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연
1. 개요
항연은 초나라의 장군으로, 기원전 225년 진나라의 침략에 맞서 싸웠으나, 기원전 223년 왕전에게 패하여 전사하거나 자결했다. 그는 진나라 멸망 이후 일어난 진승·오광의 난에서 민중의 지지를 받으며 반란 지도자 오광이 자신의 이름을 사칭할 정도로 영웅적인 인물로 추앙받았다. 항연의 아들 항량과 손자 항우는 초 의제를 옹립하고 진나라에 저항하여 진나라 멸망에 기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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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원전 223년 사망 -
디오도토스 2세
디오도토스 2세는 기원전 3세기 중반 그리스-박트리아 왕국의 왕으로, 파르티아와의 동맹을 통해 왕국 안정을 꾀했으나 에우튀데모스 1세에게 암살당해 왕조가 교체되었으며, 그의 주화는 왕국의 경제 및 정치 상황을 보여주는 자료로 평가받는다. -
기원전 223년 사망 -
셀레우코스 3세 케라우노스
셀레우코스 3세 케라우노스는 기원전 225년부터 223년까지 셀레우코스 제국을 통치한 왕으로, 소테르 칭호와 케라우노스 별명을 가졌으나 아탈루스 1세와의 전쟁 중 암살당했다. -
전국 시대의 군인 -
오기
오기는 중국 전국 시대의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가로, 여러 나라에서 활약하며 군사적 업적을 세우고 초나라 재상으로 법가 개혁을 추진하여 부국강병을 이끌었으며, 《오자병법》을 저술했다. -
전국 시대의 군인 -
손빈
손빈은 중국 전국 시대 제나라의 군사 전략가로, 손무의 후손이며, 방연의 모함으로 다리가 잘리는 형벌을 받았으나 제나라로 망명하여 계릉 전투와 마릉 전투에서 뛰어난 지략을 발휘, 위나라 군대를 격파하는 데 기여했고 그의 군사 사상은 《손빈병법》에 담겨 중국 병법의 중요한 부분을 차지한다. -
초나라의 군인 -
오기
오기는 중국 전국 시대의 군사 전략가이자 정치가로, 여러 나라에서 활약하며 군사적 업적을 세우고 초나라 재상으로 법가 개혁을 추진하여 부국강병을 이끌었으며, 《오자병법》을 저술했다. -
초나라의 군인 -
창평군 (전국)
창평군은 전국 시대 초나라 공자 출신으로 진나라 재상을 지냈으며, 초나라 멸망 후 초왕으로 옹립되어 진나라에 저항하다가 전사했다.
2. 생애
항씨 가문은 대대로 초나라의 장군을 지냈으며, 항(項)이라는 읍에 봉해진 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당나라 시대의 『원화성찬』이나 『광운』에 따르면, 항연은 주나라에 분봉된 동족인 희성 항나라의 후예이며, 춘추 시대에 항나라가 노나라에 의해 멸망한 후, 그 국명을 성씨로 삼았다고 한다.
기원전 225년, 진나라의 이신과 몽념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를 침공해오자 항연은 이를 맞아 싸웠으나, 기원전 224년 왕전이 이끄는 진나라 60만 대군에게 패하였다. 회남에서 창평군을 초왕으로 옹립하여 반항했으나, 기원전 223년 왕전과 몽무에게 격파당하고, 창평군은 전사, 항연은 전사 또는 자결하여 초나라는 멸망했다.
이후 진승·오광의 난의 지도자 오광이 항연을 사칭한 것은, 초나라 백성들에게 항연이 영웅으로 널리 알려졌기 때문이다.
