이트 |
웹사이트 (영어) | 플라이드 컴리 공식 웹사이트 |
국가 | 영국 |
당원 수 (2022년) | 약 10,000명 |
지도부 | |
대표 | 룬 아프 이오르베르스 |
부대표 | 델리스 주얼 |
웨스트민스터 대표 | 리즈 사빌 로버츠 |
의장 | 마크 존스 |
명예 총재 | 위글리 경 |
관련 단체 | |
청년 조직 | 플라이드 이판크 |
성소수자 조직 | 플라이드 프라이드 |
장애인 조직 | 플라이드 컴리 아나블레드 |
이념 및 정치 성향 | |
이념 | 웨일스 민족주의 웨일스 독립 웨일스 공화주의 민주 사회주의 사회민주주의 환경주의 지역주의 시민 민족주의 좌익 포퓰리즘 |
정치적 위치 | 중도좌파 ~ 좌익 |
국제 관계 | |
유럽 정당 | 유럽 자유 동맹 |
의회 의석 | |
하원 (웨일스 의석) | '4' / 32 |
상원 | 1 / |
세네드 | '12' / 60 |
웨일스 경찰 및 범죄 위원 | '1' / 4 |
웨일스 지방 의원 | '205' / 1231 |
웨일스 의회 주도 | '4' / 22 |
기타 | |
상징색 | 초록색, 노란색 |
추가 정보 | |
관련 링크 | EU 탈퇴 촉발 '영국 해체' 위기, 웨일스 독립 움직임 (허핑턴포스트) 웨일스 지역 정당, 영국 국민투표 후 독립 움직임 가속 (로이터) |
유럽 의회 의석 | 1 / 4 |
2. 역사
1925년 8월 5일, 웨일스 민족당/Plaid Genedlaethol Cymrucy은 웨일스 자치군/Byddin Ymreolwyr Cymrucy 회원인 모세스 그루피드, H. R. 존스, 루이스 발렌타인과, 웨일스 운동/Y Mudiad Cymreigcy의 사운더스 루이스 그리고 D. 에드먼드 윌리엄스에 의해 결성되었다.[51] 초기에는 웨일스어 사용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으며, 웨일스어를 웨일스의 유일한 공용어로 만들고자 했다.[52] 1929년 총선에서 카에르나본셔 선거구에 처음 출마하여 609표(득표율 1.6%)를 얻었다.[53]
1932년, 자치 정부와 국제연맹에서의 웨일스 대표성이라는 목표가 웨일스어와 문화 보존이라는 기존 목표에 추가되었다.[54] 그러나 사운더스 루이스 등 당 주요 인물들이 유럽의 전체주의 정권에 대해 공감을 표하면서 초기 당의 매력을 떨어뜨렸다.[55]
1936년, 소운더스 루이스, 데이비드 존 윌리엄스, 루이스 발렌타인은 르린 반도 구이네드에 위치한 RAF 페니베스 공군 기지에 항의하여 방화했다. 이 사건으로 당의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고, 1939년에는 당원 수가 거의 2,000명으로 증가했다.[52][56]
제2차 세계 대전 중 플라이드 컴루는 중립 노선을 유지하고, 전쟁 징집에 대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촉구했다.[58] 1943년, 사운더스 루이스는 보궐선거에서 웨일스 대학교 의회 의석에 출마하여 1,330표(22%)를 얻었다. 1945년 총선에서 플라이드 컴루는 7개 의석에 출마했으며, 이때 그윈포어 에번스가 당수로 선출되었다.[59]
1945년 그윈포어 에번스 당수 선출 이후 플라이드 컴리는 본격적인 정당으로 성장했다.[60] 1951년 영국 총선에서 0.7%였던 득표율은 1955년 영국 총선 3.1%, 1959년 영국 총선 5.2%로 꾸준히 증가했으며, 1959년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웨일스 의석 대다수에 후보를 냈다.[60]
1957년 그위네드의 트리웨린 계곡에 있는 카펠 셀린 마을을 침수시켜 리버풀시에 물을 공급하려는 계획은, 웨일스 국회의원들의 지지 없이 의회 법안이 통과되면서 웨일스 자치 요구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60]
1962년 손더스 루이스의 라디오 방송 "언어의 운명"은 웨일스어 학회 설립으로 이어져 웨일스 민족주의 운동을 활성화시켰다.[61] 1964년 노동당 집권과 웨일스 담당 국무장관직 신설은 웨일스 정치체제 발전에 기여했다.
