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흥인
1. 개요
윤흥인은 조선 중종 대에 무과에 응시했으나 을사사화에 연루되어 비극적인 최후를 맞이한 인물이다. 1543년 무과에 급제하여 관직 생활을 시작했으나, 1545년 아버지 윤임이 소윤 세력과의 갈등에서 패배하면서 전라도 낙안으로 유배되었다. 유배 도중 계림군과의 연루 혐의로 사형당했으며, 그의 가족들 또한 연좌되어 몰락했다. 그의 아들 윤호는 중종의 외손녀사위였기에 사형을 면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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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16년 출생 -
존 폭스
존 폭스는 잉글랜드의 종교 개혁 시기 작가로, 《순교자 열전》을 저술하여 개신교 순교자들의 삶을 기록했으며, 잉글랜드 종교 개혁에 영향을 미쳤다. -
1516년 출생 -
심수경
심수경은 조선 중기의 문신이자 학자로, 명종 때 문과에 장원 급제하여 여러 관직을 역임하고 선조 때 우의정, 좌의정에 이르렀으며 청백리에 녹선되었고, 임진왜란 때 삼도도체찰사로 의병을 지휘하기도 했다. -
1545년 사망 -
윤임
윤임은 조선 중기 무신이자 정치가로, 중종반정에 참여하여 공신이 되었으나, 인종 즉위 후 윤원형과의 갈등 속에 을사사화로 유배되어 사사되었으며, 그의 생애는 당쟁 속 시대상을 보여주며 정치적 역할과 책임에 대한 논란과 엇갈린 평가를 남긴다. -
1545년 사망 -
인순공주
인순공주는 조선 중종과 문정왕후 사이에서 태어난 공주로, 명종의 친동생이지만 어린 나이에 요절하여 경기도 고양시 서삼릉에 묻혔으며, 명종 때 명복을 빌던 사찰 혁파 상소가 있었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정경심
정경심은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징역 4년형이 확정되어 복역 후 가석방된 대한민국의 영문학자이자 대학교수였다. -
서울특별시 출신 -
서형원
서형원은 환경운동연합 활동을 거쳐 과천시의회 의원 및 의장을 역임하고 녹색당 풀뿌리정치지원단장으로 활동한 환경운동가 출신 정치인이다.
2. 생애
윤흥인은 어머니 여주 이씨가 일찍 사망하여 아버지 윤임이 병마절도사 곽한(郭翰)의 딸 현풍 곽씨와 재혼하면서 이복동생 윤흥신이 태어났다. 윤흥신은 임진왜란 때 전사하였다. 서모에게서 이복 동생 윤흥효, 윤흥제가 태어났는데, 윤흥제는 이복 형 윤흥신과 함께 임진왜란 초기에 전사하였다. 윤흥인의 부인은 순흥 안씨로 안경공의 6대손 판관 안세형(安世亨)의 딸이다.
2.1. 가계와 초기 활동
1542년(중종 37년) 무과에 응시했으나 두 번째 시험소에서 응시하던 중 사헌부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었다. 무과 이소(武科二所)의 거자(擧子) 윤흥인(尹興仁)이 기사(騎射)할 때 표적을 맞히지 못한 것을 징을 쳤는데, 감적관(監的官)이 도리어 징을 가진 사람을 탓하고 위협하여 북을 치게 하니, 시관은 일부러 모른 체하고 맞힌 것으로 처리하였다 하여 시험의 공정성에 이의가 제기되었다.
이듬해인 1543년(중종 38년) 좌랑(佐郞)으로 재직 중 다시 무과에 응시, 그 해의 식년무과(式年武科)에 갑과(甲科) 2등 아원(亞元)으로 급제하였다.
1545년(인종 1) 내승(內乘)을 거쳐 그해 2월 공조 좌랑을 거쳐 형조정랑(刑曹正郞)을 역임하였다. 그해 6월 인종이 위급하자 입직을 섰고, 인종의 상태를 보고하였다. 병세가 악화되자 그해 7월 1일 인종은 유언을 하며 '윤흥인(尹興仁)·윤흥의(尹興義) 형제로 하여금 내 상사를 감호(監護)하게 하라고 대신에게 말하라' 하였다.
2.2. 관직 생활과 을사사화
1542년(중종 37년) 무과에 응시했으나 두 번째 시험소에서 응시하던 중 사헌부에 의해 문제가 제기되었다. 사헌부에서는 무과 이소(武科二所)의 거자(擧子) 윤흥인(尹興仁)이 기사(騎射)할 때 표적을 맞히지 못한 것을 징을 쳤는데, 감적관(監的官)이 도리어 징을 가진 사람을 탓하고 위협하여 북을 치게 하니, 시관은 일부러 모른 체하고 맞힌 것으로 처리하였다 하여 시험의 공정성에 이의를 제기했다.
이듬해인 1543년(중종 38년) 좌랑(佐郞)으로 재직 중 다시 무과에 응시, 그 해의 식년무과(式年武科)에 갑과(甲科) 2등 아원(亞元)으로 급제하였다.
