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성남
1. 개요
홍성남은 일제강점기 평안남도 출신의 정치인으로, 프라하 공업대학을 졸업했다. 1973년 정무원 부총리, 국가계획위원장을 시작으로, 조선로동당 당 중앙위원, 최고인민회의 대의원, 평안남도 당 책임서기 등을 역임했다. 1997년 정무원 총리 대리를 거쳐 1998년부터 2003년까지 내각 총리를 지냈으며, 2002년 북일 정상회담 준비 교섭에 참여했다. 총리 사임 후 함경남도 당 책임서기를 지내다 2009년 요독증으로 사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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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름 | 홍성남 |
|---|---|
| 로마자 표기 | Hong Seongnam |
| 한글 | 홍성남 |
| 한자 | 洪成南 |
| 출생일 | 1929년 10월 2일 |
|---|---|
| 사망일 | 2009년 3월 31일 |
| 직책 | 내각 총리 |
|---|---|
| 임기 시작 | 1998년 9월 5일 |
| 임기 종료 | 2003년 9월 3일 |
| 직책 (대행) | 정무원 총리 대리 |
| 대행 임기 시작 | 1997년 2월 21일 |
| 대행 임기 종료 | 1998년 9월 5일 |
| 최고 지도자 | 김정일 |
| 이전 총리 | 강성산 |
| 다음 총리 | 박봉주 |
| 직책 | 정무원 부총리 |
| 임기 시작 | 1988년 12월 |
| 임기 종료 | 1997년 2월 21일 |
| 직책 | 정무원 제1부총리 |
| 임기 시작 | 1986년 12월 29일 |
| 임기 종료 | 1988년 12월 12일 |
| 직책 | 정무원 부총리 |
| 임기 시작 | 1986년 2월 4일 |
| 임기 종료 | 1986년 12월 29일 |
| 소속 정당 | 조선로동당 |
| 출생지 | 평안북도 정주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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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망 원인 | 애국열사릉에 안장됨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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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총리 -
김일성
김일성은 김성주라는 본명으로 1930년대 항일 무장 투쟁을 했고, 소련의 지원을 받아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수립하여 통치했으며, 한국 전쟁을 일으키고 주체사상을 내세워 독재 체제를 강화하고 개인 숭배를 조장한 정치인이다. -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총리 -
강성산
강성산은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정치인으로, 두 차례에 걸쳐 내각 총리를 역임하며 합영법 제정 등 경제 개혁을 추진하였으나 김정일 시대에 실각한 후 사망하여 애국렬사릉에 안장되었다. -
평안남도 출신 -
송종의
송종의는 1941년 평안남도 중화군 출생의 대한민국 법조인으로, 검사로 재직하며 서울지방검찰청 검사장, 대검찰청 차장검사 등 요직을 역임하고 법제처장을 지냈으며, 베트남 전쟁 참전, 밤나무 심기, 천고법치문화재단 설립 등의 활동을 했으나 인혁당 사건, 민청학련 사건, 노무현 전 대통령 구속영장 청구 결재, 형제복지원 사건 조사 거부 등 여러 논란에도 연루되었다. -
평안남도 출신 -
김형직
김형직은 한국의 독립운동가이자 김일성의 아버지로, 조선국민회에 참여하고 만주에서 독립운동을 전개했으며, 북한에서는 항일 독립운동 지도자로 추앙받지만 반공주의적 성향을 가졌다는 증언도 있다. -
2009년 사망 -
정석모
경찰 출신 행정가이자 정치인인 정석모는 치안국장, 도지사, 차관, 6선 국회의원, 내무부 장관 등을 역임하며 충청권 정치에 큰 영향력을 행사했고, 정계 은퇴 후에는 건양대학교 이사장으로 활동했다. -
2009년 사망 -
한영수 (정치인)
한영수는 충청남도 서산군 출신의 정치인으로, 5·9·10·11·14·15대 국회의원을 역임하고 신민당 대변인, 민한당 정책위 의장, 국회 국방위원장 등을 지냈으나 잦은 당적 변경과 간통 혐의로 비판받았다.