1966년 카마든 보궐선거에서 그윈포어 에번스가 당선되어 플라이드 컴리는 첫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62][63] 1967년 론다 웨스트, 1968년 카필리 보궐선거에서도 승리에 근접하며 지지율을 크게 높였다.
1970년 영국 총선에서 처음으로 웨일스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냈고, 1974년 10월 영국 총선에서는 카에르나르폰(Caernarfon), 메리오네스셔(Merionethshire)에서 의석을 확보하여 총 3석의 영국 하원 의석을 갖게 되었다. 플라이드 컴리의 부상은 킬브랜던 위원회(Kilbrandon Commission) 설립에 영향을 주었다.
1979년 웨일스 자치 찬반 투표 부결로 당은 위기를 겪었으며, 1979년 영국 총선에서 득표율이 감소하고 카마든 의석을 잃었다.[53] 1981년 다피드 위글리가 당 대표가 되었고, 당은 "공동체 사회주의" 정책을 채택했다.[69] S4C 설립 운동을 주도하여 1982년 웨일스어 방송 채널이 개국되었다.[70]
1990년대 들어 웨일스 자치에 대한 찬성 여론이 확산되었고, 1997년 웨일스 자치 찬반 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찬성이 통과되어 웨일스 의회 설립에 기여했다.
1999년 웨일스 의회가 설립되면서 플라이드 컴리는 노동당에 이어 원내 제2당으로 부상했다.[71] 1999년 웨일스 의회 선거를 앞두고 플라이드 컴리는 유럽 연합 잔류 하의 웨일스 독립을 주장하며,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채택했다.[71] 이는 웨일스 유권자들이 독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판단과 노동당을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71]
;제1대 웨일스 의회 (1999년 ~ 2003년)
1999년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론다, 이스윈, 라넬리 등 전통적인 노동당 강세 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하며 선전했다. 이는 의회 수석장관(Assembly First Secretary) 후보였던 론 데이비스의 사퇴와 앨런 마이클(Alun Michael)과 로드리 모건(Rhodri Morgan) 간의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영국 노동당 지도부의 개입 논란으로 인한 노동당의 지지율 하락에 힘입은 결과였다.[72]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플라이드 컴리는 웨일스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에 근접하며 2명의 MEP(유럽 의회 의원)을 배출했다.
그러나 이후 플라이드 컴리는 다피드 위글리(Dafydd Wigley) 대표의 사퇴와 후임 이우언 윈 존스(Ieuan Wyn Jones) 체제에서 당내 갈등을 겪었다.[73][74]
;제2대 웨일스 의회 (2003년 ~ 2007년)
2003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12석으로 의석이 감소하며 고전했지만, 보수당 등을 제치고 원내 제2당 자리를 유지했다. 2003년 9월, 다피드 이완(Dafydd Iwan)이 플라이드 컴리의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이언 윈 존스(Ieuan Wyn Jones)는 원내대표로 복귀했다. 엘핀 루이드(Elfyn Llwyd)는 웨스트민스터 의회 대표를 유지했다. 이완 의장 체제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유럽 내 웨일스 독립 정책을 재확립했다.[71]
2005년 총선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세레디기온 의석을 자유민주당에 내주며 3석으로 의석이 감소했다.[76] 2006년, 플라이드 컴리는 당헌 개정을 통해 의회 대표를 당 대표로 공식 지정하고, 이언 윈 존스(Ieuan Wyn Jones)가 당 대표직을 회복했다. 또한, 당 로고를 웨일스 양귀비(''Meconopsis cambricacy'')로 변경했다.[79]
;제3대 웨일스 의회 (2007년 ~ 2011년)
