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산읍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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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산읍성은 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에 위치한 읍성으로, 고려 시대에 왜구의 침입을 막기 위해 축조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는 1,233m였으나, 현재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820m이며 사다리꼴 형태를 띤다. 서쪽과 북쪽 성벽은 돌, 남쪽은 흙, 동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으며, 성내에는 객사, 동헌, 내위 등의 시설이 있었다. 현재는 서천-한산 간 지방도로로 인해 남쪽 성벽 일부가 훼손되었지만, 대부분의 성벽이 원형을 유지하고 있다.

한산읍성 - [유적/문화재]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한산읍성
로마자 표기Hansaneupseong
유형문화재자료
지정 번호134
지정일1984년 5월 17일
주소충청남도 서천군 한산면 지현리 10번지
시대알 수 없음
소유자서천군
관리자서천군
면적6,540m2
문화재청 ID31,01340000,34
추가 정보
참고알 수 없음
설명알 수 없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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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역사

고려 중기에 왜구의 잦은 침입에 대비하여 백성을 보호하기 위해 축성된 것으로 추정된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을 비롯한 여러 문헌에 성의 규모와 내부 시설에 대한 기록이 남아 있으며, 조선 시대의 기록에는 객사, 동헌 등 다양한 건물이 성 내부에 있었다는 내용이 전해진다.

현재 성벽의 둘레는 약 1820m이며, 서쪽 벽이 동쪽 벽보다 긴 사다리꼴 형태이다. 남쪽 성벽 일부가 도로 개설로 인해 훼손되었으나, 대부분은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2.1. 고려 시대

고려 중기에 왜구가 강을 끼고 자주 침범해오자, 고을의 백성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성을 쌓았던 것으로 짐작된다.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당시 한산읍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가 4,070척(1233m)에 높이가 11척(3m)이었으며, 성 안에는 도랑 1개와 우물 4곳이 있었다고 한다.

2.2. 조선 시대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한산읍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 4,070척(1233m), 높이 11척(3m)이며, 성 안에 도랑 1개와 우물 4곳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현재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약 1820m이다. 평면은 서쪽 벽이 동쪽 벽보다 긴 사다리꼴 형태이다. 서벽과 북벽은 돌로, 남벽은 흙으로, 동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서천-한산 간 지방도로 개설로 남쪽 성벽 일부가 잘려나갔으나,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벽은 비교적 원형을 잘 유지하고 있다.

조선 시대 기록을 통해 성 내부의 여러 건물을 확인할 수 있다. 《여지도서》 공해조에는 객사, 동헌 (십오칸), 대청 (육칸), 서헌 (육칸), 중대문 (구칸), 외대문 (육칸), 소중문 (이칸), 내위 (이십이문), 행랑 (팔칸), 도재헌 (십이칸), 매화당 (칠칸) 등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충청읍지》 한산조 역시 객사, 내위, 목애헌, 매화당 등의 존재를 언급한다. 1929년 발행된 《서천군지》 권지 5에는 우연당, 객사중수기, 우연정중수기, 연정기 등이 수록되어 있어 당시의 기록을 보충한다.

3. 구조

고려 중기에 강을 따라 자주 침입해 오던 왜구로부터 백성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신증동국여지승람》 기록에 따르면 한산읍성은 돌로 쌓았으며, 성 안에는 도랑과 우물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남아있는 성은 서쪽 벽이 동쪽 벽보다 긴 사다리꼴 형태를 띠고 있으며, 성벽은 위치에 따라 돌, 흙, 또는 이 둘을 섞어 쌓는 등 다양한 방식으로 축조되었다. 도로 건설로 인해 남쪽 성벽 일부가 잘려 나갔으나,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벽은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성 내부에는 객사, 동헌을 비롯한 여러 건물이 있었던 것으로 보이며, 이는 《여지도서》, 《충청읍지》, 《서천군지》 등 여러 문헌 기록을 통해 확인된다.

3.1. 성벽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한산읍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가 4,070척(1233m)에 높이가 11척(3m)이었다. 성 안에는 도랑 1개와 우물 4곳이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오늘날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820m이며, 평면 형태는 서쪽 벽이 동쪽 벽보다 긴 사다리꼴 모양이다. 성벽은 서쪽과 북쪽은 돌로 쌓았고, 남쪽 벽은 흙으로, 동쪽 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는 등 위치에 따라 다른 재료를 사용하였다. 서천-한산 간 지방도로가 건설되면서 남쪽 성벽의 일부가 잘려 나갔으나,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벽은 비교적 원래의 모습을 잘 유지하고 있다.

성은 고려 중기에 강을 따라 자주 침입해 오던 왜구로부터 백성들을 안전하게 지키기 위해 쌓았던 것으로 추정된다.

3.2. 시설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한산읍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가 4,070척(1233m)에 높이가 11척(3m)이며, 성 안에는 도랑 1개와 우물 4곳이 있었다고 한다.

오늘날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820m이며, 평면형은 서쪽 벽이 동쪽 벽보다 긴 사다리꼴 형태이다. 서쪽과 북쪽의 성벽은 돌로 쌓았고, 남쪽 벽은 흙으로 쌓았으며, 동쪽 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서천-한산간 지방도로가 통과하면서 남쪽 성벽의 일부가 잘린 것을 제외하면 대부분의 성벽이 원래의 모습을 잘 간직하고 있다.

고려 중기에 왜구가 강을 끼고 자주 침범해오자, 고을의 백성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성을 쌓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성 내부의 시설에 대한 기록은 다음과 같다.

* 《여지도서》 공해조(公廨條)에는 아래와 같은 건물들이 기록되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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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물명칸수
객사-
동헌15칸
대청6칸
서헌6칸
중대문9칸
외대문6칸
소중문2칸
내위22칸
행랑8칸
도재헌12칸
매화당7칸

* 《충청읍지》 한산조에는 객사, 내위, 목애헌, 매화당 등이 성 안에 있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 1929년 발행된 《서천군지》 권지 5에는 우연당, 객사중수기, 우연정중수기, 연정기가 수록되어 있다.

4. 현황

오늘날 남아있는 성의 둘레는 1820m이며, 평면 형태는 서쪽 벽이 동쪽 벽보다 긴 사다리꼴 모양이다. 서쪽과 북쪽 성벽은 돌로 쌓았고, 남쪽 성벽은 흙으로 쌓았으며, 동쪽 성벽은 흙과 돌을 섞어 쌓았다. 서천-한산 간 지방도로가 지나가면서 남쪽 성벽의 일부가 잘려나갔으나, 이를 제외한 대부분의 성벽은 원래의 모습을 비교적 잘 간직하고 있다.

고려 중기에 왜구가 강을 끼고 자주 침범해오자, 고을의 백성을 안전하게 지키고자 성을 쌓았던 것으로 짐작된다.

과거 기록인 《신증동국여지승람》에 따르면, 한산읍성은 돌로 쌓은 성으로 둘레가 4,070척(1233m), 높이가 11척(3m)이었으며, 성 안에는 도랑 1개와 우물 4곳이 있었다고 한다.

성 안에 있었던 건물들에 대한 기록은 여러 문헌에서 찾아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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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헌기록된 건물 및 내용
여지도서》 공해조객사, 동헌(15칸), 대청(6칸), 서헌(6칸), 중대문(9칸), 외대문(6칸), 소중문(2칸), 내위(22문), 행랑(8칸), 도재헌(12칸), 매화당(7칸)
《충청읍지》 한산조객사, 내위, 목애헌, 매화당
《서천군지》(1929년 발행) 권지 5우연당, 객사중수기, 우연정중수기, 연정기 수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