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익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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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한익수는 1912년 룽징시에서 태어나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했다. 그는 보천보 전투에 참전했으며, 6.25 전쟁에 참전하여 인민군 부총참모장, 민족보위성 부상,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등을 역임했다.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대사로 활동했으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위원회 위원 등을 거쳐 1977년 조선로동당 중앙위 검열위 위원장에 임명되었다. 1978년 사망 후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으며, 김일성 훈장과 국기훈장 제1급 훈장을 수여받았다.

한익수 - [인물]에 관한 문서
기본 정보
이름한익수
로마자 표기Han Ik-su
조선글 표기한익수
출생일1912년 10월 15일
출생지중국 지린성 룽징
사망일1978년 9월 5일
매장지대성산혁명렬사릉
정치
정당조선로동당
직책조선인민군 총정치국 국장
주요 직위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
중앙감사위원회 위원장
임기 시작1970년
임기 종료1978년
대통령김일성
겸임박성철, 리종옥
훈장
수상김일성훈장
군사
복무조선인민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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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생애

한익수는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보천보 전투에 참전하는 등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했고, 광복 이후에는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했다. 6.25 전쟁 당시에는 인민군 부총참모장, 민족보위성 부상,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등을 역임하며 참전했다. 1962년 최고인민회의 제3기 대의원이 되었으며, 이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정치위원회 후보위원,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1972년에는 김일성 훈장을 받았다.

2.1. 초기 생애 및 항일 무장 투쟁

한익수는 1912년 10월 15일 룽징시의 가난한 농가에서 태어났다. 1931년 조선인민군의 전신인 조선인민혁명군한국어에 입대하여 나팔수로 종군했다. 1937년 김일성 등과 함께 보천보 전투에 참가했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제2차 세계 대전이 종결된 후, 북한 정부에서 계속 복무했으며, 이후 중대장이 되었다. 이후 강건종합군관학교 교장으로 임명되었다.

2.2. 북한 정권 수립 기여

한익수는 1931년 조선인민군의 전신인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하여 항일 무장 투쟁에 참여했다. 1937년에는 김일성 등과 함께 보천보 전투에 참전하여 일본에 맞서 싸웠다. 1945년 일본의 항복으로 조선이 해방되자, 귀국하여 북한 정부 수립에 기여하였다. 이후 강건종합군관학교 교장을 지냈다.

2.3. 한국 전쟁 참전

한국 전쟁에 참전했으며, 인민군 부총참모장, 민족보위성 부상, 인민군 총정치국장 등을 역임했다. 한국 전쟁 발발 전에는 이미 대장으로 진급했다.

2.4. 정치 활동

한익수는 6.25 전쟁에 참전했으며, 인민군 부총참모장, 민족보위성 부상, 조선인민군 총정치국장 등을 역임했다. 1961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62년부터 1964년까지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대사로 베이징에 파견되었으며, 같은 기간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선출되었다. 1968년 조선인민군 총정치국 국장으로 승진했다. 1969년에는 정치국 후보 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70년 조선로동당 제5차 대회 이후 조선로동당 정치위원회 위원이 되었다. 1973년 당 중앙위원회 부장에, 1977년 당 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위원장에 취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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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책취임/선출 년도비고
조선인민혁명군 입대1931년나팔수로 종군
보천보 전투 참전1937년김일성 주도
중대장 역임1945년일본의 항복
강건종합군관학교 교장 취임불명
6.25 전쟁 참전1950년 ~ 1953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1961년
최고인민회의 제3기 대의원1962년
중화인민공화국 주재 대사1962년 ~ 1964년
민족보위부상 역임불명
조선인민군 총정치국1968년오진우 후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후보위원196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정치국 위원1970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부장1973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검열위원회 위원장1977년

2.5. 사망

1978년 9월 5일에 사망했으며, 대성산혁명렬사릉에 안장되었다. 생전에 김일성 훈장, 국기훈장 제1급 훈장을 받았다. 북한 정부는 그의 공로를 인정하여 애국렬사릉에 안장하고 흉상을 세웠다.

3. 저작

한익수한국어의 저서로는 1968년 평양 외국문출판사에서 출판된 《항일 유격대의 회상》이 있다. 이 책에는 〈학습은 혁명가에게 첫째가는 임무이다〉라는 장이 포함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