2007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15석으로 의석을 늘리며 선전했다.[80] 특히, 모하마드 아스가르(Mohammad Asghar)는 웨일스 의회 최초의 소수민족 출신 의원이 되었다.[80] 이후 플라이드 컴리는 노동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 "원 웨일스(One Wales)" 협약을 체결하고 웨일스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 찬성 운동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했다.[81] 이언 윈 존스(Ieuan Wyn Jones)는 웨일스 부수석장관 겸 경제 및 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었다.[82]
;제4대 웨일스 의회 (2011년 ~ 2016년)
2011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웨일스 보수당에 밀려 원내 제3당으로 내려앉았다.[83] 2012년, 리앤 우드(Leanne Wood)가 당 최초의 여성 대표로 선출되었다.[88][89][90] 2013년, 룬 앱 이오워스(Rhun ap Iorwerth)가 이니스 몬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의석을 회복했다.[99]
;제5대/6대 웨일스 의회 (2016년 ~ 현재)
2016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원내 제2당 지위를 회복했다.[100] 유럽연합 잔류 여부 국민투표에서는 잔류를 지지했다.[104] 2018년, 아담 프라이스(Adam Price)가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10]
2021년 세네드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13석을 확보했고, 웨일스 노동당과 협력 협정을 체결하여 정책 연대를 시작했다.[123] 협정에는 초등학생 무상 급식, 무료 국가 돌봄 시스템 구축, 노스와 사우스웨일스 간 철도 건설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123]
2023년, 아담 프라이스가 당내 성희롱 및 괴롭힘 문제로 사임하고, 룬 압 이오워스가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26][127][128][129][131]
2. 1. 초기 (1925년 ~ 1945년)
1925년 8월 5일, 은 회원인 모세스 그루피드, H. R. 존스, 루이스 발렌타인과, 의 사운더스 루이스 그리고 D. 에드먼드 윌리엄스에 의해 결성되었다.[51] 초기에는 웨일스어 사용 유지를 최우선 목표로 삼았으며, 웨일스어를 웨일스의 유일한 공용어로 만들고자 했다.[52] 1929년 총선에서 카에르나본셔 선거구에 처음 출마하여 609표(득표율 1.6%)를 얻었다.[53]1932년, 자치 정부와 국제연맹에서의 웨일스 대표성이라는 목표가 웨일스어와 문화 보존이라는 기존 목표에 추가되었다.[54] 그러나 사운더스 루이스 등 당 주요 인물들이 유럽의 전체주의 정권에 대해 공감을 표하면서 초기 당의 매력을 떨어뜨렸다.[55]
1936년, 소운더스 루이스, 데이비드 존 윌리엄스, 루이스 발렌타인은 르린 반도 구이네드에 위치한 RAF 페니베스 공군 기지에 항의하여 방화했다. 이 사건으로 당의 인지도가 크게 상승했고, 1939년에는 당원 수가 거의 2,000명으로 증가했다.[52][56]
제2차 세계 대전 중 플라이드 컴루는 중립 노선을 유지하고, 전쟁 징집에 대한 양심적 병역 거부를 촉구했다.[58] 1943년, 사운더스 루이스는 보궐선거에서 웨일스 대학교 의회 의석에 출마하여 1,330표(22%)를 얻었다. 1945년 총선에서 플라이드 컴루는 7개 의석에 출마했으며, 이때 그윈포어 에번스가 당수로 선출되었다.[59]
2. 2. 성장기 (1945년 ~ 1999년)
1945년 그윈포어 에번스 당수 선출 이후 플라이드 컴리는 본격적인 정당으로 성장했다.[60] 1951년 영국 총선에서 0.7%였던 득표율은 1955년 영국 총선 3.1%, 1959년 영국 총선 5.2%로 꾸준히 증가했으며, 1959년 선거에서는 처음으로 웨일스 의석 대다수에 후보를 냈다.[60]1957년 그위네드의 트리웨린 계곡에 있는 카펠 셀린 마을을 침수시켜 리버풀시에 물을 공급하려는 계획은, 웨일스 국회의원들의 지지 없이 의회 법안이 통과되면서 웨일스 자치 요구를 확산시키는 계기가 되었다.[60]
1962년 손더스 루이스의 라디오 방송 "언어의 운명"은 웨일스어 학회 설립으로 이어져 웨일스 민족주의 운동을 활성화시켰다.[61] 1964년 노동당 집권과 웨일스 담당 국무장관직 신설은 웨일스 정치체제 발전에 기여했다.
1966년 카마든 보궐선거에서 그윈포어 에번스가 당선되어 플라이드 컴리는 첫 원내 진출에 성공했다.[62][63] 1967년 론다 웨스트, 1968년 카필리 보궐선거에서도 승리에 근접하며 지지율을 크게 높였다.
