필립 M. 브리들러브
1. 개요
필립 M. 브리들러브는 미국의 공군 장성이자, 2013년부터 2016년까지 북대서양 조약 기구(NATO) 연합군 최고 사령관을 역임했다. 1977년 조지아 공과대학교를 졸업하고 공군에 입대하여, F-16 전투기 조종사, 교관, 지휘관 등 다양한 직책을 수행했다. 그는 한국, 스페인, 독일 등에서 복무했으며, 2011년에는 공군 참모 차장으로 임명되어 대장으로 진급했다. 퇴역 후에는 애틀랜틱 카운슬 이사, 스피릿 오브 아메리카 자문 위원 등으로 활동하며, 우크라이나 사태와 관련하여 러시아에 대한 제재 및 군사적 지원을 주장했다.
이미지 준비중입니다.
| 대통령 | 버락 오바마 |
|---|---|
| 부관 | 리처드 시레프 에이드리언 브래드쇼 |
| 임기 시작 | 2013년 5월 13일 |
| 임기 종료 | 2016년 5월 4일 |
| 이전 | 제임스 G. 스타브리디스 |
| 이후 | 커티스 스카파로티 |
| 임기 시작 | 2012년 7월 27일 |
| 임기 종료 | 2013년 5월 13일 |
| 이전 | 마크 웰시 |
| 이후 | 프랭크 고렌크 |
| 임기 시작 | 2011년 1월 14일 |
| 임기 종료 | 2012년 7월 27일 |
| 이전 | 캐럴 H. 챈들러 |
| 이후 | 래리 O. 스펜서 |
| 출생 이름 | 필립 마크 브리들러브 (Philip Mark Breedlove) |
|---|---|
| 출생지 | 애틀랜타, 조지아주, 미국 |
| 소속 | 미국 |
|---|---|
| 계급 | |
| 복무 기간 | 1977년–2016년 |
| 지휘 | 미국 유럽 사령부 유럽 연합군 최고 사령관 미국 공군 아프리카 유럽 미국 공군 합동 항공력 역량 센터 람슈타인 공군 기지, 공군 구성 사령부 제8전투비행단 제31전투비행단 제56전술훈련비행단 제3공군 제27작전전대 제80전투비행대대 |
| 참전 | 냉전 걸프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 |
| 훈장 | 국방공로훈장 공군공로훈장 (2회) 국방우수복무훈장 공로훈장 (4회) 국방근무훈장 (2회) 근무훈장 (4회) |
-
미국 공군 대장 -
제임스 해럴드 둘리틀
제임스 해럴드 둘리틀은 1896년 캘리포니아에서 태어나 알래스카에서 유년 시절을 보내고, 캘리포니아 대학교와 매사추세츠 공과대학교에서 학위를 받은 후, 제1차 세계 대전 참전, 도쿄 공습 지휘, 쉘 석유 회사 부사장 역임 등 다양한 활동을 했으며, 계기 비행 기술 개발에 기여하고 1993년에 사망했다. -
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 -
장지량 (1924년)
장지량은 일제강점기 일본 육군사관학교와 대한민국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하고 한국 전쟁에 참전하여 공군 창설에 기여했으며, 공군참모총장, 외교관, 대한중석광업 사장,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1997년 대한민국 성우회 회장을 지내다 2015년에 사망했다. -
미국 국방참모대학교 동문 -
콜린 파월
콜린 파월은 미국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육군 대장까지 진급하여 국가안보보좌관, 합참의장, 국무장관을 역임했으며, 특히 최초의 아프리카계 미국인 합참의장 및 국무장관으로 알려져 있다. -
1955년 출생 -
자이르 보우소나루
자이르 보우소나루는 브라질의 정치인으로, 군사 독재를 옹호하고 차별적인 발언으로 논란을 일으켰으며, 2019년부터 2022년까지 브라질 대통령을 역임했으나 2022년 대선에서 재선에 실패하고 공직 활동이 금지되었다. -
1955년 출생 -
강경화
2. 초기 생애 및 경력
필립 M. 브리들러브는 1955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나 조지아주 포레스트 파크에서 자랐다. 1977년 조지아 공과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했으며, 재학 중 파이 카파 알파 회원이었다.
미국 공군(USAF) 경력은 1978년 애리조나주 윌리엄스 공군 기지에서 학부 조종사 훈련을 받으면서 시작되었다. 이후 텍사스주 랜돌프 공군 기지에서 조종사 교관 훈련을 받았다. 1979년부터 1983년까지 T-37 트윗 교관 조종사, 평가 비행 심사관, 윌리엄스 기지 활주로 감독 부대 관제사를 역임했다. 1983년 F-16 파이팅 팔콘 학생 조종사 훈련을 거쳐 스페인 토레혼 공군 기지에서 F-16 항공기 지휘관 겸 교관 조종사로 복무했다.
