홍콩에서 온 백작부인
1. 개요
《홍콩에서 온 백작부인》은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사로 임명된 오그덴이 홍콩에서 만난 러시아 백작 부인 나타샤와 겪는 이야기를 그린 영화이다. 오그덴은 나타샤를 미국으로 데려가기 위해 집사와 결혼시키려 하지만, 나타샤는 이를 거부하고 호놀룰루에서 배에서 뛰어내린다. 오그덴의 아내가 나타샤의 과거를 알게 되면서 갈등이 생기지만, 오그덴은 결국 나타샤를 선택한다. 영화는 찰리 채플린이 연출하고 말론 브란도, 소피아 로렌 등이 출연했으며, 평가는 엇갈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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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원제 | A Countess from Hong Kong |
|---|---|
| 감독 | 찰리 채플린 |
| 제작 | 제롬 엡스타인 찰리 채플린 (미표기) |
| 각본 | 찰리 채플린 |
| 주연 | 말론 브란도 소피아 로렌 시드니 채플린 티피 헤드런 패트릭 카길 마거릿 러더퍼드 |
| 음악 | 찰리 채플린 |
| 촬영 | 아서 이벳슨 |
| 편집 | 고든 헤일스 |
| 스튜디오 | 유니버설 픽처스 |
| 배급 | 랭크 필름 디스트리뷰터스 (영국) 유니버설 픽처스 (미국) |
| 개봉일 | 1967년 1월 5일 (런던 초연) |
| 상영 시간 | 107분 |
| 국가 | 영국 |
| 언어 | 영어 |
| 제작비 | 350만 달러 (추정) |
| 흥행 수익 | 110만 달러 (미국 및 캐나다 렌탈)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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타이타닉 (1997년 영화)
제임스 카메론 감독의 영화 《타이타닉》은 1912년 타이타닉호 침몰을 배경으로 가난한 화가 잭 도슨과 부유한 귀족 여성 로즈 디윗 부케이터의 비극적인 로맨스를 그린 미국 로맨틱 재난 영화로, 레오나르도 디카프리오와 케이트 윈슬렛이 주연을 맡았고, 아카데미상 11개 부문을 수상하며 전 세계적인 흥행을 기록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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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 (영화)
《미나리》는 1980년대 아칸소주로 이주한 한국계 이민 가족이 아메리칸 드림을 쫓으며 겪는 갈등과 화합, 그리고 할머니와 손자의 특별한 유대감을 그린 영화로, 윤여정은 이 영화로 아카데미 여우조연상을 수상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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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7 두 번 산다
《007 두 번 산다》는 1967년 개봉한 제임스 본드 영화로, 일본을 배경으로 스펙터의 음모를 파헤치기 위해 제임스 본드가 활약하며, 흥행에 성공했으나 일부 비평가들은 스토리의 허술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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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
《트랜스포머: 사라진 시대》는 마이클 베이 감독의 2014년 미국 SF 액션 영화이자 트랜스포머 시리즈의 네 번째 작품으로, 시카고 전투 후를 배경으로 발명가 케이드 예거가 옵티머스 프라임을 발견하면서 인간과 오토봇, 새로운 악당의 대결이 펼쳐지며 새로운 설정이 추가되어 세계관을 확장했으나 비평가로부터 혹평을 받았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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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바웃 타임
리처드 커티스 감독의 영화 어바웃 타임은 시간 여행 능력을 가진 남자가 사랑을 찾아가는 영국 로맨틱 코미디 영화로, 삶의 가치와 행복의 의미를 탐구하며 상업적 성공을 거두었으나 플롯 구멍에 대한 비판도 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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버스데이 걸
버스데이 걸은 내성적인 은행원 존이 우편 신부 나디아를 만나 사기극에 휘말리지만 그녀를 돕는 과정을 그린 영화이며, 니콜 키드먼 등이 출연했다.
2. 줄거리
사우디아라비아 주재 대사로 임명된 오그덴 미어스는 세계 여행을 마치고 미국으로 돌아가는 배에 오른다. 기항지인 홍콩에서 그는 러시아 혁명 이후 가족이 추방당하고 부모를 잃은 러시아 백작 부인 나타샤를 만난다. 상하이 러시아인 부모를 둔 나타샤는 홍콩의 선원 댄스홀에서 매춘부로 일하는 삶에서 벗어나고자 저녁 드레스를 입고 오그덴의 선실에 몰래 숨어든다.