1970년 영국 총선에서 처음으로 웨일스 모든 선거구에 후보를 냈고, 1974년 10월 영국 총선에서는 카에르나르폰(Caernarfon), 메리오네스셔(Merionethshire)에서 의석을 확보하여 총 3석의 영국 하원 의석을 갖게 되었다. 플라이드 컴리의 부상은 킬브랜던 위원회(Kilbrandon Commission) 설립에 영향을 주었다.
1979년 웨일스 자치 찬반 투표 부결로 당은 위기를 겪었으며, 1979년 영국 총선에서 득표율이 감소하고 카마든 의석을 잃었다.[53] 1981년 다피드 위글리가 당 대표가 되었고, 당은 "공동체 사회주의" 정책을 채택했다.[69] S4C 설립 운동을 주도하여 1982년 웨일스어 방송 채널이 개국되었다.[70]
1990년대 들어 웨일스 자치에 대한 찬성 여론이 확산되었고, 1997년 웨일스 자치 찬반 투표에서 근소한 차이로 찬성이 통과되어 웨일스 의회 설립에 기여했다.
2. 3. 웨일스 의회 시대 (1999년 ~ 현재)
1999년 웨일스 의회가 설립되면서 플라이드 컴리는 노동당에 이어 원내 제2당으로 부상했다.[71] 1999년 웨일스 의회 선거를 앞두고 플라이드 컴리는 유럽 연합 잔류 하의 웨일스 독립을 주장하며, 사회민주주의 정책을 채택했다.[71] 이는 웨일스 유권자들이 독립을 중요하게 생각하지 않는다는 판단과 노동당을 약화시키기 위한 전략이었다.[71];제1대 웨일스 의회 (1999년 ~ 2003년)
1999년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론다, 이스윈, 라넬리 등 전통적인 노동당 강세 지역에서 의석을 확보하며 선전했다. 이는 의회 수석장관(Assembly First Secretary) 후보였던 론 데이비스의 사퇴와 앨런 마이클(Alun Michael)과 로드리 모건(Rhodri Morgan) 간의 당 대표 경선 과정에서 영국 노동당 지도부의 개입 논란으로 인한 노동당의 지지율 하락에 힘입은 결과였다.[72] 유럽 의회 선거에서도 플라이드 컴리는 웨일스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에 근접하며 2명의 MEP(유럽 의회 의원)을 배출했다.
그러나 이후 플라이드 컴리는 다피드 위글리(Dafydd Wigley) 대표의 사퇴와 후임 이우언 윈 존스(Ieuan Wyn Jones) 체제에서 당내 갈등을 겪었다.[73][74]
;제2대 웨일스 의회 (2003년 ~ 2007년)
2003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12석으로 의석이 감소하며 고전했지만, 보수당 등을 제치고 원내 제2당 자리를 유지했다. 2003년 9월, 다피드 이완(Dafydd Iwan)이 플라이드 컴리의 의장으로 선출되었고, 이언 윈 존스(Ieuan Wyn Jones)는 원내대표로 복귀했다. 엘핀 루이드(Elfyn Llwyd)는 웨스트민스터 의회 대표를 유지했다. 이완 의장 체제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유럽 내 웨일스 독립 정책을 재확립했다.[71]
2005년 총선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세레디기온 의석을 자유민주당에 내주며 3석으로 의석이 감소했다.[76] 2006년, 플라이드 컴리는 당헌 개정을 통해 의회 대표를 당 대표로 공식 지정하고, 이언 윈 존스(Ieuan Wyn Jones)가 당 대표직을 회복했다. 또한, 당 로고를 웨일스 양귀비(''Meconopsis cambricacy'')로 변경했다.[79]
;제3대 웨일스 의회 (2007년 ~ 2011년)
2007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15석으로 의석을 늘리며 선전했다.[80] 특히, 모하마드 아스가르(Mohammad Asghar)는 웨일스 의회 최초의 소수민족 출신 의원이 되었다.[80] 이후 플라이드 컴리는 노동당과 연립 정부를 구성, "원 웨일스(One Wales)" 협약을 체결하고 웨일스 자치권 확대 주민투표 찬성 운동을 공동 추진하기로 합의했다.[81] 이언 윈 존스(Ieuan Wyn Jones)는 웨일스 부수석장관 겸 경제 및 교통부 장관에 임명되었다.[82]
