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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곡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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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국의 곡옥은 한반도에서 제작된 굽은 옥 장식품으로, 무문 시대에 처음 등장하여 삼국 시대에 이르러 다양한 형태로 사용되었다. 무문 시대에는 주로 지배층의 무덤에서 출토되었으며, 장신구 제작의 전문화가 이루어졌다. 삼국 시대에는 귀걸이, 목걸이, 관, 허리띠, 팔찌 등에 사용되었으며, 신라 금관 등에서 대표적인 예를 찾아볼 수 있다. 곡옥은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 교류의 증거로, 일본의 마가타마와 유사한 형태로 널리 퍼져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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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의 곡옥
곡옥 정보
백제 고곡
백제 무령왕릉에서 출토된 유리와 비취 곡옥과 금제 관식
한글곱은옥 / 곡옥
한자곱은玉 / 曲玉
로마자 표기gobeunok (곱은옥)
gogok (곡옥)
설명
형태구부러진 옥
크기(1 ~ 10 센티미터)
재료유리
비취
용도장신구
특징한국 고대 사회에서 권력과 신성함을 상징하는 중요한 유물로 여겨짐. 곰의 쓸개 모양을 본떠 만들었다는 설이 있음.
발견 지역주로 고분에서 발견됨.
관련 유적무령왕릉 (백제)
참고 문헌
참고 문헌Lee, Barnes, Gina (1993). "China, Korea and Japan : the rise of civilization in East Asia". Thames & Hudson.
Rhee, Song-nai; Aikens, C. Melvin; Barnes, Gina L. (2021-09-09). "Archaeology and History of Toraijin". Archaeopress Publishing Ltd.

2. 역사

한국의 곡옥은 선사 시대인 무문 시대 중기에 처음 등장하여 삼국 시대에 걸쳐 중요한 장신구이자 권위의 상징으로 발전했다. 초기 곡옥은 주로 한반도 남부 지역의 고인돌이나 지배층 무덤에서 청동기 등 다른 부장품과 함께 발견되었으며, 벽옥, 아마조나이트 등으로 제작되었다. 삼국 시대에는 신라, 백제, 가야 연맹 등에서 곡옥 사용이 더욱 활발해져 귀걸이, 목걸이뿐만 아니라 금관, 허리띠 등 왕족이나 귀족의 신분을 나타내는 다양한 장신구에 널리 사용되었다. 이 시기에는 비취 등 보다 귀한 재료를 사용하거나 금, 은으로 장식하여 더욱 화려하게 제작되기도 했다. 곡옥은 당시 한반도일본 열도 간의 문화 교류를 보여주는 유물이기도 하다.

2. 1. 무문 시대

곡옥은 한반도에서 중기 무문 시대(기원전 850~550년)에 처음 등장했으며, 주로 한반도 남부 지역의 지배층 무덤에서 출토되었다. 대표적인 예로 송국리 1호 묘(기원전 800~700년 추정)를 들 수 있는데, 이곳에서는 청동 단검과 끌, 마제석검, 11개의 마제석촉, 17개의 관옥, 그리고 2개의 콤마 모양 아마조나이트 곡옥 등 중요한 유물이 함께 출토되었다.[2][3][4]

이 유물들은 무덤 주인이 원래 놓았거나 착용했던 위치에서 발견되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어, 송국리 1호 묘에서는 청동 단검이 주인 왼쪽 허리춤에 놓여 있었고, 두 개의 곡옥은 단검 끝 양쪽에서 발견되어 칼집 장식으로 추정된다. 관옥은 단검 주변에 흩어져 있었으며, 석검은 주인의 허리 부분에 놓여 있었다. 이 곡옥은 아마조나이트로, 관옥은 벽옥과 호박으로, 작은 원형 구슬은 아마조나이트, 수정, 호박 등으로 만들어졌다. 곡옥, 관옥과 같은 옥 장식과 청동기가 함께 출토된 이 무덤은 당시 송국리 사회 최고 지도자의 무덤으로 여겨지며, 이는 중기 무문 시대의 전형적인 지배층 유물 구성과 일치한다.[5] 후기 무문 시대(기원전 550~300년)에는 이러한 지배층의 상징물 목록에 청동 거울이 추가되기도 했다.

이러한 콤마 모양의 아마조나이트 곡옥은 관옥, 원형 구슬과 함께 다른 무덤뿐 아니라 신석기 시대청동기 시대고인돌(승주 우산리, 여수 평거동, 무안군 월암리, 진주 대평리)에서도 발견되었다.[2][6] 또한 충주 조동리, 울산 창평리의 중기 무문 시대 주거 유적에서도 출토되었다.[2]

한국 남부 전역의 무문 유적에서 곡옥이 널리 발견되는 것 외에도, 1995년부터 1999년까지 진주 대평리의 무문 시대 마을 유적 발굴 과정에서 벽옥 관옥과 아마조나이트 곡옥을 만들던 공방 터가 여러 곳 발견되었다. 이 공방 터에서는 완성된 장식품, 미완성품, 원재료, 연마 도구 등이 출토되었다.[2] 대평리 유적 분석을 통해, 이러한 고급 옥 제품 생산은 마을 내 두 구역에 위치한 전문 집단에 의해 효율적으로 분업화되어 이루어졌음을 알 수 있다. 즉, 동쪽 구역에서는 원재료 확보와 대략적인 형태 가공을 담당하고, 서쪽 구역에서는 최종적인 완제품을 제작했던 것으로 보인다.[7]

2. 2. 삼국 시대

삼국 시대에 곡옥은 주로 귀걸이목걸이로 사용되었으며, , 허리띠, 팔찌 등 다양한 장신구의 장식으로도 활용되었다. 이 시기에는 장식품의 재료가 점점 더 정교해져 일부 곡옥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캡으로 장식되기도 했다.

