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동 고소성

"오늘의AI위키"는 AI 기술로 일관성 있고 체계적인 최신 지식을 제공하는 혁신 플랫폼입니다.
"오늘의AI위키"의 AI를 통해 더욱 풍부하고 폭넓은 지식 경험을 누리세요.

1. 개요

고소성은 지리산 형제봉 중턱에 위치한 산성이다. 신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축조했거나, 나당연합군이 백제의 왜병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 위해 구축했다는 견해가 있으며, 고구려 광개토왕 남하 시기에 축조되었다는 주장도 있다. 둘레 800m, 높이 3.5~4.5m의 사다리꼴 성벽으로, 남쪽과 북쪽에 성문이 있다.

하동 고소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하동 고소성
하동 고소성
유형사적
지정 번호151
지정일1966년 9월 6일
주소경상남도 하동군 악양면 평사리 산31번지
시대신라
면적29,291m²
📚 더 읽어볼만한 페이지
  • 하동군의 문화유산 - 하동 화사별서
    하동 화사별서는 조선 개국공신 조준의 후손 조재희가 조성한 별서로, 동학농민운동으로 소실된 후 재건되어 안채 등을 포함한 별서로 완성되었으며, 박경리의 소설 《토지》에 등장하는 최참판댁의 배경이 된 하동의 대표적인 가옥이다.
  • 하동군의 문화유산 - 하동 옥산서원
    하동 옥산서원은 조선 시대 학자 조윤형을 기리기 위해 1814년에 건립되었다가 훼철 후 복원되어 경상남도 하동군에 위치하며, 강당, 동재, 서재 등의 건물과 소장 문화재를 통해 역사적, 학문적 가치를 지닌다.
  • 경상남도의 성 - 밀양읍성
    밀양읍성은 경상남도 밀양시에 있었던 조선 시대 읍성으로, 1479년에 축조되어 1.4km의 둘레와 2.7m의 높이를 가졌으나, 경부선 철도 부설 공사로 인해 대부분 파괴되고 현재는 일부만 남아 있다.
  • 경상남도의 성 - 진주성
    진주성은 고려 시대부터 왜구 방어의 요충지였고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였던 경상남도 진주시에 위치한 석성으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제1차 진주성 전투와 많은 민관군이 순절한 제2차 진주성 전투의 역사를 지니며 현재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어 촉석루, 의기사, 영남포정사 등 다양한 문화재와 유적을 포함하여 관리되고 있다.
  • 경상남도의 사적 - 김해 봉황동 유적
    김해 봉황동 유적은 경상남도 김해시에 위치하며, 조개더미 성격의 유적으로 붉은 토기, 가야 토기 파편, 화천 등이 출토되어 한반도 남부 지역 선사시대와 중국 간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자료이다.
  • 경상남도의 사적 - 진주성
    진주성은 고려 시대부터 왜구 방어의 요충지였고 임진왜란 당시 격전지였던 경상남도 진주시에 위치한 석성으로, 임진왜란 3대첩 중 하나인 제1차 진주성 전투와 많은 민관군이 순절한 제2차 진주성 전투의 역사를 지니며 현재 사적 제118호로 지정되어 촉석루, 의기사, 영남포정사 등 다양한 문화재와 유적을 포함하여 관리되고 있다.

2. 역사

신라 때 돌로 쌓은 산성으로 능선을 따라 5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았다. 산성의 동·북·서·남면은 성벽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으나, 서남쪽 섬진강을 굽어보는 구간은 거의 허물어져서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지리산의 험한 산줄기를 뒤에 두고 섬진강이 앞을 가로막는 천연의 요새로서 남해에서 호남 지방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견고하게 지은 산성이다.

현재 성 안의 특별한 시설물들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성의 내력에 대해서는 『하동군읍지』가 유일한 자료이다. 이 기록과 성의 위치 및 규모로 보아 신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600년대 신라백제를 공격할 때 나·당 연합군이 백제의 원군인 왜병의 섬진강 통로를 차단하기 위하여 구축한 성이라는 견해도 있다.

2.1. 고구려 축성설

최근에는 5세기 전반 고구려 광개토왕이 신라를 거쳐 왜군을 토벌하면서 남하했을 때 쌓은 고구려 계통의 성으로 보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3. 구조

신라 때 돌로 쌓은 산성으로 능선을 따라 5각형에 가까운 형태를 띠고 있다. 성벽은 네모나게 다듬은 돌과 자연석을 사용하여 견고하게 쌓았다. 산성의 동·북·서·남면은 성벽이 거의 완전하게 남아있으나, 서남쪽 섬진강을 굽어보는 구간은 거의 허물어져서 돌무더기만 남아있다.

지리산의 험한 산줄기를 뒤에 두고 섬진강이 앞을 가로막는 천연의 요새로서 남해에서 호남지방으로 들어가는 중요한 길목이다. 이러한 지형을 이용하여 크고 견고하게 지은 산성이다. 성 안의 특별한 시설물들은 확인되지 않고 있으며 성의 내력에 대해서는 『하동군읍지』가 유일한 자료이다. 이 기록과 성의 위치 및 규모로 보아 신라가 군사적 목적으로 쌓은 것으로 보인다. 최근에는 5세기 전반 고구려 광개토대왕이 신라를 거쳐 군을 토벌하면서 남하했을 때 쌓은 고구려 계통의 성으로 보는 의견도 제시되고 있다.

3.1. 성벽

지리산이 뻗어 내려온 산줄기의 형제봉 중턱 해발 300m 고지에 있다. 성벽 둘레는 약 800m, 높이는 3.5m~4.5m이며, 단면은 사다리형으로 밑면 폭은 6m, 윗면 폭은 2m이다. 가공한 장방형 석재를 써서 견고하게 쌓았고 쪽에 성문 두 개를 설치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