;제4대 웨일스 의회 (2011년 ~ 2016년)
2011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웨일스 보수당에 밀려 원내 제3당으로 내려앉았다.[83] 2012년, 리앤 우드(Leanne Wood)가 당 최초의 여성 대표로 선출되었다.[88][89][90] 2013년, 룬 앱 이오워스(Rhun ap Iorwerth)가 이니스 몬 보궐선거에서 승리하며 의석을 회복했다.[99]
;제5대/6대 웨일스 의회 (2016년 ~ 현재)
2016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원내 제2당 지위를 회복했다.[100] 유럽연합 잔류 여부 국민투표에서는 잔류를 지지했다.[104] 2018년, 아담 프라이스(Adam Price)가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10]
2021년 세네드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13석을 확보했고, 웨일스 노동당과 협력 협정을 체결하여 정책 연대를 시작했다.[123] 협정에는 초등학생 무상 급식, 무료 국가 돌봄 시스템 구축, 노스와 사우스웨일스 간 철도 건설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123]
2023년, 아담 프라이스가 당내 성희롱 및 괴롭힘 문제로 사임하고, 룬 압 이오워스가 신임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26][127][128][129][131]
2. 3. 1. 제1대 웨일스 의회 (1999년 ~ 2003년)
1999년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론다, 이스윈, 라넬리와 같은 기존 노동당 지역에서 의석을 얻었으며, 웨일스 전역 선거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기록했다. 플라이드 컴리는 자신들을 분권화의 자연스러운 수혜자로 여겼지만, 다른 이들은 그들의 성과를 주로 노동당의 어려움 때문이라고 해석했다. 당시 노동당은 의회 수석장관(Assembly First Secretary) 후보였던 론 데이비스가 성추문 의혹으로 사퇴하게 되었다. 그 후 이어진 당 대표 경쟁에서 앨런 마이클(Alun Michael)이 승리했지만, 이는 노동당에 큰 피해를 주었고, 결과적으로 더 인기 있고 대중적인 지지도를 얻고 있던 당수 다피드 위글리(Dafydd Wigley)를 중심으로 한 플라이드 컴리에게 유리하게 작용했다. 영국 노동당 지도부는 이 경쟁에 개입하여 인기 있는 로드리 모건(Rhodri Morgan)의 승리를 막으려 했다는 비판을 받았다.[72] 두 달도 채 지나지 않아 열린 유럽 의회 선거에서 노동당의 지지율은 더욱 떨어졌고, 플라이드 컴리는 웨일스에서 가장 높은 득표율을 얻는 데 2.5%까지 근접했다. 새로운 비례 대표제(proportional representation) 하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두 명의 MEP(유럽 의회 의원)도 얻었다.그 후 플라이드 컴리는 자체적인 정치적 문제에 직면하게 되었다. 다피드 위글리(Dafydd Wigley)는 건강 문제를 이유로 사퇴했지만, 그를 겨냥한 음모설이 돌기도 했다.[73] 그의 후임인 이우언 윈 존스(Ieuan Wyn Jones)는 특히 자문의원인 세이먼 글린(Seimon Glyn)이 한 논란이 많은 발언에 대해 권위를 행사하는 데 어려움을 겪었다.[74] 동시에 노동당 당수이자 수석장관인 앨런 마이클(Alun Michael)은 로드리 모건(Rhodri Morgan)으로 교체되었다.
