혜정옹주
1. 개요
혜정옹주는 조선 중종과 경빈 박씨의 딸로, 1514년에 태어나 석환이라는 이름을 받았다. 1521년 혜정옹주로 봉해졌으며, 홍여와 혼인하여 딸을 낳았다. 작서의 변과 가작인두의 변에 연루되어 폐서인되었으나, 김희의 무고임이 밝혀져 복권되었다. 을사사화로 사위의 가족이 몰락했지만, 혜정옹주는 사위 윤호에게 의지하며 살다가 1580년에 사망했다.
| 이름 | 혜정옹주 |
|---|---|
| 한자 표기 | 惠靜翁主 |
| 작위 | 조선 중종의 옹주 |
| 배우자 | 당성위(唐城尉) 홍여(洪礪) |
| 자녀 | 1녀 ----홍옥환(洪玉環) |
| 휘 | 석환(石環) |
| 아버지 | 중종 |
| 어머니 | 경빈 박씨 |
| 출생일 | 1514년 10월 27일 (음력) |
| 사망일 | 1580년 5월 4일 (음력)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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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공주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조선의 공주 -
영온옹주
영온옹주는 조선 순조와 숙의 박씨의 외동딸이자 효명세자의 이복 여동생으로, 11세에 옹주로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13세에 요절하였으며 효명세자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
조선의 옹주 -
덕혜옹주
덕혜옹주는 고종과 귀인 양씨 사이에서 태어나 불행한 삶을 살았던 대한제국의 옹주로, 일본 유학 후 결혼 생활 중 조현병 증세를 보였으며 해방 후 귀국하여 창덕궁에서 생을 마감했고, 그녀의 삶은 여러 작품의 소재가 되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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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온옹주
영온옹주는 조선 순조와 숙의 박씨의 외동딸이자 효명세자의 이복 여동생으로, 11세에 옹주로 책봉되었으나 병약하여 13세에 요절하였으며 효명세자의 깊은 슬픔을 자아냈다. -
1514년 출생 -
게오르크 요아힘 레티쿠스
오스트리아 태생의 수학자이자 천문학자, 지도 제작자인 게오르크 요아힘 레티쿠스는 코페르니쿠스의 유일한 제자로서 지동설을 알리고 《천체의 회전에 관하여》 출판을 추진했으며, 삼각법 연구와 지도 제작에도 기여했으나 말년에 불운을 겪었다. -
1514년 출생 -
레 장종
레 장종은 막 왕조 찬탈 후 응우옌 김에 의해 옹립되어 후 레 왕조를 재건했으나, 실권은 응우옌 김과 찐끼엠에게 있어 꼭두각시 노릇을 하였다.
2. 생애
1514년(중종 9년) 중종과 경빈 박씨의 차녀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석환(石環)이다. 1521년(중종 16년) 혜정옹주(惠靜翁主)로 봉해졌으며, 홍서주의 아들인 당성위(唐城尉) 홍여(洪礪)와 혼인하여 1녀를 두었다.
1527년(중종 22년) 어머니 경빈 박씨와 오빠 복성군이 인종을 저주한 작서의 변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폐서인되고 상주로 추방되었다. 1533년(중종 28년) 남편 홍여는 가작인두의 변에 연루되어 장모 경빈 박씨의 사주를 받고 세자를 저주하는 일에 관여하였다는 죄목으로 추국을 받던 도중 사망하였고, 옹주의 어머니와 오빠 복성군 또한 사사되었다. 언니 혜순옹주와 함께 옹주의 작호는 삭탈당하고 폐서인이 되었다.
이후 작서의 변이 김안로의 아들 김희가 꾸민 일임이 밝혀져 신원되어 도성 안에 거주가 허락되었고, 1541년(중종 36년) 인종이 중종에게 청하여 복성군, 혜순옹주, 혜정옹주 및 부마들의 속적을 회복시켜 직첩을 되돌려줄 것을 호소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년) 을사사화로 윤호의 조부인 윤임과 아버지 윤흥인이 연루되어 모두 처형되었지만, 윤호는 중종의 외손녀사위라 하여 연좌되지 않고 목숨을 구하였다. 이후 혜정옹주는 양자를 들이지 않고 사위 윤호에게 의지하며 살았다.
1580년 (선조 13년) 4월 11일, 사위 윤호가 남도 우후(南道虞候)로 임명되었으나, 옹주의 병환이 깊고 간호할 자녀가 없어 왕이 전교하여 체직시켰다. 같은 해 4월 21일, 혜정옹주는 병환으로 사망하였으며, 양주(楊州) 울도리(鬱陶里)에 매장되었다.
2.1. 출생과 혼인
1514년(중종 9년) 10월 10일, 중종과 경빈 박씨의 차녀로 태어났으며, 이름은 석환(石環)이다. 1521년(중종 16년), 혜정옹주(惠靜翁主)로 봉해졌으며, 홍서주의 아들인 당성위(唐城尉) 홍여(洪礪)와 혼인하여 1녀를 두었다.
2.2. 폐서인과 복권
1527년(중종 22년), 어머니 경빈 박씨와 오빠 복성군이 세자(인종) 저주 사건인 작서의 변의 범인으로 지목되어 폐서인되고 상주로 추방되었다. 1533년(중종 28년) 남편 홍여가 가작인두의 변에 연루되어 장모 경빈 박씨의 사주를 받고 세자를 저주하는 일에 관여하였다는 죄목으로 추국을 받던 도중 모진 고문 끝에 사망하였다. 옹주의 어머니인 경빈 박씨와 오빠 복성군 또한 사사되었다. 언니 혜순옹주와 함께 옹주의 작호를 삭탈당하고 폐서인이 되었다.
이후 작서의 변이 김안로의 아들 김희가 꾸민 일임이 밝혀져 신원되어 도성 안에 거주가 허락되었고, 1541년(중종 36년) 인종이 중종에게 청하여 복성군, 혜순옹주, 혜정옹주 및 부마들의 속적을 회복시켜 직첩을 되돌려줄 것을 호소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