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양 허씨
1. 개요
하양 허씨는 고려 현종 때 호부낭장을 지낸 허강안을 시조로 하는 한국의 성씨이다. 가락국 허황후의 후손으로 전해지며, 조선 세종 때 좌의정을 지낸 허조를 배출했다. 주요 인물로는 허조, 허임 등이 있으며, 조선 시대에 15명의 문과 급제자를 냈다. 본관은 경상북도 경산시 하양읍이며, 간숙공파, 문경공파 등 여러 분파가 있다. 2015년 대한민국 인구는 20,608명이다.
2. 역사
고려 현종 때 호부낭장(戶部郞將)을 역임하고 말년에 호장(戶長)을 지낸 후 하주자사(河州刺史)가 된 허강안(許康安)이 하주(河州ㆍ하양의 옛 지명)에 정착하였다. 그는 문헌에 의하면 가락국 허황후의 33세손으로 전하고 있다.
조선 세종 때 좌의정에 오른 허조(許稠)는 사후 세종묘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2.1. 시조 및 기원
고려 현종 때 호부낭장(戶部郞將)을 역임하고 말년에 호장(戶長)을 지낸 후 하주자사(河州刺史)가 된 허강안(許康安)이 하주(河州ㆍ하양의 옛 지명)에 정착하였다. 그는 문헌에 의하면 가락국 허황후의 33세손으로 전하고 있다.
2.2. 고려 시대
고려 현종 때 허강안(許康安)은 호부낭장(戶部郞將)을 역임하였으며, 말년에는 호장(戶長)을 지내고 하주자사(河州刺史)가 되어 하주(河州ㆍ하양의 옛 지명)에 정착하였다. 문헌에 의하면 허강안은 가락국 허황후(許黃玉)의 33세손으로 전해진다.
2.4. 근현대
일제강점기에도 하양 허씨는 독립운동 등 다양한 분야에서 활동한 인물들을 배출하였다. 현대에는 르세라핌의 멤버 허윤진과 같이 연예계 등 다양한 분야에서 두각을 나타내는 인물들이 등장하고 있다.
3. 본관
경상북도 경산시(慶山市) 북부에 위치한 하양(河陽)은 고려 초 하주(河州)라 불렸으며, 995년(성종 14)에 자사(刺使)가 파견되었다. 1018년(현종 9)에 하양(河陽)으로 개칭되었고, 1413년(태종 13) 현감을 두었다. 1742년(영조 18)에 화성현(花城縣)으로 개칭되었다가, 1895년(고종 32) 지방제도 개정으로 대구부 하양군(河陽郡)으로 바뀌었고, 1896년 경상북도로 이관되었다. 1914년 군면 폐합으로 경산군에 편입되어 하양면이 되었고, 1973년에 하양읍으로 승격되었다. 1995년 경산군과 경산시의 통합으로 경산시 하양읍이 되었다.
4. 분파
하양 허씨는 조선시대에 여러 분파로 나뉘었다.
| 이름 | 한자 | 분파 |
|---|---|---|
| 허주 | 許周 | 간숙공파(簡肅公派) |
| 허조 | 許稠 | 문경공파(文敬公派) |
| 허척 | 許倜 | 부사공파(府使公派) |
| 허지신 | 許之信 | 참의공파(參議公派) |
| 허지혜 | 許之惠 | 정순공파(貞純公派) |
| 허지 | 許止 | 판사공파(判事公派) |
5. 분파도
| 이름 | 한자 | 비고 |
|---|---|---|
| 許康安zh-Hant | 허강안zh-Hant | |
| 許徐忠zh-Hant | 허서충zh-Hant | |
| 許綽麟zh-Hant | 허작린zh-Hant | |
| 許愼zh-Hant | 허신zh-Hant | |
| 許世通zh-Hant | 허세통zh-Hant | |
| 許赫富zh-Hant | 허혁부zh-Hant | |
| 許得서zh-Hant | 허득서zh-Hant | |
| 許裕zh-Hant | 허유zh-Hant | |
| 許綏zh-Hant | 허수zh-Hant | |
| 許允昌zh-Hant | 허윤창zh-Hant | |
| 許允忠zh-Hant | 허윤충zh-Hant | |
| 許允呂zh-Hant | 허윤여zh-Hant | |
| 許貴龍zh-Hant | 허귀룡zh-Hant | |
| 許天珪zh-Hant | 허천규zh-Hant | |
| 許寬zh-Hant | 허관zh-Hant | |
| 허주 | 許周zh-Hant | 간숙공파(簡肅公派) |
| 허조 | 許稠zh-Hant | 문경공파(文敬公派) |
| 許倜zh-Hant | 허척zh-Hant | 부사공파(府使公派) |
| 許之信zh-Hant | 허지신zh-Hant | 참의공파(參議公派) |
| 許之惠zh-Hant | 허지혜zh-Hant | 정순공파(貞純公派) |
| 許止zh-Hant | 허지zh-Hant | 판사공파(判事公派) |
6. 주요 인물
* 허주(許周, 1359년 ~ 1440년): 고려 시대에 문과에 급제하였고, 조선 시대에 형조참의, 호조좌참, 전라도관찰사, 참지의정부사, 한성부윤, 경기도관찰사 등을 거쳐 1418년(세종 즉위년) 판한성부사에 이르렀다. 시호는 간숙(簡肅)이다.
* 허조(許稠, 1369년 ~ 1439년): 1390년(고려 공양왕 2) 식년 문과에 급제하여 조선 세종 때 좌의정에 이르렀고, 세종 묘정에 배향되었다. 시호는 문경(文敬)이다.
* 허성(許誠): 경기도도관찰사, 동지중추부사, 중추원사, 이조판서, 예문관대제학 등을 두루 역임하였다. 성격이 강직하고 불의를 참지 못하여 세종의 총애를 받았다.
* 허후(許珝): 예조참판, 경기도관찰사, 형조참판을 거쳐, 예조판서에 올랐으며 《세종실록》 편찬에 참여하였다. 좌찬성(左贊成)이 되어 어린 단종을 도왔다. 계유정란을 일으킨 수양대군에 의해 거제도에 유배, 교살되었다.
* 허계(許誡): 밀양부사(密陽府使)로 나가 선정을 베풀어 표리(表裏)를 하사(下賜)받았으며, 병조참의(兵曹參議)를 거쳐 경주 부윤(慶州府尹)을 역임하였다.
* 허임(許任): 조선 선조ㆍ광해군 때의 명의(名醫)이며, 조선 시대 제일의 침의(鍼醫)로 알려졌으며, 1644년에 ≪침구경험방≫을 간행하였다. 저서에 ≪사의경험방≫이 있다.
* 허임 (1570-1647): 조선 시대 의사
* 허윤진 (2001년 출생): 한국계 미국인 가수, 르세라핌 멤버
6.1. 과거 급제자
하양 허씨는 조선시대에 문과 급제자 15명을 배출하였다.
| 문과 | 무과 | 생원시 | 진사시 |
|---|---|---|---|
7. 왕실과의 관계
근녕군(태종의 서4남)의 부인이 하양 허씨였다.
7.1. 조선 왕실과의 인척 관계
* 근녕군(태종의 서4남) 부인 허씨
8. 인구
| 연도 | 인구 |
|---|---|
| 2000년 | 16,344명 |
| 2015년 | 20,608명 |
대한민국 통계청의 인구 조사에 따르면, 하양 허씨 인구는 2000년 16,344명에서 2015년 20,608명으로 증가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