1545년(인종 1) 내승(內乘)을 거쳐 그해 2월 공조 좌랑을 거쳐 형조정랑(刑曹正郞)을 역임하였다. 그해 6월 인종이 위급하자 입직을 섰고, 인종의 상태를 보고하였다. 병세가 악화되자 그해 7월 1일 인종은 유언을 하며 '윤흥인(尹興仁)·윤흥의(尹興義) 형제로 하여금 내 상사를 감호(監護)하게 하라'고 대신에게 말했다. 1545년 대윤과 소윤의 갈등에서 아버지 윤임이 패하자 을사사화가 발생, 그 역시 연좌되어 전라도 낙안(樂安)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그의 아버지 윤임은 다른 외조카인 계림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낙안(樂安)으로 내려가던 길목인 여산(礪山)에 머물렀는데, 그는 홍언필 등에 의해 계림군과 왕래하였다고 지목되어 추국받았다. 1545년(명종 즉위) 9월 11일 여산에서 교형을 선고받고, 얼마 뒤 교형으로 죽었다. 그의 가족들도 연좌되었고, 가산 또한 몰수되었다. 이때 아버지 윤임과 윤임의 다른 두 아들, 그의 동생인 흥의(興義), 흥례(興禮) 등도 연좌되어 사형당했다. 그의 아들 윤호는 혜정옹주의 딸과 혼인하였으므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그밖에 그의 이복 동생들과 서출 이복 동생들은 나이가 어리다 하여 특별히 죽음을 모면하고 노비가 되었다.
1545년 11월 26일 명종은 영중추부사 홍언필(洪彦弼), 영의정 윤인경(尹仁鏡), 우찬성 임백령(林百齡), 우참찬 신광한(申光漢) 등을 불러 윤임(尹任)의 손자이므로 폐하여 서인을 만들어야 하는데, 율문은 그러하나 다만 선왕의 자손을 속천(屬賤)하는 것은 부당하다며 논의하게 했다. 아들 윤호는 중종의 외손녀사위라 하여 사형을 면하게 되었다.
2.3. 비극적인 죽음과 가족의 몰락
1545년(인종 1) 대윤과 소윤의 갈등에서 아버지 윤임이 패하면서 을사사화가 발생했고, 윤흥인 역시 연좌되어 전라도 낙안(樂安)으로 유배되었다. 이때 윤임은 외조카 계림군을 왕으로 추대하려 했다는 혐의를 받았다.
낙안으로 가던 중 여산(礪山)에 머물렀는데, 홍언필 등은 윤흥인이 계림군과 왕래하였다고 지목하여 추국하였다. 1545년(명종 즉위) 9월 11일 여산에서 교형이 선고되었고, 얼마 뒤 교형으로 죽었다. 윤흥인의 가족들도 연좌되었고, 가산 또한 몰수되었다. 이때 윤임과 그의 다른 두 아들, 윤흥인의 동생인 흥의(興義), 흥례(興禮) 등도 연좌되어 사형당했다. 윤흥인의 아들 윤호는 혜정옹주의 딸과 혼인하였으므로 목숨을 구할 수 있었다. 이복 동생들과 서출 이복 동생들은 나이가 어려 특별히 죽음을 면하고 노비가 되었다.
1545년 11월 26일 명종은 영중추부사 홍언필(洪彦弼), 영의정 윤인경(尹仁鏡), 우찬성 임백령(林百齡), 우참찬 신광한(申光漢) 등을 불러 윤임(尹任)의 손자를 서인으로 만들어야 하는지 논의했다. 율문에는 서인으로 만드는 것이 마땅하나, 선왕의 자손을 속천(屬賤)하는 것은 부당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결국 아들 윤호는 중종의 외손녀사위라 하여 사형을 면했다.
3. 가족 관계
| | 이름 || 비고 | ||
|---|---|---|
| 조부 | 윤여필 | 파원부원군 영돈녕부사 |
| 조모 | 순천 부부인 박씨 | 부: 평양군 박중선, 조모: 심온의 딸 |
| 고모 | 장경왕후 | 중종의 제1계비 |
| 고모 | 파평 현부인 윤씨 | 덕풍군 이이(성종의 형 월산대군의 서자)의 처 |
| 아버지 | 윤임 | |
| 어머니 | 정부인 증 정경부인 여흥 이씨 | 첨추 이보(李俌)의 딸 |
| 동생 | 윤흥의 | |
| 동생 | 윤흥례 | |
| 누이 | 윤씨 | 사위 : 이덕응 |
| 누이 | 윤씨 | 사위 : 이홍윤 |
| 계모 | 정부인 증 정경부인 현풍 곽씨 | 병마절도사 곽한(郭翰)의 딸 |
| 이복 동생 | 윤흥지 | |
| 이복 동생 | 윤흥신 | |
| 이복 동생 | 윤흥충 | |
| 제수 | 이씨 | 영원감 이의수의 딸, 후사 없음 |
| 서모 | 이름 미상 | 양민 출신 첩 |
| 서제 | 윤흥효 | 손자 윤종 |
| 서제 | 윤흥제 | 손자 윤상 |
| 서모 | 매향 | 기생 출신 |
| 서모 | 종이(終伊) | 고모가 시집갈 때 데려간 노비 출신 |
| 부인 | 순흥 안씨 | 판관 안세형의 딸 |
| 아들 | 윤경 | |
| 아들 | 윤호 | |
| 아들 | 윤발(尹 玉+發) | 윤흥례에게 출계 |
| 딸 | 윤씨 | 사위 심광보 |
| 딸 | 윤씨 | 사위 임응우 |
| 외조부 | 이보(李俌) | 본관은 여주, 양녕대군의 딸 재령군주의 증손자 |
| 외조모 | 광주 이씨 | 승지 이세광(李世匡)의 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