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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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
혜교는 중국 남북조 시대의 승려로, 불교 경전과 율장에 통달하여 가르침을 펼치고 저술 활동을 했다. 《열반경의소》와 《범망경소》를 저술했으나, 두 책 모두 소실되었다. 또한, 후한 시대부터 당나라 시대까지의 고승 500여 명의 일대기를 모아 엮은 《고승전》을 편찬하여 초기 중국 불교 연구에 중요한 사료를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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혜교 | |
---|---|
기본 정보 | |
이름 | 혜교 |
생몰년 | 건무 4년 - 승성 3년 2월 (497년 - 554년 3월) |
시호 | 해당 없음 |
존칭 | 해당 없음 |
출생지 | 회계군상우현 |
사망지 | 심양군분성현 |
종파 | 해당 없음 |
사찰 | 가상사 |
스승 | 해당 없음 |
제자 | 해당 없음 |
저서 | '고승전' |
2. 생애
회계군 상우현 출신이나, 가문은 알려져 있지 않다. 불교 경전과 율장에 널리 통달하였으며, 회계 가상사(嘉祥寺)에서 도를 배웠다. 봄여름에는 경전을 강의했고, 가을 겨울에는 저술에 몰두했다. 승성 2년(553년), 후경이 일으킨 병란을 피해 장시성 분성(湓城)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강설을 멈추지 않았다.
승성 2년(553년), 후경의 난을 피해 심양군 분성현 (지금의 장시성 주장 시)으로 거처를 옮겼다. 그곳에서도 강설을 멈추지 않았다.
이듬해 승성 3년(554년) 2월에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산 선각사(禪閣寺)에서 장례를 치르고, 그곳에 묘를 두었다.
2. 1. 출생과 초기 활동
혜교는 회계군 상우현 출신이나, 가문은 알려져 있지 않다. 불교 경전과 율장에 널리 통달하였으며, 회계 가상사(嘉祥寺)에서 도를 배웠다. 봄여름에는 경전을 강의했고, 가을 겨울에는 저술에 몰두했다. 승성(承聖) 2년(553년), 후경이 일으킨 병란을 피해 장시성 분성(湓城)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강설을 멈추지 않았다.2. 2. 후경의 난과 이주
혜교는 불교 경전과 율장에 널리 통달하였다. 회계 가상사(嘉祥寺)에서 도를 배우고, 봄여름에는 경전을 강의했고, 가을 겨울에는 저술에 몰두했다. 승성(承聖) 2년(553년), 후경의 난을 피해 분성(湓城, 지금의 장시성 주장 시)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강설을 멈추지 않았다.2. 3. 사망과 장례
혜교는 554년 2월에 58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여산 선각사(禪閣寺)에서 장례를 치르고, 그곳에 묘를 두었다. 혜교는 불교 경전과 율장에 널리 통달하였으며, 회계 가상사(嘉祥寺)에서 도를 배웠다. 봄여름에는 경전을 강의했고, 가을 겨울에는 저술에 몰두했다. 553년, 후경의 난을 피해 분성(湓城, 지금의 장시성 주장 시)으로 거처를 옮겼으나, 그곳에서도 강설을 멈추지 않았다.3. 저서
두 책 다 일찍 없어져 전하지 않는다.
3. 1. 《열반경의소》와 《범망경소》
혜교는 《열반경의소》(涅槃經義疏) 10권과 《범망경소》(梵網經疏) 3권을 저술하였다. 그러나 두 책 모두 일찍 소실되어 현재 전해지지 않는다.3. 2. 《고승전》
《고승전》(高僧傳)은 혜교가 양 무제 천감(天監, 502년~519년) 연간에 후한에서 당대까지의 500여 고승들의 일대기를 모아 펴낸 책으로 14권이다. 남북조 시대의 불교를 포함해 초기 중국 불교사를 연구하려면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중요한 사료이다.[2]혜교는 당시 이미 많은 승전(僧傳, 승려들의 일대기)이 있었으나, 기존의 승전들이 한 지방의 승려들만 다루거나 하나의 덕목만 강조되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고 보았다. 이를 해결하고 승전의 특색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완전한 승전을 만들고자 했다.[3] 특히, 당대에는 저명한 승려를 망라하던 《명승전》(名僧傳)이 유행했는데, 혜교는 그러한 명망 위주의 편찬 의도를 버리고, 승려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덕행이 뛰어나면 고승으로 간주하고 책에 실었다. 여기서 당시 지나치게 번성하여 타락상마저 보이던 양나라 불교계에 자성을 촉구하는 혜교의 의도를 볼 수 있다.[3]
3. 2. 1. 편찬 배경
혜교는 당시 이미 많은 승전(僧傳, 승려들의 일대기)이 있었으나, 기존의 승전들이 한 지방의 승려들만 다루거나 하나의 덕목만 강조되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고 보았다. 이를 해결하고 승전의 특색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완전한 승전을 만들고자 했다.[3] 특히, 당대에는 저명한 승려를 망라하던 《명승전》(名僧傳)이 유행했는데, 혜교는 그러한 명망 위주의 편찬 의도를 버리고, 승려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덕행이 뛰어나면 고승으로 간주하고 책에 실었다. 여기서 당시 지나치게 번성하여 타락상마저 보이던 양나라 불교계에 자성을 촉구하는 혜교의 의도를 볼 수 있다.[3]3. 2. 2. 내용 및 특징
《고승전》(高僧傳)은 혜교가 양 무제 천감(天監, 502년~519년) 연간에 후한에서 당대까지의 500여 고승들의 일대기를 모아 펴낸 책으로 14권이다. 남북조 시대의 불교를 포함해 초기 중국 불교사를 연구하려면 반드시 이용해야 하는 중요한 사료이다.[2]혜교 당시에 이미 많은 승전(僧傳, 승려들의 일대기)이 있었다. 혜교는 기존의 승전이 한 지방의 승려들만 다루었거나, 하나의 덕목만 강조되는 등의 문제점이 있다고 보고, 이를 해결하면서 승전의 특색을 잘 드러낼 수 있는, 완전한 승전을 만들고자 했다. 특히, 당대에는 저명한 승려를 망라하던 《명승전》(名僧傳)이 유행했는데, 혜교는 그런 명망 위주의 편찬 의도를 버리고, 승려가 그 이름이 널리 알려지지 않았더라도 덕행이 뛰어나면 고승으로 간주하고 책에 실었다. 여기서 당시 지나치게 번성하여 타락상마저 보이던 양나라 불교계에 자성을 촉구하는 혜교의 의도를 볼 수 있다.[3]
참조
[1]
웹인용
고승전
http://www.doopedia.[...]
두산
2017-11-07
[2]
저널
東晉ㆍ宋齊 佛敎의 地域別 展開 樣相 - 釋慧皎의 『高僧傳』을 중심으로
http://www.dbpia.co.[...]
2017-11-07
[3]
저널
韓ㆍ中僧傳의 神異的 敍事方式 比較 - 『高僧傳』과 『三國遺事』를 중심으로
http://www.dbpia.co.[...]
2017-11-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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