2. 3. 2. 제2대 웨일스 의회 (2003년 ~ 2007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의 의석 수는 17석에서 12석으로 감소하였고, 1999년 선거에서 얻었던 의석은 노동당으로 돌아갔으며, 득표율은 21%로 하락했다. 플라이드 컴리는 보수당, 자유민주당, 포워드 웨일즈(Forward Wales)를 제치고 간신히 의회 제2당 자리를 유지했다.2003년 9월 15일, 민속 가수이자 카운티 의원인 다피드 이완(Dafydd Iwan)이 플라이드 컴리의 의장으로 선출되었다. 2003년 의회 선거에서 패배한 후 의장과 의회 원내대표직을 사임했던 이언 윈 존스(Ieuan Wyn Jones)는 원내대표직에 재선되었다. 엘핀 루이드(Elfyn Llwyd)는 계속해서 웨스트민스터 의회에서 플라이드 컴리 대표를 맡았다. 이완 의장 체제 하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공식적으로 유럽 내 웨일스 독립 정책을 채택했다. 플라이드 컴리는 역사적으로 웨일스 독립을 지지해 왔지만, 1999년 분권 선거를 앞두고 이 정책을 철회했다.[71]
2005년 5월 5일 총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세레디기온 의석을 자유민주당에 빼앗겼다. 이 결과는 이니스 몬 의석을 얻기를 기대했던 플라이드 컴리에게는 실망스러운 것이었다. 따라서 플라이드 컴리의 의회 의석 수는 3석으로 줄어들었는데, 이는 1992년 이후 최저치였다. 득표율도 12.6%로 떨어졌다.[76]
1933년 플라이드 게네들라에톨 컴리(Plaid Genedlaethol Cymru)가 '플라이드 컴리(Plaid Cymru)'로 개칭된 이후, 당을 대표하는 로고는 녹색의 '트리반'(세 개의 봉우리)이었다. 이것은 상징적으로 플라이드 컴리의 세 가지 주요 목표인 자치, 문화적 번영, 경제적 번영을 나타내는 것이었으며, '웨일스 고지대 경관인 웨일스 정체성과 역사의 기반 위에 굳건히 자리 잡고 있다'고 설명되었다.[77] 2006년, 플라이드 컴리는 당헌을 개정하여 의회 대표를 당 대표로 공식적으로 지정했으며, 이언 윈 존스(Ieuan Wyn Jones)는 당 대표직을 회복하고 다피드 이완(Dafydd Iwan)은 당의 자원봉사 부문 책임자가 되었다.[78] 플라이드 컴리는 2006년 이미지를 혁신적으로 바꾸었다. 당은 "플라이드(Plaid)"를 당명으로 사용하기로 결정했지만, "플라이드 컴리 — 웨일스의 당(Plaid Cymru — the Party of Wales)"은 공식 명칭으로 남았다. 플라이드 컴리는 (상품을 제외하고) 트리반을 버리고 노란색 웨일스 양귀비(''Meconopsis cambricacy'')를 채택했다.[79]
2. 3. 3. 제3대 웨일스 의회 (2007년 ~ 2011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의석 수를 12석에서 15석으로 늘렸다.[80] 라넬리 선거구를 탈환하고, 추가 지역구 의석 1석을 얻었으며, 새로 생긴 아버콘위 선거구에서 승리했다. 2007년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의 모하마드 아스가르(Mohammad Asghar)는 웨일스 의회에 당선된 최초의 소수민족 출신 후보가 되었다.[80] 당의 득표율은 22.4%로 증가했다.수주간의 협상 끝에 의회의 네 정당이 모두 참여한 가운데, 플라이드 컴리와 노동당은 연립 정부 구성에 합의했다. 그들이 합의한 "원 웨일스(One Wales)" 프로그램에는 주민투표에서 찬성표를 얻기 위해 양당이 함께 캠페인을 벌일 것이라는 약속이 포함되었다. 주민투표는 웨일스 의회 정부가 선택한 시기에 실시될 예정이었다.[81] 이후 이언 윈 존스(Ieuan Wyn Jones)는 웨일스 부수석장관[82] 겸 경제 및 교통부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로드리 글린 토마스(Rhodri Glyn Thomas)는 문화유산부 장관으로 임명되었으나, 이후 사임했고 알룬 프레드 존스(Alun Ffred Jones)가 그 뒤를 이었다. 세레디기온(Ceredigion) 지역구 의원인 엘린 존스(Elin Jones)는 새로운 10명의 각료로 구성된 내각에서 농촌 업무를 담당하는 장관으로 임명되었다. 조슬린 데이비스(Jocelyn Davies)는 주택부 차관, 이후 재생부 차관이 되었다.