이러한 곡옥 장신구들은 신라, 백제, 가야 연맹의 고분왕릉에서 주로 발견되며[9], 당시 지배층의 권위와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유물로 여겨진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일본 열도의 특정 지역에서 마가타마 형태로 제작된 곡옥이 한반도 남부로 유입되기도 했는데, 이는 당시 한반도일본 열도 간의 활발한 교류가 있었음을 시사한다.[9]

2. 2. 1. 신라의 곡옥

삼국 시대에 곡옥은 주로 귀걸이목걸이로 사용되었으며, , 허리띠, 팔찌 등의 장식으로도 쓰였다. 이 시기에는 장식품의 재료가 점점 더 정교해져 일부 곡옥은 금이나 은으로 만든 캡으로 장식되기도 했다.

한국 미술에서 곡옥이 사용된 가장 대표적인 사례는 삼국 시대 신라의 유물에서 찾아볼 수 있다. 특히 신라 금관, 귀걸이, 목걸이, 한국의 왕실 허리띠 등에서 곡옥은 매우 중요한 장식 요소로 활용되었다. 이러한 귀중한 유물들은 신라뿐만 아니라 백제, 가야 연맹의 고분과 왕릉에서도 발견되었다.[9] 이는 곡옥이 단순한 장신구를 넘어, 당시 지배층의 권위와 위상을 나타내는 중요한 상징물이었음을 보여준다.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이러한 곡옥 중 일부는 일본의 특정 지역에서 마가타마 형태로 제작되어 무역로를 통해 일본 열도 전역과 한반도 남부로 전파된 것으로 추정된다.

2. 2. 2. 백제와 가야의 곡옥

삼국 시대의 곡옥은 주로 귀걸이나 목걸이로 사용되었으며, , 허리띠, 팔찌 장식으로도 쓰였다. 이 시기에는 장식품의 재료가 점점 더 정교해져 일부 곡옥에는 금이나 은으로 만든 캡을 씌워 화려함을 더하기도 했다. 백제와 가야 연맹 지역의 고분왕릉에서도 이러한 곡옥 장신구들이 발견되는데[9], 이는 곡옥이 당시 지배층에게 중요한 위상을 지닌 물품이었음을 보여준다.

2. 2. 3. 한반도와 일본 열도 간 교류

고고학적 증거에 따르면, 일본 열도의 특정 지역에서 마가타마 형태로 제작된 곡옥이 무역로를 통해 일본 열도 전역과 한반도 남부의 여러 국가로 널리 퍼져나갔다.[9] 이는 당시 한반도일본 열도 간의 활발했던 교류를 보여주는 중요한 증거 중 하나로 여겨진다. 이러한 곡옥들은 신라, 백제, 가야 연맹의 고분과 왕릉에서도 발견되어, 당시의 문화 교류 양상을 엿볼 수 있게 한다.[9]

참조

[1] 서적 China, Korea and Japan : the rise of civilization in East Asia http://worldcat.org/[...] Thames & Hudson 1993
[2] 서적 Archaeology and History of Toraijin http://dx.doi.org/10[...] Archaeopress Publishing Ltd 2021-09-09
[3] 간행물 GJUB (Gungnip Jung-ang Bangmulgwan [National Museum of Korea]) 1986
[4] 웹사이트 null http://encykorea.aks[...]
[5] 간행물 Bae, Jin-seong, ed. Essay. In ''Mumuntogi Munhwaui Seongripgwa Gyecheungsahoe (Formation of Mumun Pottery Culture and Stratified Society)'', 87–109. Seoul: Seogyeong Munhwasa, n.d.
[6] 간행물 GJUB Gungnip Jung-ang Bangmulgwan [National Museum of Korea] 1992
[7] 간행물 SHODA, Shinya, Oksana Yanshina, Jun-ho Son, and TERAMAE. 2009. New interpretation of the stone replicas in the Russian Maritime Province: re-evaluation from the perspective of Korean archeology. ''The Review of Korean Studies'' 12.2: 187–210
[8] 웹사이트 Gold Necklace | Collection Database https://www.museum.g[...]
[9] 웹사이트 The Fitzwilliam Museum : Catalogue Introduction http://www.fitzmuseu[...]
[10] 서적 China, Korea and Japan : the rise of civilization in East Asia http://worldcat.org/[...] Thames & Hudson 1993
[11] 서적 Archaeology and History of Toraijin http://dx.doi.org/10[...] Archaeopress Publishing Ltd 2021-09-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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