난민 신세라 여권이 없는 나타샤는 항해 내내 오그덴의 선실에 숨어 지내야 한다. 이혼 절차를 밟고 있는 유부남 오그덴은 이 상황이 자신의 경력에 미칠 영향을 걱정하며 난처해하지만, 마지못해 그녀를 돕기로 한다. 나타샤를 배에서 안전하게 내리게 할 방법을 찾던 중, 오그덴은 자신의 중년 집사 허드슨과 나타샤를 위장 결혼시키는 계획을 세운다.
형식적인 결혼이었지만 허드슨은 실제 부부 관계를 원하고, 나타샤는 이를 거부한다. 호놀룰루에 도착할 때까지 허드슨을 피해 다니던 나타샤는 결국 배에서 뛰어내려 해변으로 헤엄쳐 달아난다.
한편, 오그덴의 아내 마사는 남편의 이혼을 막기 위해 워싱턴 D.C.의 조언에 따라 호놀룰루에 도착한다. 오그덴의 변호사 친구 하비는 해변에서 나타샤를 만나 이민국 직원들이 그녀를 허드슨의 아내로 인정했으며 호놀룰루에 머물 수 있게 되었다고 알려준다. 그러나 마사는 홍콩에서 나타샤의 고객이었던 다른 승객에게서 그녀의 과거를 듣게 되고, 나타샤가 매춘부였으며 갱스터의 정부였다는 사실을 폭로하며 오그덴을 추궁한다. 오그덴은 만약 자신의 아내가 그런 상황에 처했더라도 같았을 것이냐며 나타샤를 감싼다.
배는 미국 본토를 향해 출항하지만, 오그덴은 결국 배와 아내를 떠나 호놀룰루의 한 호텔 카바레에서 나타샤와 재회하여 함께 춤을 춘다.
3. 출연진
| 역할 | 배우 | 일본어 더빙 | |
|---|---|---|---|
| TBS판 | 소프트판 | ||
| 오그던 미어스 | 말론 브란도 | 카와이 신오 | 도시 코우야 |
| 나타샤 알렉산드로프 백작부인 | 소피아 로렌 | 토미나가 미사코 | 후카미 리카 |
| 하비 크로저스 | 시드니 채플린 | 기모쓰키 가네타 | 이토 카즈아키 |
| 허드슨 | 패트릭 카길 | 야나미 조지 | 사사키 빈 |
| 마사 미어스 | 티피 헤드런 | 야마모토 요시코 | 와타나베 미사 |
| 클라크 | 올리버 존스턴 | ||
| 존 펠릭스 | 마이클 메드윈 | ||
| 선장 | 존 폴 | ||
| 미스 골즈워로 | 마가렛 러더퍼드 | ||
| 사교계의 딸 | 앤젤라 스큘러 | ||
| 댄스장의 딸 | 제럴딘 채플린 | ||
| 노인 접객원 | 찰리 채플린 | 노모토 레이조 | |
| 불명 기타 | 타나카 료이치 스기타 이쿠코 스즈키 레이코 요시다 리호코 호소이 시게유키 무라마츠 야스오 미즈토리 테츠오 쇼지 미요코 | ||
| 연출 | 사콘인 요 | ||
| 번역 | 이소무라 아이코 | ||
| 효과 | PAG | ||
| 조정 | 사카마키 시로 | ||
| 제작 | 글로비전 | ||
| 해설 | 오기 마사히로 | ||
| 초회 방송 | 1975년 4월 28일 『월요 로드쇼』 | ||
3.1. 주연
| 역할 | 배우 |
|---|---|
| 오그던 미어스 | 말론 브란도 (Marlon Brando) |
| 나타샤 알렉산드로프 백작부인 | 소피아 로렌 (Sophia Loren) |
| 하비 크로저스 | 시드니 채플린 (Sydney Chaplin) |
| 마사 미어스 | 티피 헤드런 (Tippi Hedren) |
| 허드슨 | 패트릭 카길 (Patrick Cargill) |
| 존 펠릭스 | 마이클 메드윈 (Michael Medwin) |
| 클라크 (미어스 석유 회사 이사) | 올리버 존스턴 (Oliver Johnston) |
| 선장 | 존 폴 (John Paul) |
| 상류층 여성 | 앤젤라 스큘러 (Angela Scoular) |
| 골스왈로 부인 | 마가렛 러더퍼드 (Margaret Rutherford) |
| 크로포드 | 빌 나지 (Bill Nagy) |
| 점원 | 딜리스 레이 (Dilys Laye) |
이 외에도 찰리 채플린(Charlie Chaplin)이 늙은 스튜어드 역으로 잠시 출연하며, 그의 딸들인 제럴딘 채플린(Geraldine Chaplin), 조세핀 채플린(Josephine Chaplin), 빅토리아 채플린(Victoria Chaplin)이 각각 배 위의 댄스 파티의 여성, 와이키키 호텔에 들어서는 두 명의 어린 소녀 역으로 잠시 출연한다.