2. 3. 4. 제4대 웨일스 의회 (2011년 ~ 2016년)
2011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웨일스 보수당에 추월당하며 2위에서 3위로 밀려났고, 당의 부당수였던 헬렌 메리 존스를 잃었다.[83] 당은 선거 결과에 대한 조사를 실시했다.[83] 내부 조사는 당헌에 대한 광범위한 변화, 특히 지도부 구조의 간소화를 이끌었다.[84]2011년 5월, 이우언 윈 존스는 의회 임기 전반기 안에 당수직에서 물러나겠다고 발표했다.[85] 이후 당수 선거가 치러졌고, 엘린 존스, 대피드 엘리스-토머스, 리앤 우드 세 명의 후보가 경쟁을 벌였다.[86] 사이먼 토머스는 투표 전 후보직을 사퇴했다.[87]
2012년 3월 15일, 플라이드 컴리는 리앤 우드를 새로운 당수로 선출했다. 그녀는 55%의 득표율을 얻어 2위인 엘린 존스(41%)를 제쳤다.[88] 우드는 당 최초의 여성 당수이자 유창한 웨일스어 구사자는 아닌 첫 번째 당수였다.[89][90] 당수 취임 직후, 그녀는 전 국회의원 아담 프라이스를 당의 경제위원회 위원장으로 임명하여 "경제를 변혁하기 위한 맞춤형 정책을 통합하는 데 중점을 두었다".[91][92] 2012년 5월 1일, 리앤 우드가 의회의 다른 당수들이 받는 2만 3천 파운드의 급여 인상을 받지 않을 것이라고 확인되었다.[93]
2012년 11월 12일, 우드는 2016년 의회 선거에서 비교적 안전한 비례대표 의석을 버리고 지역구 의석을 획득할 목표를 발표했다.[94] 그녀는 이후 론다 지역구 출마를 확정했다.[95] 이후 아담 프라이스가 카마선 이스트 앤 다이네퍼 지역구의 당 후보로 선출되었다.[96] 린제이 휘틀은 케어필리 지역구에서만 출마할 것이라고 확인했다.
2013년 6월 20일, 전 당수 이우언 윈 존스는 이니스 몬 지역구 의원직에서 사퇴했다.[98] 플라이드 컴리의 후보 룬 앱 이오워스가 12,601표(58% 득표율)를 얻어 노동당 후보보다 9,166표 차이로 승리하며 해당 지역구의 새로운 의원으로 선출되었다.[99]
2. 3. 5. 제5대/6대 웨일스 의회 (2016년 ~ 현재)
2016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한 석을 추가 획득하여 의회 내 제2당이 되었다.[100] 1975년 유럽 경제 공동체 가입 국민투표에서는 탈퇴를 지지했지만,[65] 2016년 유럽연합 잔류 여부 국민투표에서는 잔류를 지지하는 캠페인을 벌였다.[104]2018년 9월, 아담 프라이스가 리앤 우드와 룬 압 이오워스를 제치고 당 대표 선거에서 승리하여 당수가 되었다.[110]
2021년 세네드 선거에서 플라이드 컴리는 의석 수를 12석에서 13석으로 늘렸다.[120] 선거 이후, 협력 협정을 웨일스 노동당과 체결했다.[123] 이 협정에는 모든 초등학생에게 무상 급식 제공, 필요 시 무료 국가 돌봄 시스템 구축, 노스와 사우스웨일스 간 철도 건설 등의 내용이 포함되었다.[123]
2023년 5월, 당내 성희롱 및 괴롭힘 문제에 대한 보고서가 발표된 후[126][127] 아담 프라이스가 당 대표직에서 사임했다.[128][129] 2023년 6월, 룬 압 이오워스가 새로운 당 대표로 선출되었다.[131]
3. 이념 및 정책
3. 1. 기본 이념
플라이드 컴리는 분권주의적 사회주의[35]를 바탕으로 경제 번영, 사회 정의, 건강한 자연 환경을 추구한다.[35] 평등한 시민권과 다양성 존중을 바탕으로 하는 국가 공동체를 지향하며, 이중 언어 사회 발전을 목표로 한다.[35] 또한, 세계에 웨일스를 알리고 유엔 가입을 추진한다.[35]2008년 9월, 엘린 존스(Elin Jones) 당시 웨일스 농촌부 장관은 아베리스트위스(Aberystwyth)에서 열린 플레드 컴리 연례 회의에서 웨일스 노동당과의 연정 하에서도 독립에 대한 당의 약속을 계속 이어갈 것이라고 밝혔다.[34]
플라이드 컴리는 원자력 발전과 핵무기(영국의 트라이던트 핵무기 프로그램 포함)에 반대한다.[40][41][42][43] 투표 연령을 16세로 낮추는 것을 지지하며,[44] 이는 이미 2020년부터 세네드 선거[45]와 웨일스 지방 선거에 적용되었으나,[46] 영국 총선이나 경찰 및 범죄 담당관 선거에는 해당되지 않는다.[46]