2.1. 출신
항연의 가문은 대대로 초나라의 장군을 지낸 명문가였다. 항(項)이라는 땅에 봉해졌기 때문에 성을 항씨(項氏)라 하였다. 항씨는 주나라 희성 항나라의 후예로 알려져 있으며, 춘추 시대에 항나라가 노나라에 멸망한 후 국명을 성씨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2.2. 진나라와의 전쟁
기원전 225년, 진나라의 이신과 몽념이 20만 대군을 이끌고 초나라를 침공하자 항연은 이에 맞서 싸웠다. 이신과 몽념이 성보에서 합류하자 3일 밤낮으로 쉬지 않고 추격하여 이신 군을 대파하고, 두 개의 거점을 함락시키고 7명의 도위를 죽여 진나라 군을 전멸시켰다.
기원전 224년, 진나라의 왕전이 60만 대군을 이끌고 다시 초나라를 공격했다. 왕전은 굳게 지키며 초나라 군과 교전하지 않도록 명령하고, 항연의 방비에 틈이 생기도록 유도한 후 기습하여 초나라 군을 대파했다. 초왕 부추는 포로가 되었지만, 항연은 회남에서 부추의 이복형제이며 과거 진나라의 승상이었던 초나라 공자 창평군을 초왕으로 옹립하여 반항했다.
기원전 223년, 왕전과 몽무는 초나라 군을 격파했고, 창평군은 전사했으며, 항연도 전사(혹은 자결)하여 결국 초나라는 멸망했다. 『사기』 초세가에서는 항연이 죽은 후에 부추가 포로가 되었다고 기록되어 있다.
후에, 진나라가 멸망하는 계기가 된 진승·오광의 난의 지도자 오광은 자신의 이름을 항연이라고 사칭했다. 이는 초나라의 영웅인 항연이 민중에게 널리 지지받았고, 또한 그의 죽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2.3. 최후와 초나라 멸망
기원전 223년, 왕전과 몽무는 초나라 군을 격파했고, 창평군은 전사했으며, 항연도 전사(혹은 자결)하여, 결국 초나라는 멸망했다(『사기』 진시황본기에 따른다。『사기』 초세가에서는 항연이 죽은 후에 부추가 포로가 된다).
이후, 진나라가 멸망하는 계기가 된 진승·오광의 난의 지도자 오광은 자신의 이름을 항연이라고 사칭했다. 이는 초나라의 영웅인 항연이 민중에게 널리 지지받았고, 또한 그의 죽음을 많은 사람들이 알지 못하고 믿지 않았기 때문이다).
2.4. 기록의 모순
항연과 왕전의 전투에 대한 기록은 사료마다 차이를 보인다. 《사기》 진시황본기에는 기원전 224년에 초왕 부추가 사로잡히고, 기원전 223년에 창평군이 격파되어 죽고 항연이 자결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반면, 《사기》 육국연표, 초세가, 백기왕전열전, 몽염열전 등에는 기원전 224년에 항연이 진나라와 싸우다 살해되었고, 기원전 223년에 초왕 부추가 사로잡혔다고 기록되어 있다. 1975년 호북성 운몽현에서 발굴된 《운몽수호지진간》의 〈연기〉에는 진나라가 기원전 223년에 초나라를 공격하고, 기원전 224년에 초왕 부추를 사로잡았다는 기록이 있어, 《사기》 진시황본기의 기록에 대한 의문을 제기하고 있다.
3. 사후
항연은 진나라에 패배하고 죽었으나, 그의 저항은 진나라에 멸망당한 6국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으며 진나라에 대한 저항 운동의 상징으로 떠올랐다. 예를 들어 진나라 말기 대규모 농민 반란인 진승 · 오광의 난 당시 반란군 지도자 진승과 오광은 각각 진나라 공자 부소와 항연을 자칭하며 민중들을 선동하였다.
항연 사후, 그의 아들 항량과 손자 항우는 범증의 조언에 따라 초 의제를 옹립하고 진나라에 대한 저항 운동을 이끌었다. 항량은 진나라 장군 장한에게 패배하여 죽었지만, 항우는 장한을 굴복시키고 진나라 수도 함양에 입성하여 진왕 자영을 살해함으로써 진나라를 멸망시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