홍콩 배우 리처드 응(Richard Ng)은 1960년대 영국에서 배우 생활 초기, 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3.2. 조연
이 외에도 찰리 채플린이 늙은 스튜어드 역으로 잠시 출연하며, 그의 딸들인 제럴딘 채플린, 조세핀 채플린, 빅토리아 채플린이 각각 배 위의 댄스 파티 여성, 와이키키 호텔에 들어서는 두 명의 어린 소녀 역으로 잠시 출연한다.
홍콩 배우 리처드 응은 1960년대 영국에서 배우 생활 초기, 이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다.
4. 제작
영화 제작은 1966년 1월 25일, 영국 런던 교외 버킹엄셔에 위치한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할리우드 자본으로 제작되었지만 촬영은 전부 영국에서 이루어졌으며, 유니버설의 유럽 제작팀이 화씨 451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한 영화였다.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아 여러 차례 중단되기도 했다.
4.1. 기획
찰리 채플린은 1931년 상하이 방문 경험에서 영화의 아이디어를 얻었다고 밝혔다. 당시 그는 러시아 혁명을 피해 온 빈털터리 귀족들을 만났으며, 이들은 최하층민으로 전락해 남성은 인력거를 끌고 여성은 댄스홀에서 일하는 등 어려운 삶을 살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젊은 세대는 홍콩으로 이주했지만, 난민으로 넘쳐나는 홍콩에서 그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채플린은 1930년대에 당시 아내였던 폴레트 고다르를 주연으로 구상하며 '밀항자'(The Stowaway)라는 제목의 초기 시나리오를 작성했다. 그러나 고다르가 위대한 독재자 작업 중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계약하고 이듬해 채플린과 헤어지면서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혼 합의에 따라 한 편의 영화를 더 만들기로 했으나 실현되지 않았다. 채플린은 이후 수년간 시나리오를 조금씩 수정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1963년, 채플린의 친구가 나타샤 공주 역할로 소피아 로렌을 추천했다. 오그든 역할에는 렉스 해리슨이나 캐리 그랜트를 고려했으나 최종적으로 말론 브란도가 캐스팅되었다. 로렌과 브란도는 1965년까지 시나리오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출연을 결정했다.
알프레드 히치콕과 결별한 티피 헤드런 역시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출연 계약을 맺었다. 하지만 자신의 역할(브란도의 소원해진 아내)이 예상보다 훨씬 작다는 사실에 실망하여 채플린에게 분량 확대를 요청했다. 채플린은 헤드런의 바람을 들어주려고 했지만, 영화의 주요 배경이 배 위이고 헤드런의 역할은 후반부에 등장하는 설정이라 분량을 늘리기 어려웠다. 헤드런은 결국 역할을 수락했으며, 훗날 채플린과 함께 작업한 경험이 즐거웠다고 회고했다.
채플린은 아들 시드니 채플린을 조연으로, 세 딸 제럴딘(46분과 65분에 등장), 조세핀, 빅토리아 채플린(92분에 등장)을 카메오로 출연시켰다.
촬영은 할리우드 자본으로 제작되었으나, 모두 영국 런던 교외 버킹엄셔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1966년 1월 25일부터 진행되었다. 이 영화는 화씨 451에 이어 유니버설의 유럽 제작팀이 만든 두 번째 영화였다. 제작 과정에서 브란도의 촬영 지각과 충수염 입원, 채플린과 브란도의 독감 감염, 로렌과 카를로 폰티의 결혼 등으로 인해 촬영이 여러 차례 중단되기도 했다.