2. 생애
홍성남은 1929년 평안남도에서 태어나 프라하 공업대학을 졸업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건국 후 체코슬로바키아로 유학하여 프라하 공과대학교를 졸업했다. 1964년부터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의 부부장 및 부장 직을 역임했다. 또한 과학 기술 전문가로서 화학공업상(장관) 및 중공업상도 역임했다.
1971년 당 중앙위원으로 선출되었다. 1973년부터 오랫동안 국가계획위원장을 역임하며 북한의 계획 경제의 중추를 담당했다. 1988년 12월 리근모가 정무원 총리를 사임했지만, 홍성남은 이어진 연형묵 내각과 1992년 12월에 발족한 제2차 강성산 내각에서도 부총리를 역임했다.
이후 홍성남의 자세한 정치 경력은 하위 섹션에서 다루고 있다.
2.1. 정치 경력
1973년 9월 정무원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에 취임했다. 1980년 10월 조선로동당 당 중앙위원이 되었고, 1982년 2월부터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을 지냈다. 1982년 11월 평안남도 당 책임서기가 되었다.
1986년 2월 다시 정무원 부총리 겸 국가계획위원장이 되었고, 같은 해 12월 당 정치국원으로 승격되었다. 1989년 3월 당 정치국원 후보로 강등되었다.
김정일 시대에 정무원 총리 강성산은 김정일과의 대립, 지병인 당뇨병 악화로 점차 정무에서 멀어졌다. 1997년 2월 21일, 홍성남은 정무원 총리 대리에 임명되어 강성산을 대신하여 정무원을 관장했다. 1998년 9월 5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사회주의 헌법 개정으로 정무원이 내각으로 개편되자, 정식으로 내각 총리에 취임했다.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에서 일본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당시) 다나카 히토시와 준비 교섭을 진행했다.
2003년 9월 3일 총리에서 해임되었고, 같은 달 함경남도 당 위원회 책임 비서가 되었다.
2.2. 김정일 시대
1997년 2월 21일, 김정일 시대에 정무원 총리였던 강성산은 김정일과의 대립, 그리고 지병인 당뇨병 악화로 점차 정무에서 멀어졌다. 이에 홍성남은 정무원 총리 대리에 임명되어 강성산을 대신하여 정무원을 관장하게 되었다.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에서 헌법이 개정되어 정무원이 내각으로 개편되자, 홍성남은 정식으로 내각 총리에 취임하였다.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에서는 일본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당시) 다나카 히토시와 준비 교섭을 진행했다.
2003년 9월 3일, 홍성남은 총리직에서 해임되었다.
2.3. 총리 이후 및 사망
홍성남한국어은 1998년 9월부터 2003년 9월까지 내각총리를 역임했다. 내각총리 사임 후, 2003년 9월 함경남도 당 위원회 책임비서가 되었다. 2009년 3월 31일 사망했다.
김정일 시대에 정무원 총리 강성산은 김정일과의 대립이나 지병인 당뇨병 악화로 점차 정무에서 멀어졌다. 1997년 2월 21일, 홍성남은 정무원 총리 대리에 임명되어 강성산을 대신하여 정무원을 관장했다. 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 회의에서 헌법이 개정되어 정무원이 내각으로 개편되자, 홍성남은 정식으로 내각 총리에 취임했다. 2002년 9월 북일 정상회담에서는 일본 외무성 아시아 대양주 국장(당시) 다나카 히토시와 준비 교섭을 진행했다.
2003년 9월 3일, 총리에서 해임되었고, 같은 달 함경남도 당 위원회 책임비서가 되었다.
2009년 3월 31일, 요독증으로 인한 심근 경색으로 사망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