플라이드 컴리는 사회복지 서비스를 "필요 시 무료"로 제공하는 것을 지지한다.[47][48][49] 2022년 웨일스 노동당과의 협력 협정을 통해 모든 초등학생을 위한 무료 급식, 모든 두 살 아이들을 위한 무료 보육, 세컨드 홈 문제 해결, 국가 돌봄 서비스 설립, 장기적인 세네드 개혁, 주민세 개혁, 홍수 방어 및 예방 투자 확대를 추진하고 있다.[50]
웨일스가 여전히 영국에 속해 있는 동안, 플레드 컴리는 방송 및 통신 권한, 크라운 에스테이트(Crown Estate)의 분권화, 복지 및 철도 등을 포함하여 영국 정부로부터 웨일스로 더 많은 권한을 이양하는 것을 요구한다.[36][37][38][39]
2019년 총선 이전에, 아담 프라이스(Adam Price)는 웨일스 독립의 실현 가능성과 플라이드 컴리 정부가 독립 국민투표를 어떻게 실시할 것인지에 대해 검토할 위원회를 설립하겠다고 발표했다.[134] 전 플라이드 컴리 드위포르 메이리오니드 지역구 의원인 엘핀 루이드(Elfyn Llwyd)가 이끄는 위원회는 2020년 9월 25일 보고서를 발표했다.[135][136]
이 보고서는 독립된 웨일스는 유럽 연합 회원국이 되어야 하며, 중간 단계로 유럽 자유 무역 연합 가입을 고려할 수 있다고 제안했다. 또한 웨일스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와의 연방 관계를 모색해야 하며, 웨일스 의회와 공무원 제도 운영 개선, 웨일스 헌법 초안 작성, 독립 과정을 진행하기 위한 자결 법안의 틀을 제시해야 한다고 밝혔다. 법정 국가위원회는 시민회의와 다양한 헌법 선택지를 검토하는 예비 국민투표를 통해 웨일스 국민에게 정치적 미래에 대한 명확한 이해를 제공해야 한다고 제안했다.[137] 여론을 측정하고 영국 서민원 정부가 선호하는 선택지에 대한 국민투표에 동의하도록 설득하기 위해 다중 선택 국민투표를 실시해야 한다고 권고한다.[136]
2020년 12월, 프라이스는 플라이드 컴리가 2021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할 경우, 집권 첫 임기 중에 독립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말했다.[139]
3. 2. 주요 정책
플라이드 컴리는 2019년 총선 이전에 아담 프라이스 대표가 웨일스 독립의 실현 가능성을 검토하고 독립 국민투표 실시 방안을 마련할 위원회 설립을 발표했다.[134] 엘핀 루이드 전 의원이 이끄는 위원회는 2020년 9월 보고서를 발표하고, 독립된 웨일스가 유럽 연합 회원국이 되어야 하며, 잉글랜드 및 스코틀랜드와 연방 관계를 모색해야 한다는 등의 5가지 주요 목표를 제안했다.[135][136][137] 또한, 다중 선택 국민투표 실시를 통해 여론을 측정하고 영국 서민원 정부를 설득해야 한다고 권고했다.[136]이 보고서는 웨일스 자유민주당으로부터 "광신적인 정치"와 "허황된 경제학"의 혼합이라는 비판을 받았다.[138] 2020년 12월, 프라이스는 플라이드 컴리가 2021년 웨일스 의회 선거에서 과반수를 차지하면 집권 첫 임기 내에 독립 국민투표를 실시할 것이라고 밝혔다.[139]
플라이드 컴리는 이 외에도 모든 초등학생에게 무상 급식 제공, 두 살 아이들을 위한 무상 보육 제공, 국가 돌봄 서비스 설립, 세컨드 홈 문제 해결, 홍수 방어 및 예방 투자 확대, 웨일스어 사용 확대 및 이중 언어 사회 발전, 투표 연령 16세로 하향 등을 주요 정책으로 추진하고 있다.
4. 대한민국과의 관계
4. 1. 정치적 관계
4. 2. 문화적 관계
5. 역대 지도부
(해당되는 경우)

룬 아프 이오워스(Rhun ap Iorwerth)
및 당 대표

리즈 새빌 로버츠(Liz Saville Roberts)
다피드 위글리(Dafydd Wigley)
상원 의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