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숙옹주
1. 개요
혜숙옹주는 조선 성종과 숙의 홍씨의 장녀로, 이름은 수란이다. 1490년 신숙주와 한명회의 증손자인 신항에게 출가하여 70구의 노비와 전지 10결을 하사받았다. 연산군 시대에 남편 신항이 미움을 받아 어려움을 겪었으며, 1507년 신항과 사별한 후 신항의 묘지명을 신용개에게 부탁했다. 신항과의 사이에서 1남 1녀를 두었으나 모두 어려서 사망하여 신항의 동생의 아들을 양자로 삼았고, 양자의 아들 신의는 중종의 딸 경현공주와 혼인했다. 혜숙옹주의 묘소는 남편 신항과 함께 의정부시 송산동의 신숙주 묘역 근처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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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78년 출생 -
토머스 모어
토머스 모어는 잉글랜드의 법률가, 사상가, 정치가이자 인문주의자로 헨리 8세 시대에 대법관을 지냈으나 종교 개혁과 이혼에 반대하여 처형되었고, 《유토피아》를 통해 이상 사회를 묘사하여 '유토피아 사회주의'의 시조로 여겨지며 가톨릭과 성공회에서 성인으로 추대된다. -
1478년 출생 -
조르조네
조르조네는 16세기 베네치아 르네상스 시대의 화가로, 색채와 빛의 묘사에 능했으며 몽환적이고 서정적인 화풍으로 후대 화가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으나 30대 초반에 요절했고, 《잠자는 비너스》, 《폭풍》 등의 대표작이 있다. -
한국사 -
김조국
김조국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2019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위원 겸 당 중앙군사위원회 위원으로 선출되었으며, 당 조직지도부 제1부부장으로 임명되었다. -
한국사 -
토기
토기는 점토를 구워 만든 그릇으로, 일본에서는 구움 정도에 따라 도자기, 자기와 구분되며 인류 최초의 화학적 변화 응용 사례로 식생활과 문화에 혁명적인 변화를 가져왔고, 다원설이 유력한 발상지와 일본 열도 1만 6500년 전 토기 발견이 특징이며, 일본어 관점에서 정의, 역사, 제작 과정, 용도, 세계 각지 토기 문화를 설명한다. -
조선 성종의 자녀 -
견성군
견성군 이돈은 조선 성종의 아들로 연산군 시대에 횡포와 부정행위를 저질렀으나 중종반정 이후 공신이 되었고, 이후 모반 사건에 연루되어 사사된 후 신원된 파란만장한 생애를 살았다. -
조선 성종의 자녀 -
정숙옹주 (성종)
정숙옹주는 조선 성종과 숙의 홍씨의 딸로, 영평위 윤섭에게 출가하여 사후 양자를 들여 의지하며 장수하고 예법을 중시한 삶을 살았으며, 사망 후 선조가 장례를 치르도록 했다.
2. 생애
성종은 혜숙옹주가 신항에게 시집갈 때 옹주의 시아버지인 신종호에게 옹주가 귀하게 자라 교만한 면이 있을 수 있으니 예를 가르쳐 부도(婦道)를 지킬 수 있도록 당부하였다.
남편 신항은 성종의 총애를 받았으나, 연산군 즉위 후에는 미움을 받았다.
2.1. 출생과 혼인
1478년(성종 9년) 7월 26일, 성종과 숙의 홍씨의 장녀로 태어났다. 이름은 수란(秀蘭 또는 壽蘭)이며, 혜숙옹주의 태지석과 왕실족보인 《돈녕보첩》에 이 이름이 기록되어 있다.
1490년(성종 21년) 4월 27일, 참판 신종호(申從濩)의 아들이자 신숙주와 한명회의 증손자인 고원위(高原尉) 신항(申沆)에게 출가하였다. 신항은 세종의 10남인 의창군의 외손자이기도 하다. 혼인과 함께 70구의 노비와 전지 10결을 하사받았다. 성종은 혜숙옹주를 신항에게 시집보내면서 시아버지 되는 신종호에게 옹주의 일을 따로 당부하였다.
2.2. 연산군 시절의 시련
1504년(연산군 10년), 연산군이 혜숙옹주의 이복 동생인 휘숙옹주의 남편 풍원위 임숭재의 관직을 높여주자 대간에서 이에 대해 논박하였는데, 신항이 가자되었을 때는 대간에서 별다른 말이 없었다. 이에 임숭재가 앙심을 품고 신항을 시기하여, 대간들이 신항을 비호한다며 연산군에게 모함하였다. 연산군은 신항의 가자를 탄핵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대간들과 승지들을 잡아들이고 신항을 잡아 하옥하였다. 이어 신항의 궁궐 출입을 금지하고 가자를 개정하였다.
1506년(연산군 12년), 연산군은 연회를 열어 공주와 옹주, 종친의 처와 모든 왕후의 족친을 참석하게 하고, 핑계를 대어 불참하는 자는 그 남편에게 죄를 묻겠다고 어서(御書)를 내리고는, 다시 전교하여 공주, 옹주, 종친의 처와 왕후의 족친은 연회에 참석하게 하고 혜숙옹주만은 참석시키지 말라고 명하였다.
2.3. 남편의 죽음과 사후
1507년(중종 2년), 남편 신항과 사별하였다. 혜숙옹주는 신항의 장례를 마친 후 그의 죽음을 애통해하며 신도비를 세우고, 시당숙인 신용개(申用漑)에게 신항의 묘지명을 써줄 것을 부탁하였다. 남편과의 사이에 1남 1녀를 두었으나 모두 어려서 사망하였기에, 신항의 동생인 신함의 아들 신수경을 양자로 삼았다. 양자 신수경의 아들 신의는 중종의 딸 경현공주와 혼인하였다.
사망 시기는 알려져 있지 않다. 묘소는 경기도 양주군 내동면 송산(현재의 의정부시 송산동)에 있는 신숙주 묘역 근처에 남편 신항과 함께 매장되었다.
3. 가족 관계
| 관계 | 이름 | 출생 | 사망 | 비고 |
|---|---|---|---|---|
| 조부 | 덕종 | 1438년 | 1457년 | 조선의 추존왕 |
| 조모 | 소혜왕후 | 1437년 | 1504년 | 인수대비 |
| 아버지 | 성종 | 1457년 | 1494년 | 조선 제9대 왕 |
| 외조부 | 홍일동 | ? | 1464년 | |
| 외조모 | 홍일동의 측실 | ? | ? | |
| 어머니 | 숙의 홍씨 | 1457년 | 1510년 | |
| 동생 | 완원군 | 1480년 | 1509년 | |
| 동생 | 회산군 | 1481년 | 1512년 | |
| 동생 | 견성군 | 1482년 | 1507년 | |
| 동생 | 정순옹주 | 1486년 | ? | |
| 동생 | 익양군 | 1488년 | 1552년 | |
| 동생 | 경명군 | 1489년 | 1526년 | |
| 동생 | 운천군 | 1490년 | 1524년 | |
| 동생 | 양원군 | 1492년 | 1551년 | |
| 동생 | 정숙옹주 | 1493년 | 1573년 | |
| 시아버지 | 신종호 | 1456년 | 1497년 | 신숙주의 손자, 한명회의 외손자 |
| 시어머니 | 전주 이씨 | ? | 1539년 | 세종의 10남 의창군의 딸 |
| 부마 | 신항 | 1477년 | 1507년 | 고원위(高原尉) |
| 양자 | 신수경 | 1501년 | ? | |
| 양손자 | 신의 | 1530년 | 1584년 | 영천위(靈川尉), 중종의 딸 경현공주와 혼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