헤드런에 따르면 채플린은 연출 시 배우들의 역할을 직접 연기하며 시범을 보이는 독특한 방식을 사용했으며, 이는 매우 효과적이었다고 한다. 그러나 말론 브란도는 이러한 방식에 모욕감을 느껴 촬영을 그만두려 하기도 했다. 브란도는 채플린을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사람", "자기중심적인 폭군이자 구두쇠"로 평가하며, 특히 채플린이 아들 시드니를 가혹하게 대하는 모습에 분노하여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사디스트적인 사람이었다"고 비판했다.
4.2. 촬영
찰리 채플린이 쓴 보도자료에 따르면,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1931년 상하이 방문 당시 러시아 혁명을 피해 온 여러 귀족들을 만난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그는 "그들은 빈털터리였고 조국도 없었으며, 신분은 최하층이었다. 남자들은 인력거를 끌었고 여자들은 10센트짜리 댄스홀에서 일했다. 제2차 세계 대전이 발발했을 때 많은 옛 귀족들은 죽었고 젊은 세대는 홍콩으로 이주했는데, 그곳에서 그들의 고통은 더욱 심해졌다. 홍콩은 난민들로 넘쳐났다."라고 당시 상황을 설명했다.
채플린은 1930년대에 당시 아내였던 폴레트 고다르를 주연으로 구상하며 '밀항자'(The Stowaway영어)라는 제목으로 시나리오 초고를 작성했다. 그러나 위대한 독재자 작업 중 고다르가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계약을 맺고 이듬해 채플린과 헤어지면서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혼 합의에 따라 한 편의 영화를 더 함께 만들기로 했지만, 결국 실현되지 않았다. 이후 채플린은 수년간 시나리오를 조금씩 수정하며 작업을 이어갔다.
1963년, 채플린의 친구가 나타샤 공주 역으로 소피아 로렌을 추천했다. 오그든 메이어스 역에는 처음 렉스 해리슨이나 캐리 그랜트를 고려했으나, 최종적으로 말론 브란도가 캐스팅되었다. 브란도와 로렌은 1965년까지 시나리오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출연을 확정했다. 알프레드 히치콕 감독과 결별한 티피 헤드런 역시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마사 메이어스 역으로 계약했으나, 자신의 역할 비중이 작다는 사실에 실망했다. 헤드런은 채플린에게 분량 확대를 요청했지만, 이야기 대부분이 배 안에서 진행되고 헤드런의 역할은 영화 후반부에 배에 승선하는 설정이라 반영하기 어려웠다. 채플린은 그녀를 배려하려 노력했고, 헤드런은 결국 영화에 남기로 결정했으며 훗날 채플린과의 작업이 즐거웠다고 회고했다. 채플린은 아들 시드니 채플린을 하비 크로더스 역으로 캐스팅했고, 세 딸 제럴딘 채플린(46분, 65분 등장), 조세핀 채플린, 빅토리아 채플린(92분 등장)을 카메오로 출연시켰다.
촬영은 1966년 1월 25일, 런던 외곽 버킹엄셔에 위치한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유니버설 픽처스의 유럽 제작팀이 화씨 451에 이어 두 번째로 제작한 작품이었다. 제작 과정은 순탄치 않았는데, 브란도가 촬영에 늦게 도착하거나 충수염으로 입원하고, 채플린과 브란도가 독감에 걸리는 등 배우들의 건강 문제와 로렌이 카를로 폰티와 결혼하는 개인사 등으로 인해 자주 중단되었다.