1985년 서독 키칭겐 육군 비행장 항공 연락 장교, 서독 람슈타인 공군 기지 비행 안전 책임자 및 F-16 비행대 지휘관 등을 역임했다. 1990년 앨라배마주 맥스웰 공군 기지 공군 지휘참모대학교에 입학, 1991년 졸업과 동시에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에서 항공 기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2.1. 초기 생애
--
필립 M. 브리들러브는 1955년 조지아주 애틀랜타에서 태어나 조지아주 포레스트 파크에서 자랐다. 1977년 조지아 공과대학교를 졸업하고 임관했으며, 재학 중 파이 카파 알파 회원이었다.
2.2. 초기 경력 (1978-1990)
브리들러브는 대학교 졸업 후 바로 미국 공군(USAF)에서 경력을 시작했다. 1978년 3월부터 이듬해까지 애리조나주 윌리엄스 공군 기지에서 학부 조종사 훈련을 받는 학생이었다. 이후 1979년 3월부터 8월까지 텍사스주 랜돌프 공군 기지에서 조종사 교관 훈련을 받았다. 1979년 8월부터 1983년 1월까지는 T-37 트윗 교관 조종사, 평가 비행 심사관, 윌리엄스 기지 활주로 감독 부대 관제사를 역임했다. 1983년 9월까지 플로리다주 맥딜 공군 기지에서 F-16 파이팅 팔콘 학생 조종사로 훈련받은 후, 1983년 9월부터 1985년 1월까지 스페인 토레혼 공군 기지의 제614 전술 전투 비행대대에서 F-16 항공기 지휘관 겸 교관 조종사로 복무했다.
1985년 1월부터 1987년 3월까지는 서독 키칭겐 육군 비행장에 주둔한 제602 항공 지원 작전 그룹에서 항공 연락 장교로 근무했다. 1987년 3월부터 1988년 1월까지는 서독 람슈타인 공군 기지 제526 전술 전투 비행대대로 전출되었고, 1988년 8월까지는 람슈타인 기지 제316 항공 사단에서 비행 안전 책임자로 근무했다. 이후 2년 동안 람슈타인에서 F-16 비행대 지휘관, 제512 전술 전투 비행대대 작전 참모 보좌를 역임했다. 1990년 8월부터 1991년 7월까지는 앨라배마주 맥스웰 공군 기지 공군 지휘참모대학교에서 학생 신분으로 재학했다. 같은 해 애리조나 주립 대학교에서 항공 기술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3. 참모 경력 (1991-2013)
1991년 7월부터 1993년 5월까지 유엔군 사령부 및 한미연합군사령부의 공군 작전 참모장을 역임했으며, 근무지는 대한민국 용산 미군 기지였다.
1993년 5월부터 1994년 7월까지 대한민국 군산 공군 기지에 주둔한 제80 전투 비행대대의 지휘관으로 근무했다. 이후 워싱턴 D.C.의 포트 레슬리 J. 맥네어에 있는 국립 전쟁 대학에서 학업을 이어갔다. 1995년 6월에는 워싱턴 D.C. 펜타곤에서 미국 태평양 사령부 부서, 합동 참모부 작전 장교로 6월까지 근무했다. 그 다음 달, 뉴멕시코의 캐논 공군 기지에 위치한 제27 작전 그룹의 지휘관이 되었다. 1999년 6월부터 2000년 5월까지는 버지니아의 랭글리 공군 기지에 있는 공군 전투 사령부 본부의 행정 장교로 근무했다. 그 다음 해에는 대한민국 군산 공군 기지의 제8 전투 비행단 지휘관을 역임했다. 2001년 6월부터 이듬해까지 워싱턴 D.C. 미국 공군 본부에서 공군 장관의 선임 군사 보좌관으로 근무했다. 2001년부터 2002년까지 MIT 세미나 XXI에 참석했다.
2002년 6월부터 2004년 6월까지 애리조나의 루크 공군 기지에 위치한 제56 전투 비행단의 지휘관이었다. 그 후 1년 동안 이탈리아 아비아노 공군 기지에 주둔한 제31 전투 비행단의 지휘관이 되었다. 2005년 6월부터 2006년 10월까지 독일 람슈타인 공군 기지에서 제16 공군 부사령관을 지냈다. 2008년 7월까지 워싱턴 D.C. 펜타곤에서 합동 참모부 전략 계획 및 정책 부국장을 역임했다. 2008년 7월부터 2009년 8월까지는 독일 람슈타인 공군 기지에 위치한 제3 공군의 지휘관이었다. 2009년 8월, 워싱턴 D.C. 미국 공군 본부에서 작전, 계획 및 요구 사항 부 참모장으로 근무하기 시작했다.
2011년 1월 14일, 미국 공군 참모 차장으로서 임기를 시작했으며, 대장 진급 또한 이날 발효되었다.
2012년 7월 브리들러브는 공군 참모 차장직을 사임하고 유럽 주둔 미국 공군 사령관이 되었다.
4. 나토 최고사령관 (2013-2016)
2013년 5월,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브리들러브를 미국 유럽 사령부와 NATO 연합군 작전 사령부의 사령관으로 임명하여, 유럽 연합군 최고 사령관 직을 맡도록 했다. 그는 벨기에 몬스 외곽에 있는 SHAPE 본부에 주둔했다.
브리들러브는 서방 언론에 자주 인용되었다. 2013년 7월, BBC와의 인터뷰에서 아프가니스탄 전쟁 장기화에 대한 견해를 밝혔고, 2014년 4월에는 CNN과 우크라이나 국경에서의 러시아군 증강에 대해 논의했다. 2015년 3월, 우크라이나 1+1 채널에서 러시아의 크림반도 군사화를 비판했다.
2015년 5월, 애틀랜틱 카운슬에서 "자유가 한때 안정적이고 상호 이익이 되는 파트너십에 대한 공유된 희망을 향한 복수주의적 러시아에 의해 도전받고 있다"고 언급했다. 2016년 2월, 미국 하원 군사 위원회 증언에서 "미국 군대는 적대자가 되기로 선택하고 미국에 대한 장기적인 실존적 위협을 제기하는 더욱 공격적인 러시아에 맞서기 위해 유럽에서 재건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2016년 3월 11일, 북대서양 이사회는 미국 육군의 커티스 스카파로티 장군을 브리들러브의 후임으로 지명했다. 스카파로티는 2016년 5월 4일 유럽에서 지휘권을 인수했다.
4.1. 우크라이나 사태 대응
2018년 12월 대서양 협의회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국경 위기 관련 패널 토론에서 브리들러브는 러시아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제안했다. 여기에는 특정 러시아 재벌에 대한 금융 제재, 우크라이나군의 전문화, 해안 기반 순항 미사일 및 장거리 정밀 포병 제공 등이 포함된다.
2022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발발 직후 브리들러브는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을 주장한 초기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26명의 동료들과 함께 "제한적인 비행 금지 구역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하며, "인도주의적 통로를 보호하고 우크라이나가 자위권을 행사할 수 있도록 미국-NATO가 시행하는 비행 금지 구역과 추가 군사 수단이 지금 당장 절실히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2022년 6월, 브리들러브는 타임스 오브 런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푸틴의 밀 위기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는 러시아 흑해 함대의 오데사 항 봉쇄로 인해 발생했으며, 주로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들에 영향을 미쳤다.
2024년 6월, 브리들러브는 존 허브스트 등 39명과 함께 워싱턴에서 열린 NATO 75주년 정상회의에 맞춰 우크라이나 정책 제안에 참여했다.
2024년 8월, 브리들러브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의 주요 서명자 중 한 명이었다. 이들은 서한에서 "미국이 의도치 않게 승리 직전의 패배를 붙잡고 있다"고 비판했다. 또한 "미국 행정부가 러시아의 확전을 우려하여 억제되고 있으며, 교착 상태를 유발할 만큼의 무기는 제공했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를 탈환할 만큼은 아니었다"고 주장했다.
5.1. 우크라이나 관련 활동
2018년 12월 대서양 협의회에서 열린 우크라이나 국경 위기 관련 패널 토론에서, 브리들러브는 러시아의 공격에 대응하기 위한 다양한 조치를 제안했다. 여기에는 특정 러시아 재벌에 대한 금융 제재, 우크라이나군의 전문화, 해안 기반 순항 미사일 및 장거리 정밀 포병 제공 등이 포함된다.
2022년 3월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직후, 브리들러브는 우크라이나 상공에 비행 금지 구역 설정을 주장한 초기 인물 중 하나였다. 그는 26명의 동료들과 함께 "제한적인 비행 금지 구역을 요구하는 공개 서한"에 서명하며, "인도주의적 통로 보호를 위한 미국-NATO 시행 비행 금지 구역과 우크라이나의 자위권 강화를 위한 추가 군사 수단이 시급하다"고 강조했다.
2022년 6월, 브리들러브는 타임스 오브 런던 라디오 프로그램에 출연하여 푸틴의 밀 위기에 대한 강력한 대응을 촉구했다. 이는 러시아 흑해 함대의 오데사 항 봉쇄로 인해 주로 중동 및 북아프리카 국가들이 피해를 입은 상황이었다.
2024년 6월, 브리들러브는 존 허브스트 등 39명과 함께 워싱턴 NATO 75주년 정상회의에서 우크라이나 정책 제안을 제시했다.
2024년 8월, 브리들러브는 조 바이든 대통령에게 보낸 서한의 주요 서명자로 참여했다. 이들은 서한에서 "미국이 의도치 않게 승리 직전의 패배를 붙잡고 있다"고 비판하며, "미국이 교착 상태를 유지하기에는 충분한 무기를 제공했지만, 우크라이나가 러시아 점령지를 탈환하기에는 부족했다"고 주장했다. 또한 "행정부가 러시아의 확전을 우려하여 억제되고 있다"고 덧붙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