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비 홍씨
1. 개요
화비 홍씨는 고려 충혜왕의 후궁이다. 1342년(충혜왕 복위 3년)에 화비로 책봉되었으며, 아버지 홍탁은 경상도진변사였다. 화비 책봉 당시 충혜왕은 홍탁의 딸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옷과 술을 내려주고 화비로 책봉했다. 화비는 재상 윤침의 집에서 살았으며, 충혜왕은 그녀를 만나기 위해 종종 방문했다. 홍씨의 증조부는 홍백수이며, 조부는 홍선이다. 외사촌은 고려 충숙왕의 제5비인 수비 권씨이며, 매부는 조일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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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의 왕비 -
희비 윤씨
희비 윤씨는 고려 충혜왕의 후궁이자 충정왕의 생모로, 아들 충정왕이 왕위에 오르면서 외척인 민씨 가문이 권력을 얻었으며, 조선 시대에는 조선 왕실에 영향을 미친 파평 윤씨 가문 출신이다. -
고려의 왕비 -
순화원비
고려 충선왕의 비인 순화원비는 남양 홍씨로 남양부원군 홍규의 딸이자 공원왕후의 언니이며 자녀는 없었고, 그녀의 생애에 대한 자세한 기록은 《고려사》에 남아있지 않다. -
남양 홍씨 (당홍) -
홍남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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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양 홍씨 (당홍) -
홍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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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몰년 미상 -
유급
유급은 전한 말기에 신양후에 봉해졌으나, 전한 멸망으로 작위를 잃은 유영의 아들이다. -
생몰년 미상 -
야스케
야스케는 16세기 일본에 기록된 최초의 아프리카인으로, 오다 노부나가의 가신으로 특별한 대우를 받았으며, 혼노지의 변에서 함께 싸웠으나 이후 행적은 불확실하고, 다양한 대중문화 작품에서 소재로 활용된다.
2. 생애
화비 홍씨는 고려 충혜왕의 후궁이다.
1342년(충혜왕 복위 3년) 음력 2월, 충혜왕은 홍탁의 딸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홍씨를 화비(和妃)로 책봉하였다. 당시 홍탁은 경상도 진변사(慶尙道鎭邊使)로 있었다.
화비 책봉 당시, 궁인 임씨는 홍씨보다 2년 먼저 입궁해 있었다. 임씨는 화비 책봉을 질투하였고, 충혜왕은 임씨를 달래기 위해 은천옹주로 책봉하였다.
화비는 책봉된 후 재상 윤침의 집에서 살았다. 이는 충혜왕이 화비에게 왕래를 편하게 하기 위함이었으나, 며칠 지나지 않아 왕의 총애는 끊어지고 말았다.
《고려사》〈세가〉 편에는 충혜왕이 이듬해인 1343년(충혜왕 복위 4년) 음력 2월과 음력 7월에도 화비에게 갔다는 기록이 있다.
2.2. 후궁 책봉
1342년(충혜왕 복위 3년) 음력 2월, 충혜왕은 홍탁의 딸 홍씨를 화비(和妃)로 책봉하였다. 충혜왕은 홍탁의 딸이 아름답다는 소문을 듣고, 홍탁에게 옷과 술을 내린 후 화비로 책봉하였다. 당시 홍탁은 경상도 진변사(慶尙道鎭邊使)로 있었다.
화비 책봉 당시, 궁인 임씨는 홍씨보다 2년 먼저 입궁해 있었다. 임씨는 화비 책봉을 질투하였고, 충혜왕은 임씨를 달래기 위해 은천옹주(銀川翁主)로 책봉하였다. 당시 사람들은 임씨를 '사기옹주(砂器翁主)'라고 불렀다.
2.3. 후궁 시절
화비는 책봉된 후 재상 윤침의 집에서 살았다. 이는 충혜왕이 화비에게 왕래를 편하게 하기 위함이었으나, 충혜왕의 총애는 며칠이 지나지 않아 끊어지고 말았다.
《고려사》〈세가〉 편에는 충혜왕이 이듬해인 1343년(충혜왕 복위 4년) 음력 2월과 음력 7월에도 화비에게 갔다는 기록이 있다.