채플린의 연출 방식은 독특했는데, 헤드런은 "채플린의 방식은 우리의 여러 역할을 직접 연기하는 것이었는데, 정말 훌륭했습니다. 연출하는 대신 세트장에 나가서 '좋아, 이렇게 해봐'라고 말하고 우리에게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소피아 로렌이 되고, 저와 말론이 되었습니다. 정말 특이했고 전에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많은 배우들이 이러한 채플린의 접근법을 높이 평가했지만, 말론 브란도는 이를 모욕적으로 받아들여 촬영을 그만두려 하기도 했다. 채플린의 설득으로 브란도는 남았지만, 그는 채플린을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사람"이자 "자기중심적인 폭군이자 구두쇠"라고 생각하게 되었다고 주장했다. 브란도에 따르면 채플린은 "사람들이 늦으면 괴롭히고, 더 빨리 일하라고 무자비하게 꾸짖었다." 특히 브란도는 채플린이 조연으로 출연한 자신의 아들 시드니를 잔인하게 대하는 모습에 분노하며, "채플린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사디스트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4.3. 연출
찰리 채플린이 직접 밝힌 바에 따르면, 이 영화의 아이디어는 1931년 상하이 방문 경험에서 비롯되었다. 당시 그는 러시아 혁명을 피해 온 빈털터리 귀족들을 만났는데, 남자들은 인력거를 끌고 여자들은 값싼 댄스홀에서 일하는 등 최하층민의 삶을 살고 있었다. 제2차 세계 대전 이후 이들의 젊은 세대는 홍콩으로 이주했지만, 난민으로 넘쳐나는 홍콩에서 더욱 힘든 삶을 겪었다. 채플린은 1930년대에 '밀항자(The Stowaway)'라는 제목으로 시나리오 초고를 썼으며, 당시 아내였던 폴레트 고다르를 주연으로 염두에 두었다. 그러나 위대한 독재자 작업 중 고다르가 파라마운트 픽처스와 계약하고 채플린과 헤어지면서 계획은 무산되었다. 이혼 합의에 따라 한 편의 영화를 더 만들기로 했지만 실현되지 않았다. 이후 채플린은 수년간 시나리오를 조금씩 수정하며 작업했다.
1963년, 채플린의 친구가 나타샤 공주 역으로 소피아 로렌을 추천했다. 오그든 역에는 처음 렉스 해리슨이나 캐리 그랜트를 고려했지만, 최종적으로 말론 브란도가 캐스팅되었다. 브란도와 로렌은 1965년까지 시나리오를 읽지 않은 상태에서 출연을 결정했다. 알프레드 히치콕과 결별한 티피 헤드런 역시 시나리오를 보지 않고 계약했으나, 자신의 역할 비중이 작은 것에 실망했다. 채플린은 그녀를 배려하려 했지만, 이야기 구조상 후반부에 배에 탑승하는 역할이라 비중을 늘리기 어려웠다. 헤드런은 결국 영화에 참여했고, 나중에 채플린과의 작업이 즐거웠다고 회상했다. 채플린은 아들 시드니 채플린을 조연으로, 세 딸인 제럴딘 채플린, 조세핀 채플린, 빅토리아 채플린을 카메오로 출연시켰다. 제럴딘은 46분과 65분, 빅토리아는 92분 장면에 등장한다.
영화 제작은 1966년 1월 25일 런던 외곽 버킹엄셔의 파인우드 스튜디오에서 시작되었다. 이 영화는 유니버설 픽처스의 유럽 제작팀이 화씨 451에 이어 제작한 두 번째 영화였다. 제작 과정은 브란도의 지각 및 충수염 입원, 채플린과 브란도의 독감, 로렌과 카를로 폰티의 결혼 등으로 인해 여러 차례 중단되는 등 순탄치 않았다.
채플린의 연출 방식은 독특했다. 티피 헤드런은 "채플린의 방식은 우리의 여러 역할을 직접 연기하는 것이었는데, 정말 훌륭했습니다. 연출하는 대신 세트장에 나가서 '좋아, 이렇게 해봐'라고 말하고 우리에게 방법을 보여주었습니다. 그는 소피아 로렌이 되고, 저와 말론이 되었습니다. 정말 특이했고 전에는 본 적이 없었습니다."라고 설명했다. 많은 배우들이 이러한 접근 방식을 긍정적으로 평가했지만, 말론 브란도는 이를 모욕적으로 받아들여 촬영을 그만두려 하기도 했다. 채플린의 설득으로 남았지만, 브란도는 채플린을 "무시무시하게 잔인한 사람", "자기중심적인 폭군이자 구두쇠"라고 비판하며, "사람들이 늦으면 괴롭히고, 더 빨리 일하라고 무자비하게 꾸짖었다"고 주장했다. 특히 브란도는 채플린이 조연으로 출연한 아들 시드니를 잔인하게 대하는 것에 분노하며 "채플린은 내가 만난 사람 중 가장 사디스트적인 사람이었다"고 말했다.
5. 평가
이 영화는 대체로 부정적인 평가를 받았으며, 로튼 토마토에서는 43%의 평점을 받았다.
5.1. 당대 평가
* 1967년 3월 17일자 뉴욕 타임스(The New York Times)는 "만약 찰리 채플린 영화의 오랜 팬이 자선적인 방식으로 할 수 있다면, 그는 이러한 난처한 상황에 대해 빨리 막을 내리고 그런 일이 없었던 것처럼 행동할 것"이라고 혹평했다.
* 반면, 미국 비평가 앤드류 새리스(Andrew Sarris)는 이 영화에 대한 몇 안 되는 긍정적인 평론 중 하나에서 다음과 같이 썼다. "[찰리 채플린]의 감상주의나 저속함에 대한 비난은 그의 경력 초창기부터 있었다. […] 한때 자신들이 사랑했던 채플린의 이름으로 홍콩에서 온 백작부인을 비난하는 사람들은 아마도 과거의 채플린이 어떠했는지 잊어버렸을 것이다. 만약 당신이 채플린을 좋아했다면, 아마도 홍콩에서 온 백작부인을 좋아할 것이다. 그것은 채플린이 느껴왔던 모든 것의 정수이다."
* 1967년 4월 25일자 하버드 크림슨(The Harvard Crimson)에 기고한 영화 감독 팀 헌터(Tim Hunter) 역시 "새로운 채플린 영화를 그것 자체의 관점에서 받아들여 보세요. 모든 그런 선심 쓰는 비평가들과는 달리, 노인은 실제로 감각을 잃지 않았고, 백작부인은 멋진 로맨스입니다."라며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5.2. 후대 평가
레너드 말틴의 무비 앤 비디오 가이드 1995는 별 1.5개를 주면서 "촬영, 타이밍, 음악 모두 형편없다"고 평했다.
제프리 밴스는 2003년에 쓴 찰리 채플린 전기에 《홍콩에서 온 백작부인》은 정치적 또는 풍자적 요소가 전혀 없어 채플린의 이전 유성 영화들보다 덜 흥미롭다고 적었다. 다만 그는 소피아 로렌이 연기한 나타샤 역할에 채플린 자신의 코믹한 비전과 낙관주의가 스며들어 있다고 보았다. 댄스홀 여자이자 매춘부인 나타샤는 "채플린이 평생 동안 타락한 여성을 여주인공으로 삼은 것에 대한 매료됨을 영속시킨다"고 분석했다. 밴스는 나타샤가 더 나은 삶을 찾으면서 항상 행복과 아름다움은 덧없다는 것을 이해하는, 영화 속 방랑자를 대신한다고 해석하며, 나타샤의 대사 "슬퍼하지 마세요. 그건 너무 쉽습니다. 저처럼 하세요. 지금 이 순간, 저는 매우 행복합니다…우리가 바랄 수 있는 것은 전부 이 순간입니다."에 방랑자의 철학이 담겨 있다고 보았다. 그는 이 진술이 영화에도 적용될 수 있다며, "특히 채플린의 마지막 영화이기 때문에 많은 실패를 한탄하기는 쉽지만, 아마도 그 훌륭하고 덧없는 코믹한 순간들을 소중히 여기는 것이 가장 좋을 것이다."라고 덧붙였다.
2005년, Radio Times는 이 영화에 별 두 개를 주면서 "너무 지루하고 너무 무대적이다"라고 평했다.
2012년, TV Guide는 이 영화에 별 하나를 주면서 "암울하고 매력적이지 않은 코미디"라고 평했다.
2013년, Filmcritic.com의 크리스토퍼 널은 이 영화에 별 세 개를 주었지만, "로렌이 문이 두드릴 때마다 브란도의 욕실에 숨으려고 계속해서 달리는 반복적인 이야기는 지루해진다"라고 지적했다.
후대에 이르러, 이 작품을 당시의 도덕에 대한 이의 제기를 포함하고 있다고 지적하는 평가도 있다. 영화 평론가 리처드 브로디는 2012년 12월 18일자 뉴요커에서 "『백작부인』은 위선을 만연시키고, 오랫동안 이의를 제기받아 온 도덕주의에 뛰어들고 있다. 찰리 채플린은 성혁명 훨씬 이전부